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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28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얻는 생활)
 밤중소리  01-21 | VIEW : 541
          
                        (228)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얻는 생활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6 : 24 - 26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생활 방법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육신의 생각대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전에 예수를 알지 못했을 때에는 육신을 좇아 살아왔습니다. 그 때에는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영을 좇아 사는 생활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며 왜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생활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영의 일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 받은 우리의 생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롬8장에 나오는 영과 육신의 관계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롬8:6절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 분명히 사망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그 결과가 사망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영의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영의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육신이 원해도 그 일을 삼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나는 하고 싶어도 그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지금 옛날과는 변화 받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이 아니라 생명과 평안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5:24절에서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일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따를 자들에 대한 신앙적인 자세로 두 가지 표  준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첫째 자기 부인의 생활이요 두 번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은 바로 이 두 가지를 우리의 생활에 적용시키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이 그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 그리 마옵소서 결코 그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마시기를 간절하게 말렸습니다. 좀 전에 그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하는 신앙 고백을 했을 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칭찬해 주셨건만 곧이어 베드로의 간하는 말을 들으시고 몸을 돌이키시며 그를 향하여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나무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일에 대하여 베드로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사람의 생각으로 말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지 말 것을 권면하는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 베드로는 오히려 사람의 일을 생각하여 주님이 십자가 지셔야 할 일을 말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에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자기 부인


  예수님은 주님을 따를 성도들이 저야 할 십자가에 대하여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주님이 제시하신 이 두 가지 사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는 자기 부인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생활에 나타내야 할 첫 열매는 자기 부인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신 자기 부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부인의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자기란 성령을 거슬리는 육신의 사람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옛 사람의 모습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옛 사람의 열매란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비방, 능욕, 교만, 자랑, 부모 거역, 우매, 무정, 무자비” 등이라고 했습니다.

  (1)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 자기란 말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으로 지배를 받고 살아갔던 예수 믿기 이전의 자기의 모습을 인정하는 생활을 버려야 한다는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옛 사람을 따라 살아갈 것이 아니라 그 지난 날의 옛 사람을 부인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인정하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옛 사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6:6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나를 구원하려면 우리가 이 복음과 접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나는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살아나신 부활과 연합하여 부활하신 주님의 새로운 생명으로 나는 새롭게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이 사실이 인정되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은 이뤄질 수 없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의 부활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우리의 구원과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육신 가운데서 역사하는 옛 사람의 행실을 죽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옛 사람은 죄의 사람입니다. 죄의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말은 영적인 말로 그 근거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죄 가운데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사람인 옛 사람에 대하여 죽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이런 사실을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죄에 대하여 죽는 생활을 이루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이제 우리의 생활이 육신의 지배에서 벗어나 영의 지배를 받는 새로운 생활을 하라는 말합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영의 생각이란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인데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생활인데 우리가 이런 생활을 하면 우리의 생애는 생명을 얻고 평안을 누린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생활에 대하여 바울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육신대로 살려고 하는 내 안에 있는 옛 사람의 습성을 영의 지배 아래 굴복시키는 생활이 영으로 육을 죽이는 생활이요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매일 죽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영적인 이 처절한 싸움에서 육의 사람을 굴복시키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육의 사람을 죽이는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이 사실을 내가 날마다 죽노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죽이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사망의 결실을 맺는 우리의 육신의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영으로 육신의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말은 우리의 육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이 생활이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인데 그리스도인이 이 생활에 실패하면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발전이 없습니다. 기쁨도 마음의 평안도 즐거움도 없고 그 입에서 찬송도 기도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제 초등단계에서 건너뛰어 자기를 부인하는 영적 생활에 들어감으로써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온 우리의 생활이 영의 생각에 사로잡혀 살수 있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열매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활에서 아직까지 여러분을 지배해 온 육신의 생각과 행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굴복시킴으로 여러분의 생애에 생명을 얻고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육신의 생각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기 생애와 자기 생활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만,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릴 때만, 입으로 말할 때만 하나님과 가깝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입의 말뿐입니다. 주님은 요15장에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행실이나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축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2. 그리스도인의 자기 십자가


  다음에 주님이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저야 할 십자가에 대하여 “자기 십자가”란 이름을 부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십자가를 질 때 어떤 십자가이건 그것은 마땅히 자기가 저야 할 십자가란 뜻입니다. 자기에게 우연히 지게 되는 십자가란 없습니다. 어쩌다가 지게 된 십자가도 없습니다. 안 저도 좋은 십자가가 재수 없게 자기에게 차례 오는 경우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오는 십자가가 어떤 것이건 그것은 반드시 자기가 저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십자가를 피하면 안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도 예수님이 반드시 저셔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우연히 예수님에게 그런 십자가가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육신을 가진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주님께 십자가를 져서는 안 된다고  간했을 때 주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며 그런 생각은 주님을 넘어뜨리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떤 십자가가 주어져 있는 것입니까?

