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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12 (부활의 승리)
 밤중소리  01-21 | VIEW : 2,467
                              
                         (212)


                    부활의 승리      


   성경 본문 /  요한복음 20 : 19 - 29                


  서론 : 오늘은 부활절이자 부활 주일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사망과 마귀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을 승리한 사실을 부활로써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한 이 아침, 여러분에게 부활로 인한 승리와 부활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부활에 이르시기까지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십자가로 완성하셨고 완성한 구원 사역을 부활로써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인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 두 가지 사실을 증거 하는 일을 복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부활의 증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을 받아 복음을 널리 전파하기 시작한 초대교회에서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이 부활의 증거로 인하여 유대인들로부터 혹은 이교도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하여 주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모임을 가지면서 금식과 매주 주일마다 성찬식을 거행해 왔습니다. 그 후 일요일을 주일로 성수하게 되었으며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을 매해 한번 교회의 기념행사로 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부활절 인식을 배경으로 하여 주님이 부활하시기까지의 행적을 더듬어 부활절 한 주 전 주일을 종려주일로, 그리고 종려주일로부터 부활절에 이르는 한 주간을 고난 주간으로, 그리고 한 해 한번 맞는 부활의 날을 부활주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증인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전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증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만나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는 일이 물론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 일이 그리스도의 증인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한 그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세상에 증거 하는 일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입니다. 증인이란 말은 헬라어로 순교자란 말과 같은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순교적인 사명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왜 부활하셨는지 부활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한다면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가질 수도 없으며 그리스도인의 참된 기쁨의 생활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부활하신 놀라운 사건


  하나님의 천지 창조 이래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인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이 사건은 인류의 역사가 존재한 이래 초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사망권세를 가지고 인류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주고 지배해 온 사탄에게 결정적인 치명상을 주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탄은 죽음의 권세를 휘두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 사실을 숨기려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일에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던 군병들이 먼저 이 놀라운 사건을 목격했지만 사탄은 많은 돈으로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던 군병들을 매수케 하여 거짓말을 유포시켰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증거 하는 사도들과 많은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마귀와 손을 잡고 참 생명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 세상에 부활을 인정하고 부활을 믿으며 부활을 주장하는 종교는 부활의 종교인 오직 기독교 하나뿐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진화론의 원조인 다윈의 종의 기원도 사탄의 지혜에서 나온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궤계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당신은 예수를 믿으라,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거나 장차 네가 부활할 것이란 사실은 믿지 말라. 그것은 거짓말이다. 이렇게 속삭이며 미혹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 일은 예수를 믿는 일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이 교회에 나오는 일은 마귀가 가장 기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누구든지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 부활하실 줄은 짐작도 못했습니다. 마귀도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끝나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줄 알았더라면 마귀는 결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도 예수를 죽이는 일로 예수로 말미암은 소동은 끝나는 줄로 알았습니다. 주님의 제자들까지도 자기들 선생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무덤에 다녀와서 시체가 없어진 사건을 전해들은 제자들은 깜짝 놀라 무덤으로 달려가 확인까지 했었습니다.

  파수군 들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받은 백성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은 수직하던 파수군 들에게 많은 돈을 주어 밤에 그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 해 갔다고 말하라고 단단히 일러 주었습니다.


