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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 (29-35)
 밤중소리  01-28 | VIEW : 669



  (29) 오병이어의 기적

  (요한복음 6:1-15)


  서 론 :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기적 가운데서도 오병이어의 기적은 모든 기적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의 특이하신 점은 그의 기적에는 창조적인 권능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때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는 드리셨지만 기적을 위하여 기도하신 일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바로 창조의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의 생각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기적으로 나타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1. 주님이 권능을 행하신 특징

  주님은 그의 공생애 중에 이루 헤아려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적과 권능을 행하셨지만 그러나 단 한가지라도 자신을 나타내거나 자신을 위한 일에는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실 수 있는 일에만 사용하셨습니다. 가나 혼인집에서 있었던 최초의 기적을 비롯하여 모든 기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반듯이 있어야 할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권능은 불쌍한 병자들을 위하여 행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믿음이 있건 없건 간에 가까이 와서 병 고침을 원하는 모든 병자들의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 권능이나 기적의 행하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들어내셨습니다.  

  2. 주님을 따른 큰 무리

  주님이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 가셨을 때 큰 무리가 주님을 따라 그곳으로 찾아갔습니다.

  (1) 이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는 무리였습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들 양 무리들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셨건만 그들은 자기만 먹는 목자가 되었고 양 무리는 먹이지 못하는 목자가 된 것입니다(겔34:2-4). 주님은 이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2) 이들은 표적을 보고 주님을 따라다닌 무리들이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2절에서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대개의 경우 표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따라다니기는 잘 하지만 그들의 동기가 표적에 있기 때문에 진리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으며 신앙적으로 자라나지를 못합니다.

  (3) 그들은 잘못된 메시야관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약속의 메시야를, 표적으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한눈에 메시야로 믿을 수 있게 하는 어떤 결정적인 표적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결국은 오병이어의 기적도 메시야로서의 충분한 표적이 못된다고 생각하여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는 (메시야로)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이니까”고 물었습니다(요6:30).

  3. 빌립과 안드레와 한 아이의 경우

  예수님은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이 큰 무리들이 굶주려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1) 주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같은 물으심은 주님이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때 빌립은 그의 명석한 머리로 다가오는 큰 무리의 수효와 그들에게 조금씩 떡을 나누어주게 될 때 들어가는 비용을 재빨리 계산해 냈습니다. 그리고는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주님은 빌립의 입에서 이 같은 대답을 기대하신 것은 아니십니다. “저는 주님이 그들에게 먹이실 양식을 준비하신 줄로 압니다” 그의 입에서 이 같은 대답이 나왔더라면 그는 주님의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2) 이때 안드레가 주님이 하시는 걱정을 듣고 군중 가운데 나아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3) 주님이 기적을 나타내실 수 있었던 결정적인 동기는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이 어린아이의 칭찬 받을만한 점은 그가 예수님을 따라나섰을 때 그의 먹을 양식을 준비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로써 주님을 따라 먼 곳인 빈들에까지 쫓아왔다는 것이요 또 한편 그가 가지고 있는 도시락을 온전히 예수님께 드릴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4. 오병이어의 기적

  주님은 이 어린 소년의 티없는 제물을 가지시고 축사하시고 자리에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주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떡과 물고기가 오 천명이 넘는 그 많은 군중들을 배불리고도 12바구니를 남기는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을 드리면 주님은 그 제물을 가지시고 축사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충만한 축복입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는 축복”입니다(눅6:38).

  결 론 : 주님은 이 기적을 보고 그를 왕으로 세우려는 군중들을 피하여 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왕이 되시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는 그의 맡은 사명을 이루시는 일에 방해되는 그 어떤 유혹도 단연 물리치셨습니다.





  (30) 주님이 타지 않은 배

  (요한복음 6:16-21)


  서 론 : 우리는 어느 화가가 그린 성화에서 우리 주님이 선장이 되셔서 배의 키를 잡으시고 격랑의 파도를 해치시며 운항하시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 그림 속의 주님은 바로 우리의 험한 인생 길을 친히 인도하시는 주님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요16:33).

  1. 그들은 왜 고난을 당했나?

  예수님은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을 삼으려는 군중의 움직임을 바라보시고는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신 것입니다. 날이 저물매 제자들은 바다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들은 배를 띄어 떠난 지 얼마 안되어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왜 이토록 풍랑을 만나 고난을 당해야 했나?

