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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장 (37-43)
 밤중소리  01-27 | VIEW : 543



  (37) 주님을 섬긴 가난한 부녀들  

  (누가복음 8 : 1 - 3)  


  서 론 : 예수님은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셨지만 그 목적은 복음을 전하시려는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겉보기엔 열 두 제자들을 데리고 다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겉으로는 나타나지 아니한 중요한 일군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1. 복음사업에 동참한 여인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에도 일군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합니다. 일군이 일을 하려면 먹고 마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입이 없는 분입니다. 그의 제자들도 직업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기 때문에 수입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들의 재정적인 후원자가 되어 주었느냐는 것입니다.

  (1)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복음사업을 위해 물질적으로 섬긴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여자들이었습니다. 이 여자들에 대하여 누가는 그들의 신분을 자세히 명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여인은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다른 또 한 명의 여인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라고 했습니다. 청지기란 종과 같은 낮고 천한 신분입니다. 이 여인은 가난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섬기기 위해 남편의 빈약한 급료에서 주님을 위해 감사하므로 봉헌했던 것입니다. 또 그 밖의 여인들도 이들과 그 신분의 별반 다를 바 없는 여인들로 그들은 마음을 함께 하여 이처럼 물질로 저희를 섬겼다고 했습니다.

  (2) 자기의 물질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는 일은 보람있는 일입니다. 자신의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에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6:19-21).

  이 여인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은 주리고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주님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희생할 때 그것으로 인한 보상에 대해 확실하게 약속하셨습니다(마19:29).

  (3) 이 여인들은 열 두 사도들과 똑같은 하늘의 상급을 받는 지혜로운 주님의 일군들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상급에 대하여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0:41). 선지자만이 선지자의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선지자를 선지자로 영접한 자도 같은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일을 도움으로 복을 받을 수많은 여인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일에 자기를 희생하여 도움을 준 많은 여인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현세에 받은 여러 가지 축복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 보다도 하나님나라에 가서 받은 그들의 상급은 더욱 클 것입니다.

  ① 엘리사를 섬긴 수넴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수넴에 이른 엘리사를 강권하여 음식을 대접했을 뿐 아니라 엘리사를 위해 방을 작만 하여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인에게 아들을 주셨고 그 아들이 앓아 죽었을 때 다시 살려주셨습니다(왕하4:8-37).

  ② 엘리야를 섬긴 사르밧 과부가 있습니다. 이 과부는 이 일로 그 땅에 가뭄이 지나기까지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③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습니다. 이들은 남다른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며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 때 무덤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④ 욥바의 다비다가 있습니다(행9:36-43). 자주 장사 루디아가 있습니다(행16:14). 복음의 동역자로 수고한 아굴라의 아내 브리스길라가 있으며, 바울로부터 교회의 일군으로 칭찬 받은 겐그리아의 뵈뵈, 교회를 위해 헌신적인 수고를 아끼지 아니한 마리아 등 수 없이 많은 것입니다.

  3. 주님을 섬기는 방법

  주님을 섬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1) 자기 소유로 섬기는 방법입니다.
  (2) 기도로 섬기는 방법입니다.
  (3) 지극히 작은 일로도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냉수 한 그릇도 주의 이름으로 대접하면 그 일로 상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 론 : 이들은 보잘것없는 여인들입니다. 누구 하나 알아 줄 사람도 없는 가난하고 못난 여인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우리 주님께는 귀한 보배 같은 일군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나라에 가서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차지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복된 여인들입니다.






  (38) 열매 맺는 씨앗

  (누가복음 8 : 4 - 15)  


  서 론 : 하나님의 나라와 열매와는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 맺는 백성들의 기업입니다(마21:43).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택정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나님의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에 있는 것입니다(롬7:4).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는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가에 대해 교훈해 줍니다.

  1. 길가에 떨어진 씨앗

  예수님의 비유는 길가에 떨어진 씨앗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 길가란 사람이 잘 다니는 행길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발로 밟힌바 되어 이미 딱딱한 토질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땅에 뿌려진 씨앗은 그 씨앗이 흙 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의 마음이 죄로 굳어져서 하나님이 말씀이 그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2)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사람에게 밟힌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지식에 밟히고 인간의 판단과 사고와 생활에 밟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마음에 정착하여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3) 이 같은 씨앗은 공중의 새들의 밥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속에 들어박히지 못한 씨앗은 공중의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란 공중권세를 잡은 사단을 의미합니다.

