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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장 (21 - 29)
 밤중소리  01-31 | VIEW : 912



  (21) 위엣 것을 찾는 생활

  (골로새서 3:1-4)


  서론 : 바울은 3 : 2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각해야 할 생활의 목표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1절에서 그 이유를 밝히기를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의 이 같은 말은 세례의 참 뜻과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자들의 생활에 대하여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

  바울이 1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은 그의 죽으심과 그의 다시 살아나심에 대한 연합 관계를 밝혀 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너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으로 새로운 생명을 받았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그 부활의 생명에 연합이 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생명은 중생의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죽었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하신 말씀처럼 새 사람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우리의 엣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어 죽었고 그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받아 이제 다시 살아났다면 엣사람의 행실이나 생각을 버리고 새 사람의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생활원칙

  그리스도인에게는 움직일 수 없는 생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엣것을 찾는 생활입니다. 위엣것에 대하여 바울은 1절에서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위엣 것이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찾고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생활을 해야 하며 그리스도만을 생각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에게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생활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그 놀라운 영광을 바라보며 그 상급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세상 소망은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었기 때문에 죽은 소망이 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생활, 위엣 것을 생각하는 생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을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있으니 우리의 생활은 마땅히 그 나라를 구해야 하며 그의 의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아예 감추었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감추었다는 말은 우리의 새로운 생명이 지금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하나님 안에서 보장받았으며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새로운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생명의 광채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이 광채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이기신 그 부활의 생명을 말하며 그리스도인들이 부활로써 그의 소망을 완전히 이룰 때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새로운 생명의 광채가 드러날 것이란 의미가 되겠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삶은 마땅히 위엣 것을 추구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은 그리스도만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생활해 나가는 구심점을 그리스도에게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말은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충만한 생활을 할 것을 권면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생활을 해야 할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똑같은 공동운명체가 된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우리의 생명은 절대 안전합니다. 이 생명은 사탄이 노략질하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이 생명을 빼앗지 못합니다.

  결론 :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우리의 육체에 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와 같이 여기는 생활어야 합니다.. 이 생활은 지난날 우리들이 육체의 정욕대료 살아온 모든 행실을 버리는 생활입니다. 이 같은 생활은 성령의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생활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생의 목표로 하여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이 생활은 우리의 육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육체를 이제는 의의 병기로 사용해야 합니다. 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의의 병기로 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땅엣 것을 죽이고 위엣 것을 찾는 생활 우리의 생활은 날마다 이 같은 생활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22) 벗어버려야 할 옛 사람

  (골로새서 3:5-6)


  서론 : 땅엣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찾는 생활을 할 사람은 먼저 땅에 있는 우리의 지체부터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5절에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해 줍니다. 이 지체는 우리의 영을 거스리고 우리의 새로운 생명에 도전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고 하는 우리의 영적인 생활 의지를 막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이 육체가 새롭게 변화 받는 부활의 소망을 이루기 이전까지는 언제나 우리의 영적인 생활을 거스립니다. 우리가 원하는 영적 생활을 도와주거나 순응하는 생활에 익숙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거역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지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르시기를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종해 주는 것입니다 .육체대로 살지 않으려면 그 지체를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1. 우리가 죽여야 할 땅의 지체들

  바울은 5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죽여야 할 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이 말에 대하여 바울은 롬 6 : 11절 이하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말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적 신분은 분명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고 의에 대하여 살았지만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되기 이전까지의 우리의 삶은 죄와의 투쟁의 삶인 것입니다. 육신이라고 하는 이 세상에서의 몸을 가지고 살아갈 때는 육신이 부활할 때까지 죄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육체에 속해 있는 죄의 병기로 익숙해져 있는 지체들을 죽이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싸워야할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체에 속한 것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라고 했으며 특히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경종하고 있습니다.

