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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6장 (20 - 22)
 밤중소리  01-30 | VIEW : 500



  (20)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린도후서6:1-2)


  바울은 5장에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게 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말한 후,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헛되이 받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그 아들을 보내시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그 은혜를 헛되이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헛되이 받는 것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1) 하나님의 은혜를 경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히 여기는 일은 하나님께 망령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최선의 방법으로 그 아들을 통해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롬5:8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히 여기는 일은 곧 하나님의 아들을 거역하고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구원의 여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사랑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보다 더 끔찍한 죄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죄는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성령을 거역하는 죄이기 때문에 현세는 물론 내세에서도 용서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공허한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헛되이 란 말은 헬라어 에이스 케논(είςχενὀ)으로 ‘빈’ 또는 ‘공허한’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등질 때 하나님의 은혜가 공허한 것이 되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은혜를 존중히 여겨야 하는데 이런 생활은 곧 은혜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생활로 곧 순종의 생활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생활은 곧 하나님의 은혜를 공허한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2. 구원의 때와 구원의 날
    
  바울은 2절에서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은혜는 받을 만한 때가 있고 구원의 날도 받을 만한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는 은혜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하셨는데 바울은 이를 인용하여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은혜 받을 때에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들이 허탄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 왔을 때에 은혜를 내리셨습니다.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의 경종을 듣고 회개했을 때에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속죄 제물로 희생하시고 우리의 죄 값으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이런 일이야말로 은혜 받을만한 일이며 이 일이 지금 우리 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한 지금이야말로 은혜 받을 만한 때인 것입니다. 이 은혜 받을 만한 때를 놓치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일 것입니까? 다시는 은혜 받을 만한 때를 만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또한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그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지금은 구원의 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구원의 날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은혜의 시기에 은혜를 받는 사람에게는 지금은 구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거역하고 받기를 거절한다면 그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날이기는커녕 멸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지금 온 세상에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은혜의 날을 놓치면 그 어디서도 은혜의 날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으면 누구든 구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는 은혜의 시기요 구원의 날입니다. 이 날에 은혜에서 떨어지지 아니하고 구원에서 낙오되는 낙오자가 되어 영영히 버림을 받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은 받을 시기와 때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1)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각오  

  (고린도후서6:3-10)


  바울은 2절에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는 말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에 대하여 제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5:13절에서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있어서 지금이 그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그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직분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1.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기 위해

  바울은 이 같은 자신의 직책이 훼방 받는 일을 원치 않았습니다. ‘훼방’이란 말은 헬라어로 모메데(μωμηθῇ)로 ‘조롱을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실제로 이 직책에 많은 조롱을 받아 왔습니다. 미쳤다는 조롱은 수도 없이 받았고 율법을 무시하는 이단자란 조롱도 받았습니다. 그는 거짓 교사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인신공격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조롱을 받는 가운데 핍박을 당해도 참았고 궁핍과 고난 중에도 견뎌 낸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므로 자신의 복음을 전하는 직책에 이런 훼방을 받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한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명한 사도들이나 유명 인사들의 추천을 받거나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지 아니했습니다. 그 이유는 직책은 추천서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바울의 뜨거운 사랑이 말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자신을 하나님의 일꾼 된 증거로 삼았습니다.

  2. 바울이 당한 환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스스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한 바울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1) 많이 견뎠다고 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위해 당한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이 견딤의 힘 곧 ‘인내’의 힘이었습니다. 아마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위로 삼는 힘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5:10절 이하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의 직책을 가지고 일하는 성도들에게 무한한 용기와 담력을 제공해 주는 확실한 상급의 약속이신 것입니다.

  (2) 바울은 자신이 겪은 고난에 대하여 4절에서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대개 비슷한말이지만 그가 당한 어려움을 이처럼 처절하게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옥에 갇히는 일을 많이 겪었고 그곳에서 태장도 맞았으며 돌에 쳐죽임을 당할 번한 일도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바친 그의 수고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도 부족하리 만치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마 그가 괴로움을 받은 일은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한 일일 것입니다.

  (3) 그러나 바울은 6절에서 이 모든 난관 속에서도 그가 이 직책에 훼방을 받지 않으려는 그의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인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인품의 깨끗함을 지켰습니다. 복음의 깨끗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런 중에도 그는 자비함을 잊지 아니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회개하는 자들을 너그럽게 받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어떤 경우에나 육신적으로 대적하거나 공격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복음 사역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4) 바울은 자신의 직책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훼방을 받을 만한 많은 조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그러나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도리를 전하는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라고 했습니다. 징계를 받는 자 같으니 실상은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건져 주시며 근심하는 자 같지만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결론 : 이 얼마나 놀라운 바울의 사명감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들은 이런 바울의 삶의 태도를 본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의 직책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22)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고린도후서6:11-18)


  바울은 11절에서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한 사실을 밝히면서 자신의 마음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마음은 열려진 마음이었습니다. 숨김 것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전달했습니다. 12절에 나오는 말씀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생각이 좁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스스로 옹색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책망도 하고 그들의 죄를 회개할 것을 권고도 했었는데 이런 일에 대하여 그들은 바울의 생각이 옹색한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들의 마음이 옹색했기 때문에 너희들 스스로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아무라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을 대하는 바울은 마치 자녀에게 대하듯 따듯한 마음과 사랑으로 그들에게 말해 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도 자신과 같이 마음을 열어 바울의 권고를 들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믿지 않는 자와의 멍에

  바울은 14절에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원래 멍에란 말은 말이나 소의 목에 얹어 놓는 기구를 말합니다. 말이나 소가 이것을 메면 힘든 생애를 살아가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면 소나 말의 목에 멍에를 메인 것처럼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둘이 짝을 짓는 생활을 의미하는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와의 짝짓기를 의미합니다. 짝짓기란 말은 단지 결혼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업이거나 어떤 일을 경영하는 일에 있어서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동업하는 일 등은 모두 함께 멍에를 메는 일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처럼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메면 그때로부터 멍에를 멘 그리스도인 들은 멍에를 멘 소나 말처럼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신자가 불신자와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하여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베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은 의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의 소유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불법한 자인 것입니다. 의로운 자는 불법한 자를 심판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의가 불법과 손을 잡고 같은 멍에를 멘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빛은 그리스도요 어두움은 죄악인 것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빛과 어두움이 함께 어울린다면 이런 멍에는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결코 조화될 수 없습니다. 벨리알이란 사해 사본에서는 ‘악마의 왕’을 뜻하는 말로 나타나 있습니다. 악마의 왕이란 곧 사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사단이 어떻게 조화 될 수 있을 것입니까?

  이처럼 바울은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메는 멍에에 대해 엄중하게 경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어떻게 우리가 믿는 않는 자들과 인생의 멍에를 함께 멜 수 있는 것입니까?

  2.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오라

  바울은 17절에서 사52:11절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두 가지로 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소속해 있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계18:4절에서 하나님은 바벨론에 속한 당신의 백성들에게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불법한 자나 어두움이나 벨리알에 속한 자들이나 우상을 섬기는 자들 가운데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따로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과 따로 있으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불러 그의 양 우리에 넣으시는 것입니다. 이 양 우리가 오늘날의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정한 세상 무리들과 구별하여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또 한가지는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정한 것이란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과 더불어 짝 짓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론 :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신분에 대하여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결코 세상과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구별하여 성별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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