  2. 바위에 떨어진 씨앗

  더러는 그 씨앗이 바위에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바위 위엔 여러 층의 흙으로 계층이 있습니다. 그래서 씨앗이 그 흙 속에 묻힐 수 있는 것입니다.

  (1) 바위 위에는 뿌리를 내릴만한 흙이 없습니다. 얇은 흙에선 뿌리가 깊이 내릴 수 없습니다.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는 싹은 나지만 온전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실을 낼 수는 없습니다. 이 신앙은 세상을 따라가는 세속적 신앙입니다.

  (2) 이 씨앗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다고 했습니다. 습기란 수분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생명의 근원을 말합니다. 뿌리가 약하므로 수분을 끌어드릴 수 없습니다. 진리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심령을 주장하지 못하므로 그 싹이 곧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믿음은 시련이나 핍박이나 환난이 올 때 그것을 견디어 승리할 수 없습니다.

  3.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

  더러는 그 씨가 가시떨기 속에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주변환경이나 사정이 여의치 못해 결실을 못하는 경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밭에 가시떨기가 있었습니다. 이 가시떨기는 신앙성장에 결정적인 해를 끼치는 악한 존재입니다. 이 가시떨기에 대해 주님은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생의 염려는 우리의 신앙의 성장을 저해하는 가시떨기입니다. 재리란 물질에 대한 탐심을 말합니다. 일락이란 세상을 사랑하므로 세상 사람에 푹 빠진 상태를 말합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다”고 말씀해 줍니다(딤전5:6).

  (2) 이 사람의 경우, 씨와 가시가 함께 자란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의 신앙은 성장하는 것 같지만 실인즉 성정은 해도 결실이 없는 성장으로 마치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이룰 뿐입니다.

  (3)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았다고 했습니다. 결국 가시떨기는 우리들 속에서 우리의 신앙으로 생명의 결실을 못하도록 그 성장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4.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

  농부가 씨를 뿌리는 중, 그 씨앗이 더러는 그 밭에 있는 좋은 땅에 뿌려졌다고 했습니다. 이 땅은 뿌려진 씨앗이 자라기에 매우 적합한 땅입니다. 그 밭이 단단치도 아니했습니다. 이것은 회개한 심령을 말합니다. 바위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그 뿌리를 깊이 내린 심령입니다. 가시떨기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일이나 세상적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심령입니다. 이런 땅은 참으로 좋은 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곧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깨달은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에 들어갑니다. 언제나 말씀에 소망을 두고 인내하는 생활을 합니다. 이 밭에 떨어진 씨앗은 그 결실함이 백 배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결 론 :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결론적으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들을 귀한 어떤 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영적 귀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이 같은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귀는 또한 할례 받은 귀입니다. 이 귀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귀입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들을 귀 없는 자에게 비밀로 하시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지금 듣고 있다는 사실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9) 등경 위에 두어야 할 등불

  (누가복음 8 : 16 - 18)  


  서 론 : 오늘 본문에 나타난 등경 위의 등불의 비유는 씨뿌리는 비유의 결론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교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등경 위에 둔 등불처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빛을 비취어야 할 책임 있으며 각자가 행한 일에 대한 보응이 반드시 있다고 하는 격려와 경종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1. 등경 위에 둔 등불

  사람들이 등불을 켜는 이유는 그 빛을 사람들에게 비취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둠에서 그 빛을 통하여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이 등불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비유하셨습니다. 이 등불은 빛의 근원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빛 자체이시기 때문에 등불의 빛에 비유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빛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마음에 비추어진 그 빛의 반사를 의미합니다. 말씀을 받은 마음은 그 말씀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그리스도인의 빛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만이 이 빛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언제나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인내로 결실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들이 빛이란 그 열매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곳에서 하신 말씀의 참뜻을 알려면 마태복음에 나타난 산상보훈에서 찾아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마5:14-16).

  (3) 이 빛을 등경 위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는 이유는 그 등불을 비취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그 빛을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고자 함이 아닙니다. 등경이란 등잔을 올려놓기 위해 기둥이나 벽에 만들어 놓은 받침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먼저 그 가정에 빛으로 나타나야 하며 동리에서도 숨겨져서는 안됩니다. 등경 위에서 빛을 발사하지 못하는 등불은 이미 등불이 아닙니다.

  2. 숨은 것은 반드시 드러난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죄는 결과적으로 반드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를 맺고 맺지 않고는 제각기 자신의 자유에 속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은 종국적인 책임은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전도서에서 말씀하시기를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전11:9).

