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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1 - 6)
 밤중소리  02-02 | VIEW : 802

유다서

  (1) 부르심을 입은 자    

  (유다서 1:1-2)    


  오늘 아침부터 몇 회에 걸쳐 유다서를 공부하겠습니다. 유다서는 67년경에 유다에 의해 쓰여진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서신을 쓴 유다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를 야고보의 형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야고보란 이름이 여러곳에 있지만 여기서 야고보라고 지칭한 인물은 야고보서를 기록한 주님의 형제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유다는 야고보와 함께 주님의 육신적인 형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서를 기록한 유다는 사도 중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주의 복음을 위해 많은 사역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서신을 쓴 목적은 많은 이단자들과 복음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복음을 방종 주의와 혼돈하여 진리를 흐리게 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엄히 경계하고 성도들로 구원을 위해 끝까지 싸우게 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1. 유다의 축복 기도

  유다는 이 서신의 서두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대하여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더욱 풍성할 것을 축원해 주고 있습니다. 유다는 부르심은 입은 자들에 대하여 두 가지 특권을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은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복음으로 부르십니다. 이들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그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롬9:10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는데 하나님의 택하심에서 오는 부르심은 야곱의 경우처럼 에서는 미워하셨기 때문에 부르심에서 제외되고 야곱은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그 뜻을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부르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 목적을 위해 그 무한하신 지혜와 권능으로 조금도 차질 없이 계획하셨고 또 조금의 실수도 없이 그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신29:29절에서 이르시기를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께 속한 일’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오묘함을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과 지혜 안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사55: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그의 생각으로 모든 일을 섭리하시기 때문에 결코 후회함이 없으십니다. 바울은 롬11:30절에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이 같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판단에 다라 결정되어 실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늘 그 은혜 가운데서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따질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런 완벽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 분의 뜻은 언제나 나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일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을 얻기 위해 창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에 의해 지켜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지키심에 의해 내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나 여러분은 지난날 고려 시대나 이조 시대에 태어났어도 좋을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옆 집 부자 집 주인의 아들이나 앞 집 권세 있는 집주인의 딸로 태어날 수도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 가문의 혈통을 통해서 내 부모님에 의해서 내가 세상에 태어날 것을 이미 예정하셨으며 그런 모든 일들을 이루시기 위해 나를 지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이 이 땅에 전파되기 이전의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은 이 같은 하나님의 지키심의 섭리에 의한 필연적인 일인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앞으로도 이 같은 하나님의 지키심으로 나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주실 것이란 사실입니다. 이런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지키심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어 천국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끝까지 지키심을 입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 깊이 새겨 늘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힘써 싸우라    

  (유다서 1:3-4)    


  본문 3절에서 우리의 구원에 대해 두 가지 뜻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란 말과 다음에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1. 일반으로 얻은 구원

  우리의 구원은 일반으로 얻은 구원입니다. 구원의 도리는 단순하고 일반적인 일입니다. 결코 복잡하거나 특수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단이나 잘못된 교사들에 의해 구원의 참 도리가 흐려짐으로 많은 사람들로 믿음에서 실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유다는 여기서 구원이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성격을 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란 말은 구원을 얻는 일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갑이란 사람은 철학적으로 믿어야 구원을 얻고 을이란 사람은 신학적으로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 모든 사람에게 구원은 오직 한 가지로 보편적이요 매우 일반적이란 사실입니다. 대학 교수들이 구원받을 믿음이 다르고 무식한 노동자가 구원받을 믿음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영국 황실의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나 나사로처럼 부자 집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아가는 거지나 모두 똑같은 일반적인 구원이란 뜻입니다. 구원의 방법이 동일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보낼 때만 신분이 다를 뿐이지 구원은 그 같은 세상의 신분에 의해 차별이 있거나 다를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에 가서는 구원으로 얻은 믿음의 생활에 따라 상급이 결정됨으로 새로운 신분, 새로운 지위가 결정 될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나 단순하고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복음과 구원의 특징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건 성경에 있는 지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구원의 길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이곳에 이상한 토를 부치는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있다, 몰몬교를 따르거나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에 들어가야 구원을 얻는다는 식의 구원관은 일반적인 구원관이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갈1:7절에서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인종이나 시대나 환경에 따라 변화되는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종족이나 어떤 역사적 배경 아래에나 모두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믿음과 동일한 방법에 의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만약 이 같은 일반적인 방법의 구원관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른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2.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리