  3. 부활의 의의


  그러면 여기서 잠시 왜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며 이 부활이 그토록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주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거로 보이신 사건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증거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란 확실하고 철저한 증거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많은 예언적인 말씀이 언급되어 있지만 그 예언이 진리란 사실은 하나님은 그 예언의 말씀대로 반드시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롬1:4절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본체는 원래 하나님이시지만 그는 아버지의 품속에 계셨던 독생하신 하나님으로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죽음의 권세 밑에서 영원히 헤어날 수 없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는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이심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다음에 예수님의 부활은 그에게 전혀 죄가 없으시다 는 증거가 되며 그의 죽으심은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란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 아닌 예수님은 죄 값으로 받는 죽음에 메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부활하심으로 그가 죽으신 일은 그의 죄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에 대한 대속적인 죽으심이란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이 반드시 부활하셔야 할 이유는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죄의 속죄함을 받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구원 받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최종적인 부활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생활은 부활한 몸으로 살아가는 영원한 생활입니다. 지금 우리가 죽으면 영으로 천국에 올라가지만 천국에서 살아갈 몸은 영이 아니라 부활한 몸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최종적인 소망은 당연히 부활에 있습니다. 부활이 없는 천국은 임시적인 천국이지 영원한 천국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연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되려면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부활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롬6:5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습니다. 이 사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새롭게 태어난 새로운 생명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 옛사람의 생명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새로운 생명이십니다. 죽음을 이기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으로 우리는 거듭났으며 이 생명 가운데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며 장차 이 같은 부활의 몸으로 덧입을 것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전15:1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나는 죽어 무덤에 있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증거가 오직 그의 부활하심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주님의 부활의 토대 위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신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분이 어찌 죄와 허물로 죽은 죄인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며 우리를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을 것입니까? 우리가 거듭난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나약한 주님의 육신적인 생명으로서가 아니라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같은 부활의 생명이 우리들을 거듭나게 하셨고 우리들로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적인 사건이며 우리 기독교의 생명 바로 그것이며 우리의 신앙의 원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가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예수의 부활을 숨기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보면 한결같이 예수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합니다. 통일교에서도 부인합니다. 세상 모든 종교에서도 자기들의 교주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종교가 없으며 부활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오직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뿐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야말로 우리 기독교만의 독특한 진리이며 하나님은 부활로서 참 종교와 거짓 종교, 진리와 비 진리, 생명과 사망을 갈라놓으신 것입니다.


  3.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 말씀 1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정한 바에 따라 토요일을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 후 첫날이면 토요일 다음날인 일요일을 가리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 보니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놀라 제자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가 이 같은 엄청난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무덤에 온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알고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마리아야 하시면서 마리아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렇게 하여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그는 남편과 함께 자녀들을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아간 가정주부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운 단장으로 맵시를 내고 다닌 귀부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 여인의 신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일곱 귀신 들린 정신병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고 조롱을 당해도 부끄러운 것조차 몰랐던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불쌍히 여기사 그로부터 귀신을 좇아내시고 온전한 여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이 여인은 자신의 생애를 누구에게 바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와 더불어 품삯 일을 하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골고다의 언덕길을 뒤따라가면서 가슴을 치면서 울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시체가 십자가에서 내려져 아리마데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기까지 무덤 곁에서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 날 새벽 미명 주님의 시신이 묻혀 있는 무덤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은 부활하신 모습으로 마리아 앞에 나타나셨고 주님을 보는 순간, 마리아의 슬픔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무덤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마리아뿐입니다. 베드로는 시체가 없어졌다는 마리아의 말을 듣고 곧 무덤으로 달려가기는 했지만 주님을 만나 보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그의 시체에 대하여 끝까지 찾으려는 마음으로 울고 있었던 마리아만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저녁때쯤 되었을 때 그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던 집에서 만났습니다. 이들 제자들은 고난을 당하셔야 할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메시야의 자리에 오르시면 그 앞에서 누가 큰 자가 되느냐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무리들에게 체포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자 그 화가 자신들에게 미칠까 보아 두려운 나머지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으며 안식일에 이르기까지 한집에 숨어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일 저녁때쯤 되서야 예수님은 제자들이 숨어 있는 집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손과 옆구리를 보이신 것은 예수님의 나타나심이 영이 아니라 부활하신 몸이란 사실을 보이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때에야 비로소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이들 제자들은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시험을 받아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으며 두려운 마음으로 숨어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일터를 버리고 집을 버리고 가정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사람이란 자신의 생명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다가도 이들처럼 시험에 들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으로 삼으시기 위해 부활하신 그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때 의심이 많다고 알려진 도마는 이들 제자들 중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도마는 동료들로부터 자기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노라는 말을 들었지만 도마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자리를 하고 있을 때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이르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를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로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시어 믿음의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의 무덤에 찾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볼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나 제자들처럼 우리 가운데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시어 ‘너희에게 평간이 있을 지어다’고 하시는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도마처럼 못 박힌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부활의 증인으로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첫째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복음 안에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에 관한 산 증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에 대한 소망이 생기지 않고 주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은 이 같은 사실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새로운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새로운 생명은 주님의 부활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생활로 나타납니다. 이 생명은 내 생애의 새로운 변화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생활로 변화 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부활과 연합한 사람들입니다. 연합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으로 새롭게 살아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그 영광스러운 부활을 본받아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고 하는 소망을 의미합니다. 이 기쁜 부활의 아침, 여러분의 심령이 부활의 새로운 생명으로 충만하시며 부활하신 주님께 소망을 두고 부활의 믿음으로 축복된 새로운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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