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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장 (22-27)
 밤중소리  01-25 | VIEW : 1,079

  (22) 씨뿌리는 비유

  (마가복음 4:1-20)

  서 론 : 예수님은 천국의 오묘한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신 경우가 많으셨습니다. 비유란 ‘파라볼래’로 곁에 두다, 비교하다란 의미로 ‘양자를 비교하기 위하여 어떤 하나를 다른 것의 곁에 두는 것’을 가리킵니다. 천국에 관한 해석을 돕기 위해 그것과 비교시켜 이해하도록 하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이 비유를 비유로서 해석하지 못했을 때 진리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비유를 해석함에 있어서 비유에서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는 특징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비유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그 하나 하나에 걸쳐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의미를 주려고 시도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이 각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드려지는가에 대하여 그 과정이 설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1. 씨뿌리는 자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기 이해 배에 올라 바다에 떠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씨뿌리는 비유로 가르치실 때에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씨에는 무한한 생명력이 잠재해 있기 때문에 무한한 생명의 능력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유되는 일은 매우 합당한 일입니다. 씨는 열매를 맺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비유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사55:11).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면 말씀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씨는 뿌려야 자라나며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사람의 마음속에 뿌려져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씨는 뿌리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 14절에서 이르시기를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씨를 뿌려야 할 사람을 어느 계층만의 사람으로 국한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씨뿌리는 자의 축복에 대하여 매우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3-15).

  2. 씨가 떨어지는 네 종류의 밭

  비유에서 예수님은 이 씨가 뿌려지는 밭으로 네 가지 종류를 보여 주였습니다.   (1) 더러는 이 씨앗이 길가에 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리었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라고 해석해 주셨습니다(15). 길가는 열매를 얻기 위해 마련해 놓은 밭이 아닙니다. 그저 단단할 땅일 뿐입니다. 이것은 완악한 마음, 강퍅한 마음, 복음을 거역하는 마음, 회개를 거절하는 마음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머물지 못하고 곧 살아져 버리는 이유에 대하여 주님은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이 돌밭에 대하여 16절에서 해석해 주시기를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었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이 얇다는 말은 말씀의 깨달음이 천박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육적으로 깨닫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신앙은 언제인가 때가 오면 넘어집니다.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가 오는데 이때 이들은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는 그의 믿음을 시험하는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나 핍박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뿌리가 없는 신앙은 이때 넘어지는 것입니다.

  (3)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씨앗은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았기 때문에 결실치 못하는 씨앗이라고 하셨습니다. 19절에서 이 말씀을 다시 설명하시기를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 어느 정도 성장하여 얼마간 교회에 나와도 그의 심령 속에 재물에 대한 욕심이 남아 있고 세상에 대한 염려가 살아지지 않고 세상 죄악에 대한 유혹을 받아 드리는 생활을 한다면 그런 신앙은 끝내 결실을 못하고 맙니다.   (4)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 씨앗이 떨어지자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좋은 땅에 뿌리었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밭은 회개한 심령을 말합니다. 믿음을 간직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은 그 말씀을 순종하기 때문에 그 열매가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여 그의 생애에 놀라운 축복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결 론 : 주님의 이 씨뿌리는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비밀이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이해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듣고 깨달아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23) 하나님 나라의 비밀

  (마가복음 4:10-12)

  서 론 : 우리는 성경을 특별계시라고 말하여 자연계시와 구별합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하여 어느 정도 자신을 나타내 보이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자연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까지는 더듬어 알게 되지만 그를 찾는 길과 그의 은혜를 받는 길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은 오직 자신을 드러내시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길을 보여 주신 성경으로서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리켜 특별계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특별계시는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자연계계시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만이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비밀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비유는 거의 모두가 복음서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밀을 말씀하시는 중에 예수님이 사용하셨습니다.

  1. 하나님 나라의 비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밀이란 말은 자연의 이해력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 인간의 사고력으로는 깨달아질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영으로 일깨움을 받은 사람만이 이해되는 것을 말합니다.