  (1) 음란이 첫째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땅에 거하는 모든 인간 누구에게나 음란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종의 번식을 위해 모든 생명체에게 성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한 이후 이 인간 번식의 기본적인 성욕이 음란 화되어 범죄 화된 것입니다. 죄를 범한 후,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벗은  몸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다는 말은 음란한 마음에서 생긴 것입니다. 노아 시대와 소돔과 고모라 시대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 음란 화된 세상에 대한 심판이요 인류의 마지막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도 음란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이신 것입니다. 지금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음란의 심각성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부정이라고 했습니다. 이 부정이란 행실의 더러움을 말합니다. 부정은 음란보다 더 광범위한 온 인류 사회의 타락상을 의미합니다.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이 부정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입으로 나오는 것, 행실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더러움으로 들어차 있으며 이 더러움이 이 세상을 더욱 악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3) 사욕이라고 했습니다. 사욕이란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자기 본위, 자기 중심의 생활 방식을 말합니다. 인간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그 마음의 중심이 이 사욕에 의해 움지기는 것입니다. 남의 유익에 대해선 어불관언이고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만연해 지고 모략과 모함과 도적질과 사기와 살인이 끄칠날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만을 좇는 생활은 사욕이 되며 이 사욕의 결과는 범죄와 이어지는 것입니다.

  (4) 악한 정욕이라고 했습니다. 이 악한 정욕은 물질을 탐하는 일에 집착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온갖 욕망을 의미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정욕이 없을 수는 없지만 악한 정욕은 그 사람으로 색욕의 노예,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 죄로 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5) 탐심이라고 했습니다. 탐심은 물질에 대한 무절제한 욕심을 말합니다. 이 탐심에 물든 사람은 어떤 방법이든지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일이라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이 탐심은 동물적인 욕망으로 이 탐심에 빠지면 사람들은 끝없는 욕심에 사로잡혀 온갖 부정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신약적인 우상숭배로 이 탐심을 들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탐심이 우상숭배인 이유는 이 탐심에 빠진 사람은 그의 안중에 오직 물질의 욕심만이 있을 뿐, 다른 것이 존재치 않습니다. 물질 앞에 자신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영혼까지 바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탐심에 젖은 사람은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며 물질이 그 사람의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론 : 바울은 6절에서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죄악이 우리의 생애에 하나님의 징계를 부르며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고 이 같은 온갖 더러운 육체의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23) 벗어버려야 할 옛 사람

  (골로새서 3:7-11)


  서론 :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지난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 육체 가운데서 살아갈 때는 그 가운데서 행하는 생활을 했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5절에 있는 죄악, 음란과 부정과 사악과 악한 정욕과 탐심 가운데서 살아 온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벗어버려야 할 옛사람

  그리스도인은 벗어버려야 할 것과 새로 입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가 분명해야 합니다. 벗어버린 것에 대하여 옛사람과 그 행위라고 했고 새로 입은 것은 새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인 사람은 그 지체대신 입어야 할 것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땅의 지체는 악한 나무입니다. 죄악의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무에서 영생의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나쁜 과실을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음란과 부정과 사악과 악한 정욕과 탐심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8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벗어버려야 할 죄악에 대하여 몇 가지 더 추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분을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분이란 우리의 악한 감정을 겉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그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분을 곧잘 표출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같은 분냄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경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쉬 분내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 다음 단계인 범죄로 이끕니다. 그래서 시 4 : 4절에서 “너희는 분 내어도 범죄치 말라”고 했으며 엡 4 : 26절에서는 분을 오래 품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게 되므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경계해 주는 것입니다. 또 딛 1 : 7절에서 감독의 자격에 대하여 “급히 분내지 아니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분은 서로간의 평화를 깨고 다툼을 가져오므로 잠 15 : 18절에서는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고 한 것입니다.

  (2) 악의를 벗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악의란 악한 의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아니한 마음의 계획도 이 악의에 속합니다. 사람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악의는 설 수 없습니다. 만약 그 악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악의와 함께 손을 잡는 사람은 시험의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일을 성사시키지도 못하고 인생의 패배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잠16장에서 하나님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의도는 결국은 성사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시험의 올무가 되어 함정에 깊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잠 14 : 22절에서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지만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라”고 경종하고 있습니다.

