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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8장 (26 - 28)
 밤중소리  01-30 | VIEW : 472



  (26) 마게도냐 성도들의 진실한 사랑의 헌신  

  (고린도후서8:1-8)


  바울은 8:1절 이하에서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보인 놀라운 사랑과 주를 위한 헌신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지방은 아볼로냐로부터 빌립보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게도냐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릐아 교회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바울이 이들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모으는 일에 지극한 정성을 기울인 사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런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의 자극을 받아 고린도 교회에서도 헌금에 참여해 줄 것을 당부하기 위해서입니다.

  1. 마게도냐 교인들이 받은 은혜

  바울은 마게도냐 교인들이 바친 헌금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대단히 주목할 만한 말입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자신들이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지만 헌금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꼭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은혜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주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뜨겁게 일어나 그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은 그 일에는 축복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바울은 마게도냐 교인들이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한 원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기쁨에 넘쳤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찾아온 환난이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환난 중에서 오히려 그들의 기쁨이 더욱 넘쳤던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받는 환난의 지극히 적은 것이 장차 큰 영광을 이루게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환난 중에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신앙은 진실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마게도냐 교인들이 극한 가난에 시달리는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가난이 그들의 연보를 적게 만들거나 연보를 인색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욱 풍성한 연보를 내게 했다고 했습니다.

  2. 섬기는 일을 자원한 마게도냐 성도들

  바울은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신적인 연보에 대하여 ‘내가 증거 한다’고 말하면서 그 실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했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연보를 내는 성도의 자세는 자기에게 있는 힘대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9:7절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했다’고 했습니다. 자기들에게 연보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구했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의 형편은 결코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중에 있었고 극한 가난 가운데 있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중에서도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형제들을 돕는 일에 그들이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바울에게 간청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은 이런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신적인 태도에 대해 기대 이상의 일이라고 칭찬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신들에게도 헌신했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일로 인해서 바울은 디도에게 먼저 고린도에 가서 이미 시작한 그 은혜로운 일을 성취하라고 일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모든 방면에 뛰어난 사실을 칭찬해 주면서 이 일에도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7절에서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보기에 그들은 믿음도 훌륭했습니다. 말도 잘했습니다. 지식도 풍부했습니다. 열성이나 바울에 대한 사랑도 많았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생각하는 대로 이 모금에도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쓰면서 이런 자신의 권면은 명령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 일에 열심이 있는 마게도냐 성도들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들려주고 고린도 교인들이 나타내는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려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결론 : 우리는 물질에 너무나도 인색한 사람들입니다. 극한 가난 중에도 형제를 도웁는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의 헌신과 연보를 본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7)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신 이유  

  (고린도후서8:9-15)


  바울은 9절에서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에 대하여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신 말이 그것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게 되신 이유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시다는 것은 그의 영광과 권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분은 만물의 창조주로 만물의 주인이시며 그 소유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모든 만물을 그의 손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이런 분이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가난하게 되셨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같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그의 말할 수 없는 비하는 바로 그가 가난하게 되신 것을 가리킵니다.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오셔서 사람과 같이 되셨고 세상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셨으니 머리조차 둘 곳이 없는 생애를 사셨고 끝내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이런 그의 가난의 원인은 어디 있었던 것입니까? ‘너희를 위하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때문에 그렇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그 죄를 속죄하시기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시려고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같은 은혜를 힘입은 우리는 그 결과 어떻게 된 것입니까? 바울은 이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해진 것이 우리들로 왜 부요케 된 것입니까?

  첫째로 그리스도의 가난하심은 우리들로 믿음에 부요케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에서 온 은혜인 것입니다. 그 분이 가난하게 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구원의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다음에 그리스도의 가난하심은 우리들로 소망에 부요케 하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세상의 물질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누구의 가르침으로 얻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가난하심이 우리들로 소망에 부요케 하셨으니 그 분으로 말미암아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음에 그리스도의 가난하심은 우리들로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몰랐을 때는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께 가난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해 드릴 수 없었고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전혀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은 후,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것으로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2. 부족한 것을 보충 받게 하시는 우리의 연보

  바울은 이런 구제 연보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1년 전에 이런 구제 헌금에 대해 스스로 결정한바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런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고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말로 그들의 마음에 호소하면서 만약 그들이 할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실 것이지만 없는 것을 받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이 구제 헌금에 대하여 혹 짐으로 여길 것을 우려하여 다른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이런 부탁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들만 괴로운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공평한 처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왜 이런 일에 대하여 공평하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부요하게 살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언제인가 나도 남의 구제를 받아야 할 일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상황이 바뀌게 될 때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런 일은 평균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전11:1절 말씀에는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잠11:25절 말씀에도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 바울은 이 일을 출16:18절에서 인용하여 증거 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만나를 거둘 때에 많은 거둔 자도 남음이 없었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도와주고 나누며 구제하는 생활은 부유해지는 생활이요 복 받는 생활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8) 선한 일에 조심하라  

  (고린도후서8:16-24)


  바울은 21절에서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조심합니다. 그리고 주 앞에서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으면 그것으로 거리낌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했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만 할 도리를 다 한 것으로 잘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도 덕을 세우며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 아무도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한 바울의 배려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연보를 거두기 위해 디도와 더불어 다른 또 한 명의 형제를 함께 보낸 일에 대하여 20절에서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려는 의연금은 그 모금 액수가 대단히 큰 단위인 것입니다. 20절에서 ‘거액의 연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함에 바울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나 혹은 반대하는 편으로부터 훼방을 받지 않기 위해 지극히 조심한 것입니다. 바울이 가장 신임한 디도와 복음의 일꾼으로 모든 교회로부터 인정받은 형제를 함께 고린도 교회에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디도는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간절함을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주신 일에 대하여 바울은 감사하면서 다도가 바울의 권고함을 받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자원하여 고린도 교회에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일을 함에는 디도나 복음의 칭찬 듣는 한 형제처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자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교인들의 연보를 취급하는 일에 부정의 의심을 받는다면 대적 자들로부터 훼방을 받을 일은 뻔한 일인 것입니다.

  바울은 21절에서 우리가 주의 일을 하면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에 대하여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는 그의 배려에서 나온 것입니다. 선한 일이란 물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주의 일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주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조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2. 우리 자랑의 증거를 보이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두 형제들에 대한 신뢰감을 주기 위해 간절함으로 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형제에 대해서는 바울이 그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본 결과 모든 일에 크나큰 열성을 가지고 바울을 도운 형제로서 이제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간절함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디도에 대해서는 나의 동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동무라고 한 말은 주의 일을 하는 데 둘이 없어서는 안될 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도는 복음 사역에 있어서 뜻을 함께 한 동지로 마음이 하나가 된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로 더불어 함께 가는 형제들은 여러 교회에서 선택된 대표들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들어 낼 사람들이라고 소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좋은 일꾼들을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일에 있어서 고린도 교인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가지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의 당부는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의 선한 일을 위해 뽑혀 교회의 사자의 자격으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니 고린도 교회에서는 그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연보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라고 부담스럽게 생각하여 그들의 대접에 소홀히 하지 말고 정성을 기우리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울이 그들에게 고린도 교인들을 자랑한 그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자랑을 서슴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순종과 사랑과 연보에 대해 그들의 모범을 따를 것을 말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들 바울이 고린도에 파송하는 주의 일꾼들이 바울이 칭찬한 면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실망할까 보아 그 일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랑의 증거를 보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주의 일꾼들은 언제나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해야 하며 훼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도록 사랑의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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