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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 (89-92)
 밤중소리  01-27 | VIEW : 489



  (89) 잃은 양의 비유

  (누가복음 15 : 1 - 10)  


  서 론 : 예수님의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제사장, 사두개인들, 그리고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을 차별치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을 대하셨던 것처럼 세리들이나 죄인들을 대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태도에 원망하며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대하여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먹는다”고 불평을 했던 것입니다.

  1.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예수님은 이들에 대하여 잃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양 백 마리를 소유한 사람이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렸을 때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지 않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목자에게 양은 다 소중합니다. 잃은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목자의 심정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잃은 양의 비유는 무엇을 비유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목자가 거느리고 있었던 양 백 마리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잃은 양은 세리나 죄인을 가리킨 것도 아닙니다. 양 백 마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양으로서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그의 백성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 마리 중에 한 마리라도 잃어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그토록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었다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직 양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양들입니다. 이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울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님으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6~27).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으러 오신 분이십니다. 이 잃은 양을 찾는 운동이 곧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이 잃은 양은 울 밖으로 나간 양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목자를 따르는 생활을 하는 중에 목자를 잃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험을 만나 잃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혹은 돈에 미혹을 받고, 혹은 우는 사자처럼 찾는 마귀의 함정에 빠지고, 혹은 생활의 염려나 이단의 유혹에 빠져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 되신 주님은 이들 잃은 양떼들을 결코 포기하시지 않으십니다. 목자이신 주님께는 그들의 존재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나는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이 말씀은 잃은 양에 대한 목자이신 주님의 심정을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2. 죄인 하나로 말미암은 하늘의 기쁨

  잃은 양을 찾은 기쁨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는가에 대하여 주님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즐거워하며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벌릴 정도로 기쁜 것처럼 잃은 양을 찾는 주님의 심정이 그러하시다 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은 이미 목자의 울안으로 들어온 양들을 말합니다. 이 비유는 마치 많은 자식을 거느린 아버지가 그 중에 한 아들을 잃어버렸을 때 그 애타하는 심정은 자식이 많다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잃은 아들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집에 있는 여러 자식으로 인한 기쁨보다 더한 것입니다.

  주님은 잃은 양의 경우를 열 드라크마를 소유한 어느 한 여인이 그 잃은 한 드라크마를 찾는 모습과 찾은 후의 기쁨으로 비유하심으로 죄인 하나의 회개함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가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몇 가지 교훈 삼을 것이 있습니다.

  (1) 이 세상에는 어느 곳에건 잃은 양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잃은 양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이 잃은 양의 존재가 하나님께서는 울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주시는 사랑에 결코 못하지 않으신 사랑을 가지고 계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다음에 우리는 이 여인의 경우처럼 잃은 양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같은 직분을 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결론 : 한 드라크마를 잃은 한 여인은 잃은 동전을 찾는데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잃은 양을 찾는 우리의 태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등불을 켜야 합니다. 이 등불은 복음의 등불입니다. 이 등불은 잃은 양을 부르는 목자의 음성입니다. 다음에 집을 쓸어야 합니다. 이 쓰는 모습이 눅 14:21에 나와 있습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 이것은 전도의 모습입니다. 다음에 부지런히 찾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잃은 양을 찾는 일에 나태해서는 안됩니다. 열심으로 찾고 부지런히 찾아서 그들을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90) 탕자의 비유

  (누가복음 15 : 11 - 32)  


  서 론 :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중 탕자의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먼저 탕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그 비참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이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의 인내하심과 그의 기다리심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1. 두 아들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게 있는 두 아들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 두 아들은 비록 한 아들이 탕자가 되었지만 모두 하나님의 자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두 아들이라고 분명히 그들의 신분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 두 아들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 밑에서 행복하게 지내왔습니다. 그들은 말하자면 평탄한 신앙 생활을 해온 성도의 모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에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동생이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돌아올 상속에 대하여 분배해 줄 것을 요구하여 그 뜻을 관철시켰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받은 물질적인 축복을 상징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 축복을 받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도 그 아들에게 그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단되었습니다. 재물이 생기자 둘째는 그의 마음속에 허황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으로 흐르게 된 것입니다. 눅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도 재물이 갑자기 생기자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육신 적인 안일과 향락에 마음이 쏠린 것입니다. 이 둘째는 그 재물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2. 동생이 간 먼 나라

