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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5장 (20 - 27)
 밤중소리  01-31 | VIEW : 771



  (20) 재림의 때와 시기

  (데살로니가전서 5:1-3)


  서론 : 데사로니가 교회는 주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주의 재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이처럼 주 재림의 소망이 있는 교회는 한편 믿음이 있고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는 반면 또 지나친 기대감에서 신앙생활이 잘못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종말적인 면에서 이런 점을 그들에게 깨우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4 : 13 - 18절에서 주의 재림과 부활 문제, 성도들의 공중 휴거 문제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5장에 들어와서도 주의 재림에 대한 시기와 때에 대하여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

  1.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른다.

  성경에는 주의 재림에 대한 때와 시기에 대하여 밝혀주는 계시가 없습니다. 단 9 : 24절 이하에서 계시해 주신 70 이레에서 초림의 시기와 재림의 시기를 산출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는데 그것이 장차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그 자에 의해 체결될 1 이레의 언약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기간은 인류의 최종점에 이르러 적그리스도가 등장했을 당시의 7년 기간이기 때문에 그 시기가 이르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이르렀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졸며 자는’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명백한 성경적 징조도 깨어 있는 성도들 외 바라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1) 밤에 도적같이 이른다는 말은 준비되지 않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경종입니다. 4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함에 그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도적같이 맞이할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몇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① 눅 21 : 34절에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방탕한 생활과 술 취하는 생활과 염려하는 가운데 마음이 둔해진 사람들에게 도적같이 임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② 마 24 : 37 - 39절에 있는 말씀에서 주 재림의 때는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은데 노아의 때에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하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처럼 먹고 마시는 생활에 치중하다보면 마음이 둔해지는데 이런 자들에게 주의 재림은 도적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③ 마 25 : 1 - 13절에서 주님은 등에 기름을 준비치 못한 미련한 처녀들에게 도적같이 임할 것임을 경종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에 무관심하여 준비하는 생활을 못하면 주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도적같이 오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준비란 ‘깨어 기도’하는 일이요, 회개하고 열매를 맺는 일이요,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을 말합니다.

  ④ 바울은 도적같이 오시는 모습에 대하여 임산부에게 임하는 해산의 고통에 비유해서 말해 줍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다’고 했습니다. 종말에 이른 성경적인 징조는 70 일에 나오는 1 이레 기간과 계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을 통해서 알 수 있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때야말로 안전한 때요 평안한 때인 줄로 오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2. 멸망이 홀연히 임하리라

  주의 재림이 도적같이 임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멸망이 홀연히 임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멸망 받을 자들은 모두 짐승의 표를 받을 자들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짐승이라고 하는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이 자는 사탄으로부터 받은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이적을 행하며 하나님으로 경배와 찬양을 받게 됩니다. 더욱이 그 시기에는 경제적 대공황 기에 이를 때이기 때문에 짐승에게 경배하여 그 표를 받지 않으면 물건의 매매가 일체 금지 당하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이 표를 받게 됩니다.

  이들의 멸망이 홀연히 임한다는 사실은 셋째화인 일곱 대접 심판 시 일곱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을 때 내리는 최종적인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말씀인데 이 심판은 이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지구의 폭발과 함께 불에 타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 :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그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는 결코 도적같이 오시지 않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도적같이 오시는 것처럼 마지하지 말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사모하는 신부의 입장에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1) 낮에 속한 자

  (데살로니가전서 5:4-9)


  서론 : 바울은 낮에 속한 자와 밤에 속한 자가 있음을 말하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로써 주의 재림이 밤의 도적 같이 임하여 멸망이 홀연히 임할 자들은 결코 빛이나 낮에 속한 자들이 아니요 밤이나 어두움에 속한 자들임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밤이나 어두움에 속한 자들

