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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2) 11:30-40
 밤중소리  06-05 | VIEW : 663
  (76) 여리고 성을 함락한 믿음
   (히브리서 11:30-31)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광야에 나오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땅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이 마주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죽었습니다. 모세가 죽게 되자 모세의 시종으로 충성스럽게 일했던 여호수아가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1. 여리고 성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들

  여호수아가 당면한 처음 난관은 요단강을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이 강을 건너야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때마침 강물이 창일하여 건너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을 앞세우고 요단강으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이 갈라지리라는 말씀을 따라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여리고 평야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여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을 침공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높고 든든한 성문으로 굳게 닫혀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성을 통과해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축복이 클수록 관문이 높다는 사실을 가리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행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가마득히 높이 솟은 여리고 성벽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느냐 아니면 여리고 성을 뚫고 지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가로놓이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로 여리고 성을 매일 한바퀴씩 6일간 돌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일해 째 되는 날에는 제사장들로 양각 나팔을 불게 하여 그 소리가 백성에게 들릴 때는 백성들은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방법을 바라볼 때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너무나도 어리석고 미련스러운 방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구원의 능력을 나타나실 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어리석은 방법을 쓰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심으로 인간 스스로를 의지하는 자들로 멸망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전1:21절에서 이르시기를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하셨는데 이런 방법을 쓰시는 이유는 인간의 지혜나 지식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는가의 여부를 보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매일 그 성 주위를 일곱 번씩 돌고 다닐 때 여리고 성벽에서 이런 괴이한 행동을 본 여리고 사람들은 얼마나 우습게 여겼을 것입니까?  그러나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높고 높은 여리고 성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은 어디서 옵니까? 위대한 순종에서 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은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 약속하신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 라합의 믿음

  그런데 여리고 성이 무너져서 여리고 성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전부 멸절을 당할 때 오직 그 가운데서 구원을 받은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가 라합이란 기생이요 그 기생의 가족들입니다. 그러므로 31절에서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에 앞서 정탐꾼 두 명을 성안에 들여보냈습니다. 두 정탐꾼이 여리고 성에 몰래 들어가 정탐할 때 기생 라합의 집에 몰래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탄로되어 정탐꾼들이 사로잡히게 되었을 때 라합은 거짓말로 왕을 속여 도망치게 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 둔 지붕 위에 올라가 그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 자기와 자기 가족의 생명을 구원해 줄 것을 맹세시킨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라합의 믿음을 보면 라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여리고 성을 점령하게 하시고 이스라엘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조만 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여 그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여리고 사람들을 죽일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하여 상천 하지에 한 분 뿐이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합은 하나님이 능히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떨었습니다. 라합은 자기들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증표를 요구하게 되었는데 정탐꾼들이 라합에게 이르기를 창문에 붉은 줄을 매고 모든 가족을 다 그 집에 모으되 집 문밖에 나가는 자의 생명은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약속했습니다. 라합이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살린 것은 이 같은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라합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그의 생명을 보장하신 것입니다.

  결론 : 라합은 자기 집에 곧 붉은 줄을 달았습니다. 이것이 구원을 얻는 언약의 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표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표징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표징을 라합처럼 우리 가정에 매달아 놔야 합니다. 온 가족이 이 언약의 집에서 한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77) 기드온의 믿음
   (히브리서 11:32)

  32절에는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의 이스라엘의 믿음의 선진으로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등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믿음에 대해서는 히브리서를 쓴 기자의 시간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의 믿음의 행적은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기는 사사들의 한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기나안에 들어온 후,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죽게 되자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등장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재판을 맡아 처리하고 외적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싸운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사사들입니다.

