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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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장 (27 - 29)
 밤중소리  02-01 | VIEW : 860



  (27) 대제사장의 자격

   (히브리서 5:1-4)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이기 때문에 히브리서에서는 이 직분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할애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존재했던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과 이스라엘의 제사장 직분은 동일한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의 그림자에 불과 했다는 사실을 알고 깨닫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1. 대제사장의 자격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거룩한 자라고 불려졌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물을 드리고 기도해 주는 직분자로, 몸을 씻고 예복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들은 절대로 머리를 풀 수 없었으며 옷을 찢을 수도 없었고 아내가 죽어도 과부를 아내로 취할 수 없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대제사장의 자격 요건이 나오는데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직분이 아무리 거룩하다고 해도 천사나 그밖에 다른 어떤 영적 존재도 이 직분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12 지파 중에 오직 레위 지파를 이 직분에 합당한 지파로 택하셔서 레위 지파의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부르시고 아론의 자손들로 대대로 제사장 직분을 맡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도 거룩한 자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었으며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고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대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레위 지파에 속한 아론의 자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사람들 가운데서 대제사장을 부르신 것입니까? 2절과 3절에 그 뜻이 나와 있습니다. (      ). 대제사장이 사람을 위하여 예물을 드리고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려면 먼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처지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속죄제물을 드리는 대상자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진리에 유식한 사람도 아니며 온전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무식하고 미혹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하나님의 말씀에 무식하고 세상사에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영적으로 어려서 사탄의 미혹을 받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백성들을 대표하여 그들을 위해 속죄 제물을 드려야 할 대제사장이라면 이런 백성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대언의 기도를 드리게 되고 모세처럼 눈물을 뿌리며 그들의 사죄를 위해 자신이 죄를 지은 자인 것처럼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대제사장이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들처럼 신령한 존재들이라면 이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대제사장도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고초나 시련도 겪으며 사람들과 똑같은 환난과 슬픔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의인이 없기 때문에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죄 문제로 고민하게 되고 자신도 지은 죄로 인하여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 자신도 자기의 죄와 허물을 위해 하나님께 속죄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하는 일 중에 가장 뜻깊은 일이 있는데 그 일이란 일년에 한 번 씩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 제물을 드리는 일입니다. 이 때 대제사장은 먼저 자신의 속죄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서는 결코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자신의 죄를 인하여 먼저 송아지의 피로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의 죄를 위해 염소의 피로 속죄 제물로 삼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죄를 범하지 않을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란 단 한 사람도 존재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을 세우실 때 연약한 사람 중에서 부르심으로 백성들의 어려움과 연약함을 이해하게 하신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도 하나님의 백성들과 똑같이 연약에 싸인 인간들로 당신의 종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를 천사로 알고 교회에 나오신다면 그런 사람은 몇 일이 못 가 목사에 대하여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냄새가 풍기며 목사는 사람이지 사람이상의 존재가 아님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목사가 의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까? 누구든지 자기는 죄를 범한 일이 없다고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자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목사라고 죄 없기를 바라겠습니까?

  목사는 양떼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경우처럼 뼈아프게 여겨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 중요하고 양떼들은 목자에게 허물이 있어도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덮어주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그런데 이런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온전한 제사장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며 자신을 위해서조차 속죄 제물이 필요한 사람은 온전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예수의 대제사장 직분

   (히브리서 5:5-10)


  본문 5절부터는 예수의 대제사장 직분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제사장 직분이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오직 레위 족속 가운데서 택하시고 부르심으로 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도 아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아 이 직분을 받으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예수의 제사장 직분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은 말씀으로 계셨던 영적 상태로는 받으실 수 없으셨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연약에 싸여 있기 때문에 이런 백성들을 위해 대제사장 직분을 담당하시려면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히4:14-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이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이 직분은 스스로 취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아론과 같은 부르심에 의하여 이 직분을 가지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6절에 나온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하나님의 명령은 아론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은 아론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으로서가 아니라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 되라고 하시는 명령에 따라 된 것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2.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게 된 이유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왜 아론의 서열을 따르지 않고 멜개세댁의 서열을 따르는 제사장이 되셨는가에 대하여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실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였습니다. 그리하여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율법아래서 범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죄 제물을 드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속량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율법의 속하지 않게 되었으며 은혜 아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요1:17절에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옛 언약을 폐하시고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옛 언약의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언약의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옛 언약의 대제사장은 오직 아론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자격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레위 자손이 아니라 유다 지파의 자손이심으로 대제사장이 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 언약의 대제사장으로 선택받으시고 부르심을 받은 예수님은 아론이 아니라, 멜기세댁의 서열을 좇아 대제사장으로 세우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멜기세댁에 관한 말씀은 히7장에 나오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간략히 설명하는데 그치려고 합니다. 창14:18-2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      ).