  그러면 누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한 자들입니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핵심은 구원론 적인 입장에서 구원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를 구분하려는 의미에서 이 말씀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주의 재림 시에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복 있는 성도들이 누구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고 이로 인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나 모든 교회들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1) 밤에 속한 자란 주의 재림에 소망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핵심적인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눅 12 : 35절 이하에서 성도들의 신앙적인 자세에 대해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밤이나 어두움에 속한 자들은 잠을 잔다고 했습니다. 7절에서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한다’고 했습니다. 잠을 잔다는 말은 그들의 신앙적인 상태를 의미하는데 깨어 경성하여 있지 못한 생활로 세상에 취한 상태, 세속적 신앙, 기복적 신앙에 젖어 있는 상태를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살아가는 성도들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이 밤에 속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경종하셨는데 노아 시대 사람들의 예룰 드신 것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멸하기까지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것을 알았더라면 꺠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임자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세속에 물들면 그 영이 잠든 상태에 있으므로 잠에 속한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님은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고 경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바울은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의미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4절과 5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의 재림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든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의 신앙이 이렇게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그의 오심을 기다리는 신앙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런 준비를 시키기 위해 주신 성경이 바로 요한계시록인 것입니다.

  (1) 어두움에 속하지 않으려면 6절에서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고 했습니다. 자는 생활은 깨어 있지 못한 신앙을 말하는데 깨어 근신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깨어 있는 방법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태도를 말하는데 기도가 없는 생활은 우리들로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게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의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들에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깨어 있어 근신하지 못할 때 그의 생활이 죄에 물들게 됩니다. 죄에 물든 심령은 이미 빛이 사라지고 어두움이 드리운 심령인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속히 회개하지 못하면 그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근신하라는 말씀은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2) 우리는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했습니다. 근신하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었는데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부치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고 사랑의 생활로 주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 : 주의 날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에게는 환난과 심판의 날로 맞이할 것이요 오직 빛에 속한 자들만이 온전한 구원과 축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밤이나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 되지 말고 깨어 있어 근신하여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2)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의

  (데살로니가전서 5:10-11)


  서론 : 바울은 10절과 11절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신앙이 성숙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오한 사랑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바쳐야 할 사랑에 대하여 해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일은 우리로 깨든지 자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깨든지 자든 지란 말은 죽든지 살든 지란 말로 우리의 전 생애를 주를 위해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와 함께 라고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바울의 이 말은 대단히 성숙한 영적 상태의 신자에게 주는 말로 성도들은 믿음의 세월이 자라면 신앙도 함께 자라 어릴 적에 먹든 젖을 그만 먹고 단단히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주신 말입니다. 이 말씀을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생활을 못하면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심의 의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누구를 위함인가?

  바울은 10절에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죽으심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른다면 그리스도인이 된 의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바로 나 때문이다라고 하는 그 죽으심의 원인을 분명히 찾지 못한다면 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은 모든 사람을 위한 죽으심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내 죄가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내가 내 죄로 인하여 지옥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신 것입니까?

  주님의 죽으심은 내 죄를 사하시고 나를 그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어 나에게 영생을 주시려는데 목적을 두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고 이 믿음으로 자신의 생애를 이 분을 위해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제대로 믿음이 들어간 그리스도인입니다.

  2. 깨든지 자든지

  그러면 이런 그리스도인은 어떤 생활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 바울은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초점을 그리스도에게 맞추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1) 갈 2 :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 고전 10 : 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과을 위해 하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3) 그리스도인의 생활 중,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생활은 가장 보람있고 상급이 있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려면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사 죽으셨으니 나 역시 주님과 함께 옛사람은 죽은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이 새롭게 태어난 우리의 생활인 것입니다.

