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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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10)
 밤중소리  11-06 | VIEW : 3,096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로마서 1:1-2)


  로마서는 신구약 성경의 구속의 진리를 밝혀 놓은 기독교의 교리서입니다. 만약 성경에 로마서가 빠졌다면 우리는 성경에서 바른 구원의 도리에 대하여 깨닫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론 구원의 교리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매개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누구든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성경 전체의 진리를 교리적인 면에서 풀이한 하나의 교리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를 배우는 가운데 구원의 진리가 분명해져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로마서가 기록되기까지

  바울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바울은 로마에 가 본 일이 없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예루살렘에 올라와 회심한 유대 계 나그네들이 자기 고장으로 돌아가 세웠을 가능성이 많으며 그들 중에는 바울에게 신앙적인 영향을 받은 얼마간의 사람들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세계 제일의 도시였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세계적으로 전하기에 최적안 로마 시를 중심으로 그의 복음 사역을 시도하려고 한 일은 훌륭한 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들어가 활동을 하기 전에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여겨 이 로마서를 집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서신은 바울이 이방 교회에서 거둔 구제 헌금을 가지고 그리스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직전 고린도에서 써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연대는 모르나 아마 주후 57, 58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보낸 후, 3년이 지난 후에야 로마에 이르게 됐는데 그 때 바울의 신분은 개선 장군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의 죄수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이 위대한 로마서를 기록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바울은 이 서신 서두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종이란 말은 원래 좋은 뜻으로 불려지는 말이 아닙니다. 종이란 원어적으로 노예를 말하는데 이 노예란 물건처럼 매매되는 신분입니다. 바울이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종이란 말의 원리에 입각하여 부쳐진 이름입니다. ‘ ...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고전6:19,20).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값을 지불하시고 당신의 소유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세 가지 관계를 살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 마땅히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다음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까지 보내신 자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서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불하신 그 아들의 피로 말미암아 죄의 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종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종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① 종은 상전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롬12:1). 우리의 몸으로 자기를 기쁘게 하는 생활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께 기쁘시게 한 것이 무엇인가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 종은 주인을 성실하게 섬겨야 합니다. 종의 직무란 주인을 섬기는 일뿐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상급은 이 종의 위치를 잘 지키는데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 : 우리는 성경에서 할례 받은 귀란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신15:16,17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 도다.’ 할례 받은 귀에 대하여 신15:16,17절에서 이르시기를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송곳을 취하여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영히 네 종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종만이 주의 말을 들으며 그 말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주님께서 7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말씀 뒤끝에 가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종으로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의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2) 미리 약속하신 복음

  (로마서 1:1-2)


  바울은 여기서 복음의 시작이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나 그의 복음 사역을 통하여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 미리 약속된 복음

  복음이란 말은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이란 뜻입니다. 죄로 영원히 멸망 받게 된인생들에게 좋은 소식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죄의 소식이요 구원의 소식이요 영생의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복음은 널리 전파되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은 오직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소식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 그의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 복음이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음을 밝힌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하나님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복음은 그 아들에 관하여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이란 오직 유일하신 아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들은 복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로 복음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오직 그 아들로 판결이 납니다. 다른 아무 것도 개입될 수 없습니다. 복음이란 그 아들에 관한 소식인 것입니다.

  2. 선지자들로 약속하시고 증거하신 아들

  바울은 복음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에 미리 약속하였다고 말하므로 성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밝힌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이 신약 성경에만 있는 줄 알고 신약에만 편중하지만 그러나 신약에 나타난 아들은 이미 선지자들에 의하여 증거 된 구약의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복음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① 이 아들에 관한 약속은 여인의 후손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복음은 그 기원이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담이 죄로 인하여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 아들에 관하여 약속하심으로 복음이 처음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장차 죄로 타락한 인생들에게 보내실 메시야에 대하여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3:15).

