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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7 (어떤 길을 걷는 인생의 결국)
 밤중소리  01-20 | VIEW : 1,345
                        (207)


         어떤 길을 걷는 인생의 결국


   성경 본문 /  잠 언 16 : 25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주는 말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보기에 바르다는 말씀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타당성 있다는 뜻입니다. 도덕적으로도 양심적으로도 하자가 없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이 길이 자기에게 행복을 선사해 주는 길인 줄로 알고 그 길로 걷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 길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의 결국은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길을 걸어온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실패하여 사망에 이른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이 같은 길을 걷다가 낭패한 사람들을 허다히 보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신생교회 성도들은 자기 판단에 따라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다가 결국은 실패와 사망의 길로 떨어지는 사람들, 이 어떤 길을 걸어가는 분들이 한 명도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인생의 길에 대하여 마7:3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은 좁은 길을 가기를 싫어하고 이치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넓은 길을 따르려고 합니다. 노아 시대의 그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찾아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종하시기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인류의 종말에 또한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개탄하셨습니다. 이 같은 넓은 길에서 발길을 돌이켜 노아와 함께 방주를 만들어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길을 즐겨 걸어간 것입니다. 그들의 결국은 홍수심판에서 파멸을 맞았습니다.

  오늘 본문 잠16:25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어떤 길’이란 바로 이 길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어떤 길이란 사람들이 보기에 합당하게 보이고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보이지만 그 길은 결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므로 결과적으로 생명이나 축복에 이르지 못하고 필경은 실패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입니다. 주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길이 축복의 길이건만 노아의 때처럼, 롯의 때처럼, 이 길을 싫어하고 자신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어떤 길을 찾아 그 길을 걷기를 즐겨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오늘날 이 수많은 교회 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교회가 얼마나 됩니까? 노아의 경종을 듣고 방주를 준비하는 교회 또한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내가 속히 오리라’고 목메어 호소하시건만 그 소리를 듣고 신부의 단장을 시키는 교회, 신부의 단장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됩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필경은 멸망에 이르는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으면서도 그 길이 믿음의 길 인줄로, 옳은 길인 줄로, 행복한 길인 줄로 믿고 태연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바른 인생의 길을 걷지 못하고 어떤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누구이며 이들은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므로 써 우리들의 신앙 생활의 경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1. 하와가 걸어간 어떤 길


  인류 최초로 이 ‘어떤 길’을 걸은 사람은 아담의 아내 하와입니다. 하와는 하나님이 명하신 생명에 이르는 말씀을 남편으로부터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네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은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와는 선악과가 바라보이는 에덴 동산에서 뱀을 만났습니다. 이 때 뱀은 하와에게 네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어서 죽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오히려 먹으면 하나님처럼 완전해 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이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어디 있는 줄 알았다고 여겼습니다. 하와에게는 뱀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그럴 듯 하게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타당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하와의 마음이 급속도로 움직였습니다. 그 실과를 먹으면 정말 하나님처럼 될 것 같이 믿어진 것입니다.

  하와는 그 실과를 따먹었으며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과연 하나님처럼 된 것입니까? 그들의 눈이 뱀의 말처럼 밝아지기는 했지만 그 밝아진 눈은 육신의 눈입니다. 그들이 생령의 몸으로 살아갔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선하였고 아름다웠으며 악이나 죄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정욕도 없었고 음란한 마음도 없었으며 양심으로 판단할 수 있는 악이나 율법으로 판단하는 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게 되자 그들의 몸에는 죄가 들어왔고 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새롭게 열렸으며 죄를 판단할 수 있는 양심이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작용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죄인이 되어 버린 그들은 양심의 선과 악은 분별할 수 있었지만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되고 악을 좇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이나 판단 없이 선악을 판단하게 되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뱀의 말처럼 선악을 분별하여 하나님처럼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할 생령의 몸은 이제 육체의 몸으로 변하여 그 밝아진 눈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없게 되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거룩함과 의로움과 지혜로 활동했던 그들의 마음은 이런 형상이 살아졌고 그 대신, 육신의 정욕과 탐심과 음란을 생각하며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주는 말과 유혹은 모두 그럴듯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다 이런 식으로 우리를 농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와가 택한 어떤 길은 그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준 것입니까?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님과 같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마귀처럼 타락하게 되었고 이런 일로 행복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었고 그 결과 죄 값인 죽음을 선언 받게 되어 필경 그들과 그들의 가정과 그들의 자손인 온 인류에게 사망을 안겨다 준 것입니다.