  3. 피차 권면하고 덕을 세우라

  바울은 11절에서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권면하고 덕을 세우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성장에는 서로의 권면이 필요합니다. 권면이란 잘하는 일에는 격려해 주고 잘못하는 일에는 책선으로 바로 잡아 주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스스로의 일은 자기라고 하는 그늘에 가려서 정확한 모습을 보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는 잘잘못을 보고 선의의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간의 권면은 정말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권면이야말로 신앙적 성장에 절대적 요소라고 보겠습니다. 덕을 세우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언행이나 권면에 조차 덕을 세워야 합니다. 덕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겸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본을 보이므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따라오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 대한 성찰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성도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를 살피면서 내 생애를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힘쓸 수 있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3) 주 안에서 다스리며 권하는 자에 대한 태도

  (데살로니가전서 5:12-13)


  서론 : 바울은 12절부터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지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수고하는 자들에 대한 자세, 성도들간의 사랑의 유대,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생활에 대한 권면을 상세히 언급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수고하고 주 안에서 다스리며 권하는 자에 대한 자세

  여기서 바울이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교회를 담임한 주의 종들을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더 광범위하게 말한다면 교회에서 가르치고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는 교역자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1) 이들에 대하여 ‘너희 가운데서 수고한다’고 했는데 이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고 세우셔야 합니다. 말씀을 배워서 진리를 깨닫고 그 말씀의 능력 가운데서 믿음과 행실의 본을 보여 줄 수 있어야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자로 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야고보 사도는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경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감당하지도 못할 큰 일을 맡아 가지고 결국에는 너머져 버리며 비극적인 종국을 고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어디 한두 명입니까?

  (2) 하나님의 종들은 양무리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수고하는 사람들입니다. 히 13 : 17절에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개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주의 종들은 양 무리들의 영혼을 위해 자기가 빚진 것을 갚아줄 책임이 있는 보증인 같이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종들은 양 무리들의 영혼의 책임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 책임에 대한 분명한 심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종들은 양 무리의 본이 되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본이란 말은 신앙생활의 본으로 가르치는 바를 스스로 양 무리들에게 보여 주라는 뜻입니다. 자제하고 절제하고 겸손하며 사랑을 나타내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목회가 지고 있는 수고의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주의 종들은 양 무리들을 다스리는 일을 하며 이를 위해 수고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부활 후 만나신 자리에서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두 번 하시고 세 번째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친다는 말은 다스린다는 의미가 됩니다. 성도들을 다스리는 일은 당회에서 하지만 당회장인 목회자에게 그 책임이 있으며 실질적으로 양 무리들을 다스리는 일은 목회자가 합니다. 이 일은 많은 신경이 쓰여지는 일이며 만약 이 일에 미숙하거나 착오를 일으키면 교회에 큰 혼란이 오게 되며 분쟁까지 초래되기 때문에 다스리는 일은 굉장히 수고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5) 성도들을 권하는 자의 수고도 큰데 이 권하는 사명 역시 주의 종들에게 짊어진 책임인 것입니다. 겔 3 : 17 - 19절 말씀을 보면 선지자인 겔에게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경종하셨습니다. 악인에게는 권면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그 권면을 듣지 않고 멸망을 받았다면 자기 죄악으로 죽은 것이지만 만약 권면해야 할 사람이 권면을 하지 않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로 죽지만 그 죄인의 피 값을 권면치 아니한 사람에게로 돌리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2. 이들에게 양 무리가 할 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이런 자들을 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임을 알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자기 양 무리들을 위해 세우신 주의 사자임을 알라고 한 것입니다. 무시하거나 불순종하는 일은 주님이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2)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대신하여 자기 영혼을 위해 수고하는 목자들에 대하여 가장 귀히 여기라고 한 것입니다. 가장 귀히 여기란 말은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주의 일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협력하라는 말입니다. 어려운 일을 도와주고 성심껏 협력해 주라는 말입니다.

  (3) 다음에 서로 화목 하라고 했습니다.