  (1) 우리가 저야 할 십자가 중에는 자신의 죗값으로 오는 징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런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저야 할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같은 십자가를 졌던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로 말미암아 그에게 돌아간 십자가는 그의 생애에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주었습니다. 삼손도 그리했습니다. 그의 방종한 생활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붙잡혀 눈알이 빠지고 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십자가를 저야 했습니다.

  이런 십자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자기가 저야 할 십자가이며 자기가 지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야 할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크나큰 유익을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의 행실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이런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이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습니다.

  (2) 다음에 우리의 신앙의 연단을 위해 우리로 지게 하시는 시련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십자가를 감사히 질 수 있는 것은 이 십자가를 지는 사람에게 놀라운 약속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돈독케 하시려고 우리에게 불같은 시련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케 하시는 하나님의 시련인 줄 알고 이런 일을 만날 때 즐거워하는 태도를 가지고 그 십자가를 저야 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길에 정해 놓으신 고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느 때 우리에게 어떤 십자가를 지게 하실 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를 저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자기의 생애에 오는 십자가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곧게 하신 것을 누가 굽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3. 생명을 얻는 비결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는 일과 자기 십자가를 저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참 생명을 얻는 비결과 생명을 잃는 일에 대하여 경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영적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참 생명을 찾을 수 있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버리면 찾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일은 잃을 것이라고 한 목숨은 육신의 생명이요 얻으리라고 한 목숨은 영적 생명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1)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 목숨을 구원한다는 말은 자기의 삶의 목적을 자기 육신의 생명에 두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 속합니다. 여기서 목숨이란 말은 육신적인 생명으로 옛사람을 가리키는 말합니다. 이 생명은 마땅히 죽어야 할 생명이며 우리가 부인해야 할 생명입니다. 이같은 목숨은 자기 자신을 위한 목숨이요 죄를 좋아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목숨입니다. 또한 이런 목숨을 가진 사람은 그 목숨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영적인 생활로 한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또 자기의 육신적인 유익을 위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생활이요 생명의 길에서 떨어진 생활입니다. 이 생활은 자신의 정욕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생활이며 돈을 사랑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이런 생활은 육신을 심는 일이요 육신의 것을 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잃을 것이라고 한 말씀은 자신의 참 생명인 영원한 생명을 상실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육신을 죽이지 못하고 육신의 목숨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그의 참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구원코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참 생명을 잃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육신의 생각과 육에 속한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소중한 영적인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육신대로 살아서 얻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고 모두 잃는 것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2) 자기 목숨을 잃는 일에 있어서 “나를 위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잃는 사람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목숨보다 더 존귀한 목적이 있을 때 그런 일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주님을 위한 것임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삶이 이 목적에서 이탈하면 영생을 얻으려는 그리스도인 이라고 볼 수 없는 것  입니다.

  (3) 제 목숨을 잃는다는 말은 육신을 따르는 정욕과 탐심의 생활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 안에 거하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육신적인 생활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적인 모든 문제가 근원적으로 주님을 향하여 방향이 전환되어야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잃으면 안되고 반드시 찾아야 할 우리의 생명은 영적 생명으로써 이 생명이야말로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행복이 우리의 어디엔 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알고 그것을 찾으려고 무던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런 가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 우리가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삼을 수 있을지라도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은 짧은 기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찾아가시면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 앞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가치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목숨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목숨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되는 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로서 유업을 받을 목숨입니다. 이런 우리의 목숨이 참으로 귀한 것은 이 목숨을 주신 분이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는 생명은 이처럼 가치가 있는 생명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은 참 생명을 얻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이 생명은 너무나도 귀한 것입니다. 천하보다도 존귀합니다. 새로운 도약과 축복을 향해 달려갈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이런 축복을 만들어 내는 영적 생활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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