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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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38 - 42)
 밤중소리  02-01 | VIEW : 882



  (38) 멜기세댁과 그리스도

   (히브리서 7:1-10)


  멜기세댁이란 인물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을 위해 하나님께서 창세기에 예비해 두신 대단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이 멜기세댁은 창14장에 그림자처럼 나오다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데 이상하게도 시110:4절에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과 결부시킨 예언이 한 번 나오고 히브리서에 와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과 연관되는 수수께끼의 인물로 등장하여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1. 창세기에 등장하는 멜기세댁

  창14장에 보면 엘람 왕 그돌라 오멜이 자기를 섬기는 이웃 나라들이 자신을 배신한 일에 격분하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나라를 쳐 전쟁을 일으키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이 싯딤 골짜기에서 싸울 때 소돔과 고모라 왕이 그에게 패하여 병사들은 역청 수덩이에 빠지고 왕들은 겨우 도망했습니다. 엘람 왕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가 모든 재물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때 그 성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도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같은 롯의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러온 용사 318명을 거느리고 단숨에 쫓아가 엘람 왕을 기습했습니다. 이 기습전에서 대승한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포로로 잡혀간 자기 조카 롯과 모든 사람들과 재물도 빼앗아 올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 올 때 소돔 왕이 친히 아브라함을 영접하러 마중 나왔으며 살렘왕 멜기세댁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영접했던 것입니다. 이 때 멜기세댁이란 이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멜기세댁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했습니다. 그의 축복은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너의 손에 부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할 지로다’고 했습니다.

  2. 멜기세댁의 신분

  멜기세댁의 신분을 보면 그는 살렘 왕이라고 했습니다. 살렘이란 말은 평강이란 뜻입니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진바 없지만 지금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 도시로 아마도 그 지경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살렘이란 지역을 지배하는 왕의 신분으로 있었으며 아브라함에게도 알려지고 그도 아브라함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 대하여 전혀 몰랐다면 신분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의 노략물의 십분의 일을 바칠 이유도 없었거니와 멜세댁에게 축복 기도를 받지도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풀어보면 멜기란 말은 왕, 세댁이란 말은 의란 의미로 멜기세댁이란 의의 왕이란 뜻인 것입니다. 그의 신분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그를 살렘의 왕이라고 했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고 했습니다. 히7장을 보면 멜기세댁은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로 나와 있는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해 주었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11조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멜기세댁은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설명하는데 반드시 성경에 등장해야 할 인물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은 그의 제사장직에 대한 성경적인 증명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제사장이시며 왕이신 그의 직분에 대해 증거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백성들의 속죄 제물이 되셨다면 그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에 따르면 그 속죄 제물을 드려야 할 사람이 대제사장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대인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반드시 레위 지파의 자손 중에서 나와야 하는데 유다 지파이신 예수님이 무슨 성경적 근거로 대제사장 직분을 하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 일은 그가 유다 지파에 속하셨으며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인정을 받으실 수 있지만 그가 대제사장이 되실 수 없는 것은 그는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의 자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경에 멜기세댁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속죄제물과 제사장 직에 대하여 설명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멜기세댁이 등장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레위가 아니라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제사장이 될 사실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까? 멜기세댁은 레위 자파도 아니요 아론의 자손도 아닙니다. 아론이나 레위란 인물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댁을 만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의 직분은 반드시 레위지파의 자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멜기세댁이란 사람이 이들이 존재하기 이전에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제사장은 동시에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댁은 살렘 왕이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댁의 반열을 따라 제사장이 된 예수님은 멜기세댁처럼 왕과 제사장이 동시에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왕의 직분과 제사장 직분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 놓으시기 위해 이미 창세기에 멜기세댁을 등장시키신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요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의 이 같은 신분은 멜기세댁과 같이 영원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제사장이신 예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그에게 간구하며 그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39) 멜기세댁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히브리서 7:1-10)


  우리는 어제 본문에서 멜기세댁이란 인물이 가리켜 주는 의미를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아침은 그의 이름으로부터 그의 직위에 이르기까지 멕시세댁은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멜기세댁이란 이름에 담겨진 메시야적인 의미

