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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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장 (83-88)
 밤중소리  01-30 | VIEW : 2,883


  (83)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

  (로마서 11:1-6)


  서 론 : 바울이 말한 10장까지의 논증을 들으면 큰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바울이 증거한 말씀으로 비취어 본다면 어느 면으로 이스라엘은 복음으로 완전히 버림받은 사람들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도 이방인들처럼 복음적인 소망이 있다고 단정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라고 말한 자기백성이란 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정한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해 주는 말이 아닙니다. 육적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1)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자손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많은 민족가운데서 유독 그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선택임으로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축복입니다.

  (2) 그러나 이 같은 이스라엘의 택하심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택하심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된 것은 이방인들에게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 없는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같은 특권적인 민족적 우월성을 스스로 버리고 육신적인 자손의 위치에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해 왔습니다.

  (3) 바울은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었습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자신의 신분을 밝힌 것은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버리셨다면 자기도 그의 백성인데 어찌하여 사도의 직분까지 주셔서 복음의 일꾼으로 삼았겠느냐는 것입니다.

  (4) 바울은 다시 이 사실을 거슬려 올라가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서 증거 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과 이세벨에 의하여 그의 생명이 심히 위태한 처지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송사 하는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끓지 아니한 사람 7천을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보기엔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7천명이나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숨겨 두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 중에 복음을 따라 구원을 얻을 백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도 남겨두신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바울은 5절에서 이 남겨 두신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1)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랐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육신적인 선택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이 같은 선택은 은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라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건 이스라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은혜로 말미암은 택하심이 아닙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도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를 두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다 불순종하는 것 같고 다 복음을 거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혜로 하나님의 선태 받은 사람들이 남이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 중에도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행위로 보아서는 구원 얻을 자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10장에서 밝혀 준대로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리라”고 했습니다(롬10:2,3). 이 같은 그들은 마땅히 복음에서 떨어질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그 가운데도 구원받을 그의 백성들을 선택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4) 은혜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말합니다. 은혜엔 인종이나 지식이나 학식이나 빈부나 사회적 신분에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 생명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 론 :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입장에 있었으면서도 복음을 거슬림으로 구원의 은혜에서 떨어진 사실에 대하여 심히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의 많은 수효가 복음으로 돌아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그 복음을 거역하는 사실에 대하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절망적이 아님을 알고 이스라엘로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간절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는 계시를 받고 동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남은 자, 잃은 양을 찾아야 할 사명에 불탔습니다.






  (84) 아직 소망이 있는 이스라엘

  (로마서 11:7-12)


  서 론 : 유대인들 중의 그리스도인들이나 이방인들 중의 그리스도인들 중에 가장 궁금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장차 이스라엘은 어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복음으로 넘어졌으며 이방인들이 오히려 구원을 얻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스라엘이 넘어짐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이 얻지 못한 이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1) 약속된 메시야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오래 전부터 메시야를 약속 받았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전도한 말을 보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했습니다(요1:45). 안드레가 자기형인 시몬 베드로를 찾아가 예수를 소개할 때도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요1:41).

  (2) 약속된 구원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야로 말미암은 구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한 구원은 메시야를 믿음으로 얻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메시야 왕국을 이루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원을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들이 구해 온 이 같은 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자신들이 구해 온 것을 얻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잘못된 지식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정죄하는 율법의 의만 알았지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의를 몰랐습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성경지식은 메시야에 대한 지식의 오류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라고 원한 메시야는 죽지 아니하는 메시야로 그 메시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메시야였습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고 공박했습니다(요12:34).

  2.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는 이유

  바울은 7절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택한 자와를 구별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으로서의 하나님의 백성된 영광을 얻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들 모두가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롬9:6-8).

  (1) 택하심을 입은 자란 창세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적인 이스라엘을 그의 택하신 백성으로 예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자손으로 태어난 특권,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신 일, 제사제도를 주셔서 사죄의 길을 주신 일 등에 대한 축복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런 특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자 외에는 아무런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2) 택하심을 입은 자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구원 얻을 약속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자녀가 아닙니다. 그의 믿음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이 성경에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갈3:28,29).

  바울은 11철에 와서 이스라엘이 실족한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의 대답은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5절에서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 중에도 하나님이 은혜로 남겨 놓으신 그의 백성들을 남겨 두셨기 때문입니다.