  (3) 훼방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바른 것을 거역하는 행위가 훼방입니다. 진리를 대항하여 거스리는 일입니다. 훼방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웃을 훼방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시 15 : 3절에서 이웃을 훼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훼방하는 훼방이 있습니다. 이 같은 훼방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훼방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치 말라고 엄히 경종해 줍니다. 상전을 훼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전에게 훼방하는 일도 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훼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도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이단적인 주장으로 진리를 오도하는 자들이 이에 속합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막 3 : 29절에서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이 우리는 이 같은 훼방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훼방을 당하는 자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4) 입에 부끄러운 말을 벗어버려야 합나다 입의 부끄러운 말이란 욕설, 저주, 모함, 이간질 등의 부도덕한 말을 말합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결국은 그 사람에게 돌아올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그 열매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쏟아 부은 저주도 머물 곳이 없으면 자신의 머리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5) 서로 거짓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의 아비는 마귀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까? 딤전 4 : 2절에서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하는 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사람을 입혀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들은 범죄하므로 인하여 그 형상이 사라졌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되므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배우는 학문이나 연구나 생각하는 모든 지식의 방향이 육체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새로워진 것입니다.

  결론 : 이제 새사람을 옷 입은 사람은 지난날의 더러운 누더기 옷인 육체의 지체들을 죽이고 새사람 가운데서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으로 옷 입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는 국경이나 인종의 차별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싸움에 매일매일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4)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할 옷

  (골로새서 3:12-14)


  서론 :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입어야 할 새 옷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밝혀 주고 있습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혐의를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자신의 신분

  (1)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라고 말씀해 줍니다. 교회란 말은 세상에서 불러낸 무리들이란 의미가 있는 말로 세상과 구별된 무리란 뜻입니다. 이 같은 구별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것으로 성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별된 사람들을 하나님의 택하신 자라고 부르는데 그리스도인이 바로 이런 무리 중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택하신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들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그 택하신 무리 가운데 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거룩은 무리 중에 속해 있는 나의 신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거룩한 무리, 택함을 받지 못한 무리들을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다는 말은 나의 인격으로 말이 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이 사실 하나 때문으로 이 같은 우리의 소속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거룩해져야 할 무리인 것이 아니라 이미 거룩해진 무리들입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신분이 이처럼 이미 거룩해졌기 때문에 우리의 행실이 거룩해져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분상 이미 거룩함을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하다고 인정을 받고 있지만 우리의 행실은 거룩함을 향하여 열매를 맺어야 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 비결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맺으리라고 하셨는데 이 열매가 우리의 거룩한 생활로 우리의 거룩한 신분을 따라가게 하는 우리의 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받는 별의별 사랑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존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독생자를 주신 물증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요, 거룩하게 성별 된 자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이처럼 우리의 신분에 합당한 행실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그러한데 우리의 행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어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그 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바울은 12절에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행하라고 말씀해 줍니다.

  2.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할 새 옷

  그러면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새옷을 입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으로 바울은 몇 가지 그리스도인들이 그 생활에 나타내야 할 사랑의 열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겸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해 줍니다.

  (1) 긍휼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자비란 말의 반대말은 잔인으로 자비란 따듯한 인정에서 나온 마음을 말합니다. 주님은 12 : 7절에서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3) 겸손이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 을 가진 사람은 남을 섬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4) 온유란 겸손과 비슷한 단어로 교만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는 마음입니다.

  (5)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림에 대한 자세를 말하며 응답과 소망은 인내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6) 서로의 혐의를 용납하라고 했습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일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남을 정죄하는 자는 자신도 정죄를 받습니다.

  (7)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온몸을 온전히 매는 띠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오직 사랑의 바탕에서만이 가능합니다.

  결론 : 사랑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옷을 입고 그 위에 띠가 없다면 아무 것도 걸칠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랑의 띠를 띠어야 벗을 것을 벗고 입을 것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25) 그리스도인의 평강과 감사

  (골로새서 3:15)


  서론 : 바울은 15절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은혜생활은 그의 심령에서 나오기 때문에 심령의 새로워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채우라

  그리스도인의 심령은 먼저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지배를 받으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평강이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내가 주는 평앙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란 말씀이셨습니다. 평강과 평안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로 마음에 근심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은 우리에게 어떻게 임하며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는 것입니까?