  멜기세댁이란 이름에는 메시야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관되는 것입니다. 멜기세댁이란 이름이 의의 왕인 것처럼 사32:1절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의로 통치하는 왕’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언하고 있는 ‘장차 의로 통치할 왕’이란 그리스도가 장차 만 왕의 왕으로 온 세상을 통치하실 일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이 예언은 유대인이 소망하고 있는 메시야왕국(천년왕국)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댁이란 이름은 그 이름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직분에 대한 예언적인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직분은 살렘 왕이라고 했습니다. 살렘이란 평화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살렘 왕이란 평화의 왕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사53: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익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또 사9장에서 주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에서 ‘평강의 왕’이란 이름으로 나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신 평화의 왕이시며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또한 멜기세댁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주님에 대하여 히7:26절에서 ‘하늘보다 높이 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멜기세댁은 그의 이름이나 그의 직분등 모든 일에 있어서 다 그리스도의 예표 인물로서 적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묘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멜기세댁은 그리스도의 높으심을 증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멜기세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높으신 분이신 가를 보여 주셨다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에 대하여 기대와 소망은 가졌지만 그 분의 위치가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모세정도의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   각하느냐 뉘 자손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니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한 가지 문제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하시니 그들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삼으셨지만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멜기세댁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바로 이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왕과 제사장이 되신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    ). 멜기세댁의 신분이 마치 수수께끼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했습니다. 방불하다는 말은 똑같다는 뜻이 아니라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그에게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멜기세댁이 아담의 자손이 아니란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치고 아담의 자손이 아닌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멜기세댁은 천사였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천사가 왕으로 사람을 다스리며 제자상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다는 일은 성경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일입니다. 이 말의 뜻은 멜기세댁의 인간적인 계보가 전혀 없다는 데서 한 말입니다.

  멜기세댁이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족보가 없어야 합니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성경에서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존재로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멜기세댁을 성경에 등장시키실 때부터 그의 족보를 기록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마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 족보는 예수님의 육신적인 혈통관계를 계보로 만든 것이지 그 분은 원래가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족보에 해당되실 분이 아니십니다. 멜기세댁은 육신적인 예수님의 예표가 아니라 그의 왕권과 제사장 직분에 대한 서열로 등장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인간적인 족보가 성경에서 삭제되었으며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아들처럼 등장시킨 것입니다.

  결론 : 멜기세댁의 제사장 직분은 성경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넘겨 드림으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예표 인물로서의 성경적인 사명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는 이 멜기세댁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가짐으로 우리 주님의 제사장 직분에대하여 놀라운 지식을 갖게 되며 우리의 신앙이 장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40) 율법 외 별다른 제사장

   (히브리서 7:1-19)


  이스라엘은 율법에 따라 제사제도가 운영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율법에 의해 레위 지파에서 계승해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사장 직은 아론의 서열을 따른 것도 아니며 율법에 따라 세워진 것도 아님으로 그의 제사직분은 율법 아래에서의 제사 직분과 다른 새로운 것이어야 합니다. 만약 율법에 의한 제사제도가 계속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결코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은 예수를 새로운 제사장으로 세우시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에 따른 제사제도를 폐하시기 위해 70년 로마의 대도에 의해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폐허화시키셨습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율법에 의한 제사제도를 이행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폐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의한 구약적 제사제도를 폐하시고 예수 그리스돌 말미암아 새로운 제사제도를 세우신 것입니까?

