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이메일 : bamjoongsori@bamjoongsori.org

 

  
베드로전서 5장 (27 - 31)
 밤중소리  02-01 | VIEW : 1,108



  (27) 장로들의 책임과 영광의 면류관

  (베드로전서 5:1-4)


  본문에는 교회의 장로들에게 권고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장로된 자라고 말하는 장로의 직분은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친 지도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1절에서 ‘나는 함께 장로된 자’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사도직분도 그 당시 장로직으로 불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베드로의 권고의 말

  베드로는 ‘나는 함께 장로된 자’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장로 직을 받은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직분자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함께 장로된 자란 말씀에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의 장로 직은 초대교회의 사도직분에 해당하는 영광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권위에서가 아니라 그 직분 적인 사명에 있어서 그런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음에 베드로는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받으셨던 고난을 그의 제자로서 직접 목격한 증인이란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사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같이 이 같은 증인이면서도 자신의 경험에 의한 너무나 뼈저린 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일이 그것입니다. 고난의 증인은 자신도 그리스도의 그 고난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고난의 흔적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친히 본 증인은 아니지만 주님의 행하신 모든 행적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그 고난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베드로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자기 신앙의 최종적인 승리의 선언입니다. 앞으로 베드로가 소망으로 하는 그 영광이 우리의 영광으로 나타날 날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장래 일이라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망 가운데 그 영광에 참여할 일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런 영광이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날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첫째 부활의 영광으로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장로가 해야 할 일

  베드로 사도는 자기와 함께 이런 영광에 참여할 장로들은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2절과 3절에서 말씀해 줍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부득이함으로 한다는 말은 이 짐을 내가졌으니 할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피동적으로 섬기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눅16:1-3절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의 경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땅을 파자니 힘이 들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이런 목회는 하나님께 부끄러운 일입니다. 왜 이런 목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까? 소명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직업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2)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을 의미합니다. 모세처럼, 아론처럼, 사도들처럼, 바울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이 없으면 하나님의 양 무리들을 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원함으로 한다는 말은 양을 위해 희생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주님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자기 양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3) 다음에 ‘더러운 이를 위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란 목회를 이용한 물질적 이익을 말합니다. 목회자가 돈에 눈이 어두우면 가룟유다처럼 돈주머니에서 돈을 훔치는 도적이 됩니다. 이런 이유, 저런 핑계를 대고 겁도 없이 마구 씁니다. 그러나 주님은 불의한 청지기에게 셈하자고 말씀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따지시고 그 불의한 일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목회자가 돈에 욕심을 내면 발람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목회자에게 돈이 많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언제인가 10여만 명이 넘는 교회 목사님들이 수10억을 국가에 환수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기도원 원장이 수10억을 땅에 숨겨 두었다가 환수를 당했습니다. 지금 부정 축재자를 추려 낸다면 목회자 중에 제일 많을 것입니다. 이런 것 참으로 큰 일입니다.

  (4) 그리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즐겁게 여기지 않으면 사랑의 목회, 사명의 목회를 할 수 없습니다.

  (5)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주장하는 자세는 교만에서 나옵니다. 내가 목회자니 당신들은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행동이 주장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목회자를 능력 있는 목회자, 권능이 있는 목회자라고 칭찬하지 않고 외식하는 자, 교만한 자라고 책망하십니다.

  결론 : 이런 목회자에게 오는 상급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목자가 이런 목회자가 되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28) 순복하고 겸손하라

  (베드로전서 5:5-6)


  베드로 사도는 교회에서 장로들에 대한 책임을 천명하고 다른 한편으로 본문에서는 성도들이 장로들에 대한 순복과 성도들간의 겸손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양 무리들은 주님이 그들의 목자로 세운 교회의 장로들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겸손해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1.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순복하라는 말은 순종의 강한 표현입니다. 순복은 교회의 장로들의 강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은 교회를 지도하고 가르치며 인도하는 장로들을 존경해야 하며 존경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순복인 것입니다. 양 무리들이 목자에게 순복해야 할 이유를 말한다면 목자는 그들의 영적 생명을 책임지도록 주님의 세우심을 받은 교회의 가장 존경받을 만한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1) 양은 목자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참 목자는 예수님이시지만 예수님이 당신을 대신하여 ‘내 양을 먹이라’는 명령으로 교회의 목자를 세우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목사를 주의 종 또는 주님의 사자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양이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목자 따르기를 거부한다면 그 시로부터 그 양은 길을 잃은 양이 되어 버립니다.

  (2) 목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양 무리들에게 먹이는 말씀의 대언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지혜롭고 충성된 종에 대하여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갈6:6절에서 바울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했습니다. 옛날엔 아무리 벼슬이 높은 임금이나 세자라도 자기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을 사부라 하여 존경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가르치는 목자에게 순복하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3) 목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세우신 가장 존경 받을 어른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제사장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교회에 보내는 그의 서신에서 ‘나의 자녀들아’라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갈4:19절에서는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목자는 양 무리를 키우되 그들의 영적 생명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순복하     는 자세로 목자를 섬기며 따라야 할 것입니다.

