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소리
 
이메일 : bamjoongsori@bamjoongsori.org

 

  
설교 226 (겨자씨의 위대한 생명력)
 밤중소리  01-21 | VIEW : 630

                              
                         (226)


           겨자씨의 위대한 생명력


   성경 본문 /  마가보금 4 : 30 - 32                            


  오늘은 모든 씨앗 중에서도 가장 작은 씨앗인 겨자씨의 위대한 생명력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가운데 비록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작은 것이기는 하지만 겨자씨가 지니고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생명력을 발휘하여 우리의 생애에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이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일이 많으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설명이란 굉장히 심오하기 때문에 비유적인 설명이 불가피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의 작은 겨자씨로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1. 하나님 나라는 하나의 겨자씨와 같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 한 알로 비유하신 것은 몇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이 땅위에 복음을 위해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1) 이 겨자씨는 먼저 예수님에게 비교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위에 최초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겨자씨가 되십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아무도 큰 나무로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사렛 땅,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배우지 못한 청년이 그의 모습입니다. 이 사람을 누가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려 온 영광의 메시야로 인정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더욱 그가 빌라도의 재판에서 유죄 판결로 십자가의 사형 언도를 받았을 때에 모든 사람들은 그것으로 예수의 생애가 마감되는 줄 알았고 그가 목메어 외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그의 죽음과 함께 잠잠해 지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유대인의 예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죽으셨을 뿐 아니라 죽으신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 후, 그가 전한 복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라 온 세계로 번져졌고 오늘날 온 세계를 정복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2) 겨자씨는 보잘것없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비교되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가장 작은 자들입니다. 존경받을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가문이나 학식이나 명예에 있어서도 보잘것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전1:26절에서 하나님이 너희를 부르신 부르심을 보라고 했습니다.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보잘것없는 겨자씨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력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자 들입니다. 이 세상에 재벌도 많고 재벌의 2세들도 많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유산은 별것이 아닙니다. 모두 이 땅위에서만 필요로 하는 것들로 하나도 우리의 생명에 유익이 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모두 자기 육신과 함께 썩어져 버릴 것들이며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두 불에 타 없어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유산은 천국에 있습니다. 미국의 한 노 교수 부부는 생존시 근검 절약한 그 많은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는 일로 놀랄만한 일을 했지만 그 남긴 유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는 겨자씨 같은 존재들이지만 그 작은 겨자씨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엄청난 유산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의 아름다움과 영화로움은 입으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서 이 천국으로 이끌려 올라간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그는 고후12:4절에서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유업으로 받아 장차 들어가 살 천국은 그 길이 유리처럼 맑은 정금으로 깔려 있다고 했습니다. 이 거룩한 성의 기초석이 12가지 보석으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곳에 예수님은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기 위해 먼저 올라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준비되면 다시 우리를 데리려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분은 이처럼 놀랍도록 영광스러우며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비교가 될 수 없는 부요와 축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 겨자씨 같은 작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로 비유하신 것은 우리들로 겨자씨 같이 작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1) 겸손한 성도는 겨자씨와 같은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보잘것없습니다.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병신 같은 존재로 인정받을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크다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를 낮추고 또 낮추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저 사람이 정말로 모자라는 사람이 아닌가 의심받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자랑할 것을 찾지 못합니다. 자랑할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한 사람은 제단 제일 가까운 곳에서 머리를 쳐들고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죄 가운데서 살지 아니한 것을 감사했습니다. 이 사람은 감사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지목 받는 세리였습니다. 이 사람은 성전 뒷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이여 나는 오늘도 다른 사람의 재물을 노략질하였나이다. 나는 죄인이로서이다’ 기도했습니다. 누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 보시기에 겸손한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리에게 의롭다 하심을 주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사울로 있을 때, 그는 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요 고등교육을 받은 유식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교만했던 것입니다. 그는 성전에서 기도한 바리새인의 대표적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울을 쓰지 아니하셨습니다. 그가 주님의 손에 의해 깨어졌을 때, 비로소 자기는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겨자씨처럼 가장 작은 존재임을 알고 겸손해졌습니다. 이 때 주님은 사울을 불러 바울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신 것입니다.