  ② 이 아들은 아벨의 제상에서 나타납니다. 아들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최초의 의인이 아벨로 나타납니다. 그는 어린양을 잡아 그 피와 기름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림으로 의롭다 하는 하나님의 선언을 받은 것입니다(창4:4)

  ③ 이 아들에 관한 언약은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데아 우르에서 부르신 것은 그를 통하여 약속의 메시야를 태어나게 하시려는 뜻에서입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 ’라고 하신 아브라함의 씨란 이삭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신 것입니다(창12:12-23).

  ④ 유월절의 제정도 그 아들에 관한 약속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최종적으로 내리는 장자의 죽음의 재앙에 대하여 그들의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뿌리므로 재앙이 이치지 않고 유월하는 약속을 받았는데 이 피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출12:12-23).

  ⑤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에 단 구리 뱀도 그 아들에 관한 약속의 그림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니고데모에게 증거하셨습니다(민21:6-9 ; 요3:14).

  ⑥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라고 증거한 그 선지자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율법 책에 기록된 약속으로 이스라엘은 이 말씀에 의하여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신18:15 ; 요1:21).

  ⑦ 시편에는 수 없이 많은 아들에 관한 약속들이 있습니다.
  시2:2  기름 받은 자
  시2:12  그 아들에 입 맞추라
  시16:10  그리스도의 부활
  시22장  주님의 고난
  시89:4  다윗의 자손에 대한 약속
  시110:4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으로

  ⑧ 이사야서에도 그 아들에 관한 약속이 많이 있습니다(사7:14 ; 9:6,7 ; 11:1,2 ; 53:9).

  결론 : 하나님은 선지자들로 그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여 그 아들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지므로 하나님의 약속에 견고히 서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

  (로마서 1:1-4)


  바울은 복음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두 가지 면에서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처럼 그리스도의 태어나심과 그의 부활을 통하여 그의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인성

  그리스도의 신적인 요소는 그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적인 요소는 그가 곧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적인 요소만 주장한다면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모든 이단적인 요소가 이 같은 설로부터 나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열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고 했습니다(요일4:2,3).

  그러나 반면에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그리스도는 하나의 인간에 불과함으로 그를 하나님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다른 이방 종교와 다를 바 없으며 죄로 타락하여 멸망을 받게 된 인생들에게 아무런 소망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는 참 사람도 되시고 참 하나님도 되신다’고 하는 그의 신성과 아울러 인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①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혈통이란 말은 언약의 자손이란 뜻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표현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메시야의 언약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심겨져 있습니다. 다윗의 혈통이란 주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실 육신적인 혈통의 계보를 말합니다. 실질적으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②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란 말씀은 그의 인성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실 메시야에 대한 언약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실상 계보 상 다윗의 혈통으로 태어난 다윗의 자손이 아니고서는 메시야가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으로 구약에서 언약하신 메시야에 관한 일이 완성되었습니다. 혈통이란 말은 씨, 종자 혹은 후손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본질성을 가지고 태어나셨음을 의미합니다.

  ③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혈통으로 태어나신 일은 하늘에서 이 세사에 사실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신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성자 하나님께서 다윗의 혈통을 입어 언약의 자손으로 세상에 오신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하신 가장 극적인 사역이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입니다.

  2. 그리스도의 신성

  다음에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바울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사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란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인성을 인정하기는 쉽지만 그의 신성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인간의 지혜로서는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① 예수님은 그의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정되었다는 말은 부활로 그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셨다 해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틀림없습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메시야 관을 나무라시는 말씀 가운데서 시편에 있는 말씀을 인용히시어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는’는 말씀으로 메시야는 다윗의 주이심을 성경적으로 밝히셨습니다(마22:41-45).

  ② 그리스도는 성결의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결의 영이란 죄로 오염되지 아니한 영을 말합니다. 이런 영의 소유자는 오직 이 세상에 그리스도 한분 뿐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분이지만 그분에게도 영이 있으셨습니다. 그가 소유하신 영은 성결의 영으로 그의 참 생명이 되시는 영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성결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그의 영은 죽은 그의 육신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우리도 그의 성결의 영과 연합되므로 우리의 죽을 몸을 그의 몸처럼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빌3:21).