  (1) 예수님은 이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주었다고 하신 말씀은 깨달을 수 없도록 장벽을 두었거나 비밀에 가리워 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너희라고 부르신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배워야 하며,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2) 너희라고 하신 무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는 “너희와 외인”들이 있는 것입니다(11). 너희란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외인이란 그밖에 사람들을 뜻합니다. “창세 전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받은 무리들”이 있는 것입니다(엡1:3-4).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음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일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지 때문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요16:13).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시고 또한 그들의 생활 가운데서 여러 가지로 역사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가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고전2:12).

  (4) 비밀을 깨닫는 일에는 우리의 영적 귀가 열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은 그 사람의 영적 귀가 열려지지 않고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죄는 우리의 영적 귀를 둔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순종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그의 영적 귀가 어둡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여 말씀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의 뜻을 따르겠나이다”라고 하는 생활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감춘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설명하신 일이 대하여 “이는 너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들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로 이 비유를 통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는데 목적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비유로밖에는 해석해 줄 도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비유적인 해석은 그들로 참으로 깨달아 회개하여 죄 사함을 얻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밀의 뜻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어느 정도 이해시키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2)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이 때문에 회개를 스스로 거부합니다. 그들의 심령은 쌓인 죄로 인하여 완악해져 있습니다. 돌처럼 굳어져 있는 그들의 마음을 그 무엇으로도 깰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교만은 하늘 끝에 닿았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 대하여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결론 : 제자들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여 그 해석을 구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깨닫지 못함을 나무라시고 이 비유에 대한 영적인 해석을 가해 주셨습니다. 이 해석을 통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의 진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은 사람들은 비유의 뜻을 설령 알았다고 해도 깨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비웃거나 거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바리새인들에게 들려주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16:13).




  (24) 등경 위에 있는 등불

  (마가복음 4:21-25)

  서 론 :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잠시 동안 암시적인 말씀으로 그들 자신이 숙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셨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 아니냐” 제자들은 이 암시적인 질문의 말씀에 직각 ‘아,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동경 위해 두려 함이 아니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대답했을 것입니다. 등불은 밤중에 비추는 빛을 말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가정에는 이 등이 있었고 밤이 되면 예외 없이 등불을 켰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부엌이나 혹은 다 마당에서 등불을 가지고 방으로 가져왔다면 아마도 그 등불을 말(쌀 같은 것을 되는 그릇)아래나 평상(침상 같은 것) 아래에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안약 등불을 그런 곳에 둔다면 그 등은 빛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등불은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1) 여기서 등불이란 곧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 복음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복음을 받은 후에 그 복음의 빛을 사면에 비췸이 없이 마음속깊이 숨겨 둔다면 그 복음은 이미 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 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은 세상을 밝히는 빛인데 그 빛을 자기 혼자만 간직해 두는 일은 마치 등불을 평상 아래나 말 아래 두려는 어리석은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해야 빛을 비췰 수 있습니다.

  (2) 말이나 평상은 빛을 숨기는 온상입니다. 숨기는 말이나 평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유대인들의 전통을 의미해 주기도 합니다. 그들은 장로의 유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감추었습니다(마15:5-6). 또한 그들의 외식도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마23:23). 우리들 속에 죄악이 들어와 있다면 그것이 이 빛의 통로를 차단하는 말이나 평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주실 때 세상을 비취는 빛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마치 등불을 말이나 평상 아래 숨겨 둔 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가려 빛을 발산하지 못한다면 그 빛은 빛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취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내 속에 있는 빛도 언젠가는 꺼져 버릴는지 모릅니다.

  2.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고 말씀하시고는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1) 무슨 말씀인가에 대하여 조심해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그 말속에도 다른 복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으라고 선언되었고 이 잘못된 복음에 물든 사람 역시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갈1:7-8). 바리새인들은 장로의 유전을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위치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조심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그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고 있는가에 대하여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을 귀 있는 자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들을 귀란 할례 받은 귀로, 회개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회개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자신의 생활에 적용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흘려버리게 되며 그렇게 될 때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히6:7-8).