  1. 이스라엘의 사사들

  사사는 제사장들처럼 성별된 지파 중에서 선출된 사람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하나님의 뜻에 의해 쓰여진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온 후에도 툭하면 하나님을 떠나 이방 신을 섬김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시는 수단으로 외적을 끌어들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이 전쟁에서 그들로 번번이 참패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사를 세워 이방인에게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그 주변의 이방인들과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이방인들에게는 여호와가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었는데 그들의 신은 모두가 우상들로 이들 신들을 섬기므로 우상을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의 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그들이 전쟁에 이기거나 농사가 잘 되었을 때 그런 일이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강한 분이라고 여기게 되어 그 신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 이방 신상을 세우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2. 기드온의 믿음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드온은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가진 요아스의 아들입니다. 기드온 시대의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로 하나님께 등을 돌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멜렉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침공으로 어려움을 당하게 되자 그들은 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뜨거워지셔서 기드온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그 사자를 기드온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루는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여아스는 아세라 신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읍 사람들이 섬기는 아세라 신상 곁에 하나님의 단을 쌓고 밤중에 아세라 신상을 헐고 그 우상을 도끼로 찍어 그 나무를 가지고 송아지를 번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일로 온 성읍 사람들이 소동하여 기드안의 소행이니 우리가 그를 죽이겠다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미디안 사람, 아멜렉 사람, 동방 사람들이 큰 연합군을 이루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이스라엘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이 때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력하게 임하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후, 소명과 승리를 확신하는 하나님의 증거를 받기 위해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하게 되었습니다. (양털 한 뭉치) 이런 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진 기드온은 32.000명의 군사를 데리고 기르앗 산에 집결했습니다. 적군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군대의 수효가 많으니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300명만 따로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미디안의 군사들은 메뚜기 떼같이 중다했고 약대의 수효만도 해변의 모래의 수다함 같았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기드온은 부라란 이름의 부하를 데리고 몰래 미디안 진영으로 정탐을 갔습니다. 그 때 기드온은 적군의 진영 안에서 미디안 군사들끼리의 은밀한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대화의 내용인즉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들어 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 보리떡이 그 장막을 쳐서 무너뜨려 쓰러뜨렸는데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부치셨느니라’는 꿈이야기와 해몽까지 듣게 딘 것입니다.

  이 같은 미디안 군사들간의 이야기를 들은 미디안은 하나님이 미디안 군대를 자기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은 것입니다. 기드온은 300명의 군사들로 둘로 나뉘게 하여 항아리에 횃불을 숨기게 하고 나팔 소리가 들려 오면 항아리를 부수면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요 하면서 적군의 무리를 공격하라고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그들로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여 칼날로 서로 죽이게 하고 도망가는 적의 무리들을 쫓아가 섬멸한 것입니다.

  결론 : 구원은 하나님의 권능에 있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실 하나님만을 믿고 그 하나님만 의뢰하면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 주십니다. 승리는 수효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에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78) 바락과 삼손의 믿음
   (히브리서 11:32)

  오늘은 바락과 삼손의 믿음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락은 이스라엘의 네 번째 사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맨 먼저 세운 인물은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었습니다. 삿3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려고 그 주변에 몇몇 나라들을 멸하지 아니하시고 남겨 두셨다고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 가나안 사람, 시돈 사람, 히위 사람 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이스라엘이 과연 그들의 열조들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가의 여부를 알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이들 이방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고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며 그런 연대 관계로 인하여 결국 그들의 신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1. 사사를 세우신 하나님과 바락의 믿음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여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이웃 나라들의 침공을 받게 하며 그들의 압제를 받아 고통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중에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 왔을 때 하나님은 사사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맨 먼저 세움을 받은 사사가 옷니엘이며 그 후에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입니다. 에훗이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인 후, 이스라엘은 80여 년간 태평한 세월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에훗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또 하나님께 불의를 행하여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지배아래 20년간 고통을 당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또 부르짖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여 선지 드보라를 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재판을 맡게 하셨습니다.

  드보라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 그에게 야빈 왕의 군대를 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바락은 드보라로부터 하나님의 명하시는 말씀을 듣고 1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터인 다볼 산으로 간 것입니다. 바락은 적은 군사를 가지고 강력한 야빈의 군대를 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하나님께서 바락 앞에서 가나안의 온 군대를 칼날로 쳐 멸하게 하신 것입니다.

