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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6 (아브라함과 함께 받는 축복)
 밤중소리  01-20 | VIEW : 1,747
                         (206)


          아브라함과 함께 받는 축복


   성경 본문 /  갈라디아서 3 : 6 - 9              


  우리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에 관한 설교도 많이 들었거니와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의 조상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를 얻은 사람이요 순종으로 말할 수 없는 많은 축복을 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은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볼만한 축복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보니 하나님은 이 같은 아브라함의 축복을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는 우리에게 똑같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신생교회 성도들은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축복을 아브라함과 함께 받을 수 있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인가?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중 마지막 9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는 말씀에서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관찰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택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11장에서 아브라함은 다만 아담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내려옵니다. 셈으로부터 시작한 아브라함의 족보는 26절에 가서 ‘데라는 70세에 이르러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창12장에서는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나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처럼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된 일은 아담의 후손으로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주실 그의 백성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선택을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메시야의 육신적인 조상으로 예정하셨을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로 예정하시고 갈데아 우르 땅에서 그를 불러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큰 민족을 이루고 그 이름을 창대케 하며 복의 근원의 자리에 오를 만한 아무런 자격이나 조건이 갖추어 있지 아니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고 아브라함도 역시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이처럼 엄청난 축복의 선언을 듣게 된 일은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의 부르심 뿐 아니라 우리에게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우리의 인물됨이 출중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멸시와 천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천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예정을 입고 선택을 받았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은 아브라함의 경우와 똑같이 절대로 변함이 없는 진실인 것입니다. 이처럼 나를 선택하신 하
나님의 깊으신 뜻을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 같은 일은 주님 앞에 가서 그 앞에 설 때까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일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분명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뒤엎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먼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시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신다면 여러분들은 내가 아브라함과 함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그 근원이 하나님의 선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그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축복의 언약이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결단성 있는 믿음


  아브라함은 결단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의 온 생애를 결단성 있는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믿음의 결단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듣고 아브라함은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다만 말씀을 따라 집을 떠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히11장에서 이르시기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미지의 땅을 향하여 다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말씀만을 따라 고향 친척집을 떠난 것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에게 이 같은 믿음의 결단성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은 결코 복의 근원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같은 결단적인 믿음은 무엇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새로운 땅을 소망으로 삼아 그의 생애를 새로운 곳으로 향하여 떠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떠날 때 그의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말씀에 나타난 약속만을 믿고 떠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영생이나 부활이나 천국도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곳도 아니요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불교계의 고승으로 알려진 이성철이란 사람은 언제인가 새해 법어라고 하는 말에서 이상스러운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하늘을 쳐다보아도 그곳엔 극락도 없고 천당도 없더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면 믿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입고 그의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은 천국을 믿을 수도 없고 아무리 하늘을 쳐다보아도 그의 눈에 천국이 보일 리가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언약도 하나님의 말씀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신 곳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셨다면 아마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그 나라에 들어가 아랫목 차지를 할 것입니다.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우리의 발길을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신앙적 결단입니다. 이 결단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 새로운 미지의 땅,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을 향하여 이 세상의 자랑과 정욕과 쾌락과 소망과 육체적인 향락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이스마엘과 하갈을 그의 집에서 내어쫓는 결단성을 보임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따라 살아가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예기치 아니한 이상스런 복이 굴러온 것입니다. 아내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게서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그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도 늙었습니다. 사라도 나이 들어 경수도 그쳤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런 때 사라의 몸종으로 있던 하갈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게 되어 그로부터 아들을 낳았으니 아브라함의 집에는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축복은 하나님의 계획에 없었던 일입니다. 이런 일이 그 가정에 축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가정의 불행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가정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기까지 그 불행은 점점 심화되어 갔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때는 어려운 곤경에 빠져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그 일이 크게 성공하여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짭짤한 재미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갈도 생기고 이스마엘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얻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뤄진 일은 비록 한때는 톡톡한 재미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얼마 안가 그로 인하여 자신의 인생과 그 가정에 크나큰 불행의 씨앗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인간적인 방법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닫고 후회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이 같은 불행을 일찍이 수습하고 이길 수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얻은 축복이 아닌 하갈과 이스마엘을 그 집에서 단연코 내어 쫓아낸 것입니다. 이처럼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쫓아낸 후에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집에 복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취할 수 없습니다. 시127편에서 솔로몬은 이 일에 대해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 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경영하실 때 먼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터전 위에 그 사업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사업을 운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가정에 화평이 깃들고 새로운 하나님의 축복, 아브라함의 축복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만 약속하셨습니다. 이삭으로 받는 축복이 진짜 축복입니다. 하갈이나 이스마엘로 받는 축복은 진짜가 아닙니다. 이 진짜가 아닌 가짜 축복을 쫓아  다니며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의 평생 그 가짜 축복으로 인하여 고생하며 시험과 환난을 겪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 시험을 이긴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도 그의 신앙 생활에 여러 가지 시험을 겪어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시험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한 가지 역할은 시험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시험은 그 글자 그대로 우리를 어려운 곤궁에 접어 넣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여러 가지 시험의 고비를 치르지만 모두 그 시험에 합격되거나 우등의 영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험을 통하여 실력이 향상되기도 하며 아름다운 명예와 지위를 얻기도 합니다.

