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이메일 : bamjoongsori@bamjoongsori.org

 

  
베드로후서 2장 (8 - 12)
 밤중소리  02-01 | VIEW : 1,294



  (8) 거짓 선생들이 하는 일

  (베드로후서 2:1-3)


  베드로 사도가 1절에서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고 한 말씀대로 교회에는 언제든지 거짓 선생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이란 말은 거짓된 교훈을 진리인 양 가장해서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1. 거짓 선지자의 등장

  거짓 선지자는 그 등장하는 곳이 두 곳으로 나와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 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민간에 일어난 거짓 선지자는 지금의 통일교라든가 몰몬교 혹은 안식교 등 그들 나름대로의 한 단체를 이루어 활동하는 무리들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교회 안에 직접 침투하여 교회를 본거지로 활동하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를 더럽히고 혼란을 주며 영적 생명을 노략질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에 대해 특별히 경각심을 가져야 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너울을 썼건 그리고 어떤 정당성을 내세우건 이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탄의 사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들의 정체를 좀처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한결같이 천사의 너울을 쓰고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식별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7:22-23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일이 나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를 파헤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방법은 그들의 열매를 보고 알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의 열매는 그럴싸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하신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대한 열매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절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2.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일

  1절과 2절에서 이들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몇 가지 일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1) 이들은 멸망케 할 이단을 교회로 가만히 끌어들인다고 했습니다. 멸망케 한다는 말은 우리의 영적 생명을 말합니다. 이단은 어떤 미사여구로 우리를 유혹해도 그 그물에 걸리면 영적 생명을 죽이게 됩니다. 이 같은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인다는 것입니다. 이단이란 말은 잘못된 진리를 말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지식, 구원에 관한 잘못된 진리 등이 이런 유에 속합니다. 이들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게 하고 토를 답니다. 보편적인 진리를 가리우고 어느 한 곳에 있는 편파적인 말씀을 체계화시켜 그것을 진리인 양 가르칩니다.

  사탄이 교회에서 하는 일은 가라지를 심는 일입니다. 이단의 씨가 자라면 가라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단자는 사탄에게 충성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 열심이 대단합니다. 이단이란 언제나 진리와 비슷하지만 진리와 엄연히 구분됩니다. 이단이란 진리의 가짜 상품입니다. 시장에서도 가짜 상품이 진짜를 뺨치는 것처럼 이단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입니다.

  이단자들의 특징을 몇 가지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피조물의 자리에까지 떨어뜨리는 일을 하기 때문에 주를 부인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다음에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단의 특성은 호색에 빠지게 하는 일입니다. 사탄이 발람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방법이 호색이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탐심으로 일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지은 말을 가지고 거짓된 것을 가르치며 양무리들을 그들의 이익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단자들이나 거젓된 교훈의 특성은 교묘한 헌금 방법과 수단에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재산을 늑탈하고 패가망신시키는 것입니다.

  결론 : 이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필연코 멸망할 것입니다. 종말 성도들에게는 두 가지 명심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거짓 선지자들을 식별하는 지혜입니다. 이것을 식별치 못하면 그들의 거짓된 이단에 넘어가 생명을 잃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경성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도적같이 오시기 때문에 경성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9) 불의를 용서치 아니하시는 하나님

  (베드로후서 2:4-9)


  오늘 본문에 나오는 4절 말씀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범죄한 천사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천사들도 범죄 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미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천사들도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1. 범죄한 천사들의 심판