  2. 삼손의 믿음

  다음에 삼손의 믿음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사 중 가장 유명한 사사를 든다면 삼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40 년간이나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 단 지파의 마노아라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삼손은 20여년간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으면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과의 싸움은 이방 여인과의 결혼에서 발단됩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으로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게 하심으로 불레셋 사람을 치실 계획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삼손의 담대함과 그의 괴력에 가까운 놀라운 힘은 블레셋 사람들을 치시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셨습니다. 하루는 그가 딤나의 포도원을 지나칠 때 사자와 마주친 일이 있었습니다. 사자는 삼손을 향하여 울부짖으며 덤벼들었습니다. 삼손이 이 때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어 사자와 싸울 때 손에 아무 것도 든 것이 없이 그 사자를 염소새끼 찢듯 찢었습니다.

  하루는 자기를 위해 처가 집에 마련된 피로연에서 블레셋 청년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수수께끼가 블레셋 청년들의 간교한 협박으로 인하여 탄로 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삼손은 여우 300마리를 잡아 서로 꼬리끼리 연결시킨 후, 그 꼬리 사이에 횃불을 달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을 불태워 그들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줄 때, 삼손은 든든한 밧줄에 묶여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임하시매 그는 결박을 불탄 삼과 같이 끊고 주위에 있는 나귀뼈다귀를 취하여 그 뼈로 1천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그 후, 삼손은 아내로 얻은 들리라에 의해 블레셋 사람에게 포로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신전에서 성대한 행사를 할 때 노리개로 끌려가 재롱을 부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삼손은 자기를 이끄는 소년의 손을 의지하여 신전을 버티고 서 있는 기둥 사이에 의지하고 섰습니다. 그 신전 안에는 방백들, 지도자급 인사들만 모여 있고 지붕에 있는 자들만도 3.000명이 넘는 많은 수효였습니다. 여기서 삼손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소서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들에게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갚게 하옵소서’ 기둥을 좌우로 껴안고 ‘내가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부르짖으면서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니 그 큰 신전이 일시에 무너져 그 가운데 있는 블레셋 사람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결론 : 삼손은 하나님을 의뢰하므로 나귀 뼈로 천명을 죽였습니다. 삼손은 담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삼손은 이방 여인에게 가까이하여 실패한 생애를 보냈지만 그러나 그는 어려운 고비마다 자신의 생명을 던져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내가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는 그의 일사 각오의 믿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삼손의 위대한 믿음의 징표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2)

  입다라는 사람은 성경에서 하나님께 잘못 서원하므로 귀중한 딸을 제물로 드리게 된 이스라엘의 사사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비록 그가 어리석은 서원으로 그의 생애에 큰 비극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아름답고 소중한 믿음을 보여 믿음의 선진 대열에 들게 된 믿음의 사람입니다.

  1. 입다의 출생과 나라 형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의 보답을 악으로 나타내곤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평안하게 살게 하시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는 우매한 생활을 되풀이하곤 했습니다. 바알이라고 하는 태양신을 섬기고, 아스다롯이라고 하는 아세라 여신을 섬기며, 모압의 신, 아람의 신, 암몬 자손의 신, 블레셋 사람의 심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뒷전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이스라엘을 포기하시거나 그들의 생각대로 맡겨 두시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암몬 자손의 손에 맡기시어 18년간이나 학대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매달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입다를 그들의 사사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암몬 자손의 손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원래가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그 본처 자식들에게 쫓겨나 아버지의 기업조차 누리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입다는 어려서부터 용맹스러운 용사였습니다. 그의 용맹을 잘 알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돕 땅으로 입다를 찾아가 이스라엘의 장관이 되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입다는 자기가 암몬 자손과 싸워 승리하면 이스라엘의 어른이 될 것을 약속 받고 이스라엘의 장관이 되었습니다.