  시험이 우리에게 하는 또 한 가지 역할은 시험은 우리의 축복의 한 방편이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험을 주실 때 반드시 시험의 고비를 넘기게 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시험을 이길 때 약속의 축복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1) 아브라함에게 처음 찾아온 시험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 도착했을 때 곧 그에게 찾아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당도하자 곧 그 땅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가뭄의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고 애굽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 찾아오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어려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시험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그리스도 밖으로 끄집어 나가 해결하려는 유혹을 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닥쳐온 가뭄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했더라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살 길이 열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애굽으로 도망가는 일로 그의 생애에 모진 풍파를 만나게 되고 시련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애굽의 바로 왕에게 빼앗기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고 이 일이 평생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는 가뭄을 만났던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와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을 만나도 결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2) 다음에 아브라함은 100세에 나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결정적인 시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갑자기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아들이요 100세에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축복으로 받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번제란 하나님께 불로 태워 드리는 제물을 말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 같은 무서운 시험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네 씨는 이삭으로 말미암아 번성할 것이란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어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줄로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나무로 단을 쌓고 이삭을 묶어 그 단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는 칼을 빼어 아들 이삭을 죽이려고 막 찌르려 할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온 것입니다. 네 아들을 죽이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풀에 걸려 있는 산양 한 마리를 이삭을 대신한 제물로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므로 시험을 이겼을 뿐 아니라 놀라운 축복의 선언을 듣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이상,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면 그 순종이 우리에게 오는 그 어떤 시험이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아브라함은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약속을 받은 나이가 이른 다섯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약속의 아들 이삭을 실제로 받은 나이는 백세였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받았으면서도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기까지 25년간을 인내로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성급한 나머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여 실망할 때가 얼마나 많은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다면 반드시 급속하게 이루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약속을 받고서도 오래 참고 그 약속을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인 것입니다. 인내하는 자가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약속을 받을 당시, 자신과 자기 아내 사라의 신체적 조건이 좋았습니다. 능히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얼마 안가 아내의 경수가 끊겼습니다. 여자의 경수가 끊어지면 절대로 애를 밸 수가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인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도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두 내외간의 신체적 조건이 아이를 낳기에 절대로 불가능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제 틀렸다고 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롬4:19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절대 불가능하게 보여 이젠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그 경지에서도, 여러분의 힘의 한계가 절대 미칠 수 없다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입장에 이를지라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믿음과 인내로 나가시면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생애의 불신적인 신앙 생활을 오늘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새롭게 바꿔 그 말씀을 순종하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인내하므로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의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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