  이 같은 심판의 날은 주님의 재림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16:27). 우리의 마음이 죄로 강퍅해져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은 아무 것으로도 자신을 숨길 것이 없이 벌거벗은 몸으로 심판주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2)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빛을 가지고 사람들의 죄악된 그 어두움을 들추어내라고 하신 뜻입니다. 이 말씀의 맥을 우리는 예수님의 교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즉 두려워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마10:26).

  그리스도인들은 어둠과 동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둠을 책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빛으로 어둠을 들추어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록 세상에서 도외시되고 무시된 말씀이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세상에 빛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세상의 은밀한 죄를 드러내어 그들로 회개케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있어서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냥 흘러보내면 안됩니다. 노아의 때 사람들이 노아를 통하여 경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들었다가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롯의 때의 사람들은 롯의 경종을 농담으로 들었다가 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4)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일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열매를 맺히게 하시려고 우리로 그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눅13:6-9, 롬7:4).

  결 론 :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들과 같이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생애처럼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그의 남은 생애를 보람있게 살아야 합니다.






  (40) 예수님의 가족들

  (누가복음 8 : 19 - 21)  

  서 론 : 예수님은 언제나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비밀과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아들을 만나려고 찾아 나온 모친과 동생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하나님나라의 가족에 대한 새로운 교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주님이 맏아들이 되시고 우리는 그 안에서 아버지와 맏아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족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교훈은 바로 이 같은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1.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리스도안에서의 가족관계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안에서의 새로운 가족관계의 설명이 필요하셨습니다. 이것은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알고 그의 생활에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면서 병든 자를 고치시는 이적을 행하실 때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모함에 의해 예수님이 귀신에 잡혔다, 바알세불을 힘입었다는 소문이 주변에 퍼졌습니다. 아마 이 같은 소문에 괴로움을 받은 모친 마리아는 아들의 정신적이 괴로움과 피로를 더러 드리려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 온 듯 싶습니다. 그러나 운신조차 할 수 없는 많은 무리들로 인하여 만나기가 힘들게 되자 사람을 안으로 보내어 소식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자의 말은 이러했습니다.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예수님은 천국의 가족관계를 말씀하실 좋은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천국 백성들의 가족관계를 밝혀주신 것입니다.

  (1) 이 말씀은 지상의 가족관계의 중요성을 도외시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결코 가족관계를 소홀히 해도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십계명 중에 대인관계에 나오는 제 1계명이 바로 가족관계에 대한 바른 관념을 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핑계로 부모님 섬기기를 게을리 하는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셨습니다(막7:8-13).

  (2) 예수님도 자신의 가족을 중히 여기셨습니다. 요셉이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예수님은 오랫동안 목수 일로 그의 가족들을 부양하셨다고 여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모친을 요한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딤전5:8).

  (3) 다만 이 말씀은 육적 가족관계의 이야기에서 영적 새로운 가족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이신 교훈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영적인 가족관계에 대하여 소홀히 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이루어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일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육신의 가족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영적 가족관계도 올바로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 말씀에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가족관계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관계, 그리스도와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됩니다.

  (1)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아들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롬8:15).

  (2)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가족의 맏아들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그의 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롬8:29).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오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지만 한편 하나님 나라의 가족관계로는 황공스럽게도 우리의 맏형님이 되십니다.  

  (3) 우리는 하나님 나라 가족의 한 형제들이라고 했습니다(히2:12, 마23:8).

  3. 영적 가족관계의 특성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처럼 새로운 가족관계를 이루고 있지만 이 관계를 육신저인 가족관계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이 관계는 어디까지나 영적 관계입니다.

  (1)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한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으니 서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계명은 바로 이 같은 뜻에서 주신 계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족을 이루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2) 형제에 대한 사랑은 진실한 도움에 있습니다. 한 몸의 지체가 괴로움을 당했을 때 몸 전체가 괴로움을 당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형제의 괴로움에 동참하는 일이 하나님 가족의 사랑입니다.

  결 론 :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고 하신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뜻이며 이런 하나님 나라의 가족은 듣고 행하는 자란 사실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41) 바람을 꾸짖으신 예수

  (누가복음 8 : 22 - 25)  


  서 론 : 우리는 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신적 사역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사실은 그의 말씀의 능력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창조주의 말씀이기 때문에 모든 만물이 그의 만물에 순종합니다. 그가 말씀으로 광풍을 향하여 꾸짖었을 때 그것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잠잠하여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의 말씀임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1. 잠이 드신 예수님

  바쁘신 일정 중에서 하루하루를 지내시는 예수님께는 쉬실 틈이 없으셨습니다. 갈릴리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실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향하여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에 의해 배는 육지에서 떠났고 예수님은 무리들로부터 떨어지고 사면이 조용해지자 깊은 잠에 드셨습니다.