  유다는 이 같은 구원에 대하여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믿음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셨습니다. 단번에 주셨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구원을 완성시키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구원의 도는 하나님이 확정 시키신 것으로 다른 계시가 첨부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 구원의 도리를 믿으면 그것으로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에 이 말은 우리의 구원은 한번만으로 족한 일회적인 역사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잘못된 구원을 받았으니 이렇게 교정해야 한다는 구원의 교정론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잘못 이해한 일은 배우는 일로 바로 잡을 수 있지만 잘못된 구원을 교정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잘못된 구원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처음에 어느 정도 량을 채우고 배워 가면서 차차 그 량이 채워져서 온전히 구원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너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씀으로 우리의 구원을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자기가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이를 의심하여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갈3:1절 이하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유다는 이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고 권면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4절에서 ‘이는 가만이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가만히 들어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오히려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로 작정된 자들로 경건치 않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이런 자들과 싸워서 우리에게 일반으로 주시고 단번에 주신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

  결론 : 우리들 주변에는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무리들은 혹은 그럴듯한 이론으로 혹은 미혹된 방법으로 우리가 받은 일반적인 구원에 회의를 갖게 하고 새로운 미끼를 던지는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생명을 노략질하는 악한 무리들입니다. 우리는 이들과 영적 싸움에 게을리 말아야 합니다. 이들로 인하여 영광의 상급을 도적 맞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3) 형벌의 거울    

  (유다서 1:5-7)    


  유다는 본문에서 미혹하는 자나 이단자들이나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오도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면서 이스라엘이 지난날 겪은 일과 타락한 천사의 경우와 소돔과 고모라 성의 경우를 예로 들어 그 거울로 삼을 것을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

  1.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이스라엘의 경우

  유다는 5절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경우를 들어 말하기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애굽에서의 구원과 광야에서의 멸망은 우리들에게 중대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히3:12-19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는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고 이적과 기적도 친히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도 모세의 입을 통해서 들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격노케 하셨으며 약속한 안식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채 광야에서 멸망 받아야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마음이 범죄 하므로 마음이 강퍅하였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한 결과는 결국 그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했던 것입니다. 18절 말씀에서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 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그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히4:7절에서 우리에게 엄히 경종 하시기를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말기를’엄히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의 말씀을 주님은 마22:10절 이하에서 어떤 임금이 손을 청한 혼인 자리의 비유를 통해서 들려주셨습니다. 임금이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사람에게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는 명을 내립니다. 그리고 주님은 결론적으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청함을 입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복음으로 교회에 불러 드린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구원받을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 중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만이 예복을 갖추게 되며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복은 믿음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예복 입을 것을 확인하는 역사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의 시기에 하게 됩니다.

  가라지의 특성은 가라지는 언제까지나 가라지일 뿐 알곡이 될 종류가 아닌 것입니다. 이 가라지에 대해 원수가 심었다고 했습니다. 원수는 마귀를 가리킵니다. 가라지는 불순종으로 결실이 없습니다.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순종을 싫어하고 회개를 싫어하고 죄를 즐겨 하는 것입니다. 불순종과 죄는 사람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듭니다. 그에다 회개마저 없는 사람은 돌덩이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에 그런 밭에 아무리 좋은 씨를 심어도 열매를 맺힐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2.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와 소돔과 고모라의 죄

  유다는 6절에서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에 대한 심판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천사의 타락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탄의 타락의 이면을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반역했을 때 이들 천사들은 하늘에서 맡겨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사탄에게 동조한 자들로 하나님에 의해 큰 날의 심판 때까지 흑암에 갇힌 것입니다. 큰 날의 심판이란 백 보좌 심판에서의 최종적인 심판의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들이 갇혀 있는 흑암이란   무저갱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이곳에 갇혀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9장을 보면 7년 환난 중에 사탄에 의해 무저갱의 열쇠로 이들을 잠깐 세상에 내보내 세상에 첫째 화를 가져오는 황충이 떼들로 활약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심판을 받게 된 이유는 자기 처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대적한 것이며 교만에서 온 것입니다. 성도들이 진리를 대적하거나 교만하면 이들처럼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경종한 것입니다.

  다음에 유다는 7절에서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이 멸망 받은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불의 심판으로 멸망 받았습니다. 이들이 범한 죄는 간음을 행하여 다른 색을 따라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경종 해 주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 들로 불순종에 빠지게 하는 범죄는 간음죄와 동성끼리의 불륜의 관계란 사실을 경종 하신 것입니다. 간음과 동성 연애는 같은 범죄로되 다른 죄와는 다릅니다. 이런 죄는 우리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회개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생활에서 돌이킬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일들을 신앙 생활의 거울로 삼아 경계로 삼아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고 회개하는 생활로 마음의 강퍅함을 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사모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4) 거짓 선생들의 열매    

  (유다서 1:8-13)    


