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에덴에서 천국으로

1. 하나님의 천지창조
2. 사람의 창조
3. 최초의 인류사회
4. 노아시대의 홍수심판
5. 아브라함의 등장
6. 이삭의 등장
7. 야곱과 12지파

 


1. 하나님의 천지 창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첫번째 선언이다. 만약 이 말씀이 진실하다면 성경은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만약 이 말씀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성경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다. 그런데 성경이 기록된지는 3천 5백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경에서 오류를 발견하여 그 내용이 개정되었거나 문구가 수정 된 일은 단 한 건도 없다. 그리고 해마다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성경뿐이다. 성경이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이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그의 말씀으로 이루셨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33:6)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3)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3:5)


하나님의 모든 창조에 대하여 왜 '그의 말씀으로 이루셨다'고 천명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천지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이 결코 자연적 현상이나 진화적 과정을 통해서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밝혀 주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자연에 어떤 변화가 전혀 없었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역사적 과정과 환경의 적응, 각 생명체들이 소유하고 있는 독특한 인자 (因子 = 遺傳子)등을 통하여 인류의 얼굴 모습과 색깔이 달라진 것처럼 인류의 외형적인 변화는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로 인하여 인체의 구조 조직이나 신체적 조건이 변화되어 별종(전혀 다른 형태.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형태)의 인종을 이루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 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의 창조에 정면 도전한다. 진화론은 '모든 생명체가 무생물에서 시작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그 '무생물이 단세포로 되고 이 단세포가 점진적인 변천에 의해 현재와 같은 모든 생명체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하여 1절에 나오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신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 대하여 이 천지 창조는 하나님의 6일간의 창조 사역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 하나님은 기왕에 존재했던 천지를 가지고 6일간에 재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같은 이론은, 하나님의 창조 이전에 이 지구상에는 이미 다른 피조물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죄악으로 하나님이 이 지구에 심판을 내리심으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지금의 세계는 이런 상태에서 재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성경적이 아니다. 창세기2:1절에서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천지의 창조는 6일 창조 중에 속한 사실임을 반증하고 있다. 여기서 '천지'란 아직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은 상태의 광대무변한 하늘을 가리키고 땅이란 다만 둥근 형태의 지구와 그 지구를 덮고 있는 물만이 존재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처럼 천지를 창조하신 후, 창조 사역을 계속하심으로 모든 창조를 엿새 동안에 끝마치셨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중에 지구의 창조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첫째 날의 창조

첫째 날의 창조는 문맥상 천지 창조와 함께 빛의 비췸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 나오는 천지 창조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 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였으며 이 때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하셨다. 이같은 상태는 혹 '혼돈과 무질서'를 상상하지만 이것은 창조의 순서상 일시적 과정일 뿐, 곧 이어 계속된 빛의 비췸과 둘째 날과 셋째 날의 창조를 통해서 완전한 질서를 잡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는 하루나 이틀 동안의 창조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역으로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땅이 혼돈 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를 가지고 이것을 하나님의 첫째 날의 창조로 보지 않고 기존 세계의 심판으로 인한 파멸 상태로 보는 관점은 잘못이다.

천지 창조는 왜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역에 속해야 하는가
: 천지 창조가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역이 아니란 주장은 지구의 존재 기원을 하나님의 창조 이전으로 끌어 올려 가기 때문에 성경에 나 오는 하나님의 창조 이전에 또다른 창조설을 낳게 되며, 성경 해 석에 많은 과오를 가져오게 된다. (창조 이전에 이 지구에는 다른 어떤 피조물들이 살고 있었다, 아담 시대에도 그들의 일부가 존재 했었다는 등의 주장이 나오게 된다.)

여기서 첫째 날 창조하신 빛은 하늘에서 지구를 밝히는 태양 빛과 같은 그런 자연계의 빛을 의미하고 있지 않다. 세상을 밝히는 빛은 넷째 날에 나타났다. 첫째 날의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요일1:5).

이 빛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연관된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살전5:5).

이 세상은 물체의 빛(태양 빛)이 비취기 이전에 하나님의 빛이 먼저 비취어야 했다. 하나님은 그 빛 가운데서 창조를 이루셔야 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창세기1:1절부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의 구속사(救贖史)와 철저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모든 창조 역사는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데 목적을 두셨기 때문이다. 만약 선택받은 자의 구원에 창조의 목적이 없으셨다면 하나님의 창조는 아무런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 성경의 전체 내용이 이같은 인간의 구속사(救贖史)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하나님의 빛은 지금까지도 온 궁창과 하나님의 모든 창조 사역에 충만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낸 빛이기 때문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모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20).

다윗은 이에 대하여 이처럼 말하고 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 "
(시 19:1-4;시54:10;롬1:20).

