3. 요한계시록 각장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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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 반드시 속히 될 일
제 2 장 : 종말 교회에 대한 경종 (1)
제 3 장 : 종말 교회에 대한 경종 (2)
제 4 장 : 하나님의 보좌
제 5 장 : 어린양의 등장

 


제3장 강해
종말 교회에 대한 경종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

서론 : 예수님의 재림은 죄로 물든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
          한 최종적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인류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종말에 대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의 이 시대가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매우 가까운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말에 이 땅위에 존속할 여러 교회의 형편을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를 통하여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2장에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권면과 칭찬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3장에서 일곱 교회에 속한 마지막 세 교회,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이기는 자가 되도록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사데 교회에 대하여

3장은 처음에 등장하는 교회는 사데 교회입니다. 이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고 책망을 들은 교회로 유명합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에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로 나타나셨습니다. 일곱 영은 성령을 말하며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일곱 별은 주의 종으로 이 종을 잡고 역사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보이시고 있습니다.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사데 교회를 살리시려면 일곱 영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데 교회를 영적으로 소생시키려면 주의 손에 붙잡힌 하나님의 종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1) 사데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들은 교회로 유명한 교회입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이르신 말씀은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만 알고 있는 은밀한 행위가 많으며 남에게 숨겨진 은밀한 죄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불결한 것이나 죄악을 은밀히 숨겨 둔 채 하나님
     앞에서 시치미를 떼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언제인가 주님이 그 아시는 것을 들추어내시는 날이면 심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며 그 죄악에 상응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2) 사데 교회는 죽었다고 하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 사데 교회는 어느 모로 보나 칭찬해 줄 곳이 없었
     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데 교회는 죽었다고 하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죽었다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네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
     면 그들은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
     기서 살았다고 하는 그들 스스로의 말은 영적인 열매인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일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맺어
     야 할 열매는 육신의 열매가 아닙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하는 일보다 더 중
     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오래 참음, 자비, 양
     선, 충성, 온유, 절제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데 교회는 이 같은 열매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행함이 없는 믿음
     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은 사데 교회에 엄중한 경종을 주셨습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하시면서 "네
     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함에는 먼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나의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주신 그 은혜인 것입니다.

     다음에 어떻게 들었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같은 주님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거역한다
     면 주님은 그들에게 도적같이 이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미쳐 신부의 준비를 못했기 때문에 후3년 반의 무서운
     환난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그러나 이 사데 교회에도 이기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
     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상급은 우리의 확실한 구원을 말합니다.

2.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하여

다음에 우리는 일곱 교회 중 가장 모범적인 종말의 교회 상 을 보여 주고 있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게 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시험의 때를 면케 하시는 축복을 받은 교회로, 주 재림 시의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축복을 받아야 후3년 반의 대 환난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문이 열린 교회입니다. 이문은 주님이 열어 놓으셨기 때문에 감히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교회에 열린 문이란 무슨 문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 문은 구원의 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고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이 문은 또한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문은 슬기로운 처녀처럼 준비한 사람만이 들어가는 문인데 빌라델비아 교회엔 이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이처럼 열린 문이 있는 교회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입니다.

(1)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한 사실에 대하여 칭찬
     을 들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고 하
     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가진 능력은 큰 것이 아닙니다. 적은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능력
     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 해도 제각기 주님이 주신 일반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따라 능력을 행하시고 그 능력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능력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이란 빌라델비아 교회의 경우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내 말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제일 큰 열매도 주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맺을 수 있습
     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모든 능력의 가장 큰 열매들이 오직 주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온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모든 능력으로 주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총집중해야 합니다. 다음에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의
     창찬을 들은 일은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하신 것입니다. 인내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하는 생
     활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의 말씀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인내하는 자가 받을 수 있기 때문입
     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당장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씨를 뿌린 농부가 가을까지 기다려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것처럼 하나
     님의 약속은 그 말씀을 믿고 오랜 기간 참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내의 결실은 하나님의 말씀
     을 오래도록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누가 가장 오래 참을 수 있는 사람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뢰하는 사람입니다.

(3) 주님은 이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시험의 때란 종말에 이 세상에 임할 환난의 시기를 말해 주고 있
     습니다. 이날들을 우리는 "7년 환난"이란 말로 부릅니다. 이미 인류역사가 7년 환난 가운데 들어가는 날이면 이 세상
     은 앞으로 7년간의 시한부 역사가 될 것입니다. 이 7년 환난 가운데 전3년 반은 두 중인의 예언 기간이요, 남은 후3년
     반은 하나님이 이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시는 대 환난 기간입니다.