  2. 입다의 믿음

  입다는 미스바로 가서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아뢰었습니다. 이처럼 입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을 믿고 원수의 무리와 싸우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므로 이스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20 성읍을 치고 그들의 군대를 모두 죽이고 항복을 받아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입다의 훌륭한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의 믿음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용감히 싸웠습니다. 그리고 입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적군을 물리쳐 암몬 자손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입다의 또다른 하나의 믿음은 그가 하나님께 서원한 서원을 큰 대가를 치르면서도 서원 한대로 이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입다는 암몬 자손과 싸우러 나가면서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고 서원을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전쟁에 이기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누가 그를 맞이했는가 하면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면서 밖으로 나와 아버지를 영접한 것입니다. 입다는 이 같은 장면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쳤습니다. 입다는 서원대로 딸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입다의 서원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어려운 서원을 이행했다는 그의 믿음입니다. 민30:2절 말씀에는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으면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5:4절 말씀을 보면 ‘네가 하나님께 서 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 서원한 것은 갚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시15:4절에는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갚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입다의 서원은 한 마디로 경망스러운 서원이었습니다. 자기를 영접할 자라면 집에 거하는 식구임에 틀림없을 것인데 사람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한 서원은 경망스러운 서원이며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로 태워 우상에게 드렸던 이방인들의 제사를 본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서원을 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비록 서원한 것이라도 자기 딸을 제물로 드리는 서원을 받으실 리 없는 것입니다. 입다는 차라리 자신의 경솔한 서원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내리실 징계를 기다렸어야 했습니다.

  처음 주님을 영접하고 은혜를 받았을 때, 시집을 안가고 처녀로 살겠다는 서원을 하는 일,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처럼 감당치도 못할 일을 서원하는 일은 삼가야 하며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올바른 신앙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결론 : 롬12:3절 말씀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특별한 서원이 없을지라도 순종의 생활을 통해서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80) 다윗의 믿음
   (히브리서 11:32)

  다윗이란 인물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그리고 이 왕은 예수님의 족보상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며 메시야의 계보와 왕권에 있어서 빠트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다윗이란 이름은 ‘사랑스러운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새의 여덟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BC 1.000년부터 960년 사이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나이가 자랄 때까지 아버지 집에서 양을 치는 목동으로 일해 왔습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용감하고 신앙적으로 대담한 소년이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 새끼를 움켜 가면 좇아가 입에 있는 양의 새끼를 빼앗고 짐승이 덤비면 그 짐승의 수염을 잡아 동댕이쳐 죽이곤 했습니다.

  1.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

  다윗이 아버지 집에서 목동으로 일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다윗의 아비 이새의 집에 보내시어 그 형제 중에서 한 아이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들을 하나씩 불러 드리는데 처음에 큰아들 엘리압이 들어 왔습니다. 사무엘이 그를 보니 인물이 출중하고 과연 왕의 제목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부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 아들 아비나답도 아니었습니다. 셋째 삼마도 불합격이었습니다. 7째까지 지나가게 했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또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새의 말이 ‘아직 말 째가 있는데 그는 양을 치나이다’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그 말 째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날 이후로 하나님의 신이 다윗에게 크게 감동하였다고 했습니다.

  2. 다윗의 믿음

  다윗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기사가 수도 없이 많지만 여기서는 네 가지로 간단히 추려 보겠습니다.

  (1) 첫째는 어린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보여준 믿음입니다. 다윗이 아직 목동으로 아버지 목장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 이웃의 강대국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아 에베스 담밈에 진을 쳤습니다. 블레셋 군에는 골리앗이라고 하는 유명한 거인 장수가 있었는데 이 자가 이스라엘 진앞에 나타나 싸움을 걸어오는 날이면 이스라엘 군사들은 혼줄이 나서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2.7미터, 입은 갑옷의 무개는 1.200근 놋으로 만든 단창을 메었는데 창자루는 베틀 같고 창과 칼에 사용된 철의 무게만도 140근이었습니다.

