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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4장 (30 - 32)
 밤중소리  01-31 | VIEW : 775



  (30) 기도에 항상 힘쓰라

  (골로새서 4:1-2)


  서론 :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기도를 항상 힘쓸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란 영적 생명을 유지하고 그 생명을 성장시키는 절대적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 양식이라면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아무리 오랜 신앙 경력을 가지고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다해도 기도가 없으면 머리 깎인 삼손과 다름이 없고 날개 빠진 독수리와 다름이 없습니다.

  1.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생명 줄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그의 생명 줄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기도로 이루어지며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자신의 생애에 일어나는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받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무엇을 구한다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이 구하는 일은 곧 기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도는 믿음을 성장시키는 촉진제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들음과 기도와 순종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기도 없이는 들음에 은혜가 따르지 않으며 기도 없이는 순종의 열매를 맺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2. 기도의 두 가지 자세

  그리스도인의 기도에는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2절에서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1) 그리스도인들이 기도 생활을 하려면 항상 힘써야 합니다. 기도하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저절로 기도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에 힘쓰는 사람만이 기도가 성장하며 기도가 성장하는 사람만이 항상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 생활에 속한 일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영적 생활을 따르려는 소원은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번번이 실패합니다. 그 이유는 영의 일은 속 사람은 원하지만 우리의 겉 사람은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육신의 제약을 받습니다. 시간의 제약, 장소의 제약, 육적 노력의 제약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모든 세상일에는 익숙해져 있어서 잘 감당하지만 기도에는 익숙해져 있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기도하려는 영적 요구에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이 기도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려는 영적 요구에 곧 순응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영의 요구에 따르는 숙련의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힘쓰는 자만이 기도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육신의 사람이 지루하게 여깁니다. 무릎을 꿇으면 곧 실증을 느낍니다. 기도는 육신의 사람에게 응답의 확신을 주지 못합니다. 늘 의심을 갖게 합니다. 기도하려는 사람들은 곧 기도를 미루어야겠다는 핑계가 생깁니다. 피곤하니 다음 기회에, 지금 급한 일이 있으니 이 일을 마치고 나서해야겠다는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이처럼 육신의 사람의 요구를 따르다보면 기도는 할 시간도 없고 의욕도 생기지 않으며 기도하는 일이 무익하고 공허한 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기도가 따르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용케도 신앙 생활은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바울은 2절 마지막에 가서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쉽게 풀이해서 말한다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도함으로 깨어 있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도에는 감사가 따라야 합니다. 왜 감사가 따라야 하느냐? 기도는 응답의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고 그 일에 응답 받는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빌 4 : 6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감사 기도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기도하는 일에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한다면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기도는 또한 우리의 생활에 영적 경성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은 우리로 늘 깨어 있게 합니다.

  결론 : 기도는 힘쓰는 자만이 응답 받을 때까지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기도는 응답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로 깨어 있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31) 그리스도인의 지혜로운 처신

  (골로새서 4:3-6)


  서론 :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바울은 3절과 4절에서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신 세상에서 외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종들을 위한 기도

  바울은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많은 기도의 뒷받침이 없으면 그 사명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물론 주의 종들은 스스로 자신을 위해 성도들보다 보다 많은 시간을 기도에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도와주는 성도들의 기도도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사도에게 성도들의 기도가 필요했다면 우리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요 목회자였던 스펠죤 목사님에게 목회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이 찾아 왔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사람을 데리고 자신이 목회 하는 교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24시간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 지하실의 어느 기도실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500여명의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시간이 이미 자정을 넘은 밤중이었는데도 그 기도 실은 기도하는 수효도 줄지 않고 기도의 뜨거운 열기도 식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펼죤 목사님은 이것이 자신의 목회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있어서 그 기도할 제목까지 거론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말씀의 문을 열어주실 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전도의 문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성도들의 기도는 제각기 자기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한 가지 기도의 제목, 자기 교회의 하나님의 종을 위해 기도할 때 그 종은 그만큼 능력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심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많은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심을 위한 기도의 부탁은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1. 대인관계의 처신