  결론 :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은 이처럼 그의 인성과 신성이 함께 하시는 분으로 그는 사람이시면서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태어나심은 약속의 메시야를 보내심이요 그의 부활하심은 그가 언약의 메시야라는 하나님의 확실한 증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생은 오직 그에게만 있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

  (로마서 1:5-7)


  바울은 자기가 부르심을 입은 일에 대하여 이미 영원 전에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택정을 받았다고 하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본서에서 자기를 소개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택정하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습니다. 여기서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는 말은 확실한 하나님의 소유물로 하나님의 예정을 입은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부르심을 입은 자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① 이 부르심을 유효한 부르심을 말합니다. 유효한 부르심에는 하나님의 택정이 따라야 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곳에서 청함만 받은 사람은 부르심을 입은 자가 될 수 없습니다(마22:14).

  ② 유효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예정에서 나옵니다. 장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예정을 중심으로 그 교리가 정립되어 있습니다. 세례 문답 조례 51문에는 ‘장로 교회의 교리가 무엇입니까?’는 물음에 ‘하나님의 예정입니다’고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이 세상에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하여 무엇이나 미리 작정해 놓으셨다’고 하는 성경적 견해가 하나님의 예정 교리입니다.

  ③ 하나님의 예정의 뜻은 믿어 순종케 하시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며 그를 또한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믿어 순종하는 열매를 반드시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정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도전에 부닥치게 됩니다. 만약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에 의하여 만세 전에 결정된 것이라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허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어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믿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런 공격 앞에 그들을 이해시킬 대답이 없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런 사람들의 항변에 이처럼 대답했습니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이 없느냐’고 공격했습니다(롬9:19-12).

  2.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

  바울은 7절에서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을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하니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복음을 통하여 성령으로 이 사랑을 깨닫게 하여 믿음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② 성도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성도란 말은 ‘하기오소’란 헬라어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정을 입은 사람들로 하나님은 이들을 복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로 부르십니다. 교회는 이 땅에 존속하고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③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 중에 가장 값진 선물은 그 아들로 값없이 주신 구원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는 모든 선물이 다 은혜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가 넘치는 생활은 가장 복된 생활인 것입니다. 평강이란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오는 마음의 평안을 말합니다. 이 평강이 우리의 생애를 주장할 때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결론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소유라면 우리의 생애는 마땅히 그 소유주 되시는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는 먼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엡5:10).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다운 생애를 살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바울의 간절한 마음

  (로마서 1:5-7)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심히 사모했습니다. 아직 신앙적으로 어리며 교리적으로 미숙한 그들에게 바울은 자신이 받은 복음의 계시를 속히 전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열매를 거두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처럼 자신의 간절한 기대와는 달리 로마로 가는 길이 쉽사리 열리지 아니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쓰는 그 순간에도 로마로 달려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이 막으신 것은 이 로마서를 쓰게 된 동기가 되었으니 오히려 하나님의 오묘하신 뭇이라고 하겠습니다.

  1. 바울의 감사

  바울은 때때로 로마교회의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바울은 그의 심령에서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I) 바울의 감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감사였습니다. 감사란 말은 ‘유카리스티아’로 좋은 것을 값없이 준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애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항상 가장 좋은 것으로 값없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감사에 대하여 그 서두에 첫째란 말을 쓴 이유는 편지 내용의 순번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가장 요긴한 일이 감사임을 나타낸 말입니다. 바울은 이 같은 감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바울이 감사하게 된 원인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나 생애에 예수가 없이는 감사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감사의 조건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함이기 때문입니다.

  (2) 바울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바울이 감사한 그 감사는 폭이 넓었습니다.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국한시킨 감사였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감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 감사의 범위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3) 바울의 감사는 그들의 믿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에게 믿음이 있는 일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은 자라며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2. 바울의 증인

  바울은 로마교인들을 위한 기도와 그들을 향한 그의 간절한 사모함의 중인으로 하나님을 내세웠습니다.

