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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후서 1장 (1 - 4)
 밤중소리  01-31 | VIEW : 544



  (1) 바울의 감사

  (데살로니가후서 1:1-4)


  서론 :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데살로니가 전서를 써 보낸 후, 그곳에 기록된 주의 재림에 대한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세상일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그런 일은 허무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잘못된 이설이 등장하여 주의 날이 이미 왔다고도 하는 등, 성도들의 신앙을 뒤흔들어 혼란에 빠트리는 일까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영적으로 바로잡고 미궁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이 데살로니가 후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1.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하게 된 이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대단한 칭찬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칭찬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는 믿음이 성장하며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 풍성하며 환난 중에 참는 인내가 있어서 바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준 것입니다. 3절과 4절에 이들에 대한 칭찬과 자랑이 나옵니다.

  (1) 바울은 이들에게 ‘너희 믿음이 더욱 자랐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면 목회자들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믿음은 밭에 심기운 씨앗과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쑥쑥 자라야 합니다. 물도 주고 밭도 가꾸어 주건만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눅 13장에서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도랑도 파고 거름도 주었건만 심은 지 삼 년이나 지나도 실과를 맺지 못하자 주인이 ‘어찌 땅만 허비하느냐 찍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쓸모가 없는 것처럼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성도는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하고 말썽만 일으키는 것입니다. 고무신 같으면 잡아 당겨서라도 키우겠지만 그럴 수도 없어 목회자들은 답답할 뿐입니다. 한참 자라나야 할 어린애가 영양실조로 말라서 일어서지도 못할 때 그 어머니의 마음이 아픈 것처럼 목회자의 마음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성도들에게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경우, 성도들의 신앙이 만족스럽게 성장했습니다. 이럴 때 목회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목회의 크나큰 보람을 느끼며 성도들에게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입니다. 생명력 있는 씨앗이기 때문에 자라기도 잘하거니와 번식력도 좋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비유하시기를 ‘천국은 마치 한말 가루 속에 넣은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작은 누룩은 한말의 가루를 전부 부풀게 하는 것처럼 복음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과 멀리 하는 사람과는 그 결실의 차이가 굉장합니다. 그 씨앗을 아름다운 밭에 심으면 30배로 60배로 100배로 열매를 맺는데 좋은 밭이란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이며 이런 마음은 회개하여 깨끗해진 마음을 말합니다.

  2. 교인들 서로가 각기 다 사랑함이 풍성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교인들 서로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하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분위기를 훈훈하게 합니다. 가정의 분위기가 훈훈해지려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따듯하고 훈훈하려면 성도들간 서로가 각기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시기는 불화와 반목을 가져오지만 사랑은 화합과 기쁨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도 사랑이시고 예수님도 사랑이십니다.

  우리들에게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사랑이 풍성해야 합니다. 사랑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뜨거움에서 자랍니다.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어 가질려는 마음이 있을 때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사랑은 쓰면 쓸수록 더욱 뜨겁게 발산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하고자 할 때 비로소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 이상의 사랑은 어디서든 찾아 볼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셨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님의 이 새 계명을 지켰으며 이로 인하여 바울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3.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인내를 가졌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견뎌 나갔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언제 어디서 나타나는 줄 아십니까? 핍박과 환난 중에 인내하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인내와 믿음은 금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사랑과 믿음이 없으면 핍박과 환난 중에 끝까지 인내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결론 : 우리들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믿음과 사랑과 인내의 생활을 잘하여 바울의 자랑이 되고 하나님께 감사가 된 것처럼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인내로 여러분의 목자에게 기쁨을 안겨 주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될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2) 환난의 두 가지 의미

  (데살로니가후서 1:5)


  서론 : 바울은 5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받는 모든 핍박과 환난에 대하여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복음으로 인하여 핍박과 환난 중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된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에게 오는 두 가지 환난

