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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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장 (94-96)
 밤중소리  01-30 | VIEW : 788



  (94) 권세 자들에게 복종해야 할 이유

  (로마서 13:1-7)


  서 론 : 성경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대하여 세상에 속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음같이 너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신분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분명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사회생활이나 사회법규의 치외법권 자가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과 국가 또는 권세 자들과의 관계가 설정되는 것입니다.

  1.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13장 초두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1)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다고 했습니다. 국가와 교회는 별개의 것이지만 이 모두를 세우신 분은 한 하나님이십니다.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대 주재 심이로다”고 말씀했습니다(신22:28). 모든 권세란 표현은 선악의 구별을 둔 것이 아닙니다. 애굽, 바벨론, 헬라, 로마 같은 나라의 존립도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주관자들도 오직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졌습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에게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고 말해 주었습니다(단4:25).

  (2) 권세 자들에게 굴복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는 분명 악한 통치자였습니다. 물론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준 자들도 악한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판결에 따라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권세가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요9:11). 2절을 보면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라”고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바울이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권세 자들의 권위는 주로 도덕적인 차원의 법을 의미합니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된다”고 한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아무리 포악한 권세자라 할지라도 사회생활의 안정과 평안을 위한 선한 법규는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양심을 인하여 굴복하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권세 자들에 대하여 굴복하는 일에 대하여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표현에는 다음 몇 가지 뜻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선한 양심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하나님께서 세상 권세 자들에게 이 같은 통치권을 주신 사실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독재 정권 하에 있는 국가라 하더라도 인간의 양심에 의한 도덕적 규범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종교적인 문제가 야기될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권세자가 기독교률 법령으로 금지시키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취할 태도는 명백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마22:21). 가이사의 권세는 일반적인 세상적 권세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역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어떤 권세 자들의 명령에도 굴복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시대에는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온 인류로 우상 앞에 경배케 한다고 했습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했습니다(계13:15). 이런 경우의 해답을 다니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 아니 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7,18). 사람의 양심보다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양심은 도덕적 선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 보다 더욱 차원이 높은 절대적인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3) 공세와 국세에 대해서도 마땅히 바쳐야 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이상, 사회인으로서의 의무에 속한 일입니다. 공세나 국세가 없이는 국가 권세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가이사의 것들이기 때문에 가이사에게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 론 : 이 세상 모든 나라의 존망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렘18:5-10). 이 사회는 하나님에 의하여 섭리되면서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지속되어 나갈 것입니다. 이 세상의 존속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완성하면 그때 인류의 종말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인간사회에 안녕 질서와 평강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평안한 생활을 위해서입니다(딤전2:2).





  (95) 율법을 완성하는 사랑

  (로마서 13:8-10)


  서 론 :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빚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빚에 대한 교훈이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잠22:1). 갚아야 할 것은 하나의 빚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갚지 않을 때에는 어려운 곤혹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은 어느 선지자의 아내의 경우를 보면 남편이 진 빚 때문에 어린 두 아들이 그 집 종으로 팔려 가는 딱한 사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왕하4:1-7).

  1. 우리가 져야 할 사랑의 빚

  여기서 바울이 사랑의 빚이라고 말하고 있는 바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은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1)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나 남에게 반드시 갚아야할 사랑의 빚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의 빚은 하나님께 진 복음의 빚입니다. 이 빚이 일만 달란트로 나와 있는데 이 빚은 사람이 한 평생 노력해도 벌 수 없는 거액입니다. 이 빚을 탕감 받은 한 종이 자신에게 빚진 동관의 지극히 적은 빚 때문에 옥에 가두게 한 일에 대하여 그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에게 붙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마18:24-35). 바울은 이 빚을 복음의 빚이라고 말하면서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롬1:14).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일만 달란트의 빚이란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푸신 그의 이 사랑을 “네 이웃에게 베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 사랑의 빚은 먼저 복음으로 이웃에게 갚아야 할 빚입니다.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일이 이 빚을 갚는 길입니다. 바울은 이 빚을 갚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진 자의 사명을 다 감당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갚는 일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고, 빚진 자가 빚을 갚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부득불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3) 다음에 사랑의 빚은 용서로 갚아야 합니다. 우리가 탕감 받은 죄는 반사적으로 우리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므로 갚아지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죄의 용서는 어느 한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마18:21,22).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그 사랑을 갚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4) 다음에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는 일이 이 빚을 갚는 일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잠19:11). 사랑에는 행함과 진실함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했습니다(요일3:17).

