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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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장 (46 - 52)
 밤중소리  02-01 | VIEW : 2,247



  (46) 첫 장막의 속죄소

   (히브리서 9:1-5)


  우리는 아직까지의 히브리서 강해를 통해서 첫 언약의 지성소와 새 언약의 지성소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약은 첫 언약에 대한 지성소에 대한 기록이요 신약은 새 언약에 대한 지성소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첫 언약에 관한 지성소는 이 땅에 속한 것이요 새 언약의 지성소는 하늘에 속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땅에는 율법을 따라 제사장 직을 맡아 일하는 제사장이 있었고 하늘에는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하나님의 맹세로 된 제사장이 있습니다.

  1. 첫 장막의 모습

  첫 장막의 모습이 1-5절까지 간략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땅의 성소에는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가 놓여 있습니다. 이 등대는 순금으로 만든 촛대인데 일곱 개의 불을 컸습니다. 다음에 상이 있습니다. 이 상은 향단이라고 부릅니다. 이 향단도 금으로 장식되었습니다. 다음에 괴어 놓은 떡으로 진설병이 있었습니다. 이 떡은 누룩이 섞이지 아니한 것으로 12개를 두절로 겹쳐 놓았습니다. 이 떡은 안식일마다 교대해 놓는데 묵은 떡은 제사장이 먹었습니다.

  첫 장막 안에 성소가 있고 다음 둘째 휘장 뒤에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 안에는 금 향로와 법궤만이 있었습니다. 금향로는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대제사장이 가지고 지성소를 들어갑니다. 그리고 법궤는 전체가 금으로 입혔습니다. 법궤 안에는 세 가지 상징적 물건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만나가 담긴 금항아리입니다. 이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다음에 법궤 안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이 지팡이는 하나님이 제사장으로 택한 자와 아닌 자와의 구별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를 거역하는 고라와 다단과 온의 무리들을 불로 심판하신 하나님께서는 지팡이 한 개씩을 취하여 두령의 이름을 쓰게 한 후, 그 지팡이들을 법궤 앞에 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그 지팡이 가운데 하나님이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날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로서 하나님의 택한 제사장과 아닌 제사장을 구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튿날 그 수많은 지팡이 중에 오직 한 지팡이에만 싹이 났는데 그 지팡이는 바로 아론의 지팡이였습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패역한 자의 표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다음에 법궤 안에는 언약의 비석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돌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입니다. 이 돌 판은 두 개의 돌 판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1-4계명까지요 다른 하나는 5계명부터 10계명으로 대신 관계와 대인 관계로 구별지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구릎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적 존재들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좌의 모형으로 은혜 언약의 그림자로 보이신 것들입니다.

  2. 성소에서 섬기는 사람들

  구약에서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로 대제사장이 있고 다음에 제사장들이 있었으며 제사장의 일을 도와주는 레위인들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아론의 아들로부터 시작이 되면서 그 대제사장의 큰아들이 이 직분을 계승해 내려 왔습니다. 이들을 성별 시키고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들은 매일 백성들을 위해 소제를 드렸는데 소제란 식물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위한 속죄 제물에 피를 뿌렸습니다.

  다음에 제사장들은 아론의 자손들입니다. 이들은 제사 드리는 일을 맡아 왔으며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여러 가지 의식을 인도하였고 백성들을 축복하였으며 민사재판을 집행했습니다. 이들이 제사장 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몸의 여러 부분에 기름과 피를 뿌렸으며 기름은 붓지 아니했습니다. 기름을 부은 대상은 오직 대제사장뿐입니다.