  2.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베드로 사도는 5절에서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권면했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성도들의 자세는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그 겸손의 본으로 예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11:18절에서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그가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아버지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했는데 허리란 몸의 중심부위인 것입니다. 사람이 일을 할 때나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는 허리에 힘을 써야 합니다. 허리에 힘을 쓰려면 허리를 동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성도들은 서로 허리를 동여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겸손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울 수 없으며 지체의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겸손하면 그것으로 허리에 힘을 얻어 몸이 세워지고 온전한 몸의 활동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으로가 아니라 겸손으로 동이라고 한 것입니다. 교만은 몸을 넘어지게 하며 몸의 활동을 마비시킵니다. 눈이 손더러 보는 눈이 없으면 어떻게 손을 쓸 수 있느냐는 식으로 교만하면 지체끼리 화합이 안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은 고전12:14절 이하에서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겸손하면 어떤 자세를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까? 바울은 빌2:3절에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겸손하면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 여깁니다. 훌륭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높다고 여기지 아니합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서로 그런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섬기라고 한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고 영적 유익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자기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겸손으로 서로 허리를 동여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베드로 사도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겸손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의 손아래서 자신을 낮추는데 있습니다. 이런 신앙적인 바른 자세에서 나오는 겸손이 있어야 성도들 상호간에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일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그런 성도들에게 높은 상급을 주심으로 겸손의 보상을 주실 것입니다.






  (29) 염려의 처리

  (베드로전서 5:7)


  사람들에게는 모두 염려가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이 세상은 축복에서 저주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왔고 그 죽음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저주받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염려와 근심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은 잠에서 깨면서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염려의 연속입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때문에 찾아 올 내일 일에 대한 염려가 우리의 마음을 압박하고 우리의 생애를 우울하게 하는 것입니다. 전3: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염려가 나쁜 이유

  인생의 염려는 주로 의식주 문제 때문에 옵니다. 그러므로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6:25절에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못사는 사람은 잘 살아보려고 염려하고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아보려고 염려합니다. 또한 병에 대한 염려, 자녀들에 대한 염려, 사업에 대한 염려 등 한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 염려입니다. 어느 면으로 보면 염려는 인간의 생리적이요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에서는 염려에 대하여 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는 것입니까?

  (1) 첫째로 염려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에서 오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염려치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불신이기 때문에 우리의 염려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염려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무익합니다. 예수님은 마6장에서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못하였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문제의 해결을 얻을 수 없는 염려에 얽매어 자기 인생을 파탄시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3) 믿음이 적은 자들이 염려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4)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 믿음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눅21:34절에서 주님은 생활의 염려는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주님의 날을 맞게 될 때 무서운 환난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라고 경종하셨습니다.

  2. 염려의 해결책

  시37:5절에서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신다’고 했습니다. 시55:22절에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신다’고 했습니다. 잠16:3절에서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권고한다는 말씀은 돌보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은 나를 돌보아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염려라도 모두 맡으실 수 있을만치 권능을 가지신 분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고민거리, 염려거리를 맡으시기를 스스로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일을 처리하시는 일에 내가 해 주시겠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맡겨 버리란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잠3:6절에서 ‘너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자기 생애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능히 처리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다음에 하나님만을 의뢰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그 분을 끝까지 의뢰하는 것입니다. 빛이 없는 흑암 중에서라도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나의 생활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정 ·받지 못하는 생활에서 오는 재앙이나 환난은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염려를 깨끗이 도말해 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손길을 나타내시어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30)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

  (베드로전서 5:8-9)


  베드로 사도는 이 서신을 마감하기에 앞서 성도들의 근신과 깨어 있어야 할 일에 대하여 당부하고 있습니다. 근신은 우리의 생활에 관한 자세이며 깨어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1. 우는 사자와 같은 마귀

  그리스도인의 근신은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나의 생각과 지혜와 정성을 다 쏟는 생활을 말합니다. 바울은 딤후4:5절에서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생활에 당면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일에 근신해야 합니다. 이런 근신이 우리의 생활에 결여되면 침노하는 자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당장에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8절에서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깨어라고 했습니다 깬다는 말은 영적 경성을 말합니다. 성도가 깨어있지 않으면 영적 수면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도하여 깨어 있지 않으면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마24:42절에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기도하시기 위해 감람산에 오르실 때에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마26:40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잠자는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탄식하셨습니다.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 할 때 잠을 자면 큰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잡히실 때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목전에서 세 번씩이나 나는 그를 모르노라고 부인한 것입니다.

