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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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8장 (43 - 45)
 밤중소리  02-01 | VIEW : 793



  (43) 하늘 성소에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

   (히브리서 8:1-6)


  히 7장에서 우리는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여러 가지 증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한 분이심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8:1절에 와서 ‘이제 한 말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제사장이라 해도 그 분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1. 우리에게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

  그러면 이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는 사실이 왜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합니까? 이에 대해 몇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들로 죄로 인해 결코 낙심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의인이 없는 것처럼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죄로 인하여 낙심하게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정죄의 두려움에서 낙심하게 됩니다. 구원에서 떨어졌을 것을 염려해서 낙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미워하고 죄를 범했을 때 원통히 여기며 마음을 아파하고 통회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이런 행동은 우리로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죄를 인하여 낙심한 나머지 비관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구원에서 떨어진 것으로 알고 두려워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죄를 범했을 때 곧장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이 계시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의 의로운 피가 있어서 우리가 자백하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십니다. 우리는 비록 용서 받기 어려운 가증한 죄를 범했어도 그곳에 들어가 우리의 대제사장 앞에 그 죄를 고하고 회개하면 그분의 긍휼히 여김을 받으며 죄사함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2) 다음에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구원이 주어졌는데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줄로 알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그 공로가 있고 우리는 다만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정말로 깨닫기 전까지는 언제나 구원이 자기 행실이나 자신의 믿음을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늘 흔들거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보면 언제나 그 믿음이 흔들리게 되고 의심을 갖게 되며 낙심하지만 예수를 보면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이 무엇이고 멸망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 한 가지 사실만 제대로 깨닫는다해도 보통 놀라운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내가 만약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갖지 못하였다면 내 생명은 파멸되어 영원한 멸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로 말미암아 그곳에서 건지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2. 우리의 제사장이 계신 곳

  제사장들은 일하는 곳이 있습니다. 율법 아래 대제사장들은 땅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특히 아론의 서열을 따라 내려 왔습니다. 아론의 큰아들부터 계속하여 그 장자가 이 직분을 맡아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제사장 직분을 이루실 분입니다. 2절에서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의 제사장 직분을 참 생명을 주시는 영적 장막에서 이루십니다. 율법 아래 있었던 지성소는 하늘 지성소의 모형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참 성소에서 일하실 분이시지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지상의 지성소에서 일하실 분이 아닙니다.

  이제 온전한 것이 왔으니 그림자는 물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 이뤘다고 하신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말씀으로 땅위에 존속했던 성소는 찢겨진 휘장과 함께 물러갔습니다. 이제 온전한 제사장, 온전한 제물, 온전한 속죄의 피, 온전한 지성소를 모두 갖추었으니 그림자는 쓸모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림자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드리신 화목제물로서의 그 몸이나 속죄제물로서의 그의 피는 우리를 온전히 구원함에 있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의 제사장 직분도 영원하심으로 우리에게 미치는 사죄와 구원도 영원한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누가 이 같은 구원의 대상자안가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히7:25절 말씀을 보면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한길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아가는 길입니다. 구원의 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통해야 합니다. 그 길은 찢겨진 휘장 안으로 열려진 길입니다. 이 길을 새롭고 산길이라고 했습니다. 이 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찢으심으로 열어 놓으신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 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소망의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44) 구약의 하자

   (히브리서 8:7-13)


  구약과 신약의 약이란 말은 계약이란 의미입니다. 구약이란 옛날 계약이고 신약은 새로운 계약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계약의 대상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상호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과 인간과의 계약이 필요한 것인가? 그 원인은 창2:16절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것입니다. 한 번 내려진 하나님의 선고는 취소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처럼 죄로 죽게 된 인간들에게 생명을 준다는 약속으로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먼저 맺은 계약이 구약이고 그 다음에 맺은 계약이 신약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구약과 신약은 둘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하나이라는 사실입니다.

  1. 구약과 신약

  (1) 우리는 먼저 구약에 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과 세운 계약으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돌 판에 새겨 주신 내용이 그 주된 내용입니다. 간추려 말하면 십계명입니다.

  이 계약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데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조건으로 그 안에서 약속된 의와 생명입니다. 이런 약속이 레18:5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 대하여 갈3:12절에서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그러면 이 같은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의를 얻을 수 있고 생명이 약속된 구약이 있는데 왜 신약을 다시 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구약에는 중대한 흠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율법에서 발견된 하자란 무엇입니까?