  1. 하나님께서 새로운 제사제도를 세우신 목적

  그 이유는 이 땅의 성전에서 드리는 구약적 제사제도는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온전치 못했다는데 있습니다. 율법아래 제사장은 아론의 서열을 따라 제사장 직에 오른 사람들로 모두 아담의 혈통적 자손들입니다. 이들 역시 우리와 동일한 죄인들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율법아래 제사장들이 다만 지성소 안에 들어가는 일에도 자신의 속죄를 위한 제물을 가지고 1년에 한 번 식밖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제사장은 온전한 제사장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제사장은 온전한 제사장으로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신 예수님에 대한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28절 말씀을 보면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약점이란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거룩해야 할 제사장이 죄악이라고 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백성들의 죄를 위해 회개해야 할 제사장이 우리와 같은 죄인이요 죄라고 하는 약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제사가 온전한 제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율법 아래 제사장은 언제인가 죽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제사장 직분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처럼 율법 아래 제사장은 온전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 제사는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온전치 못했습니다. 만약에 율법으로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율법 이외 다른 방법으로 구원의 길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사하지도 못하고 구원을 베풀지도 못하는 것이 율법 아래의 제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계획하신 일은 죄인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죄인들을 죄악 가운데서 온전히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율법 제도를 변경시키야 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외 다른 제사제도를 세우셔야 했습니다.

  2. 율법 외 다른 제사제도

  그러면 율법도 따르지 않고 아론의 제사장 직도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새로운 제사제도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한 해답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성경적 근거를 벌써 창세기에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율법과도 상관이 없고 아브라함과도 상관이 없으며 레위 지파와도 상관이 없는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른 예수 그리스도를 왕과 제사장으로 세우시는 제사제도를 확립하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율법에 의해 제사장 직분을 수행치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과 상관이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제사장 직에 오르시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 범이 율법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는 온전한 법으로 롬8:2절에서 성령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법이 우리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제사장들보다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자기를 위한 속죄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 아래 제사장들은 자신의 죄를 위해 송아지의 피로 속죄 제물을 삼았지만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심으로 자신을 위해서는 회생 제물을 드리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제사장은 마땅히 율법 아래 제사장이 일한 것과 같은 자리에서 일하실 분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희생 제물을 삼으신 분입니다. 그가 드린 제물은 율법 아래 제사장들이 드린 짐승의 피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그의 영원하신 피로 제물로 삼아 단번에 드리셨기 때문에 또 다른 제물이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그가 드린 제물은 영원한 속죄 제물로 한 번 만으로 족한 것입니다.

  다음에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십니다. 그에게는 죽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 이런 제사장은 우리에게 꼭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죄를 가지고 우리의 제사장 앞으로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1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긍흀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하늘의 지성소에서 나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다는 이 사실을 꼭 명시하시고 그 분께 소망을 두시고 그 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41) 생명의 보증이 되신 예수

   (히브리서 7:20-25)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두 가지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하나가 아담과 세우신 언약으로 창2:16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2절 말씀을 보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1. 첫 언약

  사람이 처음 창조를 받았을 때는 생령이었습니다. 생령은 죄를 범할 수도 있고 범하지 않을 수도 있는 몸입니다. 그러나 생령은 육체와는 달리 죽지 아니할 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만약 죄를 범하면 정녕 죽으리라는 선언을 내리심으로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그는 생령이 육체가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담의 자손으로 육체로 태어나 죄의 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온전히 죄 가운데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생령으로 살아갈 당시엔 죄냐? 하나님의 말씀이냐에 대하여 아담에게 자유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이 선택에서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스스로 파기해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아담은 죄의 종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인류의 대표자로 세워 생명의 언약을 주셨으므로 아담의 실패는 곧 인류의 실패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율법이 생명의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 율법으로 생명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지 아니하셨을 것이라고 성경은 계속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갈3:21절에서도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아담에게 정년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죽음의 언도는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육체의 죽음입니다. 아담은 범죄함으로 이제 생령이 육체로 전락되었습니다. 흙은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죄에 대한 온전한 심판은 영혼에 대한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10: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히9:27절에서는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의 육신의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 영혼에 대한 심판에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더 좋은 언약

