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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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장 (10 - 16)
 밤중소리  01-31 | VIEW : 2,078



  (10)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침

  (빌립보서 2:1-4)


  서론 : 버울은 성도들이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성도들 간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본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홀로는 교회를 이룰 수도 없으며 교회에 속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 자체들이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서로 조화 있게 협력해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성도들이 이런 일을 어떻게 감달 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1. 성도들은 어떤 자세로 생활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생활 주변에 나 외에 한 믿음으로 가족을 이루고 있는 형제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그러므로 이들과의 교제는 필수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1) 그리스도 안에는 권면이 있어야 합니다. 권면이란 말은 타이르고 좋은 의견으로 자기 스스로가 신앙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측면에서 도와주는 일입니다. 인간에게는 어리석은 면이 많이 있습니다. 지혜에 있어서도 부족할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이웃에 있는 형제들의 선의의 권면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같은 권면을 주의 깊게 해 주는 일은 한 형제를 위기에서 건져 주는 일이며 잘못된 길을 걸어간 형제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손길이 되는 것입니다. 잠 13 : 10절에서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권면에는 이해와 겸손과 사랑이 수반해야 합니다.  

  (2) 그리스도 안에는 사랑에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에 무슨 위로’란 말은 사랑과 위로가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서로간 한 지체가 된 사실을 확인하는 연결 고리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언제나 강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약할 때가 있으며 좌절하고 낙심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교훈이 아닙니다. 책망도 아닙니다. 사랑의 위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로에는 진실한 사랑이 깃들이어 있어야 합니다. 거짓된 위로는 위로가 아닙니다. 같은 마음으로 슬퍼하고 아파하며 괴로워 할 수 있어야 받는 사람에게 참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위로는 그 받는 사람에게 새 힘을 줍니다. 슬픔과 고통을 이길 능력을 줍니다. 불행과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합니다.

  (3) 그리스도 안에는 성령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하는 교제란 믿음 안에서의 교제를 가리킵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거나 세상 풍조를 쫓아 하는 교제는 성령의 교제가 아닙니다.
  (4) 다음에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이나 자비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불행한 형제들이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는 일입니다. 가난한 형제를 도와주고 병든 자를 찾아가 위로하고 슬픔을 당한 자에게 위로를 주어야 합니다.

  2. 성도들의 결합

  바울은 이런 일들이 교회에 있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하여 말해 줍니다. 2절에서 마음을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고 한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뜻을 같이하여 자기 일처럼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다툼이나 허용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일에 다툼이 생기는 이유는 이 일을 통해서 자기들이 칭찬을 듣고 자랑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허영이란 자기가 명예를 얻고 칭찬을 들으려는 의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에 대하여 바울은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겸손한 마음이 그 밑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교만한 자란 자기를 남보다 나은 사람으로 스스로 여기는 사람이요 겸손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결론 : 바울은 4절에서 두 가지 돌 볼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주라고 했습니다. 이 일이야말로 바울의 마음에 기쁨을 충만케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누구나 자신이 자신의 일을 잘 돌보아 교회로 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대단히 중요한 존재들입니다.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하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11)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2:5-11)


   서론 : 오늘 본문 말씀은 너무나도 놀랍고 위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해 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위대성과 그가 어떻게 하나님이 되시어 사람으로 오셨는가에 대한 놀라운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1. 그리스도의 본체

  그리스도가 어떻게 사람이 되셨으며 우리는 그의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1) 6절에서 이르기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원래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본체란 말은 하나님의 실체란 뜻으로 하나님 바로 그 분이시란 의미가 됩니다. 여기서 왜 본체란 말이 나온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삼위의 인격적 하나님이 한 본체를 이루어 계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모두 인격적인 분들이시며 제각기 자신들을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세 분 하나님은 실인즉 셋이 하나의 본체로서 존재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비밀은 완전한 영적 지식으로만이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말로는 삼위의 하나님이시면 서도 한 본체를 이루어 한 하나님으로 계시는 인격적인 분의 모습을 들어 낼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 만물 중에 한 분 하나님 외에는 전부 피조물들입니다. 피조물은 인간의  속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줄 수 없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만이 가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다음에 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아들의 신분으로 내려오시므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육신을 가지셨기 때문에 아들이 되셨고 그 결과 자기를 낮추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낮추심에 대하여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어찌 그뿐입니까?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했는데 그 일이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권능과 영광을 가지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운행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처럼 비천한 종의 형체로 사람이 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2.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바울은 우리가 이처럼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 11: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인 것입니다. 사탄은 교만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뿐 아니라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 자에게는 영원한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겸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그런데 온유와 겸손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이 따르고 순종이 따라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이루신 분입니다.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자기 목숨을 죄인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은 약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강한 무기가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이 자신의 낮아지신 온유와 겸손하므로 어떤 보상을 받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성삼위 중에서도 예수의 이름에 더욱 영화롭게 해 드린 것입니다. 온 세계 인류와 만물이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었지만 이 일로 인하여 예수님은 자신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셨습니다.