  다음에 레위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제사장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의 어린양의 희생으로 그들의 장자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의 사람들을 이스라엘 장자로 구분하여 그들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이들에게는 기업이 따로 없고 백성들이 바치는 십일조로 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제사 제도를 만드신 것입니까?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는 반드시 화목 제물과 속죄의 피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나 죄를 범하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그것을 이들을 통해서 그 길을 열어 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런 제사 제도는 우리의 화목 제물로 보내실 그리스도의 희생의 그림자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결론 : 그리스도는 이 땅위에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화목 제물로서 그 몸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속죄의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새롭고 산길을 열으신 그 순간 땅의 지성소는 없어지고 하늘의 지성소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스도를 힘입고 누구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47) 성령이 보이신 뜻

   (히브리서 9:6-8)


  구약이건 신약이건 죄 값이 사망이란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성소에는 피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약에서는 백성들의 죄를 피로 속하는 속죄일이 율법에 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7월10일을 속죄일로 지켰습니다.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일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1. 피 없이 들어갈 수 없는 지성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속죄를 받아야 합니다. 죄인은 어떤 모양으로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에서 짐승의 피를 흘리면 죄의 용서함을 받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으므로 하나님께 속죄 받는 방법으로 자신의 죄를 그 짐승에게 전가시켜 짐승으로 자기의 죄 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 그 짐승을 잡아 그 피로써 하나님께 자신의 속죄 제물로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언제나 하나님의 성소에서 속죄 제물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연수가 많아지면 죽게 되며 그 직분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언제나 지성소에 머물러 그의 백성들을 위해 항상 간구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일정한 기간만 그곳에 머물러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그 직분의 갈림이 없이 영원히 그곳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죽음이 없는 대제사장이 시요 멜기세댁의 서열을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우심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도 속죄의 피를 가지고 그곳에 들어가셔야 했습니다. 오직 피만이 속죄 제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위해서는 이 땅의 대제사장처럼 송아지의 피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자신의 속죄 제물은 드릴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속죄 제물로서의 피만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염소의 피로 그의 백성의 속죄 제물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흠과 점이 없으신 자신의 피로써 속죄 제물을 삼으시고 그 피를 가지고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가 드리신 속죄 제물은 단 한 번만으로 영원히 효력이 있는 영원한 제물이기 때문에 한 번 흘리신 피로써 그의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온전히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지성소에 항상 계실 뿐 아니라 그의 피로 삼은 영원한 속죄 제물을 가지고 들어가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항상 간구하시는 직분      을 영원히 계속하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힘입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온전히 구원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성령이 보이신 뜻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주님이 오시기 이전까지는 이 성소의 휘장이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이런 일로 우리에게 보이신 뜻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8절에서 ‘첫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첫장막이 서 있을 기간이란 구약 시대를 의미합니다. 그 때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대제사장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모든 사역을 이루시어 이 휘장을 찢으시고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우리들에게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다음에 예수님의 이 같은 사역을 통해서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했습니다. 휘장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휘장이 찢겨진 것입니다. 그 찢겨진 자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새롭고 산 실로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다른 곳은 아직도 휘장으로 단단히 막혀져 있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누구를 통해서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열어 놓으신 그 새로운 길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일은 이처럼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이처럼 생명에 이르는 일이기 때문에 축복 중에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을 읽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기도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그 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그 분에 대하여 알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에게 말씀으로 깨닫게 해 주십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이 은혜를 받으려는 사람은 잘못된 은혜를 받아 오히려 참된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우리의 생애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태풍이 닥쳐올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닻을 오직 그리스도에게 내리 운 사람들만이 시험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8) 양심으로 온전케 할 수 없는 구약의 제물

  (히브리서 9:8-10)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율법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로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구약은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 있어서 의식을 통한 형식적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짐승의 피로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우리의 양심을 온전케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일은 다만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의 하나의 그림자일 뿐 그리스도가 오신 후로는 이 같은 그림자는 마땅히 사라져야 했습니다.

