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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장 (101-105)
 밤중소리  01-30 | VIEW : 425



  (101) 하나가 되는 교회

  (로마서 15:1-6)


  서 론 :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성도는 하나님의 집에 속한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똑같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한 분을 함께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 아버지의 자녀들은 한 형제요 한 자녀들임에 틀림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그저 빈말로 적당히 부르는 형용사가 아니요 정말로 한 아버지의 형제들이 된 사람들임을 의미합니다. 한 가정이 잘되고 평안하려면 그 가정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가족의 이해와 관용과 사랑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가 되는 교회에 대하여 교훈 해 주고 있습니다.

  1.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

  한가정의 평강과 행복은 가족들간의 화목에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집인 교  회의 화목에 대하여 첫 번째로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한 바울의 교훈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지 말 것을 권면한 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기쁨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기쁨은 육신적인 기쁨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기쁨이 충만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 샘솟듯 솟구쳐 나와야 합니다. 이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평안입니다. 이 같은 기쁨은 그 어떤 경우에도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으며 절제할 수도 없는 기쁨입니다.

  (2)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한 의미는 다른 형제들의 신앙생활에 시험이나 유혹이나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공동체 안에서의 자기의 위치를 스스로 과대평가 하여 자신의 믿음을 으뜸으로 내세우기도 하며 누가 무엇이라 하든 자신의 믿음을 고집하는 생활에 만족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결국 독단과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3) 그리스도인의 신앙 자세는 마땅히 연약한 자의 그 약점을 담당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강한 자와 연약한 자’가 있습니다. 강한 자로 표현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이 성장한 신자로 모든 일에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의 중직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교회에는 많은 약점을 들어내놓을 수밖에 없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더 오랜 세월, 믿음의 연단과 시련과 신앙적인 체험을 통해서 앞으로 강한 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들의 연약한 부분을 친히 담당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담당한다는 말은 그 짐을 내가 진다는 뜻으로 그들에게 덕을 세우고 사랑으로 용서하고 이해해 주며 화평의 일을 도모하므로 양육자의 입장에 서서 강한 자가 되기까지 돌보아 주라는 뜻입니다.

  2.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라

  바울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생활로 다른 형제들에게 신앙적 손상을 주는 생활로부터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해 주는 적극적인 생활”로 돌이켜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내 이웃에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일은 이웃을 기쁘게 하는 생활입니다. 이웃에 대한 선은 그 이웃의 유익을 말합니다. 이 같은 이웃에 대한 선은 사랑의 생활에서 나옵니다(고전13:4-7).

  (2) 우리는 주님의 생활을 본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실은 우리의 본이 되는 생활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일은 먼저 그의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했습니다(빌2:6-8). 그는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회생이 되셨고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선사하셨습니다.

  (3)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똑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일치는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의 잡다한 모든 사람들이 제 각기의 성품과 습성을 가지고 한 우리 안에서 생활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움직일 수 없는 공통적인 위대한 공동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존재하는 웬만한 문제점은 이 목적의 그늘아래 깊숙이 파묻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이 절대적인 삶의 대 명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결 론 :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은 그리스도안에서 교회가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용서하고 선한 일과 덕을 세우는 일로 한 가족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자기의 기쁨을 나타내려는 생활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기쁨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생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남을 위한 희생 생활을 본 받아 내 형제를 위해 회생하는 생활로 서로를 아끼며 섬겨야 합니다.






  (102) 서로 받아 드리는 사랑

  (로마서 15:7-13)


  서 론 :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의 사랑과 은혜를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 나타내시는 각도에 따라 혹은 안위의 하나님, 혹은 인내의 하나님, 혹은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평강의 하나님(롬 15:33),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1:3),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5:10)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아름다운 용어들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의 역사를 나타내 주는 표현이라고 보겠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런 하나님이 우리로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너희도 서로 받으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최대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잡다한 인종, 여러 가지 성품의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흩어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성장과 부흥을 이루고 있는 이유는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이처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1) 우리가 서로 받아 드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 데 우리를 받아드리신 것입니까?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그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와 같이 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받아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약한 자로서의 시험을 받으심으로 시험을 받는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받으시면서도 그들을 배척하지 아니하심으로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 인내하심으로 고난을 받는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본은 우리들로 예수를 배우게 하심으로 그 아들의 형상을 이루시려는데 있습니다(롬8:29, 갈419).

  (2) 바울은 여기서 주를 본받아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서로’라고 말한 대상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서로 ‘받으라’ 곧 서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로마교회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간에는 많은 갈등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로운 생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선민의식 등이 갈등을 빚어내 ,교리적인 충돌이 잦았습니다. 서로 받아 드리지 아니하므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① 여기서 서로 받아드리는데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툼이나 판단은 교만이나 자기 우위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이해하고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 주려면 먼저 자기보다 다른 이를 낫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② 서로 받아 드리는 일에는 서로의 약점을 서로가 젊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약점을 판단하면 그곳엔 분쟁이 생기고 파벌이 생깁니다. 상대편의 약점을 자신의 약점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폭 넓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약점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보자기가 필요합니다.

