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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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21-25)
 밤중소리  11-06 | VIEW : 4,410



  (21) 아브라함이 얻은 의

  (로마서 4:1-4)

  
  서 론 : 하나님의 의를 논함에는 아브라함을 등장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최초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경상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구약에서 얻는 의와 신약에서 얻는 의가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서 얻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구약시대에서는 율법으로 의를 얻고,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고 판단한다면 결국 구약시대에는 의를 얻어 구원받은 백성이 한 명도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1.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

  하나님께서 의의 표준인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가 어데 있는 것인가? 구약시대에도 많은 인류가 땅에 살고 있었으며, 훌륭한 사람들이 살았지만 왜 아브라함을 인류의 대표자로 내세워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얻는 방법을 보여주신 것인가? 우리는 성경에서 몇 가지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아브라함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아버지로 숭상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아브라함은 원래가 도덕적으로 탁월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의 인격이나 도덕적 성품이 모든 인류 가운데서 가장 월등하다고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은 예로 하여 하나님의 의를 등장시킨 이유는 다음 두 가지에 있다고 보겠습니다.

  (1)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를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를 얻지 못했다면 이 세상에는 그 어느 누구도 행위로 의를 얻을 사람이 없다고 하는 증거로 그를 등장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의롭다고 하는 의의 표준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의롭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완전한 자격을 말합니다. 죄를 범한 일이 한번도 없는 무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역시 이 같은 의의 표준에는 미달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을 등장시킨 다른 또 한가지 이유는 만약 아브라함 같은 위대한 인물이 행위로 의를 얻을 수 없었다면 이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자신의 행위로서는 의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존귀한 인격이나 도덕적 행실이 사람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 되었겠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는 의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의를 주셨을 때 오직 믿음으로 주셨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은 절대로 의를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이 나타낸 믿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름다운 면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이 같은 순종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의 순종이 행위에서가 아니라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본향 집을 과감히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행위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에게 축복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믿음에 있었던 것입니다(창12:1-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것은 이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 말할 수 없는 영광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우리에게 확실히 약속되어 있음으로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이 세상을 등지고 주님을 따라 가나안(천국)으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25년간이나 아들의 약속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려 약속의 씨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언약하신 그의 아들 이삭은 누구를 의미하는 인물입니까?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 아들에 대한 이 같은 그의 믿음은 어떤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으로부터 인류의 구세주를 바라보았고 아브라함은 그 구주를 믿음으로 의를 얻은 것입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

  다음에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려가 그곳에서 제물로 들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한 일입니다.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히 1137-19). 하나님이 이삭을 주셨을 때 그의 자손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아브라함은 믿은 것입니다. 그의 이 같은 믿음은 이삭을 제물로 바쳐도 하나님은 반드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것이라고 하신 믿음을 믿었습니다.

  결 론 :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으로 의를 얻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의 믿음을 따라 믿음으로 의률 얻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을 했던 것처럼 우리도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생활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2)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의

  (로마서 4:4-8)


  서 론 : 믿음으로 의를 주실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말할 수 없는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의 아들로 속죄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의를 주시기 위하여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그 은혜 안에는 아들의 피를 값으로 치르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를 믿는 자에게 의를 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1. 삯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은혜

  바울은 믿음으로 의를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설명에 들어갑니다.

  (1) 일하는 자가 받는 삯은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는 4절-5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공로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값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을 했다 혹은 아니했다고 표현된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그 일이란 우리 인간이 율법을 지켰다거나 자신의 어떤 행위적인 공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의가 이런 사람에게 그 대가로 당연히 돌아갈 수 있다면 그같은 의는 하나의 값이지 은혜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킨 일도 없고 의를 얻을만한 아무런 공로가 없는 죄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의를 주신다면 이 같은 일이야말로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일을 아니할지라도 의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인간 중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서 그 대가를 받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의인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의를 주시는데 이 의를 은혜로 받을 사람들에 대하여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의를 얻을만한 아무런 공로가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으니 이 같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지금 이 은혜는 온 세상에 미치고 있으며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하신 말씀대로 은혜로 구원받을 문이 활짝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고후6:2). 아브라함도 이 같은 믿음으로 의를 얻었으며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공로 없이 의를 얻는 자의 행복

  바울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인 다윗의 경우를 예로 들어 증거를 들었습니다.