  2.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다.

  성경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는 말씀은 참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시험하려는 율법사의 물음에 대하여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이처럼 말씀해 주신 일이 있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1) 율법은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할 본분입니다. 그 내용인즉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하지 말라”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의 계명은 모두 인간이 갖추어야 할 사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런 율법적인 계명을 능히 이기고 오히려 이웃에게 보다 차원이 높은 선을 공급해 줍니다. 이 모든 율법적인 계명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2) 사람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랑에 대하여 적절하게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고전12:4-6). 이런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이 같은 사랑이야말로 율법의 완성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결 론 : 예수님은 그의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시키신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신 분이시며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우리를 귀히 보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뜨거운 사랑으로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어떤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사랑의 빚을 갚는 아름다운 사랑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같은 생활은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





  (96) 주 재림의 준비

  (로마서 13:11-14)


  서 론 :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거이 마무리 지으려는 끝머리에 가서 주 재림에 관한 성도들의 태도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왜 바울이 이곳에서 이 말씀을 들려주고 있는가에 대하여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며 어느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라 해도 이 소망을 소홀히 할 수 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 재림에 대해서는 사도시대로부터 끊임없이 강조되어 오고 있는 경종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성도들에게 필요했던 말씀이라면 정말로 인류의 종말에 살아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1. 주 재림의 시기는 언제인가?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는 물론 인류의 종말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인류의 종말이 언제냐는 문제는 성경에서조차 하나의 커다란 숙제로 미루고 있습니다.

  (1) 성경에서는 주의 재림이 곧 있을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종말의 예언은 어느 시기를 가르치심이 없다는 것과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있을 것으로 예견되는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모든 교회들이 주 재림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다렸다는 사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견해는 바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서신 서에 밝히고 있는 바울의 종말관은 먼 훗날의 경우의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임박한 인류의 종말을 주장하였고 주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질 것을 강조했습니다(고전1:7. 빌3:20. 딛2:13).

  (2)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로 주 재림을 소망으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증거는 주 재림에 대하여 철두철미하게 비밀에 부쳐 두셨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성도들로 재림의 소망을 바라보게 하시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재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실현시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메시야 왕국도, 부활도, 변화도, 영원한 천국도, 그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신부단장에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끊임없이 신부단장에 대한 경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라고 하셨습니다(딤전6:14,15).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성도는 바로 주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살아서 모든 소망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소망을 목표로 우리의 신앙 생활을 단장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 깰 때가 된 이 시기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했습니다.

  (1)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잠은 영적인 잠을 의미합니다. 만약 주 재림의 시기에 우리가 영적인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경종한 말씀입니다. 이 세대는 언제나 악합니다. 그 당시 사도 바울이 생존하고 있었던 그 세대도 악했고 지금 이 세대도 악하고, 주님의 재림의 때에도 악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잠은 이 악한 세대에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상태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몇과 같이 임하리라”(눅21:34).

  (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밤이 깊었다는 말은 영적인 밤은 점점 어두워 간다는 말입니다. 낮이 가까웠다는 말은 이와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를 말합니다. 우리는 곧 다가오는 낮을 바라보고 밤의 일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3) 빛의 갑옷을 입자고 했습니다. 이 옷은 어두움의 일을 벗을 때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여기에 어두움의 일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몇 가지 나왔습니다. 방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방탕이란 재물을 가지고 인생을 즐기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즐거워하는 생활을 버리고 세상과 짝하는 생활로 즐기는 생활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술을 즐겨 찾는 그런 시대 속에서 함께 술에 취하는 자리에 이르러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음란과 호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종말의 시대상이 바로 음란과 호색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교회도 이 물결에 물들게 되는 것입니다. 쟁투와 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쟁투란 싸우는 일로 교권을 위한 싸움, 교회 안의 파벌을 위한 싸움, 정치운동으로 싸우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싸움은 주로 하나님의 종들이 범하는 죄로 주님은 이들에게 악한 종이라고 정죄하셨습니다(마24:48-51).

  결 론 : 바울은 종말에 살아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결론적인 권면으로 “오직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 생활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열매 맺는 생활을 말합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야말로 주 재림의 시기에 매우 가까운 시대입니다. 지금은 깰 때가 벌써 지난 때입니다.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 시대에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눅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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