  결론 : 겸손한 자는 하나님이 그를 높여 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생명도 주시고 영예도 주시고 재물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12)


  서론 : 오늘 본문에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 중에서 주목할 만한 말씀이 나옵니다.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원에 대한 3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는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구원하시리니’란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1. 구원을 얻었다.

  엡 2: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얻었나니 란 말씀은 이미 구원을 얻었다는 뜻으로 구원 문제가 과거형으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면 구원은 이미 얻은 것입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얻었다는 말은 약속에 의한 확실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미래적인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우리의 부활의 완성으로 성취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약속은 내 안에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내 스스로가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성령으로 새로운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성령의 증거로 이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2. 구원하시리니.

  다음에 딤후 4:1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란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구원이란 낱말은 우리의 완성된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책임지시고 구원을 이루어 주실 것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그 구원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행실이나 의로움에 구애됨이 없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순전히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신 일, 그 일이 구원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3. 구원을 이루라

  오늘 본문에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이미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아직도 소망 중에 있는 미래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현재와 미래와의 사이에는 도달 과정이라고 하는 시간이 흘러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서울역에서 부산행 특급 열차를 탔습니다. 차표도 끊었습니다. 열차 안에 자기 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서울은 출발했지만 아직 부산에 도착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 역까지 이르는 과정에는 시험 역도 있고 환난 역도 있으며 유혹 역도 있습니다. 이 같은 역은 아직 우리가 지나가 보지 못한 역들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생애 중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인생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차표를 잃으면 안됩니다. 자기가 앉은자리도 확실히 지켜야 합니다. 열차를 내려도 안 되고 누가 무어라 해도 열차를 바꿔 타면 안됩니다. 적어도 구원의 열차를 탄 그리스도인 들에게는 이런 노력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운동장에서 달려가는 일로 비유해서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구원의 과정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두렵고 덜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결론 : 성도가 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자세에 대하여 두 가지로 일러주었습니다. 하나는 항상 복종하라고 한 것입니다. 순종의 생활 없이는 누구든 자기의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이런 과정에서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생활은 무엇보다도 구원을 이루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구원을 이루는 생활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13)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

  (빌립보서 2:13-14)


   서론 : 성경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진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그것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13절에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무엇인가 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진리를 알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모르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들과는 너무나도 그 생활에 현격한 차이가 들어 나는 것입니다.

  1. 우리 안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사시는가?

  우리는 성경에서 혹은 하나님이 임재 하신다, 혹은 성령께서 내주 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 말씀은 모두 똑같은 의미에서 성령의 임재 하심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이시기도 하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삼위 하나님이 제각기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내주 하시는 목적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 사람을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임재 하시므로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성령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역사 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란 무엇입니까? 물론 구원을 이루는 그날까지  우리를 주장하시어 구원에 차질이 없게 하시는 일입니다.

  2. 일하시는 방법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시시때때로 여러 가지 소원이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   기도합니다. 이런 것들이 누구로부터 말미암은 것인가에 대하여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소원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영적인 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소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아직 잔재하고 있는 정욕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은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권면을 통해서 영적 감동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성령께서 간절한 마음과 강한 감동하심을 주시므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역하면 우리는 결과적으로 육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되며 하나님의 일을 거역하는 죄악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 마음속에 심어 주시고 우리들로 그 뜻을 따라 생활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애를 주장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무시하시고 우리를 무조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뜻을 이루게 하시려고 강권적으로 지배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로 행하게 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소원을 가지게 하시며 우리들로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실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을 알 수 있고 그 뜻을 이루는 생활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소원을 내 마음에 간직하여 자신의 소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육신의 사람은 죽이고 영의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심겨져 있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결론 : 만약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아무런 소원도 없다면 하나님을 위한 뜨거운 소원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역사를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소원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소원이며 여러분들이 그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뢰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14) 흠이 없고 순전하라