  그러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고 말씀하시는데 더 좋은 언약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세우신 새로운 언약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언약을 세우신 것처럼 그리스도와 언약을 세우셨는데 이 언약을 새 언약, 더 좋은 언약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율법 아래서 언제나 정죄 의식 가운데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아담의 죄 값을 담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란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법인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에서 명백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통해서 이 율법을 이기고 첫 언약을 파할 수 있는 더 좋은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 언약을 은혜 언약이라고도 합니다. 이 언약의 요지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속죄 제물이 되시어 아담의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으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첫 언약의 실패에서 회복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 언약은 아담과 다만 말씀으로만 세우셨지만 하나님의 둘째 언약은 그 아들의 피로 세우셨습니다. 이 언약은 그리스도에게 주셨지만 그를 믿는 자에게 그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고 하는 약속이 따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이 언약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의 생명의 보증이 되시는가에 대하여 몇 가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1절에서 이 언약은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졌습니다. 23,24절에서 그는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제사 직분도 갈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단번에 드리셨기 때문에 또 다른 제물이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25절에서 그가 항상 살아서 간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25절에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결론 :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담이 실패한 첫 언약과는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을 받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맹세로 세운 언약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이 언약의 보증으로 삼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언약의 축복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2) 영원히 온전케 되신 우리의 대제사장

   (히브리서 7:26-28)


  26절에서 ‘이런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대제사장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대제사장 직분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는 죽음이 없기 때문에 이 땅위의 제사장들처럼 자주 갈림이 없는 제사장입니다. 그는 죄가 없으심으로 자기를 위해 속죄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는 제사장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항상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제사장으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제사장입니다. 이런 분이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축복입니다. 이런 대제사장이야말로 우리에게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1. 첫 언약 밑에 있었던 제사장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의 직분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대속의 제물을 드릴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거룩함이나 의로움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율법의 정죄를 받는 죄인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거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성소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신을 위해 송아지의 피로 속죄 제물을 삼아야 했습니다.

  율법 밑에 제사장들에게는 그들에게 악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죄인의 마음속에는 악이 존재합니다. 악이 함께 존재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제사장 직분이 온전치 못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더러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의를 이룰 수 없는 몸이요 인간이 짓는 온갖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는 연약한 몸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2. 더 좋은 언약 아래의 제사장

  그렇지만 우리의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아래의 제사장 같지가 않으십니다. 그 분은 모든 면에서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는 빛이시기 때문에 그의 거룩하심은 완전하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오 하나님의 본체이심으로 그의 본질이 완전히 거룩하십니다.
  그 분에게는 악이 전혀 없으십니다. 악이 없다는 말은 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분이심으로 악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한 번도 죄를 범하신 일이 없기 때문에 악에 물든 일도 없으십니다. 그 분에게는 더러움이 없으십니다. 그 분은 죄인에게서 떠나 계십니다. 그는 세상에 계셨을 때에도 하늘의 생명을 가지신 분으로 계셨습니다. 그에게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의 지배를 받은 일도 없습니다. 그 분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심으로 실질적으로 거룩한 곳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위에서 우리의 제사장으로 일 하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양을 잡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짐승을 잡아 제단에 드릴 필요가 없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 제사장들은 자신의 죄를 위해 송아지를 잡아 제물로 드렸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에게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위의 제사장들은 지성소 안에 들어가 법궤 앞에 서서 일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실 분이요 지상의 지성소에 계실 분이 아니십니다. 율법 아래 제사장들은 1년에 한차례밖에 지성소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1년에 한 번 만 들어가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이신 분이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늘 그곳에 계십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었던 그런 제물이나 제사 제도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제사장도 필연코 구약시대의 제사장이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이미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가 한 번 흘리신 피는 우리의 죄를 단번에 영원히 속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죄를 위해서는 양이나 송아지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흘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지금도 우리의 속죄 제물로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양을 잡아 속죄 제물을 드릴 제사장은 필요치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그의 속죄 사역을 다 마치셨을 때 그는 다 이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성소의 휘장이 찢겨져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새롭고 산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휘장이 막혀 있는 지상의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이 우리에게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한 의를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고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이 같은 놀라운 자격을 가진 우리가 율법 아래 제사장들을 통하여 아무런 가치도 없는 짐승을 제물로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 이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합당한 이유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합당한 제사장은 오직 이런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제사장으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의 공로를 힘입어 하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같은 대제사장이 있다고 하는 믿음과 확신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여러분은 이 분께 소망을 두시고 이 분 앞에 나아가 간구하시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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