  (1) 사죄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죄인들의 마음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을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인간의 마음에는 참 평안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죄의 뿌리가 있어서 늘 범죄하는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노라고 우겨도 그의 양심은 늘 자기자신을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의 마음에 두려움 대신 참 평안이 강처럼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2) 죄의 승리와 사랑의 승리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죄의 사슬에 메임 받은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로 말미암아 승리한 평안함이 그의 생애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평안함이 깃든 사람은 자신의 생애가 오직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로워졌기 때문에 그곳에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새로운 인생만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생애 중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데서 오는 평안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님이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너희 염려를 다 그에게 맡기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염려는 우리 인생들의 무거은 짐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염려가 우리의 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염려를 주님께 맡겨진 마음에는 주님의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4) 장차 나타날 소망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우리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여 평안을 줍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적인 생활인 것이 아니라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소망인 것입니다. 이 소망은 현재의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을 능히 이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환난이 닥쳐도 내 마음의 평안함을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같은 평강이 그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해 줍니다. 교회는 한 몸을 이룬 성도의 모임입니다. 여러 성도들이 한몸을 이루는 일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2. 감사하는 자가 되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평강을 주장하면서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은혜생활의 최고 단계는 감사생활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있어도 감사생활을 하지 못하면 은혜생활이 못되며 감사가 없는 마음에는 평강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1)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를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일에 가장 선하시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한다면 그 마음에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을 처리하심에 있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혹 우리가 죄를 범하였어도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서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시며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어주시기 때문에 징계를 받는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욥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3)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신 분이시며 그 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내 생애는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을 알 때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은혜생활을 이루는 일에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됩니다.

  결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여 우리의 생애 중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6) 그리스도인의 말씀으로 풍성히 하라

  (골로새서 3:16)


  서론 : 바울은 15절과 16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적 건강법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속 사람은 어떻게 강건케 할 수 있는 것이냐 ? 그리고 그 건강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영적 건강법이 대해 언급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건강의 첫째 비결은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한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말씀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존재하시고 말씀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지금도 말씀으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그리스도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심령에 말씀이 풍성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고 계시다는 뜻이 됩니다.

  (2) 말씀은 곧 믿음입니다. 말씀이 없이는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며 이 믿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말씀으로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복음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명은 이 말씀으로 지탱하기 때문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섭취하지 못하는 심령은 믿음으로 성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혹 어떤 일을 계기로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말씀이 병행하지 못하면 처음에는 불꽃처럼 타다가 타다 남은 부주깽이처럼 곧 꺼져버리고 맙니다. 말씀이 없는 사람의 열심은 곧 신비적 신앙으로 빠지게 되기 쉬우며 사람의 미혹에 넘어가기 쉬운 것입니다. 말씀이 없을 때 한쪽으로 치우치는 기형적인 신앙을 갖게 되는데 그것이 은사 중심의 생활인 것입니다. 은사도 주로 눈에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며 어떤 능력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올바른 믿음의 생활에서 이탈하기 쉬운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말씀은 곧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어떻게 임하는 것입니까?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말씀대로 이루어주십니다.  

  의심하지 않고 말씀을 믿으면 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던지우라해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주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치 잡혔습니다. 이것이 기적인 것입니다. 한 백부장은 주님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하면서 그 말씀을 믿었더니 하인의 중한 병이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인 것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한 말씀은 말씀을 믿을 때 그 말씀대로 이뤄진다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축복하시고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4) 말씀은 곧 응답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어 주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처럼 역사 하는 것입니까? 히 4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살아있으며 그 안에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운동력이 있는 것입니다.  

  2. 말씀을 어떻게 풍성히 거하게 하느냐 ?

  말씀을 풍성히 거하게 하는 방법은 말씀과 접촉하는 일입니다.

  사 48 : 16절 “내게 가까이 나아와 내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와야 합니다. 시 1 :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즐거워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음식맛을 잃으면 병든 사람의 증거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말씀의 맛을 모르면 영적으로 병든 사람입니다. 말씀이 달고 그 말씀이 즐거움과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시 119 : 165절에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풍성히 거할 때 그 사람의 생애는 장애물이 제거되고 형통케 되는 것입니다. 시 111 : 2절에서 “하나님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 도다”고 했습니다.

