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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10 (십자가에서 외치신 일곱마디)
 밤중소리  01-20 | VIEW : 691
                        (210)


          십자가에서 외치신 일곱마디


   성경 본문 /  누가복음 23 : 33 - 49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신 고난 일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갈보리로 올라가 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서 괴로움을 당하시면서 끝까지 참아 이기신 예수님이 그 십자가 위에서 과연 어떤 말씀을 남기셨는가에 대하여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치 해골 모양으로 생긴 골고다 언덕에 올라서면 그곳에 하늘에 윤곽을 나타내고 있는 세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강도가 좌우 편에 십자가에 달린 채 서 있고 그 중간에 그들보다 더 높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있는데 이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일로 이 저주스러운 십자가에 강도들 틈에 끼어 이처럼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하셨습니까? 우리가 알기로는 예수님이 하신 일은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시어 그들을 사랑하신 일이요, 굶주린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일이요, 병든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신 일이요, 소망이 없는 죄인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심어 주신 일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리 만치 그분의 운명을 이처럼 참담하게 하신 것입니까?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가슴을 찢는 아픔을 느끼며 슬퍼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토록 고난을 당하심은 그 원인이 바로 나로 인함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갈보리의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 볼 수 없는 사람은 주님의 참 모습을 바라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양팔과 발에 못이 박히시고 두 손을 벌려 괴로워하시는 그 모습을 바라보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면 멸망 받을 자신의 죄를 개탄하면서 주님 내 죄 때문입니다. 나의 죄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바라보며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1.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빌라도의 관정에서 골고다로 가는 길은 거리로는 가깝지만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은 멀고도 긴 길이었습니다. 등과 허리에는 로마 병정들에 의해 채찍에 맞은 흔적으로 피로 얼룩졌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골고다의 언덕길을 오르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못 박히신 골고다 언덕은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군병들은 바로 그 십자가 아래에 앉아 주님으로부터 벗긴 옷을 서로 가지려고 제비를 뽑느라 어수선했습니다. 그 주변에 운집한 군중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향하여 머리를 흔들면서 ‘네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고 외쳐 대면서 희롱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골고다에는 이 같은 소리만 들려 온 것입니까?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갈보리에서 이런 소리만 들려 왔다면 우리의 눈은 갈보리 언덕으로 쏠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언덕에서 놀라운 음성이 여러 차례 들려 온 것입니다. 그 소리는 바로 십자가위에 달리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신 음성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후, 운명하실 때까지 꼭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2. 십자가에서 남기신 일곱 마디 말씀


 (1) 오늘 밤 우리는 갈보리에서 울려 퍼지는 그 일곱 마디의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내신 후, 가장 자비하신 얼굴로 십자가 아래서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바라보시면서 첫마디의 입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말씀은 아버지께 대한 목 메인 기도였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라는 간곡한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고통이 그의 온몸을 엄습하고 견딜 수 없는 모욕을 받으시는 그 자리에서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하는 그 무리들을 가리키면서 아버지께 그들이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으니 그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분이 아니시라면 어느 누가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까? 예수님은 어느 날 그의 제자들에게 놀라운 교훈을 들려주신 일이 있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하신 그 말씀을 그가 가장 어려움을 당하시는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서 몸소 실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응답을 받았을까요?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의 죄를 안타까워하면서 ‘우리가 어찌 할꼬’하며 가슴을 쥐어뜯는 회개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날 이들 무리 가운데서 무려 3천명이나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2) 예수님의 두 번째 말씀은 회개한 한 강도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좌우 편에는 두 명의 강도가 나란히 십자가에 못 박혀 예수님과 함께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강도는 왜 하필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좌 우편에서 같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겠습니까? 이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 값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인류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중에 한 강도는 회개하기를 ‘우리는 우리들이 행한 죄로 마땅히 그 죄의 보응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들이지만 예수님이 내 죄를 지시고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의 심판을 받으시므로 그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회개는 회개할 시기를 잘 포착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한 한편 강도는 참으로 그 기회를 잘 포착한 것입니다. 아마 조금만 늦었어도 그의 장래는 소망이 없이 암담했을 것입니다. 이 강도는 그의 생애는 얼룩진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생애는 축복된 생애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이 두 강도는 그의 생애를 마감하면서 제각기 주님께 한 마디씩 했습니다. 오른편에 달린 강도는 주님을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그러나 왼편에 달린 강도는 달랐습니다. 그는 주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나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조롱한 것입니다. 이 강도는 자기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이처럼 스스로 포기하므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멸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 가면서까지 이 강도처럼 끝까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조롱한다면 그 사람의 운명이 어찌 될 것입니까?