  (1) 예수님이 배 안에서 깊은 잠이 드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큰 경종을 주고 있습니다. 그 배의 위기는 배 안에 계신 예수님이 잠이 드렸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위기는 바로 여기서 찾아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주무실 때 우리 신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주무시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주무시지 못하도록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끊어질 때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주무십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는 주님으로 주무시지 못하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주님께 아뢰는 생활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셨습니다(빌4:6).

  (3)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주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주님은 주무십니다. 배 안에 있었던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과 재능을 의지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자라온 그들은 이만한 풍랑은 자주 만났었고 그때마다 그들의 능숙하고 노련한 기술로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당한 위기에서 예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잠3장에서 이르시기를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고 하셨습니다(잠3:16).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잠30:5). 시편2:12에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잠29:25절에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 자신들의 자만과 경험과 지혜를 버리고 주님을 의지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배에는 위기가 왔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 찼습니다. 아무리 물을 퍼내도 사나운 파도로 높은 곳에서 내려치는 물결과 물의 넘침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갑자기 그들의 머리와 몸에 엄습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일은 경험이 필요 없습니다. 경험을 의지하는 자는 경험 이상의 위기가 닥쳐올 때 그 위기를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깨운 제자들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이 부족하고 그들이 노력하는 일이 무모한 일임을 깨달을 때 주무시는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때나 늦었다는 말을 믿으면 안됩니다. 이제 절망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났다, 이 말은 우리를 절망의 함정으로 끌어드리려는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1) 제자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절박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그들의 기도는 절박했습니다.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는 일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주님은 절박한 상황에서 부르짖는 우리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들으십니다. 예수님은 잠에서 깨셨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습니다. 그랬더니 바람과 물결이 잠잠해졌습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입니다. 제자들은 어리석었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쓸데없는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들 제자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때 가서야 비로소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시면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이처럼 기도할 것입니까? 기도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회개는 이를수록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은 속히 할수록 형통함을 받습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면서 책망하셨습니다. 이 책망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왜 나를 깨지 아니하였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평소에 자랑하든 믿음이 어디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결 론 : 예수님은 지금 나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내 생애 중에서 살아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히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롬8:33-34). 여러분, 절대로 두려워 마십시오. 그 어떤 위기에도 주님을 의뢰하고 그에게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승리는 반드시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42) 거라사 인의 불 신앙

  (누가복음 8 : 26 - 39)  


  서 론 : 사람들은 심히 충격적인 체험과 믿을만한 증거를 보고도 그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라사인들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귀신들린 청년의 온전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들의 돼지 떼들이 몰살한 사건으로 더욱 실감있게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예수님의 놀라운 권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들의 구주로 섬긴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을 그 땅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1. 귀신들린 자의 간구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셨습니다. 이곳에는 그 도시 사람으로 귀신들린 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무덤사이에 거하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옷도 입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1) 예수를 본 이 청년은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부르짖은 간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이처럼 주님께 간구한 이유는 예수님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 더러운 귀신을 향하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인간의 육신을 지배하고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경우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귀신은 이 청년의 육체뿐 아니라 그의 정신과 생각까지도 주장하여 이 사람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2) 여기서 우리는 귀신은 그들의 세계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귀신이란 원래가 사단과 함께 하늘에서 하나님을 반역한 천사의 무리들인데 그들 중에 얼마는 무저갱 속에 결박당한 채로 영원한 형벌가운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벧후2:4, 유6). 그러나 그 중에 어느 계층은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지상에서 활동을 허락하셨습니다.

  귀신들의 역할은 선택받지 못한 자들을 믿지 못하게 하고 선택받은 자들을 시험하고 연단케 하시려는데 그 사용목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신들 자체의 삶도 심히 괴로운 삶이며 고통스럽고 저주스러운 삶을 살다가 결국은 영원한 멸망에 떨어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귀신들이 예수님께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귀신들의 간구한 내용이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저갱은 영적인 감옥으로 범죄한 천사들이 가 있는 곳입니다(벧후2:4). 유다서6절에서는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마침 그곳에 많은 돼지 떼가 있는 것을 보고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하심을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간구를 허하셨습니다.

  (4) 예수님이 귀신들의 간구를 허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는데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의 간구를 허락하신 일은 응답이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해당되는 특권입니다. 귀신들을 무저갱으로 보내지 않으신 이유는 그들은 무저갱으로 보낼 귀신들이 아니라 지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쓰임 받을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돼지 떼에게 들어가기를 허락하신 일도 거라사인들이 그들의 희생을 통한 깨달음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라사인들에게 예수님의 기적을 보여주시므로 복음을 전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거라사인들 중에 선택받은 하나님의 잃은 양은 무덤 사이에 있었던 귀신들린 그 청년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께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신 일입니다.