  결론 :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풍성히 거하도록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맛보는 생활을 통해서 말씀과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이 풍성히 거할 때 여러분의 생애도 풍성해 질 것입니다.






  (27) 가르치는 일과 권면하는 일

  (골로새서 3:16-17)


  서론 : 그리스도인의 영적 건강의 비결은 첫째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는 일이요 다음에는 가르치는 일과 권면하는 일이 따라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고 한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의미합니다. 권면은 타일러 힘쓰게 하는 일로 이 두 일은 결국 교회의 지도급 인사에 의해서 성도들을 지도해 나가는 일입니다.

  1. 가르치는 일

  피차 가르치라고 했는데 가르치는 일에는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자는 구약에서는 선지자적인 사명자를 의미하고 신약에서는 사도적인 사명자를 의미합니다.

  (1) 이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가 써 보낸 서신 첫머리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이라고 표현하므로 자신의 사도직분이 전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밝혀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에 대하여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시기를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일꾼은 이처럼 주님의 택한 그릇으로 예정된 사람들입니다.

  (2) 특별히 가르치는 자는 말씀의 은사와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선지학교에서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며 연구한 사람들입니다. 주의 종들의 전문분야는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학문은 모르지만 성경에는 능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로 성경을 깨닫고 그 깨달은 말씀을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목사들입니다.

  (3)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교회에서의 위치는 그리스도의 대행자, 또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자라 불립니다. 애베소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을 보면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으시고 일곱 금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이”로 나타나셨는데 일곱 금촛대란 교회를 말하며 일곱별이란 그 교회에 세우신 사자로 주의 종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로써 교회를 다스리며 양 무리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4) 말씀을 가르침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의 양 무리들을 말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의 태도에 대하여 엄격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히 13 : 17절에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수종하고 복종하라”고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명한바 에 따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주님께서 그에게 그의 양 무리들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으로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양 무리들은 자신들의 영적 생명의 책임을 지고 수고하는 목자에 대하여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생활과 가정의 모든 일에 이르기까지 잘 살펴서 기쁜 마음으로 보람있게 일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딤전 5 : 17절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을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 할 것이니라”고 한 것처럼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양 무리들은 존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혹이 존경을 받을 만한 인품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 말씀인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나 마태 같은 제자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 못되었지만 사도의 직분을 받았으며 그 직무를 이행한 것입니다.

  2. 권면하는 일

  교회에는 권면하는 직분이 있습니다. 이들을 장로라고 부릅니다. 성경을 보면 목사도 장로로 불리지만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장로는 목사와 함께 교회를 다스리는 일을 합니다. 장로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아야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장로는 목사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분이 아닙니다. 목사는 당회장의 직분을 가지고 장로인 당회원 들을 지도하고 지시하며 다스립니다. 장로는 주의 종에게 아론과 훌과 같은 사명 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의 손을 들어주어 피곤치 않게 하며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교회의 업무를 진행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목사가 주의 양 무리들을 다스리며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장로들이 교인들을 권면하려면 스스로가 신앙적으로 교회 생활에 가정 생활에 본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큰 사명을 맡을수록 그만큼 많은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8) 감사하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골로새서 3:16-17)


  서론 :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감사하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찬양은 신령한 신앙 생활에 반드시 따라야 할 조건이기 때문에 이처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17절에서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께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에 대하여 시와 찬양과 신령한 노래라고 했습니다. 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 시를 말하며 다윗이 기록한 시편의 시는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 시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던 것입니다. 찬미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노래이며 신령한 노래란 시와 찬미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의미합니다. 심령의 은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에서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이 같은 노래는 언제나 감사하므로 해야 합니다. 찬양은 감사한 마음에서 나와야 참 찬양이 됩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크게 영광이 되는 일로 예배 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평상시에도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아름다운 마음의 선율로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 우리의 이 찬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찬양은 또한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입니다. 비록 내가 작사한 것이 아니라도 그 가사를 깊이 음미하면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간구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신령한 노래의 찬양은 그 자체가 훌륭한 기도로 그 향이 하나님의 보좌에 올리우심을 받을 것입니다.