  (1) 바울은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자신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섬기는 범위와 섬기는 자세를󰡒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복음 안에서란 말의 의미는 그 아들로 말미암은 구원, 긍휼, 사랑, 한없는 용서 둥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지난날처럼 의를 얻기 위해 율법의 행위로 섬긴 것이 아니라 심령으로 섬겼습니다.

  (2) 바울은 그의 기도에서 쉬지 않고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너희를 말하며󰡓라고 한 말은 너희 기억을 만든다고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기도할 때 성도의 이름을 그의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일은 그 사람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될 것입니다.

  (3) 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원한 것은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였다고 했습니다. 은혜 ‘카리스’와 은사 ‘카리스마’는 비슷한 단어로 불려지지만 그 뜻은 서로 주고받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은혜는 그의 아들을 통해서 우리가 거저 받는 선물이지만 은사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용사, 충성,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믿음에 비해 맺는 열매가 적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가 로마에 가면 이런 면을 잘 깨우쳐 그들로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겠다고 바울은 생각한 것입니다.

  (4) 이 같은 바울의 생각은 서로 안위함을 얻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서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눠줌으로 그들의 믿음을 더욱 돈독하게 하고 이방인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된다면 이런 일이야말로 바울에게 있어서는 위로를 받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로 가기를 여러 번 시도한 일을 알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사모함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같은 길이 아직까지 막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 론 : 바울은 하나님을 중인으로 삼고 그의 복음사역과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중인으로 삼지 말고(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우리의 생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중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바울이 그 수많은 고난과 핍박과 환란 속에서도 낙심치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자신의 증인으로 삼고 주의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6) 빚진 자의 생활

  (로마서 1:14-15)


  성경에는 빚에 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빚은 분명히 하나의 인생의 무거운 짐입니다. 너희는 빚을 지지 말라는 것이 성경적인 교훈입니다. 빚을 지면 빚을 진자의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 돈을 벌려 쓰는 사람은 그 사람 앞에서 늘 머리를 숙이는 삶을 살아야 하고 인격적으로 비열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빚을 다 갚기까지는 마음이 무겁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주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1. 세 종류의 빚

사도 바울은 이 빚진 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자신을 복음에 빚진 자로 여겼습니다. 성경에는 우리들이 갚아야 할 빚으로 세 가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우리가 갚아야 할 빚 중에 첫째로 손꼽히는 빚이 죄의 빚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보면 죄란 단어가 빚으로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란 말씀에서 죄에 대하여 ‘오페이레마타’라고 말하므로 빚 또는 부채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마6:12). 이 같은 표현은 참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라고 보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 빚으로 처리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2) 빚 중에는 사랑의 빚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일렀습니다(롬13:8).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 피차에 빚을 진 것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갚는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빚은 주님이 갚아 주셨지만 그러나 그 주님의 갚으심이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을 피차 사랑해야 할 빚으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3) 다음에 우리들이 생각하려는 것은 오늘주신 본문 말씀의 주제가 되는 복음의 빚입니다.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고 한 말은 바로 이 복음의 빚을 말해 줍니다. 왜 바울은 복음을 빚으로 생각한 것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받는 자는 그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2. 복음의 빚진 자의 생활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크나 큰 선물에 대하여 너무나도 감격했습니다. 그는 이 선물로 인하여 그리스도롤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는 생활을 기쁨으로 했습니다(빌3:7,8).

  (1)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자는 복음의 빚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들려주신 말씀 중에󰡒하나님의 선물󰡓이란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갚아야 할 하나님의 선물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원은 더할 나위 없이 값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8). 이 값진 선물은 우리들이 그 무엇으로도 값으로 살수 없는 것입니다.