  여기서 먼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와 먼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 나라는 곧 세상을 말한 것입니다. 이 같은 신앙에 대하여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은 우리로 세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유혹을 줍니다. 둘째는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의 수중에 돈이 들어오자,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로 인하여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그는 먼 나라로 갔습니다. 돈 때문에 세상에 간 사람들이 생활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허랑 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으로 흐른 사람들은 사람에게 밟힌다고 하셨습니다. 맛 잃은 소금은 쓸데없어 밟힌 바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의 형편이 그리된 것입니다. 허랑 방탕했습니다. 세상 적인 생활에 젖었습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안중에 없는 생활은 허랑 방탕한 생활입니다. 그는 드디어 그 재산을 허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못하는 돈은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재물에는 날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재물 때문에 하나님의 품을 떠난 경우의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그 재산이 다 허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3. 둘째 아들의 비참한 형편

  그는 할 수 없이 돼지를 치는 돼지치기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만한 마음과 재물에 대한 의뢰를 완전히 끊어버리시기 위해 가장 비참한 자리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시66:10-12). 하나님께서는 왜 이토록 철저하게 그의 생활을 간섭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은 그를 세상에서 건져내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깨닫지 못하면 이 어려움만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사1:5-6).

  그는 가장 곤경한 가운데서 그는 눈을 아버지 집으로 돌이키게 된 것입니다.

  (1) 자기가 주려 죽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죽게 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의 생활이 넉넉하여 부족함이 없습니다. 순종하는 생활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3)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회개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이 말은 그의 인격의 새로운 면, 그의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의 발걸음은 이제 아버지께로 돌이켰습니다.

  결론 : 이 아들은 아버지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옛날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집은 큰 경사처럼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탕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생활은 탕자가 될 위험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탕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탕자의 자리에서 돌이켜 바른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91) 아버지의 사랑

  (누가복음 15 : 20 - 24)  


  서 론 : 누가복음에 있는 탕자의 비유는 실상인즉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시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탕자의 회복은 오직 아버지의 사랑으로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할 수 없는 인내하심, 그리고 한없이 자비하신 그 사랑의 용서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시면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나 기대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1. 아버지의 인내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부모라 할지라도 기다리기에 능히 지쳤을 그런 시기가 몇 번인가 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을 뛰쳐나간 아들을 잊지를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포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린 한편 강도에게 그가 사형을 당하는 그 최후 순간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참고 그의 회개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도 역시 이 탕자 같은 심정으로 오래 오래 기다리시며 참으셨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인내하심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이 기다리시는 이 한가지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사야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사42:2). 우리는 이 같은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징계가 속히 임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아들을 맞이하시는 아버지의 태도

  우리는 탕자가 집에 돌아오는 모습도 아름다우려니와 집에 돌아오는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야말로 너무 감격스럽고 황송한 것입니다.

  (1) 아버지는 상거가 아직 먼데 그를 보고 달려가셨습니다.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가 아직 집과는 거리가 먼데 아버지는 아들에게로 달려나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을 이처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오히려 그 표현이 약하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절대로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2)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그가 범한 죄는 다 잊어버리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어버이의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돌아온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셨습니다. 이 탕자가 아버지 앞에 회개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이처럼 놀랍게 그를 맞으신 것입니다.

  3. 아들의 회개를 들으심

  드디어 이 아들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이 아들의 눈물 어린 회개를 들으신 아버지는 즉각적으로 그 회개를 들으시고 그 회개에 합당한 조치를 당장에 취하셨습니다.

  (1)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셨습니다. 이 옷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불의를 깨끗하게 하시는 의의 옷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제 그는 눈같이 희어졌습니다. 양털 같이 희어졌습니다. 어린양의 피는 우리의 어떤 죄라도 감싸고 의의 옷으로 갈아 입히시는 것입니다. 이 옷만 입으면 이전 죄는 하나도 기억됨이 없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1-23)..

