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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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 (89-93)
 밤중소리  01-30 | VIEW : 867


  (89) 그리스도인의 영적 예배

  (로마서 12:1-2)


  서 론 : 이신청의의 교리는 진리입니다. 그 안에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섭리로 채워져 있습니다. 신구약성경의 진리를 구원의 교리로 정리한 곳이 로마서이며 바울은 이 놀라운 작업을 이루었습니다. 혹자는 교리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성경에 입각한 바른 교리는 이단의 정체를 폭로하고 바른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오히려 그 반대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11장까지 걸쳐 기독교의 위대한 교리적 설명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12장부터 그 교리를 그리스도인들의 실생활에 적용하는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다룸에 처음 1, 2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모든 근본적인 문제를 집약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인데 그 영적 예배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들이 드릴 영적 예배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영적 생활이어야 한다는 말을 이곳에서 “영적 예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곳에서 지적한 영적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의 일반적인 생활에 나타내야 할 영적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하는 “너희 몸”이란 옛사람이 아닌 새사람이 된 너희 몸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거듭난 사람의 새로운 삶의 방법을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산 제사란 새로운 제사를 말합니다. 제사란 곧 제단에 바칠 제물을 말합니다. 우리는 지난날 죽은 제사를 드렸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난날 우리의 옛 몸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려왔다”고 했습니다(롬6:13). 우리는 죄의 종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죄에게 드려왔으며 이것이 곧 죽은 제사입니다. 그러나 산 제사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리는 제사입니다. 지난날의 죄의 병기에서 의의 병기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3) 바울은 이 제사를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영적 생활입니다. 지난날에는 육신으로 죄를 섬겨 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그 육신의 사람은 이미 옛 사람으로 죽고 영적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죄는 육신으로 섬겼지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으로 섬기지 않고 영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영으로 섬긴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의 생활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고전10:31).

  2. 새롭게 변화 받는 생활

  바울은 2절에 가서 1절에서 밝힌 그리스도인의 영적 예배의 생활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밝혀 줍니다. 그것은 새롭게 변화된 생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생활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란 지난날 우리가 살아온 이 세상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들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으면서도 우리의 육신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도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는 죽을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므로 지난날에 우리를 지배해 온 죄의 습성이 우리 육체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죄의 잔여세력과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본 받으려는 죄의 잔여습성과 싸우는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투쟁적 생활입니다.

  (2)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변화의 근원을 나타난 말입니다. 새로운 행동은 새로운 마음에서 탄생됩니다. 마음의 변화 없는 영적 예배의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새로운 변화는 어떻게 오는 것입니까? 이 변화는 근본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이 변화는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내주로 변화의 발판은 형성되었어도 그 변화가 당장에 생활에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따라야 하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감동을 소멸해서는 안됩니다.

  (3)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했습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엡5:10). 우리의 생활은 무조건 세상 사람이 정당하게 보는 습관을 따라가거나 세상 풍습을 쫓거나 세상의 도덕적 윤리적 관념을 따라가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할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같은 분별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기록된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야말로 우리의 영적 생활의 지름길이 되며 영적 예배를 드리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결 론 :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란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도록 분별하는 생활올 해야 하는 것입니다.






  (90) 한 몸의 지체를 이루는 성도들

  (로마서 12:3-5)


  서 론 : 성경에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몸과 지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들을 말합니다(롬6:5). 그러므로 모든 근본은 오직 그리스도요 우리는 그곳에 연합된 지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하신 말씀이나,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하신 말씀 등은 교회에 있어서의 성도들의 위치를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엡1:23, 골 1:18). 바울은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고전 6:15). 지체에는 제각기 부여된 기능이 있으며 그 지체는 그 기능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1. 그리스도인의 생각의 절제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의 교회에서 각기 받은 은사대로 충성하고 봉사하려면 가장 명심해야 할 일이 있는데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의 비약은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 생각대로 움직이다간 낭패를 만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똑같은 능력이나 지혜나 사업적인 역량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성공했다고 해서 자신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2) 다음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를 이루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제각기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믿음의 분량은 자기가 자기 멋대로 정하는 것도 아니요 자기 생각대로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정한 분량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분량을 초과해서 생각하면 영적 교만에 빠지기 쉽고 이 분량에 미치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자가 되어 버립니다. 자신의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생활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두 번째로 자기가 품고 있는 그 생각이 어떤 일시적인 감정이나 자기 감정의 충동에서 온 것이 아닌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자라잡고 있는 믿음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자기 감정에서 생겨난 자기 생각의 믿음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심어 주시는 불가항력적인 믿음입니다. 이처럼 두 가지 모습으로 솟아나는 내 마음의 생각을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대처하여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지체와 직분과의 관계