  5절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의 대인관계에서의 처신 문제를 교훈해 줍니다.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외인과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지혜롭게 처신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지혜를 쓰지 못하고 그들의 손에 이끌림을 받는다면 신앙적인 순결을 잃게 되며 또 사회인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잠언서는 바로 이 같은 지혜로 주신 성경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혜로 이 대적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외인들에 대하여 지혜로 처신하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는 행동을 보이거나 부도덕한 일로 비난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인들에 대하여 결정적인 시기를 포착하여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6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는 성도들이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말의 사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입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말은 은혜 가운데서 해야 합니다. 모든 언어 구사에 있어서 은혜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외인들을 만나 대화할 때 조급하거나 패역하거나 불성실할 때 신임을 잃게 되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베드로는 벧전 3 : 15절에서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을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6절에서도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고르게 합니다. 음식 맛을 고르게 하며 먹는 사람들로 음식 맛을 돋보이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소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말에 맛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로 이 빚을 갚아야 합니다. 만약 갚지 못하면 하나님은 그 빚을 내게서 찾으실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빚을 갚으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사람들에게 지혜롭게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도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하듯 해야 합니다.





  (32) 칭찬 받은 성도 상

  (골로새서 4:7-18)


  서론 : 바울은 7절부터 18절에 이르기까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 말미에서 자신의 주변에서 바울을 도우며 주의 일에 힘쓰는 일곱 명의 일꾼을 골로새 교인들에게 소개하면서 그들이 전하는 문안과 함께 그들에 대한 칭찬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1. 일곱 명의 문안과 칭찬

  (1) 두기고 : 두기고란 제자는 바울의 심복으로 이 편지를 가지고 골로새 교회를 방문한 주인공입니다. 바울은 이 두기고에 대하여 칭찬하기를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형제란 뜻입니다. 주님은 누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로 주님께 대한 사랑의 증거는 말이나 기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순종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두기고는 “신실한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일꾼 중에는 신실치 못한 자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삯군이라고 했습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자신이 믿는 바를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골로새까지 가는 심부름을 마다아니하고 솔선해서 그 임무를 마쳤습니다. 바울은 이 두기고에게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종이란 말은 주인에게 생명을 다하여 순종하며 그 주인의 뜻을 이루는 충성된 일꾼들에게 사용되는 말입니다. 대개의 경우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어떤 성도들보다 더욱 주님께 충성해야 할 위치에 있는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란 뜻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종이란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두기고처럼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충성된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오네시모 : 다음에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오네시모는 원래가 골로새 사람으로 빌레몬 집안의 종으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 오네시모는 그 주인에게 범죄하여 로마로 도망갔다가 그곳에서 또 어떤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어 그 감방에서 바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난 후 완전히 새롭게 변화 받아 지난날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알고 있는 오네시모가 아니라 새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 편지에서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그가 회개한 후에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가 된 것입니다. 그는 바울의 수족 같은 일꾼이 되어 골로새 교인들에게 오히려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아리스다고와 마가와 유스도 : 이리스다고에 대하여 바울은 10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도고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가에 대해서는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사람입니다. 그는 끝까지 그리스도의 고난에 바울과 함께 동참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그 시기에도 바울과 함께 로마에 갇혀 있었습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마가는 마가복음을 쓴 저자이며 바울의 제자로 복음을 위한 일꾼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유스도란 사람은 예수란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그 이름의 뜻이 정의란 의미인데 이 사람도 바울에게는 복음을 위해 함께 일하는 귀한 일꾼 중의 한명입니다. 11절에서 저희는 할례당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할례당이란 말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란 의미로 해석됩니다.

  바울은 이들을 소개하면서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주변에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지만 지금 이 편지를 보내는 그의 주변에는 이들만이 그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역사하고 있음을 밝혀 주는 것입니다. 11절 말미에서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다고 말씀해 줍니다.  성도들이 교역자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역사 하면 그 일이 교역자에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역자의 위로가 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바울은 이 사람들 외에도 골로새 교회에서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바울에게로 와서 바울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준 사람 중 하나인 에바브라에 대하여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골로새 교회를 세운 일꾼입니다. 그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바울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을 위해 애쓰는 기도는 칭찬과 상급을 받습니다. 바울은 14절에서 누가와 데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의 저자요 유명한 의사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데마에 대해 이 사람은 처음에는 바울과 더불어 열심히 일했으나 딤후 4 : 10절 말씀을 보면 그가 나중에 세상으로 가버렸다고 했습니다.

  결론 : 바울이 이름을 거론한 이 사람들은 모두 신실한 교회의 일꾼들로 바울을 도와주었으며 바울에게 큰 위로를 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의 이름으로 불려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그들의 신앙을 본 받아 교회를 위한 신실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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