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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약속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베드로후서 1:4-7)
 민병석  11-10 | VIEW : 2,623
(3) 약속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베드로후서 1:4-7)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입니다. 본문 4절에서 이르시기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1.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첫째로 주안에서 우리가 받아 누릴 영광의 소망은 보배로운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보배란 표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존귀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처럼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무엇으로 주신 것입니까? 벧전1:18-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 한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보배로운 약속을 어떻게 여기며 어떻게 간수하고 있는 것입니까? 귀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 약속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귀한 보배처럼 여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 손에 잡혀서 내게 실질적으로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히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그 어떤 고난의 대가를 치른다 해도 바꿀 수 없을 만치 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롬8장에서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고난의 지극히 작은 것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지극히 큰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왜 베드로는 이처럼 표현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뜻이 변함이 없으실 것을 스스로 맹세하신 약속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도 말할 수 없어 큰 약속이 되십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은 누구와도 이처럼 큰 약속을 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그 아들 독생자를 주시며 그 아들을 통해서 대속의 피를 흘리게 하시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약속이신데 이 약속을 변치 않게 하시려고 맹세로 하셨습니다. 이 약속으로 우리는 우리 죄의 사유함을 받았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우리는 의심하지 말아야 하며 의심하는 일은 그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기 때문에 큰 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이 약속을 받은 자의 의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이런 위대하고 놀라운 약속을 주신 이유에 대하여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 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고 했습니다. 신의 성품이란 곧 그리스도의 성품을 의미합니다. 이런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람은 심령의 변화를 받아야 하고 생활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아직까지 육신으로 심어 온 우리의 생활을 영으로 심는 생활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두었던 소망을 하늘의 소망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런 약속을 받았다는 우리의 생활이 옛날 그대로 육신의 정욕 가운데 살아간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이처럼 큰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행위요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며 짓밟는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목적과 배치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약속을 주신 목적이 우리들이 옛날의 생활대로 살아가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일에 더욱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5절 이하에서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에 덕을 쌓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광신자처럼 되어 버릴 것입니다. 다음에 덕에 지식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덕에는 지식이 따라야 합니다. 지식이 없는 덕은 덕의 가치가 없습니다. 지식에 절제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절제가 없는 지식은 교만이 되기 때문에 이런 지식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절제에 인내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일시적인 절제는 외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절제 생활을 하려면 인내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인내에 경건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인내에는 경솔함이 없어야 합니다. 천박함도 없어야 합니다. 경건히 따르는 인내여야 합니다. 경건에 형제 우애를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경건을 겉으로 보이는 거룩한 것으로 여기고 형제에 대한 사랑의 교제가 없다면 안됩니다. 그리고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결론 : 이같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뜻을 이루어 나가는 생활의 참된 모습입니다. 열매를
          맺는 생활을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케 하시려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
          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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