  이 때 이새가 다윗에게 전쟁터에서 자기 형들에게 먹일 도시락을 싸서 엘리 골짜기로 보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진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골리앗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있었으며 이스라엘 진영은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 앞에 나가 ‘왕은 낙망치 마소서 주의 종이 나가 싸우리라’고 말하면서 왕이 허락해 줄 것을 청원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준 갑옷과 창을 벗어 던지고 개울가에 내려가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취하고 손에 몰매를 잡고 골리앗에게 다가갔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나는 칼과 창과 단검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하나님께서 너를 내 손에 부치시리니 내가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새와 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하겠고 또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창과 칼에 있지 아니함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고 외치면서 몰매로 골리앗을 향하여 던지니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 중간에 박혀 땅에 쓰러트린 것입니다.

  (2) 다음에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의 용맹과 신망에 시기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 하루는 다윗을 잡으려고 깊은 골짜기로 좇아가다가 다윗이 들어가 숨어 있는 굴속에 들어가 혼자 잠을 잔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때 얼마든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다윗은 사울 왕의 옷자락 베는 것까지 두려워하면서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치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바라’하여 자기 군사들에게도 사울을 죽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3) 그리고 다윗은 회개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암몬 사람들과 싸울 때 어느 날 저녁 왕궁을 거닐다가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보고 그를 데려다가 동침했습니다. 그는 그 후 그의 남편까지 죽이고 밧세바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이에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나타나 이 일을 책망했을 때 다윗은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의 회개에 대하여 시편에서는 눈물이 요를 적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다윗 왕을 용서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결론 : 다윗은 수욕을 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왕위를 압살롬에게 빼앗기고 도망 갈 때 시므이라는 자가 다윗 왕을 저주했지만 부하들로 그 자를 죽이지 못하게 하고 그로 인하여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기를 불쌍히 보아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믿음은 우리들의 믿음의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2)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오늘 믿음의 선진으로 등장하는 사무엘입니다. 이스라엘에 지도자가 없어 나라가 위경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레로 준비하시고 이스라엘에 보내신 사사겸 선지자겸 제사장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태어날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선지자도 없었고 제사장도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으며 백성들은 다 방자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멀리 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그런 어려운 난국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때 제사장은 엘리였는데 그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제사장이 될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하기 짝이 없는 위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사무엘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태어난 것입니다.

  1. 사무엘의 성장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께 서원하여 응답으로 받은 아들입니다. 이 사무엘은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믿음으로 구원한 사람입니다.

  (1) 사무엘은 하나님의 예정된 제사장으로 태어났습니다. 사무엘이 아직 어렸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에게 네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났으며 그는 반드시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잠을 잤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이 휘귀한 시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상을 보게 된 것은 그가 여호와의 전에서 떠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나실인답게 성별된 생활을 했습니다. 나실인이란 나면서부터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고 독주와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시는 생활로 하나님께 특별히 바치는 성별 생활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삼손도 나실인었지만 그는 나실인다운 생활을 못하여 실패하였고 사무엘은 성별된 생활을 이루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나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로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 삼으시려고 엘리의 집안을 심판하시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크게 패하자 이스라엘은 홉니와 비느하스를 앞세워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그들은 블레셋 군대에게 패하게 되었고 언약궤마저 빼앗겼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이 전쟁에서 죽었고 이 소식을 듣게 된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자빠져 머리가 부러져 죽었습니다.


  2. 미스바의 역사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제사장 자리에 앉게 되자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로 미스바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참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길이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길임을 강조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되 진심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돌아오란 말은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만 행하라는 뜻입니다.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갈라져서는 안됩니다. 사업이나 가족 때문에 갈라져도 안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은 모든 일에 우선하여 그 마음이 전심으로 하나님께만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사무엘은 이스라엘에게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고 했습니다. 이방신을 제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오직 하나님께만 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눈이 위로 향할 때 소망이 있습니다. 평강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을 받는 비결은 ‘그만 섬기라’는 이 한 마디에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두 미스바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미스바에 모여 금식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이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아뢴 기도 내용이 삼상7:6절에 나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고 하는 회개 기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구해야 할 일은 그들의 범한 죄에 대한 사유에 있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진노가 가시고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그리스도인의 헌신적인 생활을 의미합니다. 죄를 자복했으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결정적인 믿음은 이스라엘이 맞은 최대의 위기에서 나타났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맨손 뿐이요 오합지졸인 이스라엘을 단번에 결판을 내려고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여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결론 :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홍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여호와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처럼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82)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의 행적
   (히브리서 11:33-40)