  (2) 바울은 이 하나님의 선물을 자신이 갚아야 할 복음의 빚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 사죄의 빚, 구원의 빚, 사랑의 빚을 복음으로 갚기로 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가고 싶어한 것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므로 이 빚을 갚으려는 심정에서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진 빚을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빚으로 알고 바울처럼 우리의 한 생애를 이 빚을 갚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3) 복음의 빚을 갚는 생활은 그리스도인들의 다시없는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우리에게 복음의 빚으로 갚으라고 하신 일은 하나님의 이중적인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일은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축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① 복음을 전하는 자는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이루는 천국의 일꾼들입니다.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직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②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주님의 명령이십니다.󰡒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마28:18-20). 이 명령을 잘 수행한 종들은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축복을 약속 받고 있습니다.

  ③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금세와 내세의 약속과 영생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지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0:29-30).

  결 론 : 바울은 이처럼 그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생명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온전히 그리스도께 붙잡히는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에 둔 인생의 마지막 고비에서 후회 없는 자신의 인생 길을 돌아보면서󰡒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가 바울처럼 복음의 빚을 갚는 생애로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복음의 능력

  (로마서 1:16-17)


  복음이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한자로 쓰면 福音으로 복된 소식이란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말은 원어의 내용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로마서 1:16, 17절은 로마서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복음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뜻을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1.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한 이유

  바울은 분명한 어조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부끄러워 할 대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된 소식인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말은 그의 영적 눈이 띄어져 있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의 영적 눈이 감겨져 있을 때는 우리들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전혀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이 열려지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비참한 운명에 눈을 뜨게 되며, 슬퍼하며 가슴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알게되며, 죄 값이 사망임을 알게될 때 이 세상에서 바라본 우리의 소망이 허망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같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갚아주신 대속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를 통하여 그의 대속의 죽으심과 그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부활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 값을 갚으시기 위한 대속의 죽으심이요 그의 부활하심은 그가 하나님의 이들이심을 인정받으시는 표이며, 우리의 속죄의 표시가 되며, 믿음은 이 같은 사실을 증거해 주는 확실한 증표인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구속사건으로 복음 곧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이 일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1) 복음은 세상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세상 지혜로는 복음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그 수다한 무리들은 복음에 대하여 동조하지 아니합니다.

  (2) 복음은 지식인들의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우리들 자신의 경험으로도 우리가 세상에 속했을 때 우리는 복음에 비웃음을 던졌던 사람들입니다. 복음에 나타나 있는 이론과 주장이 우매하고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3) 우리들에게 구원의 확신과 이에 대한 감사가 없을 때 복음을 부끄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가 넘치게 하기 때문에 그 어떤 비소나 핍박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2. 복음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능력이란 말은 ‘두나미스’로 이 말의 뜻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말합니다. 이 힘은 인간이 물리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입니다. 이 힘은 모든 환경과 조건을 이길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힘입니다. 이처럼 복음 그 자체에 이 같은 하나님의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먼저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는 이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해야 합니다.

  (1)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란 말은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거듭난 일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 증거해 주는 것입니까?󰡐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이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벧전1:23).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모든 자에게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그 말씀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바로 이 말씀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2)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란 말은 두 가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나온 의란 뜻과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의란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의를 율법에서 얻으려고 하다가 결국 실패했습니다(롬3:20). 그런데 복음에 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복음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의를 어떻게 소유할 수 있습니까?󰡒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3:21,22).

  (3) 복음에는 믿음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은 인간의 지혜나 경험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지혜나 경험으로는 복음을 깨달아 알 수가 없습니다.

  결 론 : 복음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자에 의하여 세상에 전파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이 복음을 전파하면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이 복음은 또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8)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로마서 1:16-17)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이유로써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증거하고 결론적으로 이 같은 성경적인 근거는 기록된 말씀에 있음을 증거했습니다. 바울의 성경적인 중거가󰡐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주장하는 의의 뿌리는 믿음입니다.“이신 득의”사상이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철저한 복음 사상이며, 또 이 사상이야말로 성경전체에 넘쳐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사상입니다.