  ③ 서로 받아 드리는 일에는 서로가 신앙의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이 한 가족으로 한 울에서 행복스럽게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서로의 협력에 있는 것입니다.

  (3) 바울은 주님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신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율법의 준행자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얽매이실 필요가 없는 분시지만 그가 친히 율법의 준행자가 되신 이유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함께 위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함 없이 서로 받아 드려야 할 것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15절의 ‘여인의 후손’의 약속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없는 약속입니다.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유대인들에게 국한시킨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2. 소망의 하나님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소망을 품고, 소망을 바라고,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생활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망이 아니라 ‘소망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확실한 소망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사죄를,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영생을, 그의 부활을 통해 우리의 부활의 소망을 확실히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소유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소망을 친히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증하신 말씀입니다.

  결 론 : 13절에서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는 모든 기쁨과 평강이 성령 안에서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소망이 넘쳐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기쁨과 평강과 소망 안에서 살아가도록 항상 힘써야 하며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받아 드리는 생활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103) 로마교회가 받은 칭찬

  (로마서 15:14)


  서 론 : 로마교회는 이방인 교회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교회요 세계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교회였기 때문에 로마교회에 대한 바울의 관심이 컸습니다. 로마교회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바울은 교회성장에 장애가 되는 약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권고하였는데 14절에 와서 바울은 로마교회가 가지고 있는 선한 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로마교회에 대한 바울의 칭찬은 세 가지로 나와 있는데 첫 번째는 그들에게 선함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지식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로마교인들은 서로 이 지식으로 권면하는 일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스스로 선함이 가득했다.

  로마교회가 칭찬들은 일은 그들에게 선함이 가득했다는데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득한 선함이란 그들의 신앙생활가운데서 맺는 열매를 말합니다.

  (1) 그리스도인의 열매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열매요, 하나는 육신의 열매입니다. 이 두 가지는 열매란 면에서 볼 때는 비슷한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가치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교인들이 맺었다고 하는 열매란 성령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도덕적인 선함이 가득하고 인간적인 사랑이 많다고 해도 그것이 성령으로가 아니라 육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같은 일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는 열매입니다.

  (2) 선한 열매란 언제나 주의 이름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선한 열매에는 언제나 뚜렷한 목적 의식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 의식이란 이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주님께서 냉수 한 그릇에 대한 상급을 말씀하시는 가운데서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막9:41). 이 말씀 중에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주의 이름으로, 주의 이름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목적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라는 뜻이 들어가 있습니다.

  (3) 선한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내가 죽는 일이 따라야 합니다. 주님은 “한 알의 밀 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육신의 사람이 죽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밀 알 안에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무한한 생명이 잠재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밀 알이라고 하는 껍질 때문에 그 생명이 밖으로 뻗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 우리들 몸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신이 죽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일지라도 육신을 입고 이 땅위에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의 생활 중에서 두 사람의 격렬한 싸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겉 사람인 육의 사람은 육신의 소욕을 이루려고 하고 우리의 속 사람은 영적인 일을 갈망합니다. 이 두 사람의 싸움에서 우리는 보통 육신의 사람에 의하여 영의 사람이 판정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사람의 소욕이 아무리 강렬하게 작용하여도 성령으로 이런 생각을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순종하는 생활을 통해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모든 지식이 가득했다.

  다음에 바울은 로마교회에 칭찬하기를 ‘모든 지식이 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지식이란 그들이 영적으로 무장하고 있는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식이 중요한 것은 이 지식이 우리를 자유케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원동력은 지식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하셨습니다(요8:32). 지식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구원에 확실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2) 주님은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우리들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일입니다. 말씀으로 구원의 확신도, 말씀으로 확실한 소망도, 말씀으로 하나님의 약속도 분명하게 소유한 신앙이 환난에도, 시험 중에도, 궁핍 중에도 넘어지지 아니하는 굳건한 믿음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가 서로 권면하는 교회임을 칭찬했습니다. 이들의 이 같은 권면은 그들의 지식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지식이 없는 사람은 다른 이를 권면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권면은 말씀의 권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서로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피차에 이 같은 권면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서로간의 권면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자세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결 론 : 언제인가 어느 성도가정에 심방을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앞마당에 심겨진 감나무에 먹음직스러운 감이 정말로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려 있었습니다. 그 감나무는 그 집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손님이 대접 받았을 때 칭찬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15:1,2)





  (104)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

  (로마서 15:15-21)


  서 론 : 바울은 그가 하는 모든 복음의 사역을 그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의 분량대로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도 컸기 때문에 그가 주를 위해 한 일도 매우 컸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더욱 담대히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바울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

  바울은 15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1) 바울이 자랑하고 감격하는 은혜란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택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지난날에 주님을 대적해 온 무서운 죄과를 깊이 생각하면서 지금 자신이 받고 있는 주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에 너무나도 감격하여 이것을 그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바울은 이처럼 은혜를 주신 일은 자기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에 그 은혜가운데서 또한 영광스러운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로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롬11:13).