  (빌립보서 2:13-18)


  서론 : 바울은 13절에서 우리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교회마다 분쟁에 휩싸이고 원망과 시비가 비등하는 것은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원망과 시비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피차에 겸손하므로 덕을 세우고 사랑으로 연합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1. 바울의 염원

  바울은 15절에서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서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바울로 그들을 위해 수고 한 결실이 헛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1)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생활에 흠이 없고 순전하기를 바랬습니다. 흠이 없다는 말은 죄가 없는 생활을 말합니다. 순전하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진실할 것을 의미합니다.

  (2) 다음에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로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상입니다. 지금 우리의 세대는 더더욱 그런 세대인 것입니다. 잘못된 세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서 멀리 떨어진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세대입니다. 이 같은 세대에 그리스도인 들은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야 합니다.

  빛이란 어두움을 밝히는 능력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는 어두움의 세상입니다. 어두움은 죄악, 부도덕, 불순종을 의미합니다. 그들 가운데서 빛을 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빛은 무엇으로 나타냅니까? 주님은 선행으로 나타낸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그 자체가 벌써 빛을 발휘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어두움에 동조하지 말고 어두움에서 떠나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이 이 빛 된 생활을 하려면 먼저 자기 생활에 흠이 없어야 합니다. 죄를 범하면서 빛을 나타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밝히는 일은 말씀을 들어 내는 일입니다. 말씀을 들어 내려면 그리스도인 스스로가 말씀 안에서 말씀대로 생활하는 일로 나타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2. 빌립보 교회의 열매와 바울의 상급

  바울은 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처럼 그들의 생활에 흠이 없고 순전하기를 원한 것이겠습니까? 물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 바울의 간절한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곳에서 좀 색다른 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6절에서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아직까지 많은 수고와 달음질을 해 왔습니다. 특히 빌립보 교회를 위해 눈물겹도록 수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의 신앙이 잘못되거나 그들의 달려갈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울에게도 치명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천국 경주장에서 1등 상을 받기 위해 일해 왔습니다. 바울이 그간 빌립보 교회에 쏟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바울은 헛된 경주를 한 결과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염려한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종들은 바울과 같은 이런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고 목회를 해야 할 줄로 압니다. 자기가 기른 양 무리들에 대한 책임감이 바울처럼 철저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수고한 만치 많은 결실을 맺어 그것이 주님 앞에서 그대로 칭찬과 상급이 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바울의 목회와 복음을 전하는 수고에는 늘 하나님 앞에서의 자랑거리를 준비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복음 전파 자로서 자신이 수고 한 수고의 결실은 그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 바울은 빌립보 교인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와 함께 자기를 그 위에 순교의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린바 된다고 해도 자기는 빌립보 교회와 함께 기뻐하고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신생교회 성도들도 하나님의 종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있기 위해 힘쓰는 생활을 하므로 함께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5)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간절한 바람

  (빌립보서 2:19-24)


  서론 : 바울은 복음으로 인하여 로마에 갇힌 몸이 되었으나 그의 머리에는 항상 빌립보 교회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목자는 늘 바울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책임 맡은 양 무리의 생각으로 늘 머리에 가득 차야 할 것입니다.

  잠 27:23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어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참 목자상에 대하여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목자가 되시는 분입니다. 목자는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면과 그 양이 당면한 모든 문제점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는 말씀은 늘 양 무리들의 생각을 마음에 간직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1.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려는 이유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사정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영오의 몸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그곳 소식을 전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근래에 빌립보 교회의 사정은 어떠한가? 교인들의 신앙 상태는 어떠한가? 빌립보 교회가 어려운 일을 겪는 일은 없는지? 이런 일들이 알고 싶어 바울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메를 빌립보에 보내어 그 소식을 가지고 오도록 조처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이유에 대하여 19절에서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정확한 형편을 알기 전에는 마음에 평안이 없었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로 하여금 그곳 소식을 가지고 오게 하여 자기로 하여금 안위를 얻도록 하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이토록 양 무리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로 복음을 위하여 바울의 명령이면 자기 목숨이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바칠 수 있는 바울의 심복이었습니다. 20절 말씀에서 바울과 뜻을 같이하여 빌립보 교회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디모데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디모데를 일꾼으로 만든 연단