  그리스도인 들에게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두 가지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그리스도인 들에게는 생활의 궁핍과 질병에서 오는 환난이 있습니다. 이 같은 환난은 가정의 큰 십자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환난에 처했을 때 신앙의 연단 과정인 줄로 알고 인내로 참고 그 가운데서 열매를 맺으면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생애에 여러 가지 환난과 고난이 오지만 그들에게 오는 고난이나 환난은 믿음의 연단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고난이나 환난도 그의 신앙 생활에 유익이 될 뿐 아니라 축복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오는 다른 또 한 가지의 환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환난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받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이런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고난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상급이 약속된 고난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은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같은 고난을 만나 승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그리므로 주의 뜻대로 살기를 사모하는 진실한 주의 성도들은 이런 환난을 피하지 않습니다. 히 11 : 36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줍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되 그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치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주기철 · 최권능 목사님 같은 분은 모두 이런 소망의 고난을 받으시고 순교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이런 고난을 받고 있지만 인내와 믿음으로 잘 이겨내고 있다고 칭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다.

  6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들이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는 심판의 표’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 고난에는 영광과 심판의 두 가지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들로 환난을 당하게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가 되는 것이요, 환난을 받는 우리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표가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계 18:5-6절에서 ‘그들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시는데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로 갚아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든다.

  그리스도인 들이 환난을 받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므로 우리가 받는 고난이나 환난을 은혜스럽게 받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애에 만약 우리에게 오는 고난이나 환난이 전혀 없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연단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기회로 삼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이나 환난을 두렵게 여기거나 그런 일 중에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믿음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시 66편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를 잡아 이끌어 하나님의 그물에 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그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들은 가정적인 고난이건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이건 은혜롭게 받아 잘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이루시고자 하는 바를 이루어 드리면 오히려 그 고난의 짐을 주님이 지시기 때문에 가볍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그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은 우리가 그 고난에 나타내 보이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 받아 드린다면 놀라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여러분의 고난도 이 같은 차원에서 은혜롭게 여기시고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의 공의와 심판

  (데살로니가후서 1:6-9)


  서론 : 바울은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주의 재림에 관한 새로운 계시를 주면서 오늘 주신 본문에서는 그들이 받는 환난이 그날에 보상을 받고 그들에게 환난을 주는 자들이 그날에 주님에 의한 심판을 받을 것을 경종하고 있습니다.

  1. 공의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공의롭다는 말은 하나님은 그가 세우신 의로우신 법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육신으로 자신의 인생을 심으면 썩어 질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으면 영생으로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그의 공의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또 하나님이 공의로우신다는 의미는 모든 인생은 자신이 행한 행위에 따라 선악간에 심판을 하신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악을 행한 자는 모두 동일한 량의 형벌이 아니라 자기가 행한 악의 량을 따라 갑절의 심판을 내리심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입니다. 반면에 선을 행하는 자는 모두 동일한 상급이 아니라 자신이 열매를 맺은 대로 그 량에 따라 갑절의 축복을 받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같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6절과 7절에서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공의는 최종적으로 예수께서 능력의 천사들과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그 때에 나타날 것임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장차 이 세상에는 적 그리스도가 등장하여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에게 환난을 안겨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성도들은 결코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은 반드시 안식으로 보상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주의 재림과 심판

  주님은 이런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시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주의 재림의 모습에 대하여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하늘에서 내려오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다시 여인의 몸에 잉태되어 태어나시거나 출생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직접 내려오십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어린 예수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지만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그가 죽으신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던 그 부활하신 영광의 몸을 그대로 가지시고 부활 승천하신 그 하늘에서 이 땅위에 내려 오시는 것입니다.

  (2) 불꽃 중에 나타나신다고 했습니다. 불꽃 중에 란 표현은 영광 중에 란 말입니다. 죄인의 모습이 아니십니다. 심판 주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이에 대하여 계 19 : 11절 이하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 쓴 것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모습은 불꽃 중에 하늘로부터 나타나시는 주 재림의 모습이신 것입니다.