  오늘 주신 말씀에는 범죄한 천사들의 이야기만 나올 뿐 어떤 천사들이 어떤 범죄 행위를 했느냐에 대한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말씀이 유6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 천사들은 하늘에서 하나님께 반역을 도모하는 일에 마귀 편에 가담한 자들이며 이 자들에 대한 심판의 언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겔28:13절 이하에는 사탄이 처음 창조함을 받았을 때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그자가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내린 심판이 두로 왕을 비유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에 대해 14절에서 ‘그룹’이란 명칭으로 불려졌습니다. 그런데 계4장에 나오는 네 생물에 대하여 이들의 이름이 겔10:14절에서 그룹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용서치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들을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지옥은 둘째 사망의 장소인 지옥인 것이 아니라 둘째 사망의 자리인 영원한 지옥에 던져 넣을 때까지 가두어 둘 자리로 무저갱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사탄과 그의 사자들의 최종적인 심판의 자리로 둘째 사람의 장소인 지옥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25:41절에서 예수님은 백보좌 심판을 거친 악인들의 심판의 장소로 지옥을 지목하셨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마귀가 들어갈 최종적인 심판의 자리는 영영한 불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2. 노아 시대와 소돔과 고모라 시대의 심판

  베드로 사도는 범죄한 하늘의 천사들에 대한 심판을 말하고 노아와 소돔과 고모라 새대의 불의를 좇은 사람들의 심판에 대하여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5절에서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멸망치 않게 하시려고 범죄가 세상에 관용할 때에도 그의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회개하게 하셨고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길을 외면하고 계속 범죄의 길을 따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노아를 통해서 120여 년간 의를 전파하게 하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을 짓고 팔고 사는 세속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그들을 멸하셨습니다. 죄인은 어느 시대에 살아가건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대속의 피를 흘리게 하시고 그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많은 사람들은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의 재림의 날, 그들이 행한 죄에 대한 엄중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6절에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킨 일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불로 멸망시키신 것을 마지막 날에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물의 심판은 노아의 홍수로 다시는 이 땅위에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은 물보다 더 두려운 불의 심판이 될 것임을 벧후 3장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불의 심판은 바로 그 불의 심판의 본보기이심을 경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로 심판하시는 그 가운데서 의로운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의로운 자들을 불의한 자와 함께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그 심판에서 건져 주실 것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역사를 이루시는데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져 주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그대로 두어 심판 날 까지 지키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경건한 자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자들은 오히려 심판에 이르도록 심판의 날까지 지키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그 아들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하신 그 은혜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0) 거짓 선지자의 죄

  (베드로후서 2:10-14)


  본문 10절부터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죄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는 일에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광 있는 자란 하나님을 가리키는데 그 분을 훼방하는 일에 방자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훼방한다는 말은 진리의 말씀을 대적한다는 말입니다. 진리에 서서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임의로 해석하고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유익을 꾀하는 일에 적용하는 무리들은 모두 거짓 선생의 무리 중에 속한 자들입니다.
  
  1.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는 자들

  거짓 선생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지만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진리의 말씀을 잘 알지 못하거나 배우지 못하므로 이해하지 못할 때,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벌써 28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감리교신학대학의 학장이 되는 유명한 목사님이 1972년4월1일자 한국일보에 부활주일에 관한 논문을 기고했는데 부활을 전면으로 부인하는 글을 보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신앙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우리는 좁으러운 교리나 불투명한 역사적 자료에 집착하여 오늘의 과제를 잃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고 쓴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좁으러운 교리나 불투명한 역사적 자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신앙적인 문제로 결론을 내린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부활을 우리가 받아 드려 우리 생활에 반영시키자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란 거짓 선생들은 요1:1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대로 읽지 않고 ‘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하나의 신이었다’고 해석하면서 지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이 오역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시인은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가 아니라 하나의 신이었다는 표현으로 예수님을 은연중에 천사의 무리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거짓 선생이나 가짜 예수나 자칭 하나님의 존재가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이미 죽은지 오래지만 박태선이란 자는 자신을 영모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성삼위의 한 위인 성령님임을 자처했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 있는 가짜 하나님으로 통일교의 문선명이가 있습니다. 이 자의 원 이름은 문용명입니다. 용 용자를 풀이하면 사탄이 됩니다. 그것을 선명으로 바꿨는데 선이란 이름 글자를 영어로 발음하면 태양이란 의미가 되고 명자는 밝을 명으로 태양의 빛을 상징시키는 인류의 메시야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적 구원만 이루었고 육적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문선명이가 그 남은 구원의 사역, 육체의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2. 거짓 선생들의 도덕적 행실