  2.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할 이유

  그리스도인은 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에 대하여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귀가 하는 일이 나왔습니다. 마귀는 마치 우는 사자와 같은 잔인한 자세를 가지고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을 보면 들판에서 갈대 숲이나 풀 속에 숨어 앞쪽에서 움직이는 먹이를 공격할 기회를 엿보는 사자의 신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노리는 기회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근시하고 깨어 있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벗어나 죄악의 길에서 헤메일 때가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정욕에 빠져 세상 재미에 빠졌을 때에, 사욕과 탐심과 음란과 죄악된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에, 그 기회를 포착하여 사정없이 공격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들이 이런 시험에 빠져 있기를 기다리는 자가 아니요 스스로 시험하는 자로 우리에게 작용하며 교회 안에 가라지들을 뿌려 놓기도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도 함께 자란다고 했습니다. 알곡 중에 많은 가라지 떼들이 함께 서식하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양들과 함께 염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뽑기를 묻는 자에게 주님은 뽑지 말고 그냥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을까 염려된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자는 그가 분명 가라지 인줄 알지만 그 가라지를 뽑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경계하면서도 남다른 사랑과 정성을 드려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죄악에 눈을 돌릴 때, 우리의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심으며 그 일을 진행시킵니다. 요13:2절에서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으며 그 일을 실천할 수 있도록 유다를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마귀를 상대로 적극적인 방어 태세를 취해야 합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까? 9절에서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일에는 먼저 믿음을 굳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굳게 하려면 진리로 무장해야 합니다. 소망에 흔들리면 안됩니다.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또 마귀는 고분고분한 자를 가장 선호합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이기려면 그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한다는 말은 죄와 타협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죄는 무조건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고 가까이 오는 유혹의 소리에 귀를 기우려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우리를 동정하며 사랑하는 척하는 유혹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결론 : 마귀는 여러분의 바로 그 곁에서 혹 아내, 남편, 자녀, 이웃, 친구, 형제 등을 통해서 우는 사자처럼 여러분을 삼키고자 가까이 합니다. 그 정체를 말씀과 믿음으로 보라보고 동조하거나 그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정면으로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31) 그가 너희를 온전케 하시리라

  (베드로전서 5:9-14)


  마귀와의 싸움은 그리스도인의 온 생애에 걸쳐 계속됩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살아 있는 한 마귀는 우리들 가까이서 우리를 유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완전히 쓰러뜨리거나 자기의 소유물로 만들 수는 없어도 우리에게 고난을 줄 수는 있습니다. 욥에게 고난을 준 자도 마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귀가 주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마귀가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고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한계란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을 시험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허락 받은 그 범위를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 시험받을 즈음에 피할 길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1. 고난이 따르는 마귀와의 싸움

  마귀는 비록 우리에게 육신적인 시험과 고난을 주지만 마귀와의 싸움은 결코 육신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을 육적으로 대결하면 이 싸움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갑니다. 엡6:11절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씀해 줍니다. 마귀와 싸울 때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할 옷은 갑옷인데 이 옷을 엡6:13절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여러 가지입니다. 하나는 악한 날에 능히 마귀와 대적할 무기로 필요합니다. 엡6:13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려면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허리는 우리 몸의 중심입니다. 사탄과의 싸움은 진리의 말씀을 선봉장으로 내세워야 합니다. 진리를 이길 수 있는 마귀는 없습니다.

  다음에 의의 흉배를 부쳐야 합니다. 마귀는 죄의 유혹으로 우리의 심장을 공격합니다. 이 공격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우리의 죄를 전부 사유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주신 그 의의 흉배를 부쳐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공격이 제아무리 강력해도 이 흉배를 뚫고 우리의 심장을 꿰뚫을 힘은 없는 것입니다.

  다음에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발을 잘못된 길로 유인합니다. 죄의 길을 보여주면서 손짓을 합니다. 롯처럼 소돔 땅을 에덴 동산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이 서 있는 땅은 거룩한 땅입니다. 의의 길입니다. 소망의 길로 연결된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선 땅은 거룩하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발은 복음의 신을 신고 우리의 인생 길을 늘 복음의 길로 걸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향하여 불 신앙의 화살을 쏘아댑니다. 이것을 맞으면 믿음이 죽고 불 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이 화살을 피하려면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써야 마귀와 싸울 수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어 그 죄를 우리에게 보여 주면서 너는 그 죄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구원을 받기엔 네 죄가 너무나 많고 너무도 크다고 속삭입니다. 이런 마귀의 유혹을 이기려면 구원의 투구를 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얻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그 구원을 무효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성령의 검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으로 끈질기게 시험하는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마귀의 유혹에 방어적인 자세만 취했지만 이 성령의 검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잠깐동안의 고난으로 얻을 영원한 영광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할 고난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잠깐동안의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잠깐동안의 나그네길을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당한 우리를 온전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고난은 우리로 온전케 하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히12:11절에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을 통해서 첫째로 그 행위를 온전케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하시며 우리의 소망의 터전을 견고케 하시는 것입니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아도 그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 :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를 마감함에 실루아노로 이 편지를 대필케 하고 간단히 권면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 한다고 했습니다. 은혜에 굳게 서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에 승리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PREV :   베드로후서 1장 (1 - 7) 밤중소리 
 NEXT :   베드로전서 4장 (23 - 26) 밤중소리 
 LIST  WRITE  REPLY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