  1. 음식으로 구별한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다름이 없습니다. 벧전1:16절에서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레11:45절에 나온 것을 베드로가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면서 그들로 어떤 방법으로 거룩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생활에 나오는 의식으로 구별시키셨습니다. 먼저 먹는 식물로 구별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이 율법적 규례가 레11:1-12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음식을 먹는 일에 부정한 음식과 정결한 음식을 구별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이 같은 음식으로 성별케 하는 거룩함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이유는 온전한 것이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음식 중에는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이 없으며 아무 음식이나 감사함으로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부정한 음식과 정결한 음식을 구별해서 먹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정말로 정결한 음식을 먹어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주신 구례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생활을 해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데 참 의미를 두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먹는 속된 음식은 속된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율법의 결례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단 음식으로만 거룩을 구별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생활에 적용하도록 결례란 의식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몸을 더럽혔을 때 물로 씻는 일로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말합니다(민19:11-13). 바리새인들은 이런 일을 과장하여 장로의 유전이란 것을 만들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다던가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몸에 뿌리지 아니하면 먹지를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물로 씻는다는 결례의 의미가 신약에 와서 어떤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딛3:5절에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였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물은 우리의 죄를 씻는 회개를 말하며 종국적으로는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 와서는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레17:11절 말씀을 보면 짐승이 피가 우리의 죄를 속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의식은 우리의 육체에 나타난 죄를 속하는 일에 형식적으로 적용될 뿐 우리의 양심의 죄를 소멸하는 일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입니다.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우리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용서를 받는다고 하는 하나의 의식은 될 수 있을지언정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원죄에 대한 죄를 사죄하거나 사망에 이르는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실 일에 대한 하나의 그림자로 보여 주신 일에 지나지 않으므로 오늘날에는 짐승의 피로 속죄 제물을 드리는 일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히10:22절에서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뿌림 받은 것은 짐승의 피가 아닙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인 것입니다. 이 피야말로 우리의 양심의 악을 깨닫게 하고 그 악을 정결케 씻어 주시는 맑은 물인 것입니다.

  이처럼 음식이나 물이나 짐승의 피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거나 양심을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온전한 것이 올 동안만 존속하도록 하신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이란 사람의 생명의 원천인 영혼을 말합니다. 인간이 죄로 죽어 있는 것은 육신인 것이 아니라 양심입니다.

  업2:1절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하셨는데 살리신 것은 우리의 영적 생명, 우리의 영혼인 것입니다.

  결론 : 양심으로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마음에 피 뿌림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언약하신 새 언약의 피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을 깨닫고 정결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그리스도의 피를 속죄 제물로 믿는 우리의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피로 뿌림 받아 우리의 모든 죄를 사유해 주심으로 우리의 양심으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이 온전한 양심을 가지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생활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49) 온전치 못한 율법 아래 중보자

   (히브리서 9:11-17)


  우리는 아직까지 많은 시간에 걸쳐서 구약적 제사나 제물이 우리의 속죄 제물로 온전치 못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구약적 중보자인 제사장의 온전치 못한 중보자직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절에 나온 말씀을 보면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1. 중보자의 의미

  중보란 말은 두 편의 원수 관계를 없애고 서로 화해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중보자란 말은 바로 이 같은 일을 담당할 중재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는 왜 중보자가 필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순종치 못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게 된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무조건 용서하시고 선언하신 심판을 거두시고 생명을 주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인 중 하나도 멸망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겔18:23절에서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사야를 통하여 많은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벧후3:9절에서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전 내용은 아담 이후 죄로 멸망 받게 된 인간에게 어떻게 구원해 주실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꽉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결정적인 방법으로 취하신 것이 바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공의도 이루시고 그의 불같은 사랑도 이루시기 위하여 세우신 것이 바로 중보자이십니다. 이 중보자가 구약에서는 제사장으로 나왔으며 신약에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중보자는 둘인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하나인 것입니다.

  2. 구약의 중보자

  이 중보자에 대하여 먼저 구약의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에서 세우신 제사장은 이 직분을 어떻게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켜 드리는 화해의 사명을 이룬 것입니까?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차례씩 지성소에 들어가 염소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 일로 죄 값이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 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같은 제물을 받으심으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1) 첫째로 중보자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구약의 제사장은 자신도 죄인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죄인은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먼저 자신의 죄를 속하는 속죄 제물을 드린 후에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백성들의 중보자로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 속죄 제물을 드림으로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해 왔던 것입니다. 이 같은 제사장의 사역은 그가 온전한 중보자가 될 수 없다는 증거가 되며 온전하신 분이 오시기까지만 존속했던 임시적인 중보자였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증보자는 언제나 살아 있어서 이 소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중보자가 죽는다면 이런 중보자는 임시적인 직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이 세상에서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맡았던 중보자 직분도 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제사장 직분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시는 다른 중보자가 세워질 때까지만 필요했던 임시직이었습니다.