  2. 흠이 있는 구약

  그 첫째 결함은 율법 아래 살아가는 자는 그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의를 얻고 생명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데 있습니다. 어떤 사형 선고를 받은 기결수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 살려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형수는 살려 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재판관이 제시한 조건이란 10미터 높이를 단번에 뛰어넘는 일입니다. 그러면 이 사형수는 자기가 노력만 하면 10미터 높이를 단숨에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입니까?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일이란 이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롬3:20절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은 의로우며 거룩하며 마땅한 것이지만 인간의 힘이 그것을 이루는 일에 절대로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에 율법이 요구하는 의는 우리의 생활에서 실제로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의가 아니라 그림의 떡으로 바라만 보아야 할 의였었다는 데 하자가 있었습니다. 갈2:16절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바울은 선언했습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거늘 그 율법으로 의를 얻겠다고 노략하는 일은 모순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에 인간은 연약하여 범죄 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아담이 범죄한 후, 모두 죄의 종으로 타락했습니다. 이 같은 위치는 그 어떤 경우에도 죄의 빚을 갚기 전에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하나님의 완전한 의의 법인 율법을 지킨다는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처럼 인간이 율법을 지키려다 그 율법을 범하므로 정죄를 받는데도 그 정죄에서 벗어날 길이 율법에는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은 율법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결정적 함정이요 절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의를 주겠다, 생명을 주겠다는 약속은 좋지만 인간에게는 이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약속을 바라보면 소망이 있을 것 같지만 율법을 지키는 생활을 하면 당장에 그 덫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에서는 하나님의 자비나 긍휼을 얻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을 지킴으로 의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는 율법에 의한 정죄와 저주만이 있을 뿐입니다. 생명이냐 저주냐의 두 길만이 있는데 이 두 갈래의 길에서 어느 한 사람이라도 생명을 얻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2:21절에서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롬3:10절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심으로 한사람도 율법으로 생명에 이를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결론 : 이처럼 인간에게 생명을 준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있지만 생명은 고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빼앗고 저주와 정죄만을 주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크나큰 약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율법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늘 그 은혜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45) 새 언약의 축복

   (히브리서 8:7-13)


  우리는 어제 구약의 결정적인 흠을 찾아보았습니다. 구약에는 이처럼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한다는 약속은 있었지만 그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결함을 보충함으로 죄 가운데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참 생명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언약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약속은 구약에서 이미 언급된 것입니다. 히8: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희를 허물 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언약으로 다시 세우신 언약은 구약의 모순점과 결함을 완전하게 보충하는 언약이기 때문에 인간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는 언약입니다. 죄의 문제와 사망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을 받을 수 있는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1. 새 언약의 축복

  그러면 이 같은 새 언약은 언제 세워지는 것입니까? 10절에서 밝혀 주신 말씀을 보면 ‘그 날 후에’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날 후에란 말은 구약이 지나간 후에란 뜻입니다. 갈3:19절에서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영원한 생명의 계약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존속하도록 주신 임시적인 언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율법을 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언약을 세우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율법이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언약에 들어온 백성들은 누구입니까?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이 신약에 와서는 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녀란 이처럼 하나님의 영적 자녀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 자녀란 약속의 자녀를 말합니다. 롬9:6-8절 말씀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바울은 갈3:29절에서 말씀하기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습니다. 신약에 와서 하나님의 백성이나 아브라함의 자손은 구약에서처럼 육신적인 자손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약속의 자녀를 의미한 것으로 나와 있으며 그 약속의 자녀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1:12절 이하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이 육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에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이처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 모두 한결같이 하나님의 새 언약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과 우리와 직접 세워진 언약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직접 언약을 세울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 죄인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보자가 필요했습니다. 그 중보자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처럼 새 언약은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하나님과 세우신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약의 조건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계약의 조건을 온전히 이루어 그 계약을 성사시키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낮추시고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이 계약을 만족스럽게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새 언약에 동참하는 방법은 그 같은 사실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계약의 조건은 예수님에게만 적용되는 계약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두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를 위해 새 언약의 조건을 이루신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2. 새 언약의 완전한 성격

  이 언약은 완전한 언약이기 때문에 다른 조건을 부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십계명은 돌비에 새겨진 언약이었지만 새 언약은 마음 비에 새겨진 언약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이 언약에 참여하게 되면 성령께서 임재하시어 우리의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며 하나님의 율례를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 새 언약에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백성으로 인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 언약에 들어온 사람은 영생을 얻는데 누구든지 이 영생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결론 :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언약에 들어가 있는 참 이스라엘입니다. 우리에게 언약을 이루게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구원의 보장이십니다. 우리는 이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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