  (3)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헤아린다는 말은 ‘메트레오’로 측량한다, 재어 분배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면(헤아린다면) 하나님의 적격한 측량을 받게 될 것인데 그의 대한 보상은 더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말씀의 자로 측량합니다(계11:1-2). 우리는 말씀의 자의 측량에 합격할 수 있도록 말씀을 배우며 말씀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3)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해석을 다음과 같이 하는 것이 이해하기가 쉬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감추인 것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드러나게 마련이다”(현대인의 성경에서 발취). 모든 비밀은 그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비밀로서 아직까지 숨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이 예수님에 의하여 밝혀진 것입니다. 말 아래나 평상 아래와 같은 어두운 곳에 감추지 말고 사면에 빛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3.  있는 자와 없는 자에 대한 보응

  주님은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는 하나님의 측량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것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생활을 가져야 하며, 봉사하는 생활을 가져야 하며, 구제하는 생활을 가져야 합니다. 이 같은 그리스도인의 소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좋은 것을 받을 것입니다.

  결 론 : 우리는 우리의 복음의 빛을 동경 위해 두고 그 빛을 사면에 힘있게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심스럽게 듣고 그 말씀을 따른 생활을 통하여 더 많이 받는 축복된 생애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5) 하나님나라의 성장과정

  (마가복음 4:26-29)

  서 론 :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 말씀의 씨앗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가에 대한 신비적인 역사에 대하여 또 다른 비유로 설명해 주십니다. 이 비유는 두 가지 뜻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들 마음속에 떨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그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심령의 천국에 대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 씨앗이 이 세상에 떨어진 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추수의 계절을 의미해 주는 교훈입니다.

   1. 하나님의 나라와 땅에 뿌려진 씨앗

  예수님은 씨앗을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씨를 복음이라고 하면 사람은 그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을 의미합니다.

  (1) 씨를 뿌린 땅이란 열매를 맺을 만한 좋은 땅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4:8).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이 충실한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의 책임을 의미합니다.

  (2)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랐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씨앗이 떨어진 밭에서의 성장과정을 가르쳐 주시려는데 있습니다.

  ① 먼저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야 합니다. 이씨는 물론 영생의 씨앗입니다. 마치 겨자씨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발견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구원과 영생과 천국의 완전한 생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② 이 씨는 반드시 자라납니다.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그것이 땅에 떨어진 후에는 큰 나무를 이루는 것처럼 복음의 씨앗은 그 떨어진 밭에서 결실을 하는데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롬7:4).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1:43).

  ③ 이 씨는 사람이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자라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점진적이요 계속적임을 의미해 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급격한 완성품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복음이 들어갔다고 그 즉시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로부터 찾으려고 한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받은 사람의 성장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 성장은 결코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점진적 과정이 따르는 법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자라남과 같은 것입니다.

  ② 그 자라남의 과정에서 어떻게된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씨앗의 신비적인 능력을 가리켜 주고 있습니다. 농부들이 밭에 뿌린 씨앗은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농부가 밭에 뿌리는 씨앗은 자연의 비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비밀을 농부들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하나님의 영적 비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 말씀의 영적 활동 상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같은 말씀의 신비적인 역사에 대하여 예수님은 바람의 원리를 예로 들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3:8).

  2. 땅이 열매를 맺는 순서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하셨습니다.