  바울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모든 제자들보다 신임이 두터웠습니다.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올바로 전달하려면 바울처럼 빌립보 교회를 진실히 생각해 줄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이 디모데는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없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교인이 많습니다. 큰집에는 은그릇도 있고 금 그릇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깨끗하게 한 그릇만이 주인의 쓰임을 합당한 그릇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바로 이 같은 일꾼이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성도가 모두 교회의 일꾼은 아닙니다. 어느 경우이든 그리고 어떤 큰 교회이건 간 참 일꾼은 그 수효가 적습니다. 교회의 일꾼은 언제인가 그 진실한 일꾼의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어려움을 당할 때인 것입니다. 가족을 버리고 세상의 영화나 재물을 버리고 같은 사명을 가지고 바울과 함께 주를 위해 생애를 받칠 사람은 디모데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일꾼들은 어떻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21절에서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라고 했습니다. 자기 일을 희생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사람이 교회의 일꾼입니다. 자기 일 때문에 주의 일을 희생하는 사람은 디모데와 같은 교회의 일꾼이 아닌 것입니다.

  22절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디모데가 이처럼 바울의 진실한 협력자로 바울의 신임을 받게 된 것은 디모데가 받은 연단의 결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중에 많은 연단을 받았으며 그 연단을 통해서 바울의 신임을 받은 진실한 교회의 일꾼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교회의 일꾼으로 쓰시기 위해서 많은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교회는 바울과 같은 목자가 필요하고 목자에게는 디모데처럼 목자와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일꾼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이처럼 바울과 바울이 신임한 진실한 일꾼, 디모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6)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빌립보서 2:25-30)


  서론 :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보내는 이 편지를 쓴 후, 이 편지를 속히 빌립보 교회에 전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서 헌금과 봉사를 위해 바울에게 보낸 에바브로디도 편에 이 서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이 옥에 갇힌 상태에서 그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였고 이 일 때문에 몸에 병까지 생겨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큰 근심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 주셨고 에바브로디도 자신도 자기 때문에 빌립보 교인들이 염려하는 일을 더러 주기 위해 빌립보로 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를 급히 보내게 된 것입니다.

  1. 에바브로디도의 신앙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바울의 신임과 칭찬은 대단했습니다. 그만큼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도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은 일꾼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여러 가지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1) 그는 나의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계 1:9절에서 사도 요한은 형제 된 자의 자격을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규정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형제는 아마 30절에서 밝혀 준 에바브로디도의 충성심에 바탕을 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라고 불렀습니다. 교회에는 약삭빠른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광은 자신이 누리기를 원하면서 주를 위한 수고는 짊어지기를 싫어하며 즐거워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형제는 거짓 형제입니다. 진실한 형제는 어려울 때 수고의 짐을 함께 짊어집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이 옥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바울을 위해 수고하는 일에 참여한 형제입니다. 그뿐 아니라 함께 군사 된 자라고 했습니다. 이 군사는 그리스도의 군사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두 가지 면에서 합격해야 합니다. 하나는 자기 일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주의 일에 전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에 모집한 자만을 기쁘게 해 드려야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된 사명을 이루는 형제였습니다.

  (3)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게 그는 빌립보 교회의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돕는 자로 봉사했습니다. 돕는 자란 말은 봉사직을 말합니다.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기는 자란 뜻입니다. 섬기는 자는 다른 사람의 종의 자리에서 헌신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남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그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는 지금 하늘 나라에서 으뜸이 되는 영광 가운데서 살아갈 줄로 아는 것입니다.

  (4) 다음에 에바브로디도는 성도들을 사모하고 교회에서 자신을 위해 염려하는 일을 근심했습니다. 26절에서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리 컸습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큰사랑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봉사하고 헌신하며 염려하고 도와주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다른 형제들에게 누를 끼치게 될까 보아 오히려 에바브로디도처럼 근심하는 것입니다.

  (5)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에서 그의 놀라운 주님께 대한 사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아직까지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두터운 신임과 형제로써 깊은 사랑 가운데서 교제하고 있었지만 바울이 칭찬한바와 같은 놀라운 일꾼이란 사실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주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결론 : 우리는 교회에서 충성스럽게 헌신하는 자들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존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존귀히 여긴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존경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며 칭찬이 나오면 헐뜯기가 일수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에 분쟁이 오고 미움과 다툼이 생기는 것입니다. 일꾼을 아끼고 사랑하며 존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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