  1. 하나님의 의는 믿음에서 나온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의가 오직 믿음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복음에서 나오는 의를 설명함에 있어 하박국을 통해 주신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입니다(합2:5). 바울은 하나님의 의를 율법에서 나온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나온 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1) 이 말씀의 근원은 아브라함이 받은 의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롬4:3). 원래 의는 율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생존할 당시에는 율법이 존재치 아니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고 하는 선언을 받았습니다.

  (2)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반열이 유다 지파에서가 아니라 멜기세댁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바라보게 됩니다.󰡒그리로 앞서 가진 예수께서 멜기세댁의 반차를 쫓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히6:20). 이 말씀은 예수님은 율법을 따라 된 대제사장이 아니시라 이미 율법이 있기 이전에 대제사장으로도 있었든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라 된 것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율법이 존재하기 이전 아브라함이 받은 의에 근거한 것인데 아브라함의 의란 곧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된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갈3:6,7).

  (3)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신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의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의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가 얻을 의는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이처럼 말씀했습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롬4:23,24).

  2.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된다.

  우리는 성경에서 나타내 주고 있는 의인이란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의인이란 율법적인 의의 소유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이란 하나님의 의를 소유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처럼 우리도 그의 독생자를 보내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으면 성경이 말하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란 도덕적인 관념에서 부르는 명칭이 아니라 믿음의 관점에서 부르는 명칭입니다.

  (1) 이 말씀의 뜻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산다는 말은 생명을 얻는 다는 뜻입니다. 의란 곧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소유한자만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고 말씀했습니다(엡2:8). 예수님께서는󰡒내 말을 듣고 또 내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5:24).

  (2) 이 말씀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율법으로 살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그의 생애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아온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오직 믿음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결 론 :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에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처럼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시고 우리들의 죄의 속제 물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은 믿음에서 나온 의인 것입니다. 우리의 이 믿음은 곧 아브라함의 믿음이며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를 얻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9) 핑계치 못할 인간의 죄

  (로마서 1:18-23)


  서 론 : 성경에서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부터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자기는 어머니 배에 잉태함으로부터 죄인이며 죄악 중에 태어났다고 했습니다(시5:15). 성경은 인간의 죄의 기원에 대하여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장로교회에서 하나의 신앙고백서로 사용하는 웨스트 민스터 고백 6장에서 이처럼 말하고 있습니다.󰡒인류의 시조는 사단의 간교와 시험에  져서 금지된 실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였다󰡓이 같은 인간의 상태를 전적 타락이라고 부릅니다. 전적 타락이란 다시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본문은 이 같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종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1. 하늘로 쫓아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

  바울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진노는 하늘로조차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사람들에 대하여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쫓아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1) 과거에 이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 내리신 홍수심판이 그렇습니다(창6:5-7).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그런 진노에 속한 심판입니다(창19장).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애굽에 대한 심판도 그런 심판 중에 하나입니다(출6장-12장).

  (2) 하나님의 진노는 이 땅위에 내리는 최종적인 심판으로 내려집니다. 이에 대하여 계시록 16장에서󰡒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진노가 최종적인 일곱째 대접심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계16:17-20).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이 일곱 번째 대접으로 마쳐집니다.

  2. 핑계할 수 없는 인간의 죄

  그러면 아담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왜 이 같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는 것인가? 21절에서󰡐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인간이 타락하여 저지르고 있는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막중한 죄는 바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아니하는 죄인 것으로 밝히고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말씀은󰡒하나님을 안다󰡓고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죄인들도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밝히시기를󰡒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9).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보이신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그 만드신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아니하는 것입니다. 영광이란 말은 ‘독사조’로 찬양한다,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찬양과 존경이 없는 생활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지 못하는 생활입니다.