  바울이 이처럼 말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생각의 절제야말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함에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1) 몸의 지체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한 지체를 가진 몸이란 아메바와 같은 단순세포로 형성된 미생물뿐입니다.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몸이란 사람의 몸을 비유한 표현이며 지체란 그 몸을 이루는 지체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 몸을 이루는데 있어서 한 지체 만으로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여럿이 한 몸을 이룰 때에 그 지체로서의 참 가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몸의 지체는 어떤 경우에나 몸보다 더 클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지체를 떠나서 그 이상의 자리에 앉을 수도 없고 군림할 수도 없습니다. 또 지체는 자신이 아무리 중요한 부분을 맡아 있다고 해도 그 한 지체로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 몸에 여러 지체가 불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에는 여러 지체로써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자기가 교회를 움직이는 존재인양 자신을 높여서는 안됩니다.

  (2) 모든 지체가 한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체가 제각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따로 따로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각기 맡은 직분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았던지 그 직분을 주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를 이루게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같은 일을 잘 생각하여 우리들이 교회에서 맡은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할 때 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 론 : 사람의 구조는 지극히 신비적입니다. 맹장이란 것은 아직도 그것이 왜 우리 몸에 불어 있는지에 대하여 밝혀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필요 없게 여겨지는 필요악의 맹장이라도 그 지체가 고장이 나면 맹장염이 되고 그것이 확산되면 복막염이 되어 생명의 위험까지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들을 귀히 여겨야 하며 자기 지체만을 제일로 알고 자신을 나타내는 일을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체는 오직 몸을 위해 존재하며 지체의 사명은 그 몸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91) 지체로서의 은사

  (로마서 12:6-8)


  서 론 :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들은 그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밝힌 바울은 교회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지체로서의 사명이 은사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 몸에 붙어 있는 여러 지체가 제각기 하는 일이 다른 것처럼 교회의 몸을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의 은사 역시 다른 것입니다. 이처럼 각인에게 제각기 다른 은사를 주심으로 하나님의 교회의 몸을 이루는 일에 지체로서의 사명을 다 해야한다는 것이 바울의 논리입니다.

  1. 은사는 어떻게 주시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은사의 직분을 받아 지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그러면 이 은사는 어떻게 받는 것입니까?

  (1)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직분의 은사는 자기가 원해서 받는 것이거나 자기 뜻에 의해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교회에서 직분으로 받는 은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것입니다. 내가 교회에서 아무리 미미한 듯한 은사(직분)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이 은사야말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대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모든 성도들은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고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똑같이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는 동일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의 은혜의 분량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믿음을 따라, 받은 은혜를 따라, 또 이와 같은 것들과 조화시킬 수 있는 그 사람의 재능이나 지식을 따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유익한 방법으로 각각 은사를 주십니다. 우리들 몸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지체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쓸모 없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 하나 하나가 다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할 때 우리의 몸은 정상적인 건강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교회도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2. 은사의 분별과 활용

  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의 직분에 대하여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권위의 은사, 구제의 은사, 다스리는 은사, 긍휼의 은사 등입니다.

  (1) 받은 은사가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사도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직분이 예언의 은사였습니다. 이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구약적 표현입니다. 구약시대에 있어서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예언이라 하였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선지자들의 예언이 기록된 것이 구약성경으로 불려집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도 신약성경이 완성되기까지 얼마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선지자적인 사명을 가진 사도들이나 하나님의 종들에게 은사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전파하도록 하셨는데 그것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초대교회에서 은혜를 따라 은사로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회에서 믿음의 분수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예언이 믿음의 분수를 넘으면 그 예언은 이미 하나님의 예언이거나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이 예언의 은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2)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에는 섬김의 은사적인 직분이 있습니다. 아마 이 직분은 은혜의 분량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기도하며 또 교회에서 존경받을만한 직분 자에게 주시는 은사로 볼 수 있습니다.

  (3) 다음에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 은사는 교사의 직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계속되어야 할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은혜를 주시고 말씀으로 그의 뜻을 나타내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교훈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은사는 교회에서 가장 귀한 직분입니다.

  (4)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 권위의 은사는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직분 자를 말합니다. 오늘날 각 교회에서는 이 같은 직분을 위해 권사 직분을 두고 있습니다.