  (1) 멜기세댁이란 사람은 살렘의 왕이자,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왕은 제사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댁은 율법 아래 있었던 제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율법의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왕으로 오셨고 또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는 마땅히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제사장이 되실 분이 신 것입니다.

  (2) 다음에 왕이요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댁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을 때 양이나 송아지나 염소의 피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떡은 그리스도의 살이요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은 바로 그의 몸과 그의 피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 몸은 우리를 위하여 찢기신 화목제물이십니다. 그의 피는 우리의 죄를 사죄하는 속죄 제물이십니다.

  (3) 다음에 멜기세댁은 그의 제사장 직분을 다른 이에게 넘겨준 일이 없으며 한 번 나타났다가 그 이후에 아무 말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멜기세댁의 제사장 직분을 이어 받을 만한 제사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댁은 그리스도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멜기세댁의 이 같은 제사장 직과 왕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겨졌습니다.

  (4) 다음에 멜기세댁은 혈통이나 족보에 의하여 세워진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부르심으로 세워진 제사장이었습니다.

  결론 : 하나님은 그의 아들로 죄인의 구속을 위한 대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직접 체험하신 분으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를 이해하시며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우리를 도와주시며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누구보다 우리를 이해하시고 긍휼을 베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하늘의 지성소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온전한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분을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29)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가 되라

  (히브리서 5:11-14)


  히브리서 저자는 11절에서 멜기세댁에 관하여는 할 말이 많지만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정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먹는 자는 영적 성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때를 따라 받아먹지만 신앙적으로 장성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일이 안타까웠습니다. 멜기세댁과 같은 성경의 깊은 진리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아직 젖을 먹는 어린아이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탄식했습니다.

  1. 두 가지로 구분되는 하나님의 말씀

  히브리서 저자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젖과 단단히 식물이 그것입니다.

  처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영적 식물은 젖에 해당되는 순한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젖밖에 소화시킬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의 자리에서 자라는 이들은 젖이나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젖이라고 표현한 것은 기독교의 초보적인 교리를 말합니다. 이들은 아직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깊은 단계의 말씀을 이해하여 영적 양식으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의당히 젖을 사모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한편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어린아이란 말은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고전3: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자란 영적인 사람으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롬8:5절에 있는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생각하거나 결정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들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신령한 사람이란 영으로 육신의 행실을 죽이는 사람들입니다. 롬8: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몸의 행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 본래의 성품을 영으로써 억제시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히브리서를 읽어야 할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조차 가르침을 받아야 할 정도로 어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탄식한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때가 이미 오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도 때가 오래면 그리스도 안에서 선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때가 오래면 신앙적으로 크게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젖만 사모하며 젖만 골라 먹던 시절에서 벗어나 단단한 음식도 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걸맞은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5살쯤 되면 이제 뛰어다닐 줄 알아야 하는데 어린 아기처럼 기어다니는 생활을 한다면 이런 어린이는 기형아이지 정상적인 아이가 아닌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2. 장성한 자

  그리스도인은 신앙적으로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성한 자의 음식은 젖이 아니라 단단한 식물 즉 밥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어려운 말씀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말씀 안에 생활할 수 있는 신앙적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그 단계가 대단히 장성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삭을 살려준다는 약속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직 이삭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 하나님께서 네 자손은 이삭으로 말미암아 번성하리라고 하신 약속을 믿고 이삭을 제물로 드려도 하나님께서 그 약속의 말씀대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 주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14말씀을 보면 믿음이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세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첫째로 의의 말씀을 경험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그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경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말씀에 대한 순종의 생활을 통해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겪었다는 뜻입니다.

  다음에 지각을 사용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지각이란 지혜의 감각을 말합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연단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으로 지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지각,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하나님의 징계를 맞을 것이라고 하는 지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사람은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선악을 분별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잘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결론 : 우리는 어린아이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믿음이 없고 순종하지 못하므로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연수에 따라 제대로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장이 있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열매를 맺으며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은혜의 생활 행복한 생활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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