  우리는 이들 거짓 선생들이 하나님을 훼방하는 일에 세 가지 특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담대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고집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떨지도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면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연락이란 사치와 방탕함과 음란한 행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이런 모든 악한 행실로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의 결국에 대하여 말하기를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한다고 했습니다. 불의를 당한다는 말은 불의의 보응을 반드시 받는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이들에 대하여 정죄하기를 그들은 저주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나타난 거짓 선생들에 대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으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들이 지금 세상에서 거짓된 것으로 유혹하며 그리스도인 들을 미혹의 길로 유인하지만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심판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 허락하셨을 뿐입니다. 그들은 허락을 받고 미혹하기 때문에 정신을 차려야 할 사람들은 우리들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이 진리를 굳게 잡고 정신을 바싹 차리지 못하면 이들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론 : 이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존재 가치는 짐승만도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 거짓 선생들을 삼가 해야 합니다. 그 비결은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위에 굳게 서서 비 진리와 싸우는 일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1) 발람의 길을 걷는 거짓 선지자

  (베드로후서 2:15-19)


  거짓 선생들이 걸어가는 길은 발람의 길을 좇는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본문 15절에서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보을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고 했습니다. 발람이란 인물은 성경에 기록된 거짓 선지자 중 표본 인물입니다. 계2:14절에서 주님은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 발람이란 선지자는 어떻게 하여 거짓 선지자로 타락한 것입니까? 15절 끝에서 ‘그는 불의 삯을 사랑하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발람의 길

  발람이란 인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당시 모압 지방 브돌에 살고 있었던 이방인의 선지자였습니다. 발람이 처음부터 거짓 선지자로 출발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고 발람은 발락 왕의 미혹을 받기 이전까지는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해 나갔습니다.

  이처럼 발람이 모압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이 그 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모압 지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각가지 이적의 소문,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신 이적, 적군들을 만나는 대로 섬멸한 하나님의 역사를 들었을 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발락 왕은 무력으로는 이스라엘을 무찌를 수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발란의 기도를 빌려 이스라엘을 저주하므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발람의 활동을 지켜보았던 발락 왕은 발람이 저주하면 저주를 받고 축복하면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아 왔기 때문에 발람의 기도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입니다. 왕은 모압 땅 장로들을 불러 발람에게 줄 예물을 준비케 하여 발람을 찾아가게 했습니다. ‘와서 한번만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것입니다.

  발람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발락 왕이 보낸 그 많은 보화와 그에게 준다는 명예에 미혹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거짓된 기도를 형식적으로 드리고 결국은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안 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재물에 미혹된 발람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악한 꾀로 이스라엘을 타락케 할 방법을 발락 왕에게 가르쳐 주게 되었습니다. 음란으로 이스라엘의 청년들을 타락케 했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아 죽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 같은 발람의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의의 삯을 위하여 거짓된 길을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이 발람의 길을 걷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2. 거짓 선지자들의 결국

  이들의 결국에 대하여 1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배되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샘에는 물이 없습니다. 물은 생명의 생수인데 그들의 우물에는 음행의 포도주가 있고 생명을 죽이는 쑥물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소망은 한때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할는지 모르지만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처럼 한번 태풍이 불어오면 곧 사라져 흔적도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곳은 사탄과 더불어 들어가야 할 최종적인 심판의 자리인 지옥을 의미합니다.

  18절에서는 이들 거짓 선생들이 미혹하는 거짓된 복음이 나옵니다.