  결론 : 양과 목자 사이에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간격이 있거나 틈이 생기면 안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화목해야 합니다. 목자는 양 무리들을 사랑하고 양 무리는 목자를 가장 귀히 여기며 따르는 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24) 바울의 권면

  (데살로니가전서 5:14-15)


  서론 : 바울은 14절과 15절에서 간곡한 어투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신앙생활에 있어야 할 몇 가지 생활 태도에 대하여 간곡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바울의 권면은 교회 생활을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권면의 말씀을 자신의 신앙생활에 적용하는 자세를 가지고 잘 배워야 할 것입니다.

  1.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

  (1) 첫째의 권면은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규모란 말씀의 규모를 말합니다. 가정에서 가정의 위기를 가져오는 여인이 누군가 하면 살림에 규모 없는 여인입니다. 이처럼 규모 없는 신앙생활은 세상사람들과 구분하기 어려운 세속적 신앙생활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생활에 짜임새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말씀의 규범안에서 살아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말씀에 규모없이 살아가는 성도들을 방치하지 말고 그들에게 권면하기를 권계하라고 한 것입니다. 경계하는 일로 권면해 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규모 없는 생활을 방치해 두는 일은 그의 신앙 생활을 파탄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권계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두 번째 권면은 마음이 약한 성도들을 안위해 주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안위해 주어야 할 대상자는 마음이 약한 자들입니다. 마음이 약하다는 말은 아직 믿음이 어려 모든 일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지적해 준말입니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순종하는 일을 두렵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믿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혹은 질병으로, 혹은 사업의 실패로 낙심 중에 있는 성도일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믿음의 식구들에 대하여 안위해 주라고 한 것입니다. 안위해 주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해 주라는 뜻입니다. 붙들어 주라는 뜻입니다. 이들을 너무 책망하면 신앙적 용기를 잃어버리고 더 큰 낙심 가운데 빠져 버릴는지 모릅니다.

  (3) 세 번째로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했습니다. 힘이 없다는 말은 신앙 생활 중에 지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시험 중에 지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쳐 자포자기하는 상태에서 신앙적인 갈등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들을 붙들어 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넘어질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넘어짐을 결코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을 다시 회생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붙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붙들어 준다는 말은 여러 가지로 그들의 힘이 될 수 방법을 모색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4)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오래 참는 일은 기도에도 필요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도 필수적입니다. 고전 13장에서는 사랑에 대하여 ‘성내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으라는 말은 의미 있는 말입니다. 다툴 만한 일에도 오래 참으며 욕을 당해도 성내지 아니하며 인내로 화평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인내는 사랑이 없이는 이루어 낼 수 없기 때문에 사랑으로 화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5) 누구에게든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이는 이 눈은 눈’이라고 하는 보복과 심판을 정당화시키지만 이 같은 일은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은 악에게 지는 일입니다. 악은 사탄의 무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사탄의 무기로 원수를 갚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 사탄의 병기로 타락한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서는 너희는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일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태도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고 한 것입니다. 피차 대하든 지란 말은 1대1의 경우요 모든 사람을 대하든 지란 말은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선을 좇으라는 말은 상대방은 나에게 악으로 공격해 왔어도 나는 그 사람에게 선을 좇아 행하라는 말입니다.

  악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병기는 선입니다. 바울은 롬 12 : 20절에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러하므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상대는 나에게 악으로 대하지만 나는 그에게 선으로 대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승리인 것입니다. 승리란 말은 악한 사탄의 궤계에 빠지지 않는 일이요 그런 것들이 모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일이며 또 하늘의 상급도 되는 것입니다.

  악에게는 이겨야 합니다. 그 악의 대상이 바로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그 악을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탄이 싫어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선입니다.

  결론 : 우리는 교회 생활에서 형제들을 권면하기도 하고 권면을 받기도 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며 우리의 생활이 항상 믿음 가운데 서 있어야 합니다.