  (1)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다윗을 그 증인으로 내 세운 이유는 다윗이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의 조상에 대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할 만치 다윗의 위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부른 유대인들은 장차 자기들에게 나타날 메시아야말로 다윗의 뿌리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다윗의 영원한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 다윗도 율법에서 의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를 얻었다면 누가 율법으로 의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2) 참된 복은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자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죄란 ‘히마르티아’로 과녁(목표물)을 잘 못 맞춘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과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이 같은 과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 같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행위로도 율법으로도 이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야말로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하심이란 말은 ‘압히에미’로 상관치 않는다, 탕감하여 준다, 내어 보낸 다의 뜻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신다”는 뜻입니다(롬3:25). 우리의 모든 불법을 탕감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없었던 것처럼 전혀 상관치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가리우심이란 말은 ‘에피 칼립토’로 덮는다, 감춘 다의 뜻입니다. 우리의 불법적인 모든 행실에 대하여 아주 감추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도록 하나님의 손으로 덮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감추시고 덮으신 것을 누가 들추어 낼 수 있겠는가?

  (2)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유하신 죄는 하나님께서 그 죄를 죄로 인정치 아니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정죄도 소용없습니다. 사단의 참소도 효력이 미칠 수 없습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송사하리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8:33).

  결 론 : 다윗은 이런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시는 그 죄로 인하여 정죄 함을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은혜로 받을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회개를 동반하기 때문에 사죄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23) 믿음의 의로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

  (로마서 4:9-14)


  서 론 :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의를 얻는 일에 할례의 비중이란 절대적입니다. 심지어 신실한 유대인 기독교인들 중에도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얻는 일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의 할례 당마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골4:11).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의를 얻는 하나님의 언약을 증거함에는 먼저 할례가 하나님의 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증거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아브라함의 경우에 결부시켜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의와 할례와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면서 의를 얻는 일에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시원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사죄와 의의 행복자는 누구인가?

  바울은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의 행복에 대하여 과연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행복의 대상자가 누구냐에 대하여 반문법으로 묻고 있습니다.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뇨 라고 물었습니다.

  (1) 할례자에게뇨 고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할례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중대한 의미가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실 때 여 언약이 할례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창17:9-14).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가 할례가 없는 이방인들에게 돌아간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를 주시는 일도 그것은 할례자인 자기 백성에 국한된 것인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2) 바울은 다시 그러면 무할례자에게뇨 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 상관이 없으며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다고 하니 그러면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 같은 의의 행복은 무할례자들인 이방인들에게만 돌아 갈 것이 아니겠느냐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3) 바울은 다시 의를 주시게된 하나님의 은혜를 아브라함에게 거슬려 올라가 그 근원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를 얻은 일은 할례나 무할례와 상관이 전혀 없었음을 밝힌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를 받았을 당시에 아브라함은 할례가 무엇인지 무할례가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할례나 무할례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의를 받는 행복에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울의 논증은 칼로 벤 듯이 분명하게 들어낸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의와 할례와 무할례

  하나님의 의를 얻는 일에 할례와 무할례와의 관계를 설명함에 아브라함의 경우를 그 예로 든 것은 할례의 언약도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언약도 아브라함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1) 아브라함이 의를 얻은 시기가 할례에 훨씬 앞섰다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시기는 99세시였습니다(창17:1).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시기와 할례를 받은 시기와의 시차는 적어도 14년간 이상이나 나있는 것입니다(창15:4-7).

  그러면 아브라함이 왜 무할례 시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가? 이에 대하여 바울은 감추어진 비밀을 들어내어 증거하기를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2) 아브라함에게 주신 할례의 의는 무할례 시에 받은 의의 인 침이라고 했습니다. 할례는 의의 선언이나 의의 조건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아니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아브라함이 이미 받은 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할례의 언약은 두 가지 뜻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의를 얻은 일에 대한 인 침이라는 사실입니다. 의의 인 침이기 때문에 의가 없는 사람의 할례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신약의 세례란 구약의 할례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징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는 사람의 세례란 그것이 침례이건 세례이건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이런 면으로 볼 때 육체가 받는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얻는 의가 중요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시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셨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헛것이요 믿음으로 의를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도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게 될 것입니다.

  결 론 : 믿음으로 의를 얻는 하나님의 언약은 신약시대에 와서 새삼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나 의를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나 섭리에 있어서는 시대를 따라 연장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의를 얻는 일이라든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대한 축복에 대한 언약은 이미 아브라함을 부르신 그때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와 구원의 은총으로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에 포함된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24) 믿음으로 이어받은 하나님의 후사

  (로마서 4:15-17)


  서 론 :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언약은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임을 계속하여 강조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 의의 기준인줄로 알고 그 율법에서 의를 얻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은 바로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에 대한 의의 증거를 증거 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율법이 있기 훨씬 이전에, 할례의 법을 주시기 이전에 믿음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의의 언약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율법은 그 이후에 주셨는데 이처럼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의로 언약하시고 또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으로 인간의 죄를 들어냄으로 인간들을 의의 언약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요, 사람들로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십니다.

  1. 진노를 이루게 하는 율법

율법은 인간에게 의를 이루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존재하는 목적은 진노를 이루는데 있습니다.