  2. 하나님의 큰 일을 네 집에 고하라

  거라시인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하나님의 큰 일을 보고도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돼지 떼를 일시에 잃은 일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크신 능력과 권능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듣고 알게 된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상 손실을 애석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는 자기들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다  주는 위험인물로 간주하게 되었으며 더 큰 재앙을 만나기 전에 그곳으로부터 빨리 떠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물질의 손실 때문에 주님을 멀리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귀신 들렸던 청년은 예수님을 만나 온전해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가기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을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먼저 자기 집에 가서 그 집안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가를 일일이 고하는 일입니다. 그 청년은 살아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를 먼저 자기 집안 식구들에게 일일이 고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가에 대한 증거를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사실을 감사와 기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 론 : 이 청년은 온 성내에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라사인들의 불 신앙적인 태도를 버리고 이 청년이 자기가 받은 은혜를 전파한 것처럼 신실한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43)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누가복음 8 : 40 - 56)  


  서 론 : 신앙생활에는 간혹 두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에는 두려워할 만한 사건들이 수시로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힘있게 달려가다가도 절망적인 사태 앞에 이르게 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혹은 낙심하게도 됩니다. 이런 때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의심을 품게 하여 기도의 능력을 빼앗아 갑니다.

  1. 혈루증 여인의 경우

  예수님이 거라사인의 배척으로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회당장 야이로가 나타났습니다. 회당장의 신분은 유대인 사회에서 유대인들에게 높임과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앞에 나와 그 발아래 엎드려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를 따라 그의 집으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런데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기다린 또 한 명의 여인을 만나시게 되었습니다.

  (1) 이 여인은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여자였습니다. 누가는 의사였기 때문에 이 여인에 관한 병 증세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혈루증이란 병명은 정확한 의학적 병명이 아닙니다. 원어 해석으로 보면 ‘뤼시스 하이마’로 피가 흘러나온다는 뜻으로 여자들에게 흔히 있는 유혈병으로 보며 지금 의학적인 진단으로 본다면 아마 자궁암으로 인한 고통으로 짐작됩니다. 이 여자는 이 병을 고치기 위해 오랜 기간 있는 돈을 허비해 가면서 의원들에게 괴로움을 당했지만 병 증세는 더욱 악화된 그런 상태였습니다. 이때 이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뒤를 따라 가면서 행렬에 섞였습니다.

  (2) 이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가를 만졌다고 했습니다. 옷가란 길게 늘어뜨린 겉옷 네귀에 가두리 장식을 단 옷술을 말합니다. 이 여인의 병은 율법적으로 부정한 병이었으므로 예수님 앞에 나가서 자기 병을 위한 간구를 드리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옷가를 만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댔을 때 자신의 능력이 그에게 나간 줄을 아셨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야이로와는 신분의 차이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질병의 고통 중에서 예수님께 최종적인 소망을 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리지도 않았고 간절하므로 간구하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그의 믿음대로 증시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께만 연결되면 그로부터 능력이 나오기 때문에 무슨 문제이건 해결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2. 야이로의 딸의 경우

  혈루증 여인과의 대화가 아직 진행 중일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 집의 종인 듯한 이 사람의 말은 “당신의 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예수 선생을 더이 상 “수고를 끼쳐 괴롭게 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1) 이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인생의 최종적인 절망으로 알고 있습니다. 병으로 앓아 죽어갈 때는 그래도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소망이 있지만 숨이 끊어져 죽은 후에는 더 이상 무슨 소망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이 같은 전갈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집에서 보낸 사람에 의해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야이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이 왔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야이로를 향하여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손길은 언제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그는 말씀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 두려움을 내쫓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믿음에는 언제나 그 주변에 두려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믿음과 두려움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내어쫓아야 합니다. 두려움을 쫓는 방법은 주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4) 예수님은 그 집에 들어가 그 죽은 딸을 살려내셨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애곡하는 무리들이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야이로의 딸의 죽음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잔다는 말은 다시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소녀가 예수님의 권능으로 좀 뒤에 다시 살 수 있거니와 그 보다는 이 말씀의 뜻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결코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고 명하니 그 영이 돌아와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믿기만 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만을 믿고 끝까지 순종해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이 있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아무 일에나 두려워말고 믿음으로 나가야 믿음의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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