  (3) 천사와 함께 나타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때에는 두 종류의 동행자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하늘의 군대로 내려오는 백마 탄 자들입니다. 이들은 천사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첫째 부활 자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종류의 동행자는 천사들입니다. 이들의 역할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 24 : 31절에서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의 택하신 자들을 모은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성도들을 모아 이들을 지상에 내려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 일곱 번째 대접 심판에서 건지시고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기 위해 공중으로 끌어올리시는 것입니다.

  3. 심판의 대상

  주님이 오실 때 주님에 의해 심판 받을 대상자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한 자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싫어한 자들입니다.

  또 이들 중에는 주 예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한 자들도 포함됩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도 심판에 해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했던 자들입니다. 회개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열매가 없는 자들입니다. 진리의 말씀에서 떠난 자들입니다.

  결론 : 이런 자들이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주의 재림의 날을 바라보고 소망 가운데 자기 자신을 단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에 있는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4)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

  (데살로니가후서 1:10-12)


  서론 : 바울은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불꽃 중에 나타나실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그가 오실 때,, 지금 환난 중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공의의 하나님이 안식으로 갚으시는 축복을 받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실 일에 대하여 경종 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항상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데 그 기도의 제목이 바로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주님이 오실 때 둘로 나누어지는 성도

  바울은 10절에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를 맞이할 그리스도인 들에 대하여 의미 있는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 날에 강림 하사 그의 성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고 한 것입니다.

  (1) 영광을 얻으실 성도들이란 환난 날에 예비처에서 주의 재림을 기다린 슬기 있는 처녀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주의 재림을 준비하므로 신부의 단장을 마친 무리들입니다. 이 같은 성도들은 항상 주의 재림을 대망 하는 나머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며 간절한 심령으로 주의 오심을 사모합니다. 이들은 마 25장의 비유에서 말씀해 주시는 것처럼 등과 기름을 준비하므로 혼인 잔치 집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혼인집이란 환난의 날에 이런 성도들의 보호를 위해 특별히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보호처인 것입니다.

  (2) 그런데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이히 여길 믿는 자들이란 ‘우리의 등불이 꺼져 가니’라고 말한 미련한 처녀들입니다. 이들은 주 재림 시 신부가 준비해야 할 기름을 마련치 못하여 밖에 내어 쫓겨난 미련한 처녀들입니다. 이들은 후 3년 반의 대 환난에 떨어져 그곳에서 비로소 회개케 됩니다. 그러나 이들도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결코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환난 중에서 연단을 받으며 그 연단 중에서 회개하여 온전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등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과 같이 공중으로 휴거 하게 될 때,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슬기로운 처녀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미련한 처녀들로부터는 기이히 여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대 환난 가운데서 회개하여 신랑을 마지 하게 된 무리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내려졌던 모든 일과 주님의 재림을 바라볼때 기이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기쁨과 감사하므로 영광 중에 맞이할 것이지 대 환난 중에서 회개하여 겨우 구원에 이르러 이 모든 일들을 기이히 여기는 어리석은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2. 바울의 소원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한 바울의 간구는 종말적인 기도였습니다. 주의 재림 시에 그들이 받을 영광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하는 모든 목회자들은 이 같은 바울의 목회 자세를 본받아야 할 줄로 압니다.

  (1)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게 하기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믿는 사람들의 하나님의 향한 열매를 말합니다. 주님은 마 3 : 8절에서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들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썩어 질 것을 거두는 육신의 열매를 버리고 영생을 거두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지 못하면 그 부르심이 무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심을 위해 간구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은 그 마음에 선을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 주시기 때문에 이를 위해 간구한 것입니다.

  (3) 주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욕을 받게 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헌신과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늘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을 수 있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생활의 신조로 삼아야 합니다.

  결론 : 우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은헤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에 합당한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애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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