  아무리 듣기에 달콤하고 귀에 아름답게 들려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길은 그 길이 어떤 길이든 그리스도인이 걸어갈 정상적인 길이 아닙니다. 사탄의 유혹은 언제나 타당성 있게 보이고 그 미혹의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 길엔 하나님의 약속이 없기 때문에 필경은 멸망과 사망의 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 롯이 걸어간 어떤 길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이 어떤 길을 걸어가다가 멸망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가나안의 흉년을 피하여 애굽으로 갔다가 나오는 길에 아브라함과 롯은 그들이 가진 재산으로 말미암아 종들끼리 서로 싸움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이르기를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아는 좌하리라’고 말하면서 롯에게 먼저 거주지의 선택권을 맡겼습니다. 이 말에 롯은 자기 앞에 널리 펼쳐진 사면의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많은 재물을 모아 풍족하고 넉넉하게 부자로 살 수 있는 땅은 어디일 것인가? 그 때 롯이 눈앞에 가까이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땅이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처럼 보였습니다. 온 들판은 기름졌고 사방에 맑은 물이 흐르고 샘물이 솟구쳤습니다. 롯은 그 땅을 탐내어 삼촌에겐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전부 자신의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기름진 땅과 들판을 롯에게 내어 준 아브라함은 지난날 흉년이 들어 어려움을 겪었던 그 가나안 땅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바른 길을 택한 것입니까? 메마른 들판 위에 서서 사면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성 남북을 바라 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할 수 없는 큰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큰 갑부가 되었고 그의 자손들이 이 땅에서 번성했습니다.

  그러면 롯은 어떠했습니까? 과연 롯은 자신이 기대 한대로 그 땅에서 얼마 안가 부자가 되었습니다. 롯은 자기가 퍽 지혜로웠다고 생각하면서 득의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 한가지 명심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잠28:22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히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롯이 누린 재물과 영광은 그리 오래 계속된 것은 아닙니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간 후, 엘람 왕의 연합군이 소돔 땅에 쳐들어와 롯이 축재한 모든 재물과 양식을 강탈 해 갔으며 롯 자신과 가족들까지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길,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시는 어떤 길을 택하고 그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롯은 그 후에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가다가 하늘에서 유황불이 쏟아지는 심판으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탈 때, 모든 재산이 불에 타 몽땅 사라져 버렸고 롯의 아내는 도망가다가 뒤를 돌아본 연고로 소금 기둥이 되어 지금까지도 그 땅에 소금 기둥으로 남아 있어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어떤 길을 걷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결국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아무리 그럴 듯하고 아무리 타당성 있게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길은 소망의 길도 아니며 축복의 길도 아닙니다. 마귀는 그럴듯한 말로 우리를 ‘어떤 길’로 유혹하지만 그 길을 계속 걸어가면 필경은 파멸과 멸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신기루 같은 행운을 잡아보려고 롯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롯이 걸어간 그 길에서 빨리 발을 돌려 말씀의 길로 돌이켜야 합니다. 지금은 형통할 것 같고 잘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에는 마귀가 몰래 처 놓은 파멸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 돛에 한번 걸리는 날이면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두리니 육신으로 심는 자는 그 육신으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그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육체를 심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따르지 아니한 사람의 계획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심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1장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고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지혜와 계획에 따라 결정 짓는 어떤 길은 모두 그 종말이 하루살이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이 비극적으로 끝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생을 경영하는 사람은 세세토록 그 언약의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로 복을 받을 사람은 그의 생활 태도가 하나님 우선주의로 나갑니
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의 말씀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일을 위해서 자기가 하는 일을 희생할 줄 모르고 자기의 일을 해 보겠다고 주의 일을 등한히 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축복의 길을 거꾸로 가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 길은 ‘어떤 길’이기 때문에 축복은 고사하고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롯의 길은 항상 우리의 눈과 마음을 유혹합니다. 그 길은 참으로 기름진 곳으로 나를 이끌 것 같고 풍성한 축복이 준비 된 길인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길을 따라가면 허망한 꿈으로 결국은 멸망이요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롯이 생각한 것 같은 행복의 환상을 안고 기름지고 물이 풍성하여 마치 에덴 동산과 같은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빨리 그  길을 포기하고 아브라함이 택한 약속의 길로 발을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길은 반드시 축복의 길이요 롯의 길은 반드시 파멸의 길입니다.