  (1) 처음에는 싹이라고 하셨습니다. 씨가 처음에 땅을 헤치고 머리를 내밀 때 처음부터 온몸을 드러내 놓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나오는 것은 싹입니다. 우리가 싹을 보는 것만으로는 결실의 가능성은 보이지만 그 싹으로부터 당장에 열매를 딸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다음에는 이삭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열매를 맺는 일에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기초적인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열매는 싹에서 맺는 것이 아니라 이삭에서 맺게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졌다면 싹이 나온 후 이삭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삭이 다시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3) 다음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하셨습니다. 곡식이란 ‘시토스’로 알곡이란 뜻입니다. 충실하다는 말은 가득하다, 채우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열매를 원하시되 충실한 열매, 가득 채운 알곡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열매가 익으면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추수 때란 종말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열매가 익는다는 말씀은 복음의 땅 끝까지 전파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의 수효가 다 채워 진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때 이 백성들을 알곡으로 추수하시려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 재림의 목적이 악인에 대한 심판에 있다기보다 그의 백성들을 알곡으로 추수하시려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결 론 : 땅에 떨어진 씨앗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그 열매를 맺는 과정을 일일이 관찰하거나 살펴볼 수는 없지만 싹이 이삭으로, 이삭에서 충실한 알곡으로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26) 겨자씨에 비유된 천국

  (마가복음 4:30-35)

  서 론 :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에 관한 교훈에서 계속적인 비유로써 말씀하셨는데 이번에는 겨자씨의 자라나는 모습을 하나님의 나라와 비교하시면서 강론 하셨습니다. 모든 씨앗이 작지만 그 중에서도 더 작은 씨앗이 바로 겨자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씨앗의 크기에 비하여 그 결실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이 비유는 복음이 세상에 나타내는 성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그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이 비유는 복음의 능력을 가리킨다.

  왜 하나님의 나라를 이처럼 겨자씨 같은 작은 존재로 비유하신 것인가? 그것은 복음이 사람들이 보기에 심히 미미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결과가 엄청난 결실을 가져온다는 사실에 대하여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식되고 있는 복음이 어떻게 큰 나무를 이루는가에 대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비록 복음이 매우 작은 것으로 보여지지만 겨자씨 안에 미지의 생명력이 있어 그토록 큰 나무를 형성하는 것처럼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신비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피고로 심문했던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이에 대하여 대단스럽게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바울을 심문하고 있었던 베스도는 크게 소리 질러 말하기를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했습니다(행26:24).

  그러나 이 복음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으로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십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1:16). 하나님은 복음으로만 죄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복음에는 사람을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은 율법으로도 선행으로도 의로워 질 수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롬3:10).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의를 얻을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시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길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언약인데 이 언약이 예수 그리스를 믿는 믿음으로 나타났습니다(롬3:21-22). 복음에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요1:12-13).

  2. 이 비유는 신앙의 성장을 말해 준다.

  겨자씨는 작지만 땅에 심겨진 후에는 자라나서 심히 커집니다. 심령의 땅에 떨어져 심겨진 복음의 씨앗은 처음에 마치 겨자씨 모양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그 씨앗은 놀랍게 자라나서 크나큰 나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 씨앗은 심는 일이 중요합니다. 심지 않은 씨앗은 한 알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씨앗은 땅에 심겨질 때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복음의 씨앗 역시 심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씨를 심는 밭이란 사람의 심령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 씨앗을 뿌리는 일로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란 대단히 중요합니다(롬10:14-15).

  (2) 심겨진 씨앗은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만약 땅에 씨앗이 심겨진 후에 자라나지 못한다면 아무 결실도 바라볼 것이 없습니다. 심령에 떨어진 복음의 씨앗이 자라나지 못하면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영적 성장의 장애물이기 때문에 언제나 회개로 그 심령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과 육이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이 겨자씨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로 표현된 교회의 부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처음에 복음은 단 한사람에 위하여 심겨졌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나사렛 예수란 청년에 의하여 갈릴리로부터 전파된 것입니다. 이 복음은 또한 주님의 12제자들에 의해 뿌려졌습니다. 처음에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떨어진 성령의 불이 시발점이 되어 온 세계에 전파되어 오늘날의 교회를 이루게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경우를 보아도 처음에 한 겨자씨 같은 지극히 작은 복음의 활동으로 시작된 것이 오늘날 이처럼 세계 선교에 전초 기지가된 것입니다. 서상륜에 의하여 세워진 소래 교회가 우리 한국 교회에 뿌리를 이루었습니다. 토마스 목사가 대동강변에 뿌린 순교의 피는 적었지만 한국 교회 의 큰 부흥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결 론 :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 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교회의 방주적인 사명을 가리킨 것입니다. 성장한 나무에는 새들이 모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뭇 심령들이 깃들여야 합니다. 그늘에 깃들인다는 말씀은 영혼의 안식을 말합니다(마11:28).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영생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위대한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 있는 복음이 내 마음속에서 나를 지배하고 내 마음을 주장하므로 내 심령을 새롭게 하며 내 인생을 새롭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27) 어찌 믿음이 없느냐