  (3) 바울은 이스라엘의 넘어짐의 하나님의 섭리의 배경에 대하여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구원받을 백성들이 있는데도 고의적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애초에 하나님은 그처럼 예정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는 일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어 주신 것입니다.

  (4) 이스라엘의 은혜의 시기는 아직 그 때가 이르지 아니했습니다. 아마 주님의 재림 시에 그들의 시기심이 격발되어 그들로 재림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민족적인 회개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슥12:10). 바울은 이 같은 이스라엘의 완악함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시편 69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의 죄과에 대한 보응임을 예언했습니다.

  결 론: 바울은 이스라엘의 특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받는 십자가에 대하여 종말에 가서 넘치는 은혜의 축복이 있을 것임을 밝혔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에게 내리실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의 역사가 나타날 때에는 그들의 그 역사로 인하여 온 세계가 축복 받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축복이란 선지자로 예언하신 것인데 그리스도의 왕국을 말합니다






  (85) 자긍치 말아야 하 이방인

  (로마서 11:13-18)


  서 론 :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골육의 형제들인 유대인들에 대한 구원에 대하여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견딜 수 없이 마음에 분함을 안겨준 것은 그리스도안에 들어온 이방인들의 자긍이었습니다. 로마교회는 이방인 교회의 표본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불신적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교만하고 자긍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구원의 뿌리를 밝히면서 자긍치 말아야 할 것을 경종 했습니다.

  1. 이스라엘이 버림당함으로써 세상과 화목된 복음

  바울은 15절에서 참으로 의미 있는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복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라고 했습니다.

  (I)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있어서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적어도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된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모든 육적인 자손이 구원의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하셨습니다(롬9:6-8). 물론 이 약속의 자녀가 신약시대에 와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인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고 있지만 복음이 이방에 전파되기 이전까지는 이 약속의 자녀가 이스라엘 중에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 그런데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저희를 버렸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구원의 은혜가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구약시대에 이미 그 수를 채우셨습니다. 이제는 그 구원의 은혜가 이방인에게 미쳐야 할 시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구원의 하나님의 섭리이심을 바울은 밝혔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만의 선택이나 구원을 위한 것은 아니셨습니다. 그 일차적인 구원은 이스라엘에게로 돌아갈 것이지만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참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정된 모든 백성들에게 적용하시려 한 것입니다.

  (3) 바울은 이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세상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기 전에는 모든 세상이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과 하나님과의 화평을 가져온 것입니다(엡2:16-18.)

  2. 이스라엘의 받아드림으로 소생하는 역사

  바울은 이스라엘의 버림당함과 함께 그들이 다시 받아드려질 일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 드리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은 영원히 버려진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장차 회복될 일에 대하여 19절 이하에서 여러 가지로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증거한 바로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두 가지 모습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하나는 “오직 택하심을 업은 자의 구원”입니다. 바울은 모든 이스라엘이 버림당한 것 같은 이제도 “그런즉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롬 11:5).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의 시기입니다. 바울은 이 시기가 반드시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은 그 받아 드려질 때가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바울은 25절에서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 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 가 그리스도안에 들어와야 그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시기가 바로 예수님의 지림 때이며 이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마지막 추수의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슥12:10).

  (3)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적용한 이 말은 처음 익은 곡식가루의 떡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령에 근거를 둔 것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제물을 드림으로 그들이 수확한 곡식 전체를 드린 것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신15:17-21). 제사하는 처음 곡식가루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처음 선택한 아브라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이방인에게 보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우위를 둘 수 있습니다.

  (4) 이방인은 꺾여진 가지에 접부침을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꺾여졌다는 것은 그들의 불신을 말합니다. 사실인즉 유대인의 불신이 이방인에게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접부치기 위하여 그 가지를 꺾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은 그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된 것입니다.

  결 론 : 바울의 이 같은 경종은 바울이 자신의 골육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울분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생명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복될 날이 올 것임을 바라보고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아니했습니다.