그리고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이 빛을 구체화 하셨다.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참빛'이라고 증거 했다. 이 세상의 물질 세계가 생겨나기 이전엔 하나님이 세계는 영적 세계(천국)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 천국밖에는 무한대한 어두움만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 어 두움은 영적 세계를 의미한다. 이 어두움도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속한 것이지만(이사야45:7) 이 때까지 이 어두움은 엿새 동안의 하나님의 창조 영역밖에 있었다. 천사 중 일단의 무리들이(나중에 사탄이라 불려진 타락한 천사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되었을 때 그들은 천국 밖으로 쫓겨났을 것이다.

이들이 쫓겨난 곳이 이 어두움이었으며 어두움에 쫓겨난 사탄은 실질적으로 이 어두움의 주관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 어두움에 그의 빛을 비취시므로 어두움을 물리치시고 이 빛 가운 데서 만물을 창조하셨다. 이 어두움을 향하여 '빛이 있으라' 하신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두움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로 한정시켰는데 한 곳은 무저갱이란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자신들이 관할하게 된 공중의 어두운 세계로 이들 사탄의 무리들은 그곳에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눅8:31;벧후2:4;엡2:2;계12:7-9). 이 사탄이 에덴 동산에 나타나 지혜로운 뱀 속에 들어가 그의 간교함으로 하와를 타락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어두움의 주관자로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은 그에게 내려지는 최종적인 심판으로 말미암아 어두움은 사라지고 광명한 천국에서 비취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만이 온 누리에 영원히 발산 할 것이다(계 21:23,22:5). 빛이 있으라고 하신 명령으로 어두움과 빛이 나뉘었다. 물론 이 빛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 내는 영적 빛이기 때문에 이 어두움 역시 영적 의미를 갖는다. 이같은 증거는 성경에 너무나도 많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 에 속하지 아니 하나니" (살전5:5;사9:2;행26:18;요8:12;고후 6:14;엡5:8 등). 위 말씀에서 '빛과 낮' '밤과 어두움'을 동일한 의미를 가진 낱말로 해석해 준다. 이처럼 첫째 날에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비췬 빛은 하나님의 영광을 빛으로 나타내신 것이며 더 나가서는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이 된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4:6). 그러면 왜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제일 먼저 빛을 나타 내시고 그 빛으로 어두움을 나뉘시며 그것을 첫째 날의 창조의 사역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역사는 오직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예정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속하는 일에 목적을 두셨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1:3절에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란 말씀은 빛 자체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소유하고 계시는 빛을 '세상에 비취라'는 선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빛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빛의 창조는 있을 수 없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란 말씀에서 하나님의 창조 계획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엡1:4;롬 16:25;딤후1:9;딛1:2). 그러므로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그 창조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려는 하나의 서막(序幕)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섭리를 완성하시면 이 천지도 원상으로 돌아가 소멸해 버리신다(계20:11). 창세기1:3절의 빛은 1:16절에서 밝혀 주시는 것처럼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역임을 밝혀 준다. 성경에서 낮과 밤의 구분이 반드시 주.야(晝夜) 관계만을 의미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 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요11:9,10).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말씀해 준다. 실상인즉 저녁과 아침의 도래는 넷째 날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란 말씀은 넷째 날의 관점에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에 걸쳐 만드신 일 들을 각기 '하루'로 계산하시고 넷째 날부터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저녁과 아침'과 연계시켜 하루로 잡으신 것이다. 셋째 날까지 아직 이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公轉)하고 있는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정체된 상태에 있었으며 해나 달이나 하늘의 별들이 아직 창조되기 이전이므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시간이나 날짜는 계산할 수 없는 시기였다.

일자와 연한을 이루는 일은 14절에서 말씀해 주는 대로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라"는 말씀에서 시작이 된다. 그러므로 첫째 날이란 말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 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셋째 날까지의 청조의 날 수를 넷째 날부터의 날 수와 동일한 견지에서 계시해 주신 것이다. 창조에 사용하신 하나님의 하루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로 시작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넷째 날부터 시작되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일자와 연한을 이루시기 이전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루의 날짜를 그 같은 일자와 연한과 일치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야가 없는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의 창조 사역에 있어서도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관점에서 하루를 계산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첫째 날의 시간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24시간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무한대한 기간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 같은 일은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존재나 그의 활동이나 그의 창조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흔히 과학자들이나 무신론자들이 지구와 우주의 생성 역사를 소위 고고학적 견지에서 연구할 때 수 10억 만년 대까지 거슬려 올라가지만 이것은 날짜와 시간을 중요시하는 인간 역사를 기본으로 계산해 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 역사나 그 기원을 결코 뒤엎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24시간을 하루의 길이로 하여 사물을 관찰할 때, 수 10억 년 분의 창조 역사라도 하나님은 단 하루에 능히 이루실 수 있다. 말하자면 6천여 년 전에 창조하신 어떤 물체가 인간의 과학적 연구나 고고학적 판단으로 볼 때 얼마든지 10억 년 전에 형성된 물체로 분석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나 우주의 탄생 근원을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별이나 지구의 생성 과정을 수 억 년이란 천문학적 숫자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서 이상할 일도 아니며 창조론에 구멍이 생겼다고 놀랄 일도 아니다. 유물론자들은 산이나 바다에서 이상한 화석(化石)이라도 한건 발견하면 하나님의 천지창조설이 당장에 붕괴되는 것처럼 떠들지 만, 하나님의 창조는 단 하루의 기간으로도 인간의 과학적 입장에서 계산하는 수 10억 년을 초월할 수 있는 창조 사역을 이루실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90:4).