  유다는 본문에서 거짓 선생들, 특히 이단자들에 대한 경종을 6절과 7절에 나타난 범죄의 경우와 연결시켜 책망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1. 꿈꾸는 자들의 범죄

  8절에서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꿈꾸는 이 사람들이란 거짓 선생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꿈꾼다는 말은 허황된 생각을 가졌다는 뜻도 되지만 아마도 그들이 꿈에 의한 계시로 잘못된 교훈을 가르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들이 짓는 죄는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힌다고 했습니다. 육체를 더럽힌다는 말은 소돔과 고모라와 이웃 도시들이 따랐던 간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잘못된 교훈으로 은밀한 중에 음탕한 행실로 교회를 더럽혀 온 것입니다. 이들은 또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난 점죄한 천사들처럼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겼습니다. 꿈의 계시나 허황된 말로 진리를 대적하는 일은 권위를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이들의 특성은 교만에 있습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특성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 뿐 아니라 천사들의 영광도 훼방한 것입니다. 유다는 이 같은 죄가 얼마나 크고 두려운 일인가에 대해 천사장 미가엘의 경우를 들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모세의 시체로 인한 천사장과 사탄과의 언쟁은 ‘모세의 승천’이란 외경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 사탄은 모세는 범죄한 자임으로 그의 시체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천사장 미가엘은 마땅히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사탄을 정죄하고 책망할 수 있었으나 이 모든 책망과 정죄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는 말로 물리친 일이 그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거짓 선생들은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 무서운 범죄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결과에 대하여 11절에서 세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인의 길에 행한 자라고 했습니다. 가인의 길이란 악한 자가 의로운 자를 핍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인이 의로운 아벨을 죽인 것처럼 이들은 의로운 성도들의 생명을 노략질하며 핍박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그들은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다고 했습니다. 발람은 선지자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하고 말씀을 받기도 했으며 축복기도를 하면 복도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탐심으로 인하여 어그러진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발람처럼 결국 삯을 위해 일하다가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이들은 고라의 패역을 좇는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권위를 업신여기는 교만으로 고라의 패역한 길을 좇아가게 되며 결국은 멸망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고라의 패역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고라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족장 중 하나인데 하나님의 종 모세를 대적했다가 가족들과 함께 멸망을 당한 자입니다.

  2. 이들의 열매

  12절에는 이들의 열매가 나옵니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는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들어와 성도들과 한 무리 중에서 먹는 일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도들의 애찬의 암초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함께 먹는 일은 혹은 성도들 간의 교제나 교회의 성찬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공동체에 악영향을 줄 뿐 아니라 이들의 불경건 함은 오히려 그 애찬에 암초로 지탄을 받을 일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하여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목자로 자처하기도 하나 실은 목자가 아니라 자기 몸만 위하는 가증하고 위선적인 거짓 목자인 것입니다. 다음에 ‘바람에 불려 가는 물 없는 구름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름은 땅에 비는 내리지 못하고 바람에 불려 가기만 하는 것처럼 은혜의 말씀으로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위선과 거짓으로 뜬구름처럼 불려 다니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들에 대해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고 했습니다. 가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면 그런 나무는 죽은 나무요 뿌리가 없는 나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들 거짓 선생들은 열매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라’고 했습니다. 바다의 거친 물결이 자신의 수치의 거품을 뿜어내는 것처럼 이들은 자신의 마음의 악함과 탐심만을 들어 내 놓는 것입니다. 다음에 이들에 대하여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결국 흑암에 돌아갈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캄캄한 지옥을 예비하셨다고 했습니다.

  결론 : 선생이 되는 일은 좋지만 선생에게는 크나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약3:1절에서 선생된 자들이 받을 심판이 더 큰 줄로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거짓된 선생이 돼서도 안되지만 그런 자들에게 자기의 생명을 맡겨도 안 되는 것입니다.






  (5) 주 재림의 경종    

  (유다서 1:14-19)    


  오늘 본문 14절과 15절에는 주의 재림에 대한 경종이 나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여기서 주의 재림을 경종하는 이는 아담의 7세손인 에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그 도달해야 할 분명한 목표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의 꿈을 통해서 인류 역사의 종말을 보여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 서에는 에녹이란 사람이 주 재림에 관한 예언과 경고를 그 당시 인류들에게 전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에녹의 기사는 창세기에서 석줄 밖에 안 되는 기사로 모든 것이 끝납니다. 창5장에 나오는 계보 중에서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 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2. 에녹의 생애에서 보여 주시는 것