  (1) 그들은 주님을 태우지 않고 떠났습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예기치 아니했던 풍랑이 갑작스럽게 불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담수호로 지중해 바다표면보다 무려 207 미터나 낮은 호수입니다. 지형과 산세의 영향에 의해 이곳은 예로부터 갑작스럽게 바람이 몰려와서 바다표면을 격동시킴으로서 풍랑이 이는 곳입니다. 제자들은 이 바다에서 대대로 어부로서 그 잔뼈들이 굵어진 사람들이라 어지간한 풍랑은 그들의 기술과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2) 그들은 주님이 없이도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없이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인생을 실패로 이끕니다. 우리는 지금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생명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길은 험하고 협착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가지 않으면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

  (3) 그들은 어두울 때에 떠났습니다. 어둡다는 말은 빛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빛이 없고 어둡다면 우리는 한치도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빛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자기 인생의 항로로 삼고 노를 저어 나간다면 우리 주님이 그 키를 잡으시고 안전하게 운행하여 우리로 소망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게 하십니다.

  (4)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고난 중에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인 줄을 몰라보고 유령인줄로 착각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를 때 고난 중에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위하여 가까이 오시는 모습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내가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이 나를 도우시려고 가까이로 다가오고 계심을 바라보고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합니다.

  2.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제자들을 떠나 있었던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

  (1) 그는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를 위하신 대도이입니다. 제자들이 탄 배는 비록 광풍으로 인하여 바다 한가운데서 고난을 당하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배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시고 그들의 고난을 불쌍히 보시며 아버지께 간구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비록 이 세상에서 본의 아닌 불 신앙이나 실수로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고난의 풍랑을 바라보고 무서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새 힘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예수님은 친히 산에서 내려오셔서 바다위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고난을 당하는 제자들을 그 고난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친히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언제 우리 가까이 계시는가?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사 55:36). 언제 만날만한 때인가? 우리가 고난을 당하여 실의와 낙망에 빠져 있을 때입니다.

  3. 주님을 배에 영접하니 목적지에 이르렀더라

  그렇게도 바람이 사납게 불어대며 풍랑을 일으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은 항해였건만 주님을 그들의 배에 맞이하자마자 바다가 잔잔하여지고 배에는 사랑과 평안과 즐거움이 되돌아오고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목적지에 도착한 것입니다.

  (1) 주님은 인생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고난을 물리치시고 우리의 인생 속에 평안과 즐거움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런 주님의 인도하심만 받으면 우리의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제자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배에 주님을 모셨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들은 이제 바다를 건너는 일에 있어서 자신들의 노력과 경험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만을 의뢰했습니다.

  결 론 :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항로를 과연 누구에게 맡겼습니까? 내가 운행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손에 의하여 운행되고 있는 것인가? 만약 지금 우리의 배가 세상 풍랑으로 말미암아 심한 고난을 당하는 생애를 보내고 있다면 우리를 돕기 위하여 가까이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분을 여러분의 배에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31) 하나님의 일

  (요한복음 6:22-29)


  서 론 : 옛날이나 지금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그들의 동기는 한결같지가 아니합니다.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바라본 많은 군중들은 어쩌면 광야에서 조상들이 먹었던 바 만나와 유사한 양식을 먹게 될 줄로 알았고 이런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추대하려고 따라다닌 것입니다. 주님을 찾아 나선 무리들은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겨우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라고 인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 나온 그들에게 오히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1. 인생이 취해야 할 두 가지 양식

  주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은 그의 메시야 된 표적을 떡으로 바라보고 떡을 먹고 배부른 연고로 주님을 따라다닌 것입니다. 참으로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주님으로부터 취해야 할 양식을 잘못 취한 것입니다.

  (1)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으로부터 표적을 바라보는 눈은 두 가지입니다. 마음이 완악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그의 표적으로부터 찾을 것이 오직 육신의 것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이적으로부터 그의 신적 권위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위엄을 발견할 수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의 표적 속에서 찾은 것은 그들의 육신의 정욕을 채워주는 떡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육신의 양식을 위하여 주님을 쫓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2)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영적인 양식을 의미하신 것으로 영생의 떡을 가리킵니다. 에수님으로부터 우리들이 취할 양식이란 바로 이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영생의 양식으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알고 이 떡을 취하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를 영접하는 일을 말합니다. 먹는다는 말의 영적인 뜻은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라고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2.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주님은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양식은 우리가 스스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심으로 우리는 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뿐입니다. 이 은혜의 순서를 말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하여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엡1:3-4). ②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롬8:30).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6:44). ③ 이처럼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한 명의 누락자도 없이 온전히 구원함을 받게 됩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6:39).

  주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주시기 위하여 참으로 놀라운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3:16).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떡이 되신 것입니다.

  3. 무엇이 하나님의 일인가?