(2) 둘째 날의 창조

둘째 날의 창조는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는 명령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은 엿새 동안의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나타난 창조란 낱말의 의미다. 창조란 말은 없는 것으로부터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을 뜻하지만 사실은 있는 것을 가지고 기적적인 하나님의 권능을 통해서 새로운 환경 을 조성하는 경우에도 창조란 낱말이 사용되고 있다. 둘째 날의 창조의 경우가 그러하다. 궁창이란 하늘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궁창은 물과 물의 나뉨으 로 이뤄진다. 하나님은 땅의 물의 한 부분을 공중으로 올리심으로 땅의 물과 공중의 물로 분리하셨는데 이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둘 째 날의 창조로 나온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 두어야 할 일은 이 물과 물의 분리는 땅을 덮고 있는 물로 이루어졌는데 이 같은 물 의 분리가 있은 후에도 지상은 아직 물로 그대로 뒤덮여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3) 셋째 날의 창조


지구를 뒤덮고 있었던 물의 한 부분이 궁창 위로 올라가 그 물이 지구를 감싸듯 지구 위에 둘러져 있게 되었다. 이 물은 결코 공중에 떠도는 구름이나 수증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증기로 지상의 물이 하늘로 올리워 물과 물이 나뉘인 것이 아니라 하 나님의 말씀으로 지상의 물이 하늘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지상의 많은 량의 물이 물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 물로 지구를 감쌌던 것이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공중의 구름은 홍수 심판 이후에 하늘의 물이 지상에 전부 내려진 후, 지상의 수증기의 증발로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이 구름이 담고 있는 수증기로는 홍수 심판시와 같은 물의 심판이 되풀이 될 수 없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으실 것임을 약속하신 그 약속에 기초한 것이다(창9:11). 이 같은 현상은 노아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면 왜 이처럼 지구 위의 물이 하늘 위로 올려져 이 지구를 감싸고 있게 하셨을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번성을 위해서였다. 지구는 마치 비닐에 덮여 그 안에서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수막(水幕) 안에서 계절의 차등이 없이 번성 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동물과 인간이 화평을 누렸던 시기였 으므로 모든 생명체가 자연계에 순응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수명도 매우 길었다.

노아 시대까지의 인간의 수명이 7백년, 8백년, 9백년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자연 조건의 조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물로 심판하시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하늘에 물을 예비해 두셨다는 사실이다. 홍수로 심판하실 때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늘로 올려 보내셨던 그 물을 홍수로 다시 내려, 온 세상을 물로 창일하게 하심으로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심판하신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셋째 날에 가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적 선언이 내려 졌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는 명령과 함께 이 지구에는 놀라운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물로 덮여 있는 이 지구가 뭍을 드러 내려면 물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지구의 일대 개벽(開闢)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뭍이 드러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함께 이 지구에는 어떤 이변이 일어난 것인가? 지구의 모든 지면에서 거의 동시에 화산(火山)이 폭발하여 지구가 겨란과 같은 원형 상태에서 지금과 같은 요철(凹 凸) 형태로 지형이 변형된 것이다. 물 속에 잠겨 있었던 지구는 그냥 하나의 둥근 형태의 겨란형 이었을것이다.

