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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4 (사망에서 생명으로)
 밤중소리  11-06 | VIEW : 6,170
                        (204)


               사망에서 생명으로


   성경 본문 /  요한복음 5 : 24 - 29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특히 24절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리를 밝히신 것으로 25절로 29절까지는 이 진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함께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할렐루야 !


  1. 영생은 어떻게 얻는가?


  인간에게 영생이 있느냐는 문제는 우리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게 하는 말입니다. 요즘 세간에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종교가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특징은 자기들에게 오는 자는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미혹에 넘어간 많은 사람 중에는 사회 각층의 유명인사도 많으며 헌다한 인물들도 꽤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생에 관한 문제는 인간의 상식이나 지혜나 학식보다 더 우선적인 욕망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영생은 아무런 근거도 없으며 증거도 없는 허황된 거짓임에도 사람들은 이런 미혹에 곧잘 걸려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영생’이란 말과 ‘생명’이란 말을 한 가지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4절에서 ‘영생을 얻었고’라고 말씀하셨고 ‘생명으로 옮겼다’고 하셨습니다. 영생과 생명을 하나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생이란 말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었다는 말은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이런 생명이 있을까요? 영원한 생명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된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요1:4절에서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5:26절 말씀을 보면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곧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이 생명을 주시려고 그 아들을 세상에 생명의 떡으로 보내셨습니다. 요6:33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생명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곧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이 같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영생을 얻으려면 필수적인 조건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내 말을 듣고’란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하여 25절에서 자세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죽은 자들이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담의 모든 육신적인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켜 죽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엡2:1절 말씀을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
도다’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류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이란 복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으며 그의 말씀이 복음이 되어 그 복음을 통해서 생명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그 복음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것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때란 기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기회란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기회가 주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회가 되었을 때 그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감옥에 갇히게 하시어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게 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자주 장사 루디아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때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보내어 강가에서 복음을 듣게 하시어 그의 마음 문을 열어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구원을 주실 시기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를 보내시어 말씀을 증거하게 하시어 온 가족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해서 복음을 들었으며 그 복음을 들으므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때가 됨에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듣게 하시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달려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일은 그 분 스스로의 증거로 된 일이 아닙니다. 그에게 영생이 있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보내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이에 대하여 행4:12절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인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믿음과 그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에 대한 믿음은 같은 믿음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유대인들은 아들이 없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구원의 혜택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은 많습니다. 하나님의 수효가 가장 많은 민족은 일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소위 야스구니 신사에 안치된 모든 해골들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섬깁니다. 석가도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 아닙니다. 공자도 그렇고 다른 어떤 종교의 교주들도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믿는다고 해도 결코 영생이 없습니다. 그들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죄를 이어받은 사망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인간에게 주는 소망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얻었다는 말씀은 이미 소유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소유하게 될 것이다’가 아닙니다. 소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한 번만으로 충분합니다. 한번 받으면 그것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한번 받은 영생은 영원히 효과적이며 영원히 계속적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24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그 순간 우리의 신분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에 이 옮김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이동입니다.


  2.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영생


  24절에서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사람 중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무엇 때문에 왜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죄를 범한 자는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죄의 심판에 대하여 잘못 오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적인 주검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주검은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위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히9:27절 말씀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입니다. 한번 죽는 주검은 에덴에서 아담에게 내리신 주검의 선언을 의미합니다. 창3: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죽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며 그 심판대에서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받을 최종적인 죄에 대한 심판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같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은 어떻게 내려지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이 심판에 대하여 마25장에서 비유적으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이를 자들은 왼편에 있는 염소들인데 예수님은 이들에 대한 심판의 선언을 이처럼 내리신 것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이곳은 어디예요? (지옥). 지옥입니다. 원래가 지옥은 마귀의 최종적인 심판의 장소로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곳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와 마귀를 따라 하늘에서 하나님께 반란을 일으킨 그 사자들의 심판의 장소로 하나님께서는 지옥을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때가 이르면 이들을 이 불 속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같은 사탄의 심판에 대하여 20:10절에서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심판에 대하여 계20:14절에서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심판의 권세자는 누구이십니까? 누가 이런 권세를 행하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2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 같은 권세를 가지고 사탄과 모든 인류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이 같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보장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은 우리들은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마25:34절에서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언제부터 예비된 나라라고 했어요? (창세로부터). 천국은 어제오늘 갑작스레 만들어진 나라가 아닙니다. 창세로부터 만들어졌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셨으며, 우리를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는 창세로부터 만들어졌다고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

  에녹도 이 나라에 갔으며 아브라함도 이 나라를 바라보면서 소망으로 살아 갔습니다. 모세도 이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바울도 이에 대하여 분명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고후5: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차라리 몸을 떠난다는 말은 ‘한번 죽는 일’로 우리의 육신적인 주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한번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천국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한번 죽는 일인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가 누릴 천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계21장과 22장에는 이 나라에 대한 아름다운 계시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 나라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살집이 있는 천국의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기초석은 모두 12가지 보석으로 다져졌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동리는 온통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출입할 문은 진주로 만들어졌는데 거대한 문이 통째로 하나의 진주로 되었습니다. 우리가 걸어 다닐 성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깔려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성 길에는 맑은 생명수의 강물이 길 가운데로 흐르는데 그 강좌우 편에는 생명나무가 수풀을 이루어 달마다 열두 가지 과실을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28절과 29절에서 최종적으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25절에 나오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는 말씀과 28절에서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두 말씀은 하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죽은 사람을 가리킨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란,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들에게 복음의 음성을 들려주는 일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통해서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되며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란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그의 생애를 마치고 그 육신이 죽어 땅에 묻혀 있는 송장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송장들은 이미 한번 죽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심판을 받은 자들입니다. 영생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가 있으며 심판을 받은 자들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지옥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음성이란 부활을 선언하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의미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바울은 고전15:51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마지막 나팔은 주님의 명령으로 부는 부활의 나팔입니다. 이 나팔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일컫는 천년왕국이 끝난 후, 백보좌 심판대에 올라갈 때 그 때에 불게 됩니다. 이 나팔 소리는 무덤 속에서 잠자는 모든 사람들의 잠을 깨울 것입니다. 그 때 죽어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송장들이 다시 살아나는 대 부활이 있게 됩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무덤 속에서 일어날 때, 그들의 부활은 이미 심판을 받은 그 심판의 모습을 덧입은 상태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살아날 것입니다. 선한 일이란 도덕적인 선행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최고의 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의 부활자들은 이 일을 인정받아 이미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이란 24절에서 말씀해 주는바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무덤 속에서 부활을 알리는 주님의 마지막 나팔을 들었을 때 생명의 부활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반면에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살아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일이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또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도 믿지 않는 자들로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으로 볼 때 이 일보다 더 악한 자는 이 세상에 존재치 않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몸은 우리의 영육간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게 되며 영과 육이 하나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가 살아 나가는 이 세상에는 긴요한 일도 많고 필요한 것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많고 달성해야 할 목표도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만큼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애 중에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생명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생명이 지옥에 버려진다면 이 세상에서 대통령을 지내고 대재벌의 총수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입니까? 신기루 같은 허황된 세상의 소망을 하루빨리 벗어버리고 참 생명에 이르는 구원의 소망을 확실히 붙잡고 여러분의 삶에 후회가 없는 남은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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