  (마가복음 4:36-41)

  서 론 :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그대로 배에 태우고 바다를 건너가던 제자들이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배에는 물이 들어찼으며 배가 침몰 직전에서 위험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풍랑에서 건지기 위해 힘껏 노력했으나 힘에 겨워 사태가 악화되자 아우성을 치면서 수라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면서 살려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시고 제자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면서 나무라셨습니다.

  1. 저편으로 건너가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의 말씀을 교훈으로 주시고 그곳을 떠나시기를 명하셨습니다.

  (1) 저편이란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말해 줍니다. 이편은 떠들썩한 세상입니다. 많은 군중들이 아우성치
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생존경쟁으로 싸우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편은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저편이란 우리가 달려갈 곳, 우리의 소망의 땅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저편을 바라보는 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노아의 시대의 사람들, 롯의 시대의 사람들이 이처럼 이편만 바라보고 이편에만 집착하는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눅17:13-14). 넓은 길은 가기는 좋지만 멸망의 길입니다. 육신대로 살아온 지난날의 생활에서 벗어나 영으로 육의 생각을 죽이는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야 합니다.

  (3) 저편은 미지수이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저편을 향해 노를 저가든 제자들에게 갑자기 광풍이 불어 왔습니다. 물이 배에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심한 위험을 느껴 죽는 줄로까지 알았습니다. 항해에는 위험이 따르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바라보고 우리의 인생 길을 걸어가는 일은 위험한 항해와 같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는 것처럼 크나큰 시험이 오기도 합니다. 무서운 광란이 일어나는 것처럼 환난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중도에 파산이 되거나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광풍을 만난 제자들

  제자들이 저편을 향하여 출발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큰 광풍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부딪혀 물이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나는 길이라 이 같은 어려움은 뜻밖이었습니다.

  (1) 이 광풍은 믿음의 시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적 생활을 벗고 영적 생활에 들어가려면 믿음의 시련이 필요합니다(약1:2-4).

  (2) 이 광풍은 그리스도인의 가는 길에 만나는 환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에도 환난이 있습니다. 환난이 따르지 않는 인생들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에게 찾아오는 환난의 짐을 지고 그의 생애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빌1:29).

  (3) 이 광풍은 그리스인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징계 없이 성장하는 자녀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징계를 내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히12:7-12). 하나님의 징계는 그 징계를 받을 그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3. 깨신 예수님

  이 같은 큰 광풍의 위험 속에서 제자들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광풍으로 죽게 되어서야 비로소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운 것입니다.

  (1) 우리 생애에 풍랑을 만났을 때는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어려움을 만난 그리스인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 헤어 나오기 위하여 인간적인 방법으로 노력하는 일은 무의미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주님께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간구하기 전까지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는 일이 간구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무시는 예수님을 빨리 깨워야 하는 것처럼 재빨리 간구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도움의 간구를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했을 때에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잠에서 깨신 예수님은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을 우리 주님은 기쁘게 여기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의 어려움을 아십니다. 잠에서 깨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쌍히 보시고 바다와 바람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하심에 아주 잠잠해졌다고 했습니다.

  결 론 : 배를 큰 풍랑의 위기에서 구해 주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나무라셨습니다.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이 말씀은 예수님께 대한 의지를 의미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의지했었다면 이 같은 두려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알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더라면 두려움 없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즉시 깨웠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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