  (3) 바울은 그의 직분에 대하여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셨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제사장 직무는 하나님께 받으실만한 제물을 드리는 것인데 이에 대하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 직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방인을 하나님께 거룩한 제물로 드리는 사명을 바울은 자신이 받은 ‘복음의 제사장 직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 바울이 이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이행함에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복음의 제사장들에게 바울처럼 그의 하는 사역에 능력을 나타내시는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오른손에 일곱별로 불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로 나타내시고 계십니다(계2:1).

  2. 누가 은혜를 받은 사람인가?

  은혜란 말의 헬라어는 ‘카리스’로 이 말의 뜻은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상대방에게 혜택을 주는 일을 말합니다. 특히 은혜란 말이 성경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우리의 죄가 용서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그의 아들의 피로 그를 믿는 자의 죄를 무조건 사유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의를 얻기에도 불가능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의보다 월등한 그리스도의 의를 다만 믿음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의롭게 되기 위하여 율법의 종이 될 필요도 없으며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고행할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3) 우리가 영생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을만한 티끌 만한 자격도 조건도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만 믿음으로 이 영생을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믿음을 조건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선물을 조건 없이 가져가라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은 결코 의를 얻거나 죄의 용서를 받는 대가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몇 가지 목적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①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빌1:29).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는 고난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고난을 피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아야 합니다.

  ②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쫓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딤후 1:8).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에 빚진 자들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③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마5:11).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는 욕과 핍박이 따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 같은 모든 어려움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결 론 : 바울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기 위해 어떤 생활을 한 것입니까?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일 외에는 모든 지식과 온갖 일에 대하여 더러운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빌2:7,8).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은혜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이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서 그 은혜에 감사하는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105) 축복의 사자

  (로마서 15:22-33)


  서 론 :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다니는 축복의 사자로 여겼습니다. 그는 로마교회를 방문할 것을 전해 주면서 “내가 저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사도 바울 뿐 아니라 누구이든 축복의 사자들입니다. 사자란 말은 보내심을 받은 전권대사란 말인데 이처럼 바울은 다른 사람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전권대사로 그가 보내심을 받았을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함께 받았다고 했습니다.

  1. 바울의 선교적 사명

  바울은 언제든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자임을 자부하면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갔습니다.

  (1)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의 종착지인 고린도에 머물고 있으면서 로마교회에 보내는 이 서신을 썼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지방에서 복음을 편만하게 전한 터라 이제 그는 로마를 거쳐 서바나(지금의 스페인)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새로운 의욕에 불탔습니다. 그는 1차 전도여행으로 45년부터 48년까지 3년간을 갈라디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음에 그는 2차 전도여행으로 50년부터 53년까지 헬라에서 지냈습니다. 그후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지로 에베소에 가서 54년부터 57년에 이르도록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겨울동안 3개월 머무는 동안 이 로마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2) 바울이 이처럼 자신의 생애를 복음전도의 사명자로 스스로 바친 것은 빚진 자의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에 빚진 자임을 이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누구든지 먼저 복음을 받아 드린 사람은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빚진 자의 입장에 있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아직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그들에게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빚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를 섬기려는 바울의 열심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가기에 앞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섬기는 일로 빌립보 교회와 고린도 교회의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210 \ 15:22-33
  
그때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들어 그곳 성도들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교회에서 이들을 위하여 헌금하고 바울의 손에 의탁하여 그 돈을 예루살렘교회로 보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같은 일을 마친 후에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갈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그의 계획대로 이루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는 그 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모함으로 체포되어 한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되어 갔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2. 충만한 축복의 사자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비록 가난했지만 그에게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처럼 말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고후6:9). 하나님의 종들은 적어도 바울이 가지고 있는 이 같은 사자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 해야 할 것입니다.

  (1) 바울이 말한 축복의 사자란 천국의 비밀을 전달하는 축복의 사자를 말합니다. 복음전도의 사명자는 바로 천국비밀의 전달자입니다. 천국의 비밀은 복음으로 밝히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복음전도의 사명자가 되는 것입니다.

  (2) 바울이 말한 축복의 사자란 평안을 전달하는 평안의 사자임을 말합니다.

  (3) 바울이 말한 축복의 사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는 말씀의 사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에 이르러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는 것을 보고 그 과부에게 이처럼 말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그날까지 그 통에 가루는 다 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전했습니다. 엘리야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입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은 그 말씀에 책임을 져 주십니다.

  결 론 : 바울은 15장을 마감함에 로마교회 성도들의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기 목자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하면 그 종은 영력과 능력의 종으로 역사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은과 금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있는 축복의 사자입니다. 그를 축복의 사자로 영접하고 순종할 때 그 축복과 평안이 그 집에 임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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