  우리는 여기서 아주 짧기는 하지만 에녹의 생애야말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 들의 경계로 삼아야 할 점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녹이 살고 있었던 시대는 세상에 죄악이 관용한 시기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죄악이 하늘에까지 사무칠 인류의 종말과 같은 죄악의 시대를 상징합니다. 에녹은 이런 시기에 주의 재림과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종 했습니다. 노아 시대에 와서 홍수 심판으로 세상을 멸망시키신 일은 아마도 에녹 시대부터 하나님의 심판의 경종이 계속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에녹은 패역한 시대에 주 재림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주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복음은 신약 시대에 와서 비로소 출발한 것이 아니라 아담 이후 이 같은 일이 복음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한 후,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았습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에녹은 1260일간 하나님의 심판의 경종과 회개를 외치는 두 증인들의 예표 인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두 증인들은 순교를 당해 첫째 부활자로 승천했지만 에녹은 살아 있는 몸으로 승천하였다는 사실이 다를 뿐입니다.

  2. 에녹이 증거한 주 재림의 복음

  1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같은 주 재림의 모습은 계19:11-16에 걸쳐 나오는 주 재림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수만의 거룩한 자란 주님과 함께 내려오는 하늘의 군대를 말하는데 계19:14절에서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두 증인들을 말합니다. 두 증인들은 예언의 사명을 마치고 부활 승천한 후, 계14장에서 주님과 함께 하늘의 시온 산에서 새 노래를 부르다가 주의 재림 때 하늘 군대로 백마를 타고 주님과 함께 아마겟돈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의 재림은 경건치 아니한 모든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경건치 않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경건이란 말은 영적 의미를 지닌 말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정욕과 탐심 등은 모두 육신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입니다. 이런 생활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실을 하는 경건치 않은 사람들은 강퍅한 말로 인하여 주님을 거슬린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의 재림을 인정치 않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디 있느냐고 조소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생활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사탄을 숭상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이 땅에서 이런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 수만의 거룩한 자들과 함께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16절에서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원망한다는 뜻은 하나님을 원망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권능 가운데서 인도하심을 받았건만 툭하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야에서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불만을 토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감사가 아니라 불만을 토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종말에 이를수록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나 하나님의 말씀이나 사랑에서가 아니라 정욕대로 행하는 세상이 오는 것입니다. 이들은 또한 그의 입으로 자기를 자랑하며 이익 때문에 아첨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당을 짓는 자라고 했습니다. 육에 속한 자들로 성령은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결론 : 에녹이 경종한 주의 재림의 시기가 우리들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날에 주님은 이들, 성령이 없는 생활을 하는 자 경건치 않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6) 주 재림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유다서 1:20-25)    


  유다는 유다 서를 끝마침에 있어서 결론적으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신앙 생활에 대하여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유다는 20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1.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

  유다가 이 권면에서 자기를 건축하라는 말은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하라는 뜻입니다. 이 같은 그리스도인의 건축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그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전4:112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말하면서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들을 통해서 은혜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믿음을 거룩하게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세상의 허탄한 철학이나 재물이나 어떤 명성으로 세울 것이 아니라 믿음 위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이 그들의 생애 중에서 핍박을 당하건 환난을 당하건 오직 예수를 위해 살아가는 생애가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는 일입니다.

  2. 그리스도인 들이 해야 할 일들

  다음에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엡6:18절 말씀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는 성령의 감동을 바라면서 그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롬8:26절에서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는 그 분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의 기도가 성령으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까? 먼저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들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드리는 기도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가 아닌가 판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약4:2절에서 말씀해 주는 바는 잘못된 기도로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하지 않는 기도요 다른 하나는 구하여도 잘못 구하는 기도로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입니다. 성령으로 하는 기도를 어떤 신비적인 기도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흔히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 방언으로 기도했다가 우리말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식의 기도를 성령으로 하는 기도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유다는 21절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지킨다는 뜻은 세속적 생활로부터, 세상 생각으로부터, 정욕이나 탐심이나 더러운 욕망으로부터 음란으로부터 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다음에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생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는 날까지 모든 일을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히10:36절에서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약속을 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믿음의 생활을 철저히 행했다 해도 약속을 받지 못한다면 헛일에 불과합니다. 이 약속은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22절에서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심하는 대상자는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되어 진리를 의심하는 자들을 의미하는데 이들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올바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23절에서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멸망 받을 자리에서 방황하는 형제들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어 구원의 길로 이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육체로 더럽힌 옷이란 육체로 저지른 죄악으로 음란죄를 의미합니다. 그런 죄는 가증히 여기되 그러나 그 범죄자에 대해서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 것입니다.

  결론 : 유다는 24절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힘 주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가 예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의뢰해야 합니다.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나로 재림하시는 그 영광 앞에 설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시는 예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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