  예수님은 오른편 강도의 간구를 들으시고 즉각 응답해 주셨습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얼마나 놀랍고 기막힌 축복입니까? 인생의 최후의 승리는 이처럼 그의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 대한 진실한 믿음을 간직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바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낙원은 천국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십자가에서 죽게 되자 그의 영혼이 약속대로 주님과 함께 낙원에 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실 때 그 영이 다시 몸에 돌아오셨지만 오른편 강도는 부활의 날이 올 때까지 하나님 나라에서 모든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축복된 새로운 생애를 살아갈 것입니다.

  (3)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점점 기운이 탈진되어 갔습니다. 이제 시끄럽던 주변도 차츰 조용해져 갔습니다. 주변에서 예수님을 향해 희롱하던 무리들도 한둘씩 가 버렸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그 아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 여인은 다른 여자들과 함께 멀리서 예수님이 당하시는 십자가의 고통을 눈물과 슬픔으로 바라보다가 그 아들 앞으로 다가선 것입니다. 어머니를 바라본 예수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요한아, 지금부터 이 분이 네 어머니 시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땅에서 사실 동안에도 친히 부모님을 공경하는 인간의 도리를 몸소 보이신 것입니다.

  (4)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네 번째 하신 말씀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란 부르짖음이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음성은 예수님이 그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리심을 당하시는 괴로움의 부르짖음입니다. 갈보리는 굉장히 무서운 장소입니다. 그곳은 모든 죄인의 죄를 짊어지신 죄인의 괴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그 형벌을 받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갈보리는 인정이나 긍휼이 없는 곳입니다. 죄인에 대한 완전한 심판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앞이 캄캄했습니다. 이제 정말로 버림을 받는 것은 아닌지 그의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예수님은 사정없이 죽음의 매를 내리치시는 아버지를 향하여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는 영혼의 부르짖음을 외치신 것입니다.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 - 고 무서웠던 길 - 골고다의 - 거친 언덕길, 지치 - 신 주님의 음성, 오 나의 주님 용서 - 하소서 - 죄인 위해 고난 받으셨네 - 이 세 - 상에 생명 주시길 -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

  우리는 오늘 밤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이런 외침을 듣고 참으로 ‘그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하는 가슴을 쥐어뜯는 회개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죄로 인한 내 죄의 대가로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그 분의 갈보리에서 내 죄의 저주로 죽으신 주님의 공로를 힘입지 않으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가서 주님이 당하신 이 같은 고통을 영원토록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계14:10절에서 이런 자들에게 내리시는 심판에 대하여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5)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다섯 번째 음성은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틀 동안이나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셨습니다. 잡히신 후, 무려 여섯 군대나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재판을 받으시는 중, 심한 갈증으로 얼마나 괴로우셨을 것입니까?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후, 그의 몸에서는 피와 물이 다 흘러 나왔습니다. 그의 입술은 바싹바싹 타 들어갑니다. 얼마나 목이 마르셨으면 십자가의 그 괴로움 중에도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을 것입니까? 이런 갈증은 바로 지옥의 갈증입니다. 죽어 음부에 들어간 자색 옷 입은 부자의 비유에서 그의 목마름의 괴로움이 나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그 부자는 이 간청마저 거절당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순간까지 목말라 하신 그 예수님을 우리가 영접하지 않으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그 목마름의 고통을, 내가 자색 옷 입은 그 부자가 들어간 음부에서 그와 똑같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6) 우리는 예수님의 여섯 번째 말씀을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듣게 됩니다. ‘다 이뤘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의 구속사역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2:8절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아버지가 주신 잔을 완전히 다 마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간구하신 것처럼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순종은 능히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 인생들을 생명으로 인도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죽으심의 순간이 사실을 바라보시고 다 이뤘다고 외치신 것입니다. 이 때 성전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성전과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성소 휘장이 한 가운데로 찢겨져 나갔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은혜의 보좌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려진 순간입니다.  

  (7) 우리는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일곱 번째로 마치시는 마지막 한 마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여섯 시간이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 이뤘다’고 하신 말씀으로 당신이 감당하셔야 할 모든 일을 마치신 사실을 아시고 마음에 큰 위로와 평안을 찾으셨습니다.  

  이제 주님이 하실 남은 한 가지 일은 아버지께로 가시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우러러보시면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고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셨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결론 : 고난 주간도 내일로 끝납니다. 우리는 이번 주일엔 부활 주일로 마지하고 또 내년 이날을 맞을 때까지 세상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갈보리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신 주님의 모습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그 분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도 주님을 위한 십자가를 질 수 있으며 이런 생애를 살아갈 때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고난의 날,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들에게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내리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역사가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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