  2.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나는 죽고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다’고 말씀해 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나의 영적 신분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나는 이미 죽었으며 그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그의 새로운 생명(영생)으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생애는 주님이 주장하고 계시며 주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죽어서 장사지낸바 된 나를 위해 살아가는 생활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생명을 주관하시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말에       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 1 : 6절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해 줍니까? 이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삶인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은 시작하신 분도 그리스도요 그 일을 이루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할 때 무엇이든지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할 때 그 일이 하늘의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할 때 그 일이 이미 내게 칭찬이 되고 상급이 되었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안됩니다. 그 일이 나의 하늘의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타내며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자기에게 불이익한 일이라 해도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 된다면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는 말은 내가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런 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언제나 입의 말을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입에 파수꾼을 세워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덕을 세우는 말과 행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모든 행실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바울은 17절 마지막에서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를 힘입는다는 말은 그로 말미암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중보가 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의를 얻었으며 그리스도에게 연합이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감사 역시 그리스도를 힘입어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올리는 것은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 : 그리스도인들은 찬미의 생활이 항상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마치 주의 힘으로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힘입어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9) 그리스도인의 가족 관계

  (골로새서 3:18-25)


  서론 :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살아갈 동안 육신적인 가족 관계를 이루며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족관계는 천국의 가족의 모형이 되어야 하며 그러므로 성경에 합당해야 하며 이웃에 있는 모든 가정에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1. 부부의 관계

  모든 사람들의 삶의 본고장은 가정입니다. 가정을 떠나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이 신앙생활의 첫출발 점이기 때문에 가정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을 살펴야 합니다. 가정의 핵심은 부부간입니다. 그러면 부부는 가정에서 상호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며 어떻게 가정을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일인데 18절에서는 아내들에게 19절에서는 남편들에게 그들이 가정에서 취할 서로간의 위치에 대하여 말씀해 줍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주안에서의 순종을 의미합니다. 복종하라는 복종의 뜻은 남편을 주장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남편을 지배하는 아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속이는 생활과 남편의 의견을 무시하는 아내의 태도는 가정을 불화와 파탄으로 이끌어갑니다. 원만한 가정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가리켜 주십니다. 아담의 가정을 보아도 그 아내 하와의 불순종으로 불행이 찾아온 것입니다. 아담이 아내에게 일러준 하나님의 말씀을 하와가 무시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아합 왕의 가정도 그 아내 이세벨이 자기 남편 아합 왕을 꽉 쥐고 대소사의 정사를 휘둘렀기 때문입니다.

  남편에 대해서는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은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버리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멸시하지 말고 존중해 주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내에게 폭군노릇을 하지 말고 아내의 의사를 무시하지 말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괴롭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아내를 괴롭히는 일, 상습적인 투전으로 아내를 괴롭히는 일, 아내에게 완력을 사용하므로 괴롭히는 일을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자녀들과 부모와의 관계

  가정에는 부부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간의 상호 관계는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에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먼저 자녀들에 대하여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순종은 주 안에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고 말해줍니다.

  엡 6장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데 잘되고 이 땅에서 오래 살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나쁜 행실이나 말로 부모님의 근심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거짓말로 부모를 속여서는 안됩니다. 부모님의 허물을 들추어내서는 안됩니다. 범사에 예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부모들은 자기 자녀에 대하여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의 노를 격발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매질하는 일은 자녀들에게 노를 결발 시킵니다. 옳은 일을 했는데도 심한 책망으로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노를 격발 시킬 것입니다. 이런 일은 자녀들을 정서적으로 키우는 일에 암적 요소가 됩니다.  

  22절에는 종들과 상전들에 대한 상호 관계를 말씀해 줍니다. 인류사를 보면 고대에는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종의 제도가 인정을 받아 온 것은 인간의 완악한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본래 하나님이 주신 제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종이 공인된 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질서를 위해 종과 상전과의 엄격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의 신분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이처럼 그 상전에게 순종하는 생활을 통해서 질서를 유지하는 일에 협력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들이 유업의 상을 상전에게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결론 : 25절에서 바울은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디서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든지 불의한 일에 가담해서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신분이 어떤 위치에 있건 그리스도안에서는 자신의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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