  (2) 다음에 말씀하고 있는 두 번째 죄는 하나님께 감사치 않는 죄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가 없는 생활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번진 죄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을 죄인 것입니다. 감사치 아니한다는 말은 전혀 감사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감사란 말은 ‘유카리스티아’로 좋은 은혜, 좋은 선물을 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는 좋은 은혜, 좋은 선물로 말미암는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는 기쁨과 축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3) 다음에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할 죄로 우상숭배의 죄를 들고 있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인간이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라고 밝혀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이나 금수나 버러지 행상으로 바꾸는 일은 하나님께 대한 말할 수 없는 고의적인 모욕이며,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결 론 :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이처럼 하나님이 진노를 받을 무서운 죄인들입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새로운 인생 길을 걷지 못한다면 누구에게나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10) 하나님께서 버려 두신 인간의 마음

  (로마서 1:24-32)


  서 론 : 그 당시 로마는 인류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였으며 또한 타락한 인간의 모든 죄악의 전시장이기도 했습니다. 로마황제를 신의 아들로 섬기는 황제숭배와인간의 죄악에서 나오는 모든 죄악상이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있었고 특히 우상숭배의 결과에서 나온 역리적인 성생활의 범죄가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이 같은 죄악상에 대하여󰡒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죄는 그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내어쫓았습니다.

  1. 내어 버려 두신 하나님

  로마서 1장에서는 주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를 다루고 있는데 인간들의 죄의 근원이 하나님을 섬기기를 싫어하는 마음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죄악상태에 내어 버려 두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내어 버려 두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포기를 말합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손을 쓰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들에게서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 살아져 버렸습니다. 이런 인간의 구제 불능의 상태에 대하여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탄식하셨습니다.󰡒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용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하셨습니다(창6:5,6).

  (2) 내어 버렸다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실만한 아무런 이유도 갖고 계시지 아니하십니다. 인간 스스로 자기 멋대로 하나님을 떠나버렸고 하나님을 저버린 것입니다. 한 번 하나님을 거역하여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에서 영원히 빠져나가 버릴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

  로마서 1장에는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는 내용이 세 가지로 구분되어 나옵니다. 그 하나가 2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전체적인  타락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욕되다고 하신 말씀은 추잡하다. 무시하다의 뜻으로 풀이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였기 때문에 서로 자기들의 몸을 욕되게 하며 더럽히는 것을 간섭치 아니하시고 그들의 자유에 맡겨 두신 것입니다.

  인간의 이런 추잡하고 수치스러운 생활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결국 피조물을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에서 온 마땅한 결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바울은 죄의 타락에서 온 인간이 가장 추한 죄로 역리적인 성생활의 범죄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다󰡓고 했습니다.

  (1) 여인들의 역리적인 성범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범죄에 대하여 남자들 보다 여자들에 대하여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 당시 로마의 사회고위층에 있어서의 여인의 타락한 성생활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것을 바꾸어 역리로 쓴다는 말은 인간의 남녀간의 성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자연적인 방법을 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바꾸어 쓴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남녀간의 결합은 성생활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성생활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이요 하나도 수치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여자로 더불어 결합하는 성생활은 역리적인 성생활로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인간들을 남자나 여자나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레20:13).

  (2) 다음에 남자들의 역리적인 성범죄가 지적되어 있습니다. 여인들 다음에 남자들에 대한 역리적인 성범죄에 대하여󰡒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지난날의 소돔성이 이 남색으로 인하여 멸망당했습니다.

  로마시민을 모델로 한 이방사회의 이 같은 범죄는 이미 그에 상응한 보응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이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역리적인 성범죄로 말미암은 정신적 파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이 최근에야 밝혀지고 있지만 이 같은 성범죄로 말미암은 질병인데 이 질병 이름이 에이즈란 이름을 가지고 공포의 병으로 사회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라고 하는 이 세계적인 공포의 병은 그 원인이 동성애에서 발단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 성경적인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결 론 : 28절에서부터 언급하고 있는 다른 또 한가지의 범죄는 인간의 모든 합당치 못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신 일이 여러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우리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은 싫어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생각대로 내어 버려 두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무서운 죄악 중에 스스로 빠져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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