  (5)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남을 구제한다는 일은 보람된 일이며 또한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구제는 사회사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어데 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며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성실함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 론: 다음에 다스리는 은사에 대하여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 은사는 교회의 치리를 말하는데 오늘날 교회에서 이 직분 자를 위해 치리장로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긍휼을 베푸는 은사가 있습니다.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은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즐거움으로 이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지체적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92) 사랑의 생활 지침

  (로마서 12:9-13)


  서 론 : 바울은 12장 초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산제사로 드리는 일”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이 같은 생활은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르는 생활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이런 생활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교회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체로서의 은사적인 직분을 잘 감당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9절 이하에서 이것을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실천적인 생활 면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사랑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사랑으로 출발해서 사랑으로 끝을 맺어야 합니다.
  (1)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사랑이란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회에서 인간간에 연결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소유해야 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지체로서의 은사적 직분이 있지만 그 모든 직분 위에 이 하나님의 사랑의 은사가 덮여져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 하라 이는 온존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골3:14).

  (2)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사람들에게 더욱 풍성하게 공급되는 은사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요일4:10,11).

  2. 사랑의 본질

  바울이 9절에서 지적한 말씀에서 사랑에는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사랑엔 거짓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참 모습은 언제나 진실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시며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이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마음속 깊은 인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에 거짓이 없다는 말은 사랑의 출발과 사랑의 끝이 한결같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사랑을 쏟다가 그 사랑이 얼마안가 끊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익이 이를 때는 사랑이 가고 손실이 있을 때는 사랑을 거두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높으면서도 깊고 그리고 일직선으로 끝없이 이어 가는 사랑입니다.

  (2) 다음에 사람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악할 일에 적용될 수 도 없고 활동할 수 도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악한 일을 도모하는데 사랑을 쏟았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에나, 불의한 일, 덕을 세우지 못하는 일에 사랑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언제나 악과 병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악을 미워한다는 말은 사랑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악한 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3) 다음에 사랑은 선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선한 일에 개입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는 곳에는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선한 열매가 있는 곳에는 사랑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선한 일에 성도들이 마음을 함께 하여 힘써야 합니다. 그곳에서 형제간의 참 사랑이 싹트는 것입니다.

  3. 형제에 대한 사람과 봉사의 방법

  10절 이하의 말씀은 교회 형제들간에 이루어 나갈 사랑의 권면입니다.

  (1)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형제간의 사랑이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서로 우애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형제간의 사랑은 우애와 존경입니다. 우애란 말은 친구간에 나타내는 최고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형제간의 사랑엔 존경이 필수적입니다. 존경이 없는 곳에 사랑이 설 곳이 없습니다. 존경의 반대말은 멸시와 천시가 됩니다. 형제들과 바른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존경이 따르는 것입니다.

  (2) 11절에서 봉사의 방법이 나옵니다. 첫째로 교회에서 봉사는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교회에서 사랑의 봉사의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다음에 게으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힘쓰라는 말은 할 시간이 없어도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자기 집에 찾아오는 형제를 후히 잘 대접하는 일은 진실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했습니다(히13:2).

  결 론 : 우리는 무슨 일에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각 지체마다 조화 있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일 이상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사랑을 따라 여러분의 지체를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93) 사랑의 사회생활

  (로마서 12:14-21)


  서 론 :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사회생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생활의 방법에 있어서 두 가지 대 전제를 말씀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뿔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 앞에 비취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마5:13-15). 오늘 주시는 14절 이하의 말씀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생활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이웃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원수에 대한 생활방법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나갈 때, 우리 생활에 부딪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의 형제들이요 다음은 우리의 대적들입니다. 그런데 원수에 대한 우리의 생활 태도에 대해 축복하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원수를 갚지 말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우리가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해 주어야 할 이유는 우리가 받는 핍박은  하나님의 상급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

  (2)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무리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진리를 알지 못하므로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저주하면 안됩니다.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3)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도 그들에게 관대하시다는데 있습니다(벧후3:9). 하나님은 악인이 그들의 죄악으로 죽는 일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겔18:31,32). 그 뿐 아니라 악인들에게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셨습니다(겔 33:19).

  (4) 우리가 그들을 정죄치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저주나 정죄의 사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의 직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하여 준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경종 하셨습니다(마18:22-35).

  2.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

  바울은 18절에서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먼저 형제에 대하여 몇 가지로 교훈 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형제의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는 자의 고통을 함께 지라는 뜻입니다.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도울만한 일을 찾아서 스스로 도움이 되고 함께 그 짐을 져주는 일입니다.

  세 번째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사랑은 겸손에서 그 잎이 솟고 그 뿌리가 내려집니다. 형제는 서로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한 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자신을 형제보다 낮은데 처할 때 하나의 마음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원수와의 화평에 대하여 몇 가지로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살전5:22). 악을 대항하기 위하여 악을 사용하는 일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악은 그 어떤 일에나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원수를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8-45). 원수 갚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원수에 대한 우리의 태동 대하여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결 론 : 우리는 무슨 일에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이 같은 삶이 한없이 미련스러운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방법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런 생활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생활임을 알고 이 같은 생활을 통해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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