  (25)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서론 :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은 그 어떤 경우에도 선하시며 우리에게 유익하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본문에서 세 가지로 묶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바울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말함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뜻’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바울이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뜻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같은 바울의 말은 우리에게 롬 8장에 있는 말씀을 상기시켜 줍니다. 롬 8 : 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2. 항상 기뻐하라

  첫째의 뜻은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슬퍼하거나 낙심하는 일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의 신앙에 큰 손상을 주는 일이며 우리로 소망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에 큰 장애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뻐하는 모습을 좋아하십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원하십니다. 비록 그의 생활에 슬퍼해야 할 조건들이 물밀 듯 밀려와도 그런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왜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왜 그의 자녀들에게 기뻐할 것을 명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1) 하나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에는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슬픔이란 외로운 사람, 도움을 받을 길이 없는 사람,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기쁨만이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언제나 내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다면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떤 어려움 중에도 내게 그것을 감당할 능력을 주시고 나의 환난 중에도 나와 함께 하시기 대문에 우리는 기뻐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내가 당하는 모든 환난을 통하여 오히려 나에게 모든 일을 합력 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어떤 경우, 어떤 환경에 처했어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같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신다면 우리는 언제나 항상 기뻐하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생활 조건이 있는데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그것입니다. 이곳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신앙이 아름답게 성장한 성도일수록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풍성합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조건들이 얼마나 많은 것입니까?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조건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많은 심는 자는 많은 것으로 거두시게 하시기 위해 더욱 풍성하게 심을 씨앗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록 감사할 수 있는 일들이 날마다 더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쉬지 말고 기도하라

  다음 세 번째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입니다. 대화는 원만한 대인 관계를 이루는 일에 반드시 필요한 요건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에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부자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대화가 자주 있을수록 가까워지며 대화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친숙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기도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며 교제가 되는 것입니다. 쉬지 말라는 말은 계속적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기회 있는 대로 기도하며 기도하기를 힘쓰라는 뜻입니다.  

  결론 :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 위해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듣는 것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생활의 의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세 가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6) 영적 생활의 권고

  (데살로니가전서 5:19-22)


  서론 : 19절로 22절까지는 매우 짧은 성경 구절로 엮어져 있는데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영적 교훈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그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 권면은 또한 주의 이름으로 명하는 주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영적 생활의 중요한 핵심을 네 가지로 구별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1.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바울은 19절에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성령이 내주 하십니다. 성령의 내주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로도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 위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깨어 회개케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옛 행실을 버리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로 전도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심으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게 하십니다.

  이 같은 일을 이루시기 위해 성령은 내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감동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 그 능력에 의해 생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감동이나 감화하심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소멸은 정욕과 교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생활이 정욕에 이끌리고 세상에 이끌리면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은 우리의 의지에 의해 그 능력이 꺾이게 되고 우리의 생활은 세상과 짝하는 세속적 신앙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정결할수록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이 강하게 나타나며 주의 뜻대로 살려고 마음의 결단을 내리면 성령은 내 속에서 더욱 강력한 능력으로 우리의 생활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를 소멸하는 일은 신앙적으로 퇴보하며 하나님의 언약에서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성령을 소멸하면 안돼는 것입니다.

  2. 예언을 멸시치 말라

  다음에 바울은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멸시치 말라는 예언에 대하여 잘못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의 길흉을 점치는 개인적인 예언을 말함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숨겨져 있는 개인의 길흉 사를 예언하는 점쟁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무당이 하건 박수가 하건 예수 믿는 사람이 하건 사람의 길흉을 예언하는 일은 모두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은 점치는 귀신 들린 사람들이 하는 점패 술인 것입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성경이란 하나의 분명한 예언서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보낼 당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글로 작성되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완성된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임시적으로 전하는 은사적인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예배 시간에 성령께서 감동해 주실 때 일어나 예언을 하였는데 이들은 예언을 통해서 영적 분별을 하기도 했으며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책망도 했습니다. 또 어떤 범죄한 형제들에 대하여 견책도 했습니다. 이런 예언을 멸시하는 일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바울은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예언적인 은사가 교회에 없습니다. 목사는 완전한 예언서인 성경으로 구원의 도리를 전하고 성도들을 책망하고 하나님의 정확한 뜻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3.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