  33절부터 40절까지는 아직까지 언급한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의 행적에 따른 고난과 승리의 삶에 대한 기록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신앙이 얼마나 위대했는가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고 있으며 이런 귀한 믿음을 위해 그들이 당한 고난의 생애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증거는 받았으나 약속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1.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의 행적

  33절에서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나라들을 이기기도 했다는 말은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역대의 위대한 사사들이나 왕들에 의해 이스라엘의 땅이 넓혀졌으며 국위가 널리 선양된 것을 의미합니다. 의를 행했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사사들이나 제사장들이나 왕들의 의롭고 정의로운 통치를 말합니다.

  약속을 받기도 했다는 말은 39절에서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씀과 상반되는 것 같으나 믿음의 선진들이 받은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언약한 개인적이며 국가적인 문제에 대한 약속을 의미하고 39절의 ‘약속을 받지 못했다’는 약속은 종말론적인 약속으로 최종적으로 생명을 얻어 영생하는 부활이나 천국에 대한 약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인류의 종말에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대 앞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사자들의 입을 막은 일은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 사자들의 입을 봉한 사건을 의미해 줍니다.

  불의 세력을 멸한 일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왕의 신상에 경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극렬히 타는 불 풀무 속에 들어갔으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승리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들 믿음의 위대한 사람들은 또한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한 것입니다.  

  2.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해 생명을 버린 믿음의 사람들

  그런데 우리는 35절 이하의 말씀에서 부활과 더 좋은 부활에 관한 말씀을 접하게 됩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이 부활은 실인즉 부활이라고 말하기엔 미흡한 사건입니다. 왜냐 하면 여기에 언급한 부활자들은 그 후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자들이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은 사건은 사르밧 과부의 경우 엘리야가 살려주었고 수넴 여인의 경우 엘리사가 살려 주었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아들과 나사로의 경우, 예수님이 관과 무덤에서 살려 내셨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여자들에게 돌아갔으나 사실인즉 그들은 다시 죽어 무덤에 장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부활의 한 그림자일 뿐 부활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을 보면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라고 했습니다. 부활로 받았다는 말과 부활을 얻고자 했다는 말은 다른 말입니다. 하나는 현재 받은 상태를 말하고 하나는 앞으로 받을 것을 소망으로 바라본 것을 말합니다. 더 좋은 부활이라고 한 말은 방금 전에 여자들이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닙니다. 더 좋은 부활이란 부활의 상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한 가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15장에서 바울은 부활의 형체는 여러 가지라고 말씀해 줍니다.

  하늘에서 장차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상급은 부활의 상급을 의미합니다. 부활은 모두 영광스럽지만 그 등급이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부활은 주님의 부활입니다. 주님은 이 부활로 최고의 영광을 누리셨는데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으며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인이 누릴 최고의 부활은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자에게 주시는 첫째 부할의 상급입니다. 더 좋은 부활이란 이 첫째 부활자가 받을 영광을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이들은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며 천국에서도 세세토록 왕 노릇 하는 축복을 받아 누릴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이 같은 부활을 바라보고 주님을 위해 그의 생명을 바치는 일에 조금도 주저치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35절로 3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    ).  38절 말씀을 보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이런 사람을 이겨낼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39절과 40절 말씀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켜 주는 연결고리가 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들은 증거는 받았지만 약속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약속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약속으로 이 약속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도 받은 사람들이요 증거도 가진 사람들로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이들 구약 시대의 믿음의 선진들보다 얼마나 복된 사람들인 줄 모르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를 말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나 옛날의 믿음의 선진들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약속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분명한 약속을 받았으니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영광의 그날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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