     이 기간을 전후하여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갖가지 기사와 이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심지어 불이 내려오게 하고 짐승의 우상으로 입을 벌려 말을 하게 하는 등 놀라운 이적도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씀의 터전 위에 선 올바른 믿음의 생활에 들어가지 못하면 우리는 그날에 틀림
     없이 이들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며 믿음에서 떠나 무서운 짐승의 표, 666표를 받게 될
     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이 같은 시험의 때를 면케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주님은 이들에게 아무라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11절에서 주님은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면류관은 바로 빌라델비
     아 교회가 굳게 잡은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일에 있습니다. 장차 이 세상에 임할 무서운 환난에서 보호하심을 받는 사
     람들은 살아서 천년왕국에 들어가 그곳에서 천년 동안 회복된 에덴에서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도 죽음을 보지 않고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 받아 우리들의 영원한 본향인 하늘의 새 예루살렘
     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종말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소망하는 면류관입니다. 우리는 이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
     니다. 사단은 이같은 우리의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빼앗기 위해 이 세상에 있는 재물과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눈에 보이는 소망과 영광을 바라보게 하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는 날이면 우리는 이 놀라운 그리
     스도인의 면류관을 빼앗겨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굳게 잡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3.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하여

이제 우리는 일곱 교회의 마지막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말 교회의 표본으로 등장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한 교회라는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교회에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의 모습으로 등장하셨습니다. 아멘은 '참으로'란 의미로 진리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진실성과 충성심이 없는 교회에 아멘의 주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적어도 자기를 과신하고 거짓된 믿음에 도취된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교회는 이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충성된 교회로 변화 받아야 할 것입니다.

(1) 이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더웁다는 말은 심령의 뜨거움을
     의미한 말입니다. 성령으로 뜨거워지는 심령이 더운 심령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심령의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
     다. 뜨거운 신앙이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찾는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에게 미쳐 버린 생활입니다(고후 5:
     13).

     그런데 이들은 차지도 아니하다는 책망까지 들었습니다. 차다는 말은 등을 돌려버리는 배신을 말합니다. 아주 세상으
     로 나가 버린 상태를 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같은 찬 것이 좋다는 뜻을 의미해 주는 말이 아니라 차라
     리 차기라도 했으면 아예 기대조차 아니했을 것이란 탄식에서 나온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그것도 아니라
     는데 문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신앙 상태는 미지근했습니다. 미지근하다는 말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를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믿기는
     믿는 것 같은데 그것이 시원치 않을 뿐 아니라 찜찜해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님은 이들
     에게 이처럼 선언하셨습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토하여 내 치신다고 하신 말씀은 환난의 불속에 던져서 불같은 시련을 받게 하시겠다고 하신 뜻입니다. 라오디
     게아 교회 같은 미지근한 신앙을 가지고서는 환난 날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결국 미련한
     처녀들이 되어 대 환난에 떨어져 그 가운데서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2) 그러면 이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의 신앙 상태가 어떠했는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7절에서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만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부요했습니다. 물질적으로
     성도들이 부자였으며 교회도 물량적으로 굉장한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도 얼마나 화려한
     지요. 솔로몬의 궁궐보다 더 아름답고 장엄하게 꾸몄습니다. 풍성한 재정으로 교회에서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들
     은 높은 자만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고 스스로 만족해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우리 주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겉
     으로 나타나 보이는 육안의 상태로 보시지 아니하십니다. 영적 상태로 모든 일을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예복도 입지 못한 상태에서 신앙생활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부가 단장해야 할 세마포를 준비
     할 생각도 아니하고 모든 것을 소유한 일에 대하여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부요해 질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로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아직 주님의 사랑을
     받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마땅히 버림받아야 하고 심판 받아야 할 그런 그리스도인인데도 그런 사람에게 '내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들
     려준 음성은 고맙고 감격해야 할 주님의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이제 깊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책
     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고, 안약을 사서 발라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며 징계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불 가운데 집어넣어 회개시키실 것입니다. 그 불 가
     운데란 물론 7년 환난 중, 후3년 반의 무서운 재앙의 때를 말합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으
     로 "이기는 자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내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 여러분, 우리 교회는 결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세상 것에 부요함으로 하나님의 것에 가난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만족하는 물량적인 바벨탑을 쌓는 교회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지금 우리는 분명
          히 주님의 재림이 매우 가까운 긴박한 시기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같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종말에 이르지 아니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신앙이 깊은 잠
          속에 잠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신앙의 수렁 속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처럼 말씀
          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
          룩한 행실과 경건하므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
          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
          드로 사도의 간곡한 부탁처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하므로 그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시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상속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종말론 연구 민병석 저서와 그 내용 주일 설교(1~6권) 새벽을 여는 성경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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