  (1) 죄를 죄로 들어내는데 율법의 직능이 있습니다. 율법은 의를 들어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 그 자체는 의롭고 거룩하지만 그 의롭고 거룩한 율법이 우리 인간의 죄를 들어내는 역할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란 죄를 논고하는 검사의 직능과 같은 것입니다. 죄를 죄로 들어내기 위해서는 의롭고 거룩한 율법의 표준이 필요한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비추어 주는 거울처럼 우리의 온갖 모든 죄를 들어내고야 마는 것입니다. 죄는 의롭고 거룩한 율법 앞에서 여지없이 자신의 정체를 폭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울이 우리 몸의 더러움을 씻어주지 못하는 것처럼 율법도 우리의 죄들을 깨끗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율법은 죄를 정죄하는데 그 직능이 있습니다. 율법은 죄를 죄로 들어내는 일에만 국한하지 아니합니다. 들추어낸 그 죄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정죄란 죄를 죄로 확정짓는 재판적인 선언이기 때문에 여기서 빠져 나올 길이란 전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선언은 번복할 수도 없고 취하시킬 수도 없습니다. 다만 두려운 집행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3)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범함도 없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이 없으니 물론 율법을 범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법이 생기기 전에는 그 법에 저촉될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법이 없는데 어찌 재판이 성사될 수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율법이 없다고 하여 인간의 죄가 존재치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율법과는 상관없이 인간에게는 죄가 존재합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한다”고 했습니다(롬2:12).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5:13,4).

  2. 후사가 되는 일은 은혜에 속해있다.

  후사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말합니다.

  (1) 후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속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정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가 하나님의 후사란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후사가 하나님의 은혜에 속하게 하시기 위해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주셨는데 그것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언약하신 믿음으로 의를 얻는 언약인 것입니다.

  (2) 율법은 은혜가 아닙니다. 율법은 구제 받을 길이 없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기 위한 한 방편으로 주신 것에 불과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하십니다(롬3:20).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롬3:21,22). 이 의는 행함이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사죄의 은총과 의의 부여를 받기 때문에 확실한 은혜인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심을 받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육적인 유대인의 조상으로 선택하시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를 주시기 위한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가운데 나타나 있음을 바울이 이곳에서 증거한 것입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주시는 은혜의 언약자로 세우심을 받은 사람이요 결국 그의 육적인 자손들이나 할례자들에게 언약의 후사가 되게 하시기 위해 세움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갈3:28,29).

  결 론 :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사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셨습니다(히11:6).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떤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을 수 있었나?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제단에 바칠 때 이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히11:7-19).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때 그는 이 믿음으로 고향을 떠났습니다(히11:8).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져야 그의 후사가 될 것입니다.





  (25) 아브라함의 믿음

  (로마서 4:18-25)


  서 론 :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아브라함을 선택하심으로서 그 실마리가 풀려져 나가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를 얻은 최초의 사람이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후손들에게 그의 후사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의 언약은 아들 이삭과 그의 후손에 대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이삭이란 누구인가?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씨로서 언약된 사람입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갈3:16). 말하자면 여자의 후손이 아브라함의 씨로 태어나실 일에 대한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입니다(창3:15, 마1:1). 물론 아브라함은 이 같은 메시아 탄생과 인류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그 오묘하신 섭리는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얻은 의가 분명히 자기에게 언약하신 이삭과 메시야와의 관계에서 연유된 사실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라”고 하신 말씀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선택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시려는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이삭으로 말미암은 유대인이 아닌 분명한 사실은 그 씨로 형성된 민족이 어느 한 혈통적인 민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민족이 조상”이라고 하셨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의 성장

  아브라함은 그의 의를 본문에서 밝혀주는 바와 같이 백세 때 얻은 것이 아닙니다(롬4:19-22).
  (1)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는 씨에 대한 언약이 없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하시는 약속만 받았습니다(창12:2). 그래서 그 후에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고 대답했던 것입니다(창15:1,2). 이때까지 아브라함은 의롭다함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의 후사가 될 씨에 대한 약속을 주셨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그에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봄에서 날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젤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신 것입니다(창15:4-6).

  (2) 아브라함은 99세시에 움직이지 않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시에 그에게 다시 나타나시어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주시고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다시 그의 언약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창17:19).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아브라함의 완숙한 믿음은 이때에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아내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았지만 (창17:15-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히 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 23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얻은 의가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보다 더 구체화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씨로부터 태어나실 메시야에 대한 언약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냐?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메시야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여자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하심이란 그가 하셔야 할 절대적인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예수를 믿을 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것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우리도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결 론 :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인내로 그 약속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그 후에 때가 이르면 반드시 결실케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의 씨는 25년 후인 100세시에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약속된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지금 아브라함이 그의 자손을 하늘의 못 별처럼 번성케 하셨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에게 최종적으로 약속하신 축복으로 우리도 장차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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