  (2) 손에 가락지를 끼우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신 새 언약으로서 이 언약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소멸되거나 효력이 상실되는 일이 없다고 하는 확실한 약속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3) 발에 신을 신기셨습니다. 아버지 집에서는 새로운 신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죄악에 빨랐던 신은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까지의 망령된 행실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선 땅은 거룩하니 네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 때묻은 세상의 신을 벗기시고 의롭고 열매 맺는 새 신을 신기십니다.

  결론 : 집을 나간 아들을 다시 만난 아버지의 기쁨과 그 집의 기쁨은 놀라우리 만치 컸습니다. 아버지의 즐거우심은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먹고 즐기자고 하셨습니다. 탕자의 돌아옴은 이처럼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혹 이 탕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까? 우리 곁에는 혹 이런 탕자가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파수꾼의 사명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시다. 그들을 아버지 집으로 이끌어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리도록 합시다.






  (92) 맏아들의 경우

  (누가복음 15 : 25 - 32)  


  서 론 : 탕자의 비유에는 아버지와 둘째 아들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맏아들이 등장합니다. 이 아들에 대하여 우리는 소홀히 넘기기 쉬우나 오늘날 교회에는 이 맏아들과 같은 성도가 많이 있음으로 여기서 이 맏아들의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버지의 사랑을 몰랐다

  이 아들은 어떤 의무감에서 자기의 일을 해내는 율법주의 적인 교인의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이 아들이 이처럼 그 심령이 냉랭하고 영적 감각이 없었던 일은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한 분의 평범한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자기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하여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대하시는 사랑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시기와 질투를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4:10). 그 아들을 나를 위한 화목제로 보내신 아버지의 사랑을 이 아들이 깨달았다면 맏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동생이 돌아온 일에 대하여 기쁨을 함께 했을 것입니다.

  2. 맏아들의 충성

  우리는 이 맏아들이 아버지의 집에서 대단히 충성스러운 아들처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아들은 사랑에서 나온 충성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인의 충성은 주님께 대한 사랑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 아들은 다만 의무에서만 나온 충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의무에는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평안이 없습니다.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책망을 들을 것이라고 하는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는 해도 그의 생활 중에 기쁨도 감사도 사랑도 평안도 찾을 수 없는 경우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에서 자기의 맡은 일에 대해서는 그런 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서 칭찬해 준다거나 환대해 주는 일에 대해서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맏아들은 둘째가 돌아와서 아버지의 말할 수 없는 환대를 받으며 기쁨이 되자 그의 불만이 즉각적으로 그 표정에 나타난 것입니다.

  3. 그에게는 기도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땅히 자기 동생이 아버지 집에서 나갔다면 그 동생을 위해서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동생이 돼지 치는 집에 가서 쥐엄 열매조차도 제대로 못 먹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을 찢는 아픔이 있어야 했습니다. 동생의 회개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들은 동생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나 그의 생명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동생은 죄를 범했기 때문에 당연히 버림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동생은 다만 자신이 지은 죄 값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생각입니까. 이 형은 자기 동생의 생명의 파수꾼으로 세워진 사실에 대하여 외면했던 것입니다(겔3:17-19).

  이 맏아들은 모든 것이 풍성한 아버지 집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사실인즉 그의 생활은 비참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그는 아버지에게 항의하기를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기며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한 일이 없었다”고 말한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집에는 양도 많이 기르고 살찐 송아지도 많았건만 이 맏아들은 가장 천한 염소새끼 한 마리 얻어먹지 못했다고 실토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이 풍성한 하나님 집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살찐 송아지는 고사하고 염소 새끼도 얻어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께 구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구해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집에 있는 재산이 다 내 것임으로 아버지 집에 있는 풍성한 것으로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실인즉 가난하고 어려움을 겪는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이 같은 맏아들의 불평과 항의에 아버지는 사랑으로 타이르셨습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이니 우리는 그것을 쓸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맏아들처럼 무의미한 교회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해야합니다.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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