그것이 화산의 폭발로 인한 지구 내부(맨틀)의 물체의 지상 분출(噴出)로 인하여 새로운 형태의 지형을 이루게 되었는데 아직까지 지구를 감싸고 있었던 물이 지형의 낮은 곳으로 모이게 되었으며 뭍이 드러나면서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칭하셨고 드러난 뭍을 땅이라 칭하셨던 것이다(창1:10). 지구는 그 체적(體積)의 98.5%가 불과 뜨거운 열에 녹여진 용암 류(鎔巖類)의 유동성 있는 액체 물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떤 물체가 어떤 모양으로 섞여 있는지 전혀 모른다. 다만 지구 안에 있는 그 유동적인 물체가 분출하여 산을 이루고 대 륙붕(大陸棚)을 이루므로 뭍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지상에 매장되어 있는 모든 광석이나 보석류는 이 때 지하에서 지상으로 분출된 분출물의 일부분임이 지질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의 이름으로 생겨날 천년왕국의 탄생도 이같은 방법으로 이뤄질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 지하 맨틀 속에 잠겨 있는 물체 중, 약간의 보석류만 더 분출시키신다면 이 지상은 금과 은과 다 이아몬드와 각종 희귀한 보석류로 가득 찬 축복된 낙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사65:17-25). 이같은 일을 마치신 후, 새롭게 형성된 땅위에 식물을 내는 명령을 내리신다.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므로 이 지상에는 앞으로 창조될 인간이나 다른 짐승들을 위한 식물들의 재배가 불가피한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는 선언과 함께 그대로 이뤄져 이 지상은 새롭게 형성된 땅위에 새로운 생명의 싹이 솟기 시작한 것이다.

(4) 넷째 날의 창조


넷째 날의 창조는 우주적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 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에 있어 땅에 비취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이 광명은 두 광명인데 하나는 해요 하나는 달이다. 큰 광명인 해는 낮을 주관하고 달은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또 하늘의 궁창에 수다한 별들을 만드셨다. 이 얼마나 경이스러운가? 하늘의 태양과 달은 이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난 것이다. 하늘의 별들도 이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 우리는 하늘을 쳐다 볼 때 놀라운 신비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우주(궁창)에는 천억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은하(銀河)들이 흩어져 있으며 하나의 은하계에는 무려 천억 개가 넘는 별들로 형성되어 있다. 인간은 이 놀라운 신비를 인간의 좁은 머리로 그 근원을 해 결해 내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 결과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성경 말씀에 돌아오지 않는 한, 영원한 미제로 남겨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넷째 날의 창조를 통해서 비로소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룰 수 있는 실질적인 일을 마치신 것이다. 이 때 태양과 지구는 자전과 공전 관계를 비로소 가지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명령으로 궁창에 있는 모든 물체는 영원한 질서를 가지고 운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18절에 나오는 빛과 어두움은 4절의 빛과 어두움과 전혀 다른 종류임이 분명하다. 18절의 주.야 도 5절의 낮과 밤과 동일한 종류가 아니며 넷째 날에 이르기까지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하신 말씀도 일시(日時)에 의한 날을 의미한 것이 아님이 증명된다. 이같은 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엿새로 잡으신 일을 중점으로 하여 하나님의 계산에 의해 계시된 날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 창조 사역에 소요된 시간이 동일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 날짜를 엿새 동안으로 계산하신 것만은 확실하다.

(5) 다섯째 날의 창조

물에서 살아갈 생물들과 공중에서 날을 새들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조건과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이 내려진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는 다섯째 날의 창조가 이뤄진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6) 여섯째 날의 창조

땅에는 물도 풀도 풍성하다. 열매 맺는 과목과 씨 맺는 채소도 각기 종류대로 가득 찼다. 그러면 이제 이같은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갈 생명체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시되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창1:25).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창조의 경우와는 달리 땅위에서 생을 누릴 생명체들은 흙으로 만드신 후, 말씀으로 생명을 부여해 주시는 방법을 택하셨다(창 2:19).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 들에게 축복해 주셨는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7) 일곱 째 날의 안식

하나님의 안식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 하셨음이더라"
(창 2 : 1 - 3).

이 하나님의 안식은 그 후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을 주실 때, 이스라엘로 안식일 제도를 만들어 지키게 하신 원인이 되었지만 실인즉 이 안식일에는 하나님의 창조에 따르는 영적인 깊은 뜻이 담겨져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창세기에서 언급된 안식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안식도 아니며 사람에게 주신 참 안식도 아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안식에 구애되심이 없이 계속하여 그의 섭리를 이루시는 구원 사역을 계속하셨으며 지금도 계속하신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일(복음 사역)을 비난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반박하셨다(요 5 : 17).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리고 그의 백성들에게도 참 안식의 때가 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모든 창조 섭리를 완성하시는 때이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4장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안식의 때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으며 '우리는 그 안식에 들어 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라'고 언급해 주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식 구들이 참 안식을 누릴 땅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천국이며 참 안식의 날은 토요일이 아니라 천국의 생활인 것이다(히 4 : 1 - 11).

우리가 율법에서 말하고 있는 토요일 안식을 지키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참 안식을 의미하는 부활의 날(주의 날)을 거룩한 날로 지켜 이날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유는 율법적인 안식일은 천국에서의 참 안식의 그림자이며 그리스도의 부활로 안식의 실체가 드러난 이상, 우리는 그림자를 버리고 실체인 참 안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안식은 부활로써 천국에서 성취된다.


종말론 연구 민병석 저서와 그 내용 주일 설교(1~6권) 새벽을 여는 성경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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