  주님 곁에 모인 많은 무리들은 먹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영생을 위하여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대답을 들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생활이 하나님의 일 인줄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우리의 생활이나 우리의 손이 미치기 어려운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믿음이상 더 훌륭한 일의 대상이 없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보내신 목적은 그를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 론 : 우리는 과연 육신의 떡을 위하여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영생하도록 있는 참된 양식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지 우리의 위치를 분명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생활을 통하여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2) 하늘에서 내려온 떡

  (요한복음 6:30-36)


  서 론 : 예수님으로부터 사람들이󰡒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러면 우리로 당신을 보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인줄 믿게 하는 표적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믿는데 있어서 확실한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이 요구한 이 같은 표적은 성경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그 선지자가 방자히 말한 것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말지니라”고 하신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신18:22).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메시야로 인정할만한 충분한 증거를 바라보았지만 다만 그들에게 믿음이 없는 연고로 주님을 배척했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 그들의 불신의 죄를 덮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1. 모세가 보인 표적

  그들은 모세의 경우를 들어 모세는 하늘에서 조상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모세가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인정받은 일은 이처럼 하늘에서 만나를 내림으로 되었으니 당신도 모세와 같은 움직일 수 없는 표적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한가지부터 열 가지에 이르도록 표적만을 구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먹였다고 하는 하늘의 만나에 대하여 바른 해석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아무 것도 그 스스로의 힘으로나 능력으로 행한 것이 없습니다. 홍해를 건넌 일도, 반석에서 물이 솟은 일도,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온 일도,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의 행하신 모든 일이 그의 창조적인 능력으로 스스로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이스라엘에게 내린 떡은 만나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진 만나에 대하여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의 영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 떡은 그들로 사람이 사는 일이 떡으로만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고 하신 일이십니다(신8:3).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다닌 무리들은 다만 떡을 먹고 배부른 연고로 쫓았을 뿐 그 표적에서 그들의 메시야를 찾고 생명을 얻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주님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주신 만나가 실인즉 하늘에서 내려 주신 떡이 아님을 말씀하심으로 이 문제를 영적으로 설명해 주시려고 그들의 생각을 영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이 먹었다고 하는 만나는 그것을 먹은 사람들이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먹은 만나는 생명을 주는 하늘의 양식도 아니요 그 떡을 먹인다 고해도 메시야 된 참 표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1) 그들은 “이 떡을 우리에게 항상 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주님의 영적인 설명에 대하여 그들은 알아들을 리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설명마저도 육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간청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의 생의 목적은 오직 이 땅위에 있습니다. 그들이 필요로 한 것은 늘 배부른 떡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주님을 따른 이유는 표적으로 육신의 것을 얻으려는 흥미와 욕심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2) 주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영적인 생명을 깨닫지 못하고 생명의 양식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폭탄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심히 놀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들에게 이해가 될 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떡으로 오신 분입니다. 이분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떡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를 영접하는 자에게, 그를 믿는 자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주리지 아니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다시는 영생에 관하여 걱정이 없이 생의 만족을 누리는 것이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그가 누리는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가리킨 것입니다.

  결 론 : 예수님은 하늘의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내려오신 하나님의 떡이십니다. 이 떡을 찾는 사람만이 예수로 만족한 인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떡을 먹는 사람만이 영생을 소유하며 그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강처럼 흐르며, 그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축복된 생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3) 아버지의 뜻

  (요한복음 6:37-40)


  서 론 : 예수님은 자주 아버지의 뜻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함이니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부터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모든 일은 온전히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그 뜻을 이루시는 일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제한구원과 온전한 구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많았지만,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이적을 바라보며 체험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를 배척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매우 어렵지만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볼 때 하나님의 구원이 제한구원(制限救援)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1)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예수께로 올 수 있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해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만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고 그들에게만 믿음이 주어지며 그들에 한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로 오는 자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보내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임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같은 하나님의 구원이, 제한구원임을 알려주시는 많은 증거를 제시해 주고 있지만 두 가지만 예로 든다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또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도 하셨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살후3:2).

  (2)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예정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다 ‘자기백성’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십니다. 인류 중에 특별히 하나님의 성별된 백성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아니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고. 하셨습니다(요10:26). 복음은 온 세상에 누구에게나 전파되지만 하나님은 그의 예정된 사람들만을 세상에서 불러 예수님께로 인도하시여 구원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라고 하신 대상은 바로 이들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예정된 백성은 한 명도 하나님의 구원사역에서 빠지지 아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내게로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그 중에 누락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 예수님은 이들을 한 명도 내어쫓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어쫓지 아니하신다는 말은 어떤 경우에라도 결코 버려짐이 없다는 의미로 그리스도 앞으로 오는 모든 사람들의 절대적인 구원의 보증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중에는 얼마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에 의하여 내어쫓긴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는 가라지 들입니다.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2. 아버지의 뜻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일을 마치 주님의 양식으로 삼으신 것입니다(요4:34).

  (1) 아버지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은 ‘메아폴레소’로 이 말은 영원히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성도의 견인(堅忍)이 들어가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는 우리의 모든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십니다.
  또다른 한가지는 성도의 견인인데 성도들은 어떤 시험과 고난과 핍박과 환난 중에서라도 끝까지 이기며 구원을 쟁취하는 것입니다(고후2:14).