  (3) 제사장의 중보자직은 일년에 한차례씩 지성소 안에 들어갈 때만 효력이 있기 때문에 언제
나 죄를 지을 수 있고 속죄의 은혜를 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온전한 중보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제사장의 중보자직은 지성소 앞에 내리어진 휘장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 휘장이 있는 한 하나님과 죄인들의 화해가 온전치 못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자신도 그것을 제치고 겨우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온전한 중보자로서의 제사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휘장을 찢어 그 가운데로 새로운 길을 열어 줄 중보자가 나타날 때까지만 필요한 임시직으로의 중보자로 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결론 : 그러므로 우리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구약의 제사 직분은 하나님과의 실질적인 화목을 이루게 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장래 하실 일에 대한 하나의 예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됨에 온전한 중보자로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50) 그리스도의 중보자 직분

   (히브리서 9:11-17)


  어제는 구약에 나오는 제사장의 중보자적 직분이 불완전한 이유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율법에 나오는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나 제사 직분은 그리스도에게 와서 온전해 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매우 중요한 지식입니다. 이 기초적 성경 지식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을 이해할 수 없으며 구원론에 대한 구약적 배경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일에 많은 장애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11,1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장래 좋은 일이란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의 영광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이 같은 축복을 이루는 대제사장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1.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피

  우리는 예수님의 피가 어떻게 우리의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어떻게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사 우리에게 오히려 긍휼하심을 얻게 하시어 도리어 생명을 얻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까? 이 문제에 해답을 찾으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 가에 대한 지식부터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던 분이십니다. 그 분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이런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시어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 분이 흘리신 피는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합니다. 그 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일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지은 모든 죄값을 지불하고도 남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일은 우리의 죄값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치르고도    남을 만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그의 아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공의로우신 심판을 내이심으로 인간이 범한 죄값을 다 치루게 하신 것입니다.

  2. 공의 뒤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

  죄의 심판을 공의로 내리신 하나님은 이제 그가 베푸시고자 원하시는 사랑을 나타내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일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아직도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과 등져 있는 인간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제 너희들의 죄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모두 용서 받았다. 이제 돌아 오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내게로 돌아오면 내가 너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고 너희에게 영생을 줄 것이며 나는 너희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이렇게 메시지를 전하시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가 바로 복음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사5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하여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업2장에서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온전한 중보자의 자격을 갖고 계시는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기의 피로서 속죄 제물을 삼으셨기 때문에 속죄 제물로서의 그 효과가 영원한 것입니다. 다시는 죄 때문에 짐승을 잡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 그 분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부활한 몸으로 지성소에 들어가셨기 때문에 중보자가 갈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은 항상 그곳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그의 피를 힘입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그 분의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 분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원수의 담을 허셨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일은 바로 이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결론 : 이처럼 우리 예수님은 갈보리의 십자가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온전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뿐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예수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를 견고히 의뢰하시어 여러분의 생애를 그 분에게 맡기시기 바랍니다.






  (51) 신구약에 나타난 언약의 피

   (히브리서 9:18-2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세우실 때에도 피로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피는 짐승의 피였지만 이 피는 곧 그리스도께서 흘리셔야 할 피를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약이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 새 언약은 이미 구약 여러 곳에서 예언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55:3절에서 ‘너희는 귀를 기우리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영원한 언약이라고 한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운 신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렘31:31절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한 것입니다.

  1. 새 언약이 세워지려면

  그런데 새 언약이 세워지려면 먼저 그 조건이 조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 값을 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를 가지고서는 이 언약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언약의 피이십니다.