  3. 발람의 길


  발람이란 사람도 어떤 길을 걸어가다가 망한 사람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선지자로 이방 세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언도 하며 견책도 하며 때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도 해 주고 악인에게는 저주도 내린 것으로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발람에게 어느 날 발락 왕으로부터 유혹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때는 마침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향하여 나올 때인데 그 일행이 모압 땅에 이르렀을 시기였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발람을 불러 모압 군사들과 싸우려고 들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한번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해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 주면 금은 보와를 바리로 줄 것이요 왕에게 가까이하는 높은 관직을 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발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웬 떡이냐는 식으로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만 들어주시면 팔자가 고쳐지리라고 믿고 있는 발람은 물질과 명예 때문에 마음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날 밤, 발람은 철야기도에 들어갔습니다. 발람의 겉모양은 아주 신앙적으로 보였고 선지자적인 자세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믿음이 좋은 하나님의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여러분, 교회에는 이런 사람이 문제 인물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증한 위선자인데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기도 소리를 들으면 천사와도 같은 존재로 우러러 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발람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발람이 철야 기도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을 알았다면 이제 누가 무엇이라 하든 다시 유혹을 받거나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발람은 발락 왕의 청탁을 다시 제의 받고 또 철야 기도에 들어간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응답을 받아 내야겠다는 집념에서 기도 한 것입니다. 그날 밤, 바람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잘했지요? 기도 할만 하지요? 그러나 여러분, 이 같은 하나님의 응답은 발람을 죽이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나온 것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발람으로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야고보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뜻깊게 새겨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다가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한 일입니다. 우리가 잘못 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못 구한 기도에 응답이 내린다면 그 응답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손실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시험의 함정에 빠트리시려는 하나님의 계획도 모르고 응답을 받았다고 좋아한다면 얼마 안가 자기 파멸의 길에 들어갈 것입니다.

  기도라고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기도한다고, 금식한다고, 철야 기도한다고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발람처럼 하나님께 가증한 기도를 드리면 시간이 길면 길수록 또 그런 기도를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그런 기도는 더욱 악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시109: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악한 자의 기도는 그의 기도로 죄로 변케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잠28:9절에는 가증한 기도가 나옵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같은 사람의 기도를 가증스럽게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사1:15절에서 이르시기를 하나님 앞에 악행 하는 자의 기도에 대하여 그들이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도한다고 다 응답 받을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다 믿음이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닙니다. 발람의 기도는 오히려 자기에게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그 길을 가기를 싫어하고 정욕과 탐심으로 말미암아 어떤 길을 찾았습니다. 기도로 발람처럼 어떤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하나님의 길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려움을 당하실 때, 실패의 늪에서 어떻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할 때, 마귀가 여러분 앞에 미끼로 던지는 어떤 길의 함정에 빠지면 안됩니다. 어떤 길을 찾아가고 어떤 길에 목적을 두고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는 비록 철야기도를 하고 금식기도를 하고 산상기도를 한다고 해도 스스로 멸망의 함정에 빠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서 비록 가난하게 살고 어려운 멍에를 메고 살아갈지언정 어떤 길을 찾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4. 요나가 걸어간 어떤 길


  다음에 우리가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또 하나의 어떤 길이 있습니다. 요나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니느웨란 도성에 가서 그들이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소돔과 고모라성과 같이 멸망함을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는 자기 생각에 따라 하나님의 이 같은 명령을 달갑게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내리신 명령을 피하여 니느웨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다시스로 도망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요나는 곧 욥바란 곳으로 내려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명하시는 하나님의 길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 자신의 길로 간 것입니다. 요나는 올바른 길을 버리고 어떤 길을 택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한 평생, 이 요나가 간 어떤 길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래무지처럼 자기를 감추고 목사가 잡으려 하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소홀히 하여 자신의 일신상의 일이나 가정적인 어떤 일이 있으면 완전히 요나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될 수 있으면 어려운 짐을 지기를 싫어합니다. 집사직도 힘 안 드리고 평안히 하고 구역장직도 평안히 하기를 꾀합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직분을 맡기셨건만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길을 찾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요나가 걸어간 어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봉사, 헌신, 성수 주일, 전도, 열매, 성령충만이란 말은 기도할 때만 쓰는 수식어로 알고 기도를 시킬 때, 양념으로 써먹고 실제 생활은 이와는 전혀 딴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저버리고 요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결국 더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어 그 배가 파선되는 것입니다. 사업이 파선이 되고 집안이 파선이 되고 자기 인생이 파선이 되는 것입니다. 요나는 풍랑 중에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다 속에서 크다란 고기 뱃속에 들어가 사흘 밤 사흘 낮 동안을 죽은 자와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나의 길은 결코 지혜로운 사람의 길도 아니며 약삭빠른 사람의 길도 아닙니다. 그 길은 필경 멸망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요나의 어떤 길을 걷고 있다면 빨리 그 길에서 돌이켜 니느웨로 돌이켜야 합니다.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우리는 이 시간에 성경에서 잘못 걸어간 여러 가지 경우의 어떤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우리에게 명하시는 생명의 길은 오직 한 가지, 주님을 따라가는 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그 길을 생명의 길이라고 합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만이 우리의 살길이 있고 영생이 있으며 축복이 있습니다.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은 어떤 길처럼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마음을 잡아 이끄는 매력적인 길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시는 생명의 길이, 지금 여러분들 앞에 환하게 열려져 있습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말씀의 길입니다. 순종의 길입니다. 이 길은 낮 12시에 다니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길을 환히 비춰줍니다. 이 길을 여러분의 걸어가실 인생 길로 택하시고 이 길로 여러분의 생애를 걸어가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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