  저희가 허탄한 자랑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유혹은 모두 허탄한 것  뿐입니다. 허탄하다는 말은 전혀 실현성이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 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들입니다. 이들의 유혹의 방법으로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한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19절에서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말하고 약속하는 자유란 이단 교리에 얽어매는 또 하나의 죄의 사슬입니다. 이 사슬에 얽매이게 하는 일이 그들이 말하는 자유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멸망의 종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멸망의 종들이 주는 자유란 함께 멸망을 받는 자유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날에는 죄의 종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죄에게 진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죄를 물려받았으며 그 죄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그 죄의 사함을 받지 못하고 죄 값을 받아야 할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후, 우리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죄를 이기신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이긴 자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죄가 우리를 다스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결론 : 그러나 우리가 만약 이들 거짓 선생들의 미혹을 받아 그들의 교훈을 따른다면 우리는 다시 지는 자에 속하게 되어 그들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리와 믿음으로 이들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12) 의의 도를 안 후에 범하는 죄

  (베드로후서 2:20-22)


  본문 20절과 21절 말씀은 대단히 심각한 말씀으로 교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성경 구절이 되기도 합니다. 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저희라고 말한 대상은 거짓 선생들이나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 이미 거짓 진리에 미혹되어 진리에서 떠난 자들을 가리킵니다.

  1. 처음보다 더 심한 나중 형편

  이 말씀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저희가’라고 하는 특정한 대상자를 둔 것으로 이들의 경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란 말씀은 거짓 선생들이나 이들에게 미혹 받은 자들의 미혹 받기 이전의 처음 신앙 상태를 가리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말씀하신 내용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믿음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지식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교회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어도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신앙적 열매에 대해 ‘세상의 더러움을 피했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갔다는 뜻이 아니라 더러움을 피해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의 열매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회개를 가리킨 말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히6:4-8절에 나오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용을 겉으로 살펴보면 이들은 마치 중생한 자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 전체에 흐르는 맥과 구원과 심판에 관련된 연관 구절을 연결시켜 해석을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에 이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마귀에게도 있습니다. 진리에 서지 아니한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처음 얼마간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진실하게 살아보려고 힘썼습니다. 물론 중생하기 이전입니다. 사람이 중생하지 않아도 성령의 인도하심이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과 연결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며 진리의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중생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2. 의의 도를 안 후에 범한 죄

  그런데 이 사람들은 중생에 이르기 이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인 것입니다. 얽매었다는 말은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 받아 죄의 종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생의 생명이 없이 양심의 감동이나 교육의 영향으로 출발한 신앙 생활은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며 진실한 회개의 결실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구원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원했을는지는 모르지만 원한다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온 부자 청년의 경우, 생명에 이르기를 원하기는 했지만 그의 재물이 생명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그의 길을 막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시는 경종은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심하다는 말은 그 죄가 더 중하다, 그 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신앙촌의 박태선은 남대문 교회 장로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형편이 점점 나빠저 그의 임종시에는 정신병자처럼 예수님을 자기 제자라고 망언을 하고 욕설을 퍼붓는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는 자기 죄에서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깨달음이 있은 후에 배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죄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더러움에 대하여 22절에서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다’고 했습니다. 개는 더러운 것을 모릅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토했던 것을 다시 찾아가 먹기도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되어 진리를 버리고 이단을 좇는 일은 마치 개처럼 지난날의 행실을 다시 행하는 일과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 중국의 어느 임금이 돼지를 방안에서 깨끗하게 키우고 좋은 옷을 만들어 입히는 등, 새로운 모습으로 꾸몄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돼지를 데리고 밖에 나갔는데 더러운 시궁창을 지나가니 얼른 그 시궁창을 찾아 들어가 몸을 둥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혹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미혹의 무리들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PREV :   베드로후서 3장 (13 - 17) 밤중소리 
 NEXT :   베드로후서 1장 (1 - 7) 밤중소리 
 LIST  WRITE  REPLY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