  (86) 믿음과 접붙임

  (로마서 11:19-24)


  서 론 :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차이점을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와의 경우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구원의 나무는 참 감람나무뿐입니다. 돌 감람나무는 구원의 여망이 전혀 없습니다.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이 구원을 얻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입니다.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 열매를 맺게 된 것은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참 감람나무의 얼마간의 가지를 꺾으시고 돌 감람나무 가지인 이방인들을 꺾이운 참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음을 명심하라고 바울은 모든 교회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원 가지를 꺾으신 하나님

  원가지들이 꺾이운 이유를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 신앙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구원을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 받으므로 원 가지와 같이 열매를 맺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원 가지가 꺾이운 것은 이방인으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돌 감람나무와 참 감람나무의 예를 들어 버림받은 유대인과 구원을 얻게된 이방인의 경우를 비교하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불 신앙으로 꺾인바 되었습니다. 그들이 꺾이운 것은 물론 그들의 불 신앙이 이유이지만 그것은 또한 하나님이 영원한 구원섭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이 꺾이운 것은 이방인으로 하여금 그 참 감람나무에 접붙이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2) 그러면 참 감람나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울이 비유로 들고 있는 참 감람나무란 하나님의 구원의 줄기를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참 감람나무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브라함을 통한 언약으로 비로소 세상에 그 비밀을 들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나무의 뿌리는 아브라함으로 그 뿌리로부터 줄기가 뻗어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구약시대에 있어서 이 나무는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은 이 나무에 전혀 관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방인중에도 혹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겠지만 여기서 바울이 다루고 있는 문제는 그같은 개인적인 구원문제인 것이 아니라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포괄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열매를 맺는 나무는 오직 참 감람나무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사역을 때를 따라 역사 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을 기점으로 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방인에게 전파하게 하셨는데 이것이 복음입니다. 육신적으로 말하면 아브라함과 이방인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방인과 아브라함과 이어지게 되었으며 아브라함의 약속이 전체 이방인에게 미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자손들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그때가 세례 요한 때까지인 것입니다. 그 후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하심에 참 감람나무의 원가지를 꺾으시고 그곳에 돌 감람나무 가지들을 접붙이심으로 이루셨습니다.

  2.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

  바울은 이방인 교회들에게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고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들이 높은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할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잠정적으로 버리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 가지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우리들도 그들처럼 불신 중에 처하면 버린바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 우리가 높은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할 일은 우리는 돌 감람나무의 처지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참 감람나무의 뿌리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가지들도 아니었습니다. 아무 쓸모 없는 돌 감람나무였습니다. 이 가지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인바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에서입니다.

  (3)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넘어지는 자에게는 엄위가 있으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나 사랑에는 언제나 공의가 있으며 엄위가 그것을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에 넘어지는 자에게는 사랑과 긍휼 대신에 엄위가 그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돌 감람나무인 이방인의 경우에 비취어 참 감람나무 가지였던 이스라엘이 불신에서 돌이킬 때 그들의 접붙임이 얼마나 확실하겠느냐고 강조하므로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바울의 소망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 론 : 우리는 돌감나무에 속한 가지들로 하나님의 구원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 같은 존재를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 주심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87) 이스라엘 회목의 비밀

  (로마서 11:25-27)


  서 론 :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성경전체에 걸쳐 실로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예언으로 이사야로 말씀하신 내용을 들었지만 바울은 이스라엘 회복에 관한 여러 예언을 함축 있게 종합적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예언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하여 이 예언이 성취될 시기의 비밀을 이곳에서 밝혀 주었습니다.

  1. 이스라엘이 언제 회복될 것인가?

  바울이 이곳에서 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특히 강조하려는 것인가? 그것  이스라엘이 참 감람나무 줄기에 반드시 접붙임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방인 교회에게 밝혀 주므로 그들의 교만을 꺾으려는 것입니다.

  (1)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완악하게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이 불가불 완악한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참 감람나무 가지 얼마가 꺾이운 바 되었고 그곳에 이방인인 돌 감람나무 가지가 접붙임을 받아 참 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무한정이 아닙니다. 이방인의 때가 있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버림받은바 된 원 가지들이 다시 참 감람나무에 접붙인바 되어 이때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완악하게 되었다는 바울의 말은 이스라엘이 율법적인 의를 고집하므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저버렸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적인 의야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은혜의 선물인줄로 알았습니다. 이런 그들의 고집은 결과적으로 하나님 앞에 완악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복음이 이스라엘의 배척을 받고 이방인들에게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의 수효도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으로 그 수효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때까지 온 이방세계에 힘있게 전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전파의 문이 닫혀질 날이 반드시 옵니다. 바울은 증거하기를 바로 그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자비에 의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2.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시는 날

  이스라엘의 완악한 마음이 돌이킴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시기에 대하여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신다”고 말했습니다.