  바울은 21절에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헤아리라는 말은 영적 은사나 예언이나 성령의 감동이나 먼저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헤아린다는 말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헤아리는 일로 올바른 신앙 노선을 걸어가야 합니다(요일4:1). 영이 하나님께 속했나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4,.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바울은 22절에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영육간에 모든 악은 우리들로 타락하게 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는 안내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악의 유혹입니다. 그러므로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린다는 각오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결론 : 우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한 이 네 가지 긴요한 신앙생활의 지침을 거울로 삼아 아름다운 신앙적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7) 그라 또한 이루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3-28)


  서론 : 바울은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축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에게 주신 권위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은 서신마다 이런 축원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평강으로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1.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신다.

  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기를 축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은 두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그 중 하나는 의인이 되는 일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의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함에서 오는 거룩함이 아니라 법적으로 인정하는 선언적인 거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이 같은 거룩함을 선언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인입니다. 의인으로 선언 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죄인의 자리로 내려앉아 율법의 정죄를 받거나 죄인으로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성화입니다. 이 성화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중에 그의 행위가 의롭게 성장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순종의 생활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성화는 결코 그리스도인의 의의 표준이 아닙니다. 어떤 성도들이건 만약 의로워지기 위해 성화 되는 생활을 한다면 그는 의로워질 수도 없으려니와 그의 행동은 마땅히 정죄 받을 일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믿음으로 얻는 의외에 다른 의를 인정해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화는 끝날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인간은 자기 행위나 생활로 온전한 성화를 이룰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화는 하나의 생활의 표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날부터 성화의 첫 단계의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완성된다거나 중단되는 일이 없이 그의 생애가 마쳐지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이어집니다.

  2. 영과 혼과 몸이 흠이 없게 보존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바울은 신앙생활의 표적을 주의 강림과 맞추고 있습니다. 주의 강림하실 때까지 그들의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본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구성요소를 셋으로 구분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3분 설이라고 합니다. 3분 설이란 이처럼 인간의 요소를 영과 혼과 몸으로 구분하지만 2분 설은 영과 혼을 둘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아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영은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것으로 혼이나 몸과 독립된 존재로 여깁니다. 영은 죽을 수 없지만 혼과 몸은 죽을 수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난 것도 영이요 영생을 얻은 것도 영으로 보는 것입니다. 혼은 생명체의 생명을 움직이는 생명력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짐승에게는 영은 없고 이 생명체만 있기 때문에 혼이 죽으면 몸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외에 다른 모든 짐승들에게는 영이 없고 혼만 존재하기 때문에 육체의 생명이 죽으면 모든 것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문제에 성경적으로 더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셨을 때, 아담에게 먼저 혼을 주시어 사람을 만드신 후, 그 속에 다시 영을 부어 주신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창 2 :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된지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므로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은 사람은 짐승들처럼 혼과 몸을 구분하고 또 영을 따로 구분하신 것이 아니라 코에 생기를 넣으실 때 영과 혼이 하나가 되어 아담을 살려낸 것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과 혼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체인 영과 육체의 생명력인 혼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만드심으로 몸이 죽으면 몸과 영혼은 완전히 분리되어 육은 땅에 묻게 되고 영혼은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보전되기를 기원한 바울의 언급은 표현상 영과 혼을 구분했을 뿐, 영이 있고 혼이 따로 있어서 이 세 가지가 보존될 수 있기를 원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입니다. 만약 혼이 영과는 별도로 존재해서 인간의 생명을 주관한다면 혼을 보존하는 일에 대한 성경적 교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고 육체의 죄악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같은 권면은 영은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내주로 보존되고 혼과 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생활로 이것이 거룩한 생활의 열매를 맺는 일로 보존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결론 : 주님의 강림은 죄인을 심판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에 흠과 점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그리스도인의 성결은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주 하시는 성령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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