  마26:18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의 유전적인 죄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오직 한 가지 길 뿐,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으로 저주 받아 죽으셔야 했습니다.

  2. 첫 언약의 피

  구악에서 첫 언약이라고 하는 말은 대개의 경우,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인간이 지켜야할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고 이 법을 지키는 생활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한 법이 첫 언약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언약에도 피를 사용하셨습니다. 죄인이 새로운 생명을 얻으려면 그 죄를 속하는 피 흘림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범했을 때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을 피 흘리는 제사 제도를 통해서 보여 주셨던 것     입니다. 이 같은 일은 죄인들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데는 육체의 정결을 얻어야 했는데 그런 일은 짐승의 피로써 족했던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히9:13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하여 거룩케 하거든’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땅에 있는 지성소의 법궤가 아니라 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양심의 정결함을 얻어야 하는데 그것은 짐승의 피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고 다만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3. 새 언약의 피

  하늘의 지성소는 땅의 지성소와 다릅니다. 하늘의 지성소에는 법궤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있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보좌에 앉아 계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정결하게 하는 방법도 모형으로 할 수 없습니다. 실체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체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림자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와 동등한 자격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온전한 속죄제물이기 때문에 자기가 죽어서 그의 피를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새로운 제물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해마다 자주 드리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어린양이시기 때문에 한 번 흘리신 피로 족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예수님은 언제나 그곳에 계시기 때문에 새로운 제물을 드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을 적 마다 이 땅에 다시 내려오셔서 자주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7절 말씀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생령이었지만 그 근본은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은 생령의 상태에서 다시 흙의 상태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그 근본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범죄한 인간의 심판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심판은 흙으로 돌아간 후, 말하자면 육신이 죽은 후,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가서 받는 심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범죄 한 후 육체로 타락하므로 그 상태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결론 :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며 마지막에는 죽지 아니할 부활한 몸이 되어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생명의 언약에 들어가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명심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2) 주의 재림과 구원의 완성

   (히브리서 9:28)


  28절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말씀으로 우리의 속죄와 구원의 완성의 과정을 단순하고 간략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었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성경에는 예수님이 두 번 오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예수님의 초림이요 두 번째가 재림입니다. 왜 두 번 오시느냐? 그 이유는 오시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의 목적은 죄인의 구원에 있습니다. 28절에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초림의 예수는 온유하고 겸손한 분으로 그 모습을 세상에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서 그의 초림의 사명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단번에 드리신 바 되었다는 말씀이 바로 이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입니다. 초림 때와 재림 때의 죄인의 관념이 다르게 나타나 있습니다. 초림 시에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오셨는데 재림 때는 ‘좌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나타나시기 위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 죄인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요3:18절에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는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죄의 종목이 있지만 하나님께는 그의 사랑으로 보내신 자 그의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죄는 없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심판을 위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모습을 가장 실감 있게 보여주신 계시는 계19장에 나와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심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초림의 예수님도 재림의 예수님도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같은 신분을 가지신 분이시지만 이처럼 초림과 재림과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2. 주의 재림은 어떻게 오는가?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오늘 주신 말씀을 보니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소망 중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소망은 지금 우리에게 이뤄진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이뤄진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온전해 지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생명으로 변화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일은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처럼 구원에 이르는 대상에 대하여 두 가지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죄와 상관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죄와 상관이 없는 자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사유함을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자기를 바라는 자들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 중에 바라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사도 요한처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재림을 소망 중에 기다리는 성도들이 그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초림과 재림의 차이점을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초림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베들레헴 땅에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 때에는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신 영광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초림의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예수는 죄와 상관없는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초림의 예수는 그를 영접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주님은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러면 언제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재림하실 예수님은 ‘때와 기간은 아버지께 속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 그러나 때와 징조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님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이란 주의 재림의 관한 별도의 성경을 주심으로 주 재림을 준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맞이할 신부는 죄와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죄와 상관이 있는 성도가 되지 마시고 죄를 회개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통해서 죄와 상관이 없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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