  (1)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신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하늘의 시온에서 내려오실 때가 있습니다(계19:11-21). 이때 이 구원자는 이스라엘의 메시야로 오셔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회복하시고 새로운 메시야 왕국을 이 땅 위에 건설하실 것입니다. 그 왕국이 계시록 20장에서 밝혀주고 있는 천년왕국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제인가 시온에서 내려오시는 진짜 메시야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가 다른 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시란 사실을 바라보고 가슴을 찢는 민족적인 회개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2) 구원자가 오시면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신다고 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스가랴는 이처럼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슥12:10).

  (3)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시는 일에 메시야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분명한 약속을 주셨지만 그들은 그 비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니엘 9장에서 메시야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왕국에 대하여 70이레의 비밀로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70이레의 계시에서 초림의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재림하시는 영광의 메시야의 모습만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이 만약에 이 예언에서 메시야의 초림과 재림을 깨닫고 초림의 메시야의 예언을 이사야 53장에 나와 있는 고난받는 종과 연결시킬 수만 있었다면 그들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4) 바울이 온 이스라엘이라고 말한 이스라엘은 끝까지 남은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직도 많은 십자가를 지고 인류 역사의 종점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재림을 전후하여 이방인 교회들도 많은 환난을 겪고 통과해야 하지만 이스라엘이 겪어야할 환난은 더욱 큰 것입니다. 이 시기를 예레미야는 ‘야곱의 환난의 때’라고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렘30:7). 그리고 이때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수에 대하여 이처럼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3분지2 는 멸절하고 3분지1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3분의1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슥13:8,9).

  결 론 : 지금 이방인의 때의 문이 점점 닫혀져 가고 있습니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4:14). 복음이 온 땅에 전파되어 이방인의 수가 채워지면 이제 인류의 종말이 올 것입니다. 이때에는 구원의 은혜가 이방인에게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복음을 거역하는 모든 인류에게 긍휼이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이 구원의 시기에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88) 후회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

  (로마서 11:28-36)


  서 론 : 그리스도안에 있는 이방인과 이스라엘과는 실은즉 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이들 둘이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교회와 복음을 배척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어떤 면으로 보면 서로간에 원수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이 일은 구약시대에는 이방인들을 순종치 아니하는데 가두어 두심으로 이스라엘로 긍휼을 얻게 하시고 신약시대에는 이스라엘로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심으로 이방인들에게 긍휼을 얻게 하시는데 이제 앞으로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게 베푸시는 긍휼을 저희도 다시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혀 주므로 종국에는 모두가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함에 이르게 된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는 이스라엘

  바울은 28절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양면적인 관계를 ‘원수 된 자’와 ‘사랑을 입은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에 대하여 바울은 “너희를 인하여”란 토를 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로 그 심령을 어둡게 하시고 복음으로 이방인들을 불러 드리심으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수지간이 되었다고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이스라엘이 복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논리가 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여인의 후손으로 언약하신 메시야의 탄생을 계획하시고 만인 중에서 이스라엘을 그같은 백성으로 선택하신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크나큰 영광을 지닌 민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이 같은 택하심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그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 왔으며(1948년 8월 15일에 독립을 선포했다). 또 앞으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대로 인류의 종말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고 그 거역하는 기간이 심히 오래 계속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나님은 그들의 택하심에 대하여 후회하시는 것이냐? 이에 대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일은 잘못된 점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애초에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대로 성취되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추호도 실패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후회하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2. 모든 사람에게 긍휼 하심을 베푸시는 하나님

  바울은 30절부터 32절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관계를 매우 조화 있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순종치 아니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죄로 버려진 상태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몰랐고 그 말씀에 대한 순종도 몰랐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결과적으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게 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2)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 같은 불순종은 결국은 이방인에게 나타내 보이신 긍휼을 그들에게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순종은 마음의 완악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불순종가운데 있는 것은 이제 그들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이 계시는데 이스라엘은 이런 긍휼을 통해서 지금 그들의 불순종한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구원이 이루게 될 것입니다.

  (3) 바울은 여기서 이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고 했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타락은 회복할 수 없는 무서운 죄를 가져오게 되어 모든 인간이 사망 중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인간에게 의를 얻을 수 있는 어떤 길도 열어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불순종 중에 얽매어 놓아 두셨는데 그 이유는 때가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크신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결 론 : 바울은 너무나도 갚고 오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는 놀라운 찬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토록 있으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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