  (2)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같은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3) 아버지의 뜻은 마지막날에 다시 이들을 살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이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의미합니다. 다시 살리시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부활을 말합니다. 이 부활은 영생을 이루는 온전한 구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이 없다면 영생의 증거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의 보증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결 론 :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반드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나를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며 내어쫓지도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날에 나를 생명의 부활에 참여시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실하시며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그의 말씀은 결코 없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붙들고 구원의 확신 위에 우리의 믿음을 세워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4) 예수님의 살과 피

  (요한복음 6:41-59)


  서 론 :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의 말씀은 영적인 가르침이었지만 이 말씀을 듣는 많은 무리들은 그 말씀을 육적인 말로 들었습니다(요6:63).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지성과 큰 갈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실 때 그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1. 그리스도에게로 올 자는 누군가?

  예수님은 수군거리는 군중을 향하여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1)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자만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에게로 올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선행적인 역사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십니다.  

  ① 인간의 자유의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② 다음에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한 자들을 이끄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③ 그러나 이 같은 하나님의 예정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 중에는 아무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구원받았을 때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④ 하나님이 이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게 하시는 은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역사로 이 은혜는 불가항력적입니다.

  (2) 다음에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끄시는 백성들에게 지식으로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나 구원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구원의 첫 단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가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를 배우는 사람에게 생명의 떡이 되며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연히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 성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영적인 지식이나 약속도 배움으로 깨달아 알게되는 것입니다.

  2. 인자의 살과 인자의 피

  예수님은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말씀하신 후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실 영생의 떡이란 바로 예수님의 살이라고 밝히신 후 53절에 가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같은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심히 놀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영적인 말씀으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육적인 생각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셨으니 그들이 놀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같은 표현을 육적인 생각으로 듣는다면 식인종이 되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영적으로 이해하려면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신 말씀은 주님의 선재를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로 비로소 세상에 태어나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셨다고 하시는 말씀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시기 이전에 하늘에 이미 계셨던 사실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은 이 같은 그리스도의 선재에 대한 지식에서만이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인자의 살은 참된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이 우리의 양식이 된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영적인 구원을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살이 어떻게 하여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인가? 그의 몸이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고난 당하심을 인하여 우리와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살이 아니고는 생명을 얻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3) 인자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인자의 피라고 하신 것은 주님이 우리의 죄 값으로 인하여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그의 피 흘림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이 없다면 우리의 죄가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사실을 믿어야 하며, 그의 피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결 론 : 우리는 여기서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에 대하여 몇 가지 사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영생을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영생은 이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사람의 삶에 대하여 그 사람은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삶이요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35)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한복음 6:60-71)


  서 론 :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나 들을 수 있으나 그 말씀을 이해하는 일은 누구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고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은 그 자리에서 이 말씀을 들은 사람 가운데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와 들을 수 없는 귀

  이 말씀을 들은 제자 중 여럿이 이처럼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들으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영적으로 들으려니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많은 제자들이 물러갔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모으는 역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흩으는 역사도 동시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쫓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쫓아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되기 때문입니다(고후2:16).

  (2) 그들에게는 영의 말이 어리석게 보이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이나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어리석게 보는 것입니다.

  (3)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서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육신의 길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는 그 말씀을 받는 일에 다음 네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① 듣고 깨닫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순종하여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양으로 그 목자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② 듣고 깨닫지는 못하지만 가르치심을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가 자라고 영적인 분별력이 성장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좋은 열매를 맺을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③ 다음에 듣기는 하지만 어리석게 생각함으로 주님을 따르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말한 그 무리들이 이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④ 그리고 주님의 영적인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오히려 말씀에서 흠을 잡으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나 많은 유대인들이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2. 영생의 말씀의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는 66절에 있는 말씀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결국 육신의 것을 위하여 주님을 따른 모든 무리들은 다 물러가고 이제 다시는 주님을 따르는 무리 중에 들지 아니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주님의 곁을 떠나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육신의 것을 바라보고 따라다녔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함으로 소망을 견고히 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 주님은 자기 앞에 앉아 있는 12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이 말씀을 듣자 자기 선생님의 그 심정을 헤아려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결단을 주님 앞에 밝힘으로 주님의 마음에 위로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말씀드렸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많은 무리가 다 떠났어도 주님은 이런 베드로의 고백에 기뻐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결단으로 이제는 영생이신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으니 자신들은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을 다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은 주님이 누구이신가 에 대하여 이제 확실히 믿고, 알고 있다는 신앙적인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2)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드린 이 말 중에는 여러 가지 뜻이 들어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오직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영생의 떡이시라는 것입니다.

  (3)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은 다른 또 하나의 그의 신앙고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의 떡이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자기들이 대망한 참 메시야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결 론 : 우리는 혹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주님의 곁을 떠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처럼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하는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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