  자기가 잘 났다고 여기는 사람은 겨자씨가 아닙니다.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보다 훌륭하다고 내세우는 사람은 겨자씨가 아닙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클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이 사람의 교만은 꺾여질 것입니다. 이 사람의 높음은 낮아질 것입니다. 이 사람은 결국 생명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잎만 무성한 나무로 남을 뿐, 주님이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의 생애에서 결국 하나님이 그의 대적자가 되시기 때문에 넘어지고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비록 겉보기에는 약해 보이고 보잘것없이 보여도 그 안에 겨자씨로 큰 나무를 이루게 하는 주님의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무한히 높아질 것입니다. 놀라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에게 내가 너를 높여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성도 안에 있는 생명의 씨앗은 그 사람으로 다른 많은 나무들보다 더 큰 나무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겨자씨 같은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의뢰하는 성도는 겨자씨 같은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의뢰하고 자신을 섬기는 생활을 합니다. 자기의 판단, 자신의 지식, 자신의 결단력을 의뢰하여 신앙 생활을 해 나갑니다. 이런 사람의 겉모양은 아주 장하게 보입니다. 큰 사람으로 비췹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존경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신앙 생활의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의 믿음의 씨앗에는 자기의 능력과 지식과 판단력만 있을 뿐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시며 능치 못함이 없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의뢰하기 때문에 좀처럼 쉽게 움직이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인도하심을 받기까지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그의 손길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성도는 나약하게 보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판단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신앙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처럼 보였고 결단력이 있는 큰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벌써 하나님의 생명력이 떠났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파도가 이는 바다 가운데 던진바 되었고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밤낮 사흘간의 고역을 겪었습니다.

  모세는 자기를 큰 자로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큰 자로 여김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떠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출애굽 당시 홍해에 이르렀을 때에,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뒤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를 매장할 곳이 없어서 홍해까지 끌어 왔느냐고 불만이 하늘 찔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바로의 군대는 가까이 옵니다. 무엇인가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손길만을 바라본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백성들은 아무도 모세를 큰 사람으로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면서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작은 겨자씨로 비췬 모세에게는 위대한 하나님의 생명력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모세의 손을 들어 홍해를 향해 높이 쳐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겨자씨의 위대한 생명력이 모세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 겨자씨의 생명력이 어떻게 나타난 것입니까? 그 넓고 넓은 홍해가 갈라져 큰길을 이루어 백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육지처럼 건너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면 하나님의 생명력이 나타나 기적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겨자씨의 생명력이 나타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자기를 낮추는 성도가 겨자씨와 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높아지면 대접을 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됩니다. 자기 생애에 만족을 줍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기를 높이려 하고 높아지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높아진 사람은 이미 겨자씨가 아닙니다. 높아지기를 원하고 높아지려고 애쓰는 사람은 겨자씨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 속에는 겨자씨의 생명력이 없습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낮추는 그 사람,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그 사람, 이런 사람이 겨자씨에 비교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겨자씨의 생명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높여 주십니다. 모든 사람들 위에 뛰어난 존재로 놀랍게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같은 겨자씨의 생명력으로 높아지지 아니하고 스스로 높아진 자는 하나님께서 낮추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23:11절에서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리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남을 섬기는 자는 다른 사람들 눈에 비천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남에게 섬김을 받을 만한 사람이 남을 섬기는 일은 대단히 축복 받을 일입니다. 그에게는 겨자씨의 생명력이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생명력이 싹이 날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데 그가 지극히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능히 다른 사람을 다스릴 만한 인격자인데도 오히려 다른 사람의 종이 된다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종이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이요 자신의 삶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기를 즐겨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겨자씨의 생명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20:27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종으로 형제를 섬기는 자 안에는 겨자씨의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높이실 때 모든 사람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교회에서 모든 사람들보다 못난 사람인 것을 스스로 깨닫고 교회에서 내가 무엇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겨자씨의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높이고 훌륭하게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에는 놀라운 축복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분입니다. 배우지 못해서 억울한 사람, 돈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 늘 다른 사람 밑에서 괄시를 받으며 억울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배운 사람들보다 부자들보다 남을 부리는 사람들보다 더 높임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가장 작은 겨자씨가 되시면 하나님은 그 씨앗 안에 위대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여러분들로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겨자씨의 생명력으로 성공하세요, 이 생명력으로 높아지세요, 이 생명력으로 복을 받으세요. 이런 높임은 가치가 있고 영광스러운 높임이 되는 것입니다.

  (4)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사람은 겨자씨와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들어 쓰실 때가 있습니다. 아무 때에나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기까지 바로의 궁정에서 40년간, 미디안 광야의 이드로의 집 목동으로 40년간, 80년간을 기다리시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그릇으로 쓰임을 받을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는 때가 이르매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올라갔으며 식량난으로 죽을 애굽 사람들과 가나안의 이스라엘 식구들을 구원해 내는 위대한 일을 해 냈습니다.

  단1:8절 말씀을 보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뜻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세 친구들로 더불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뜻을 정하고 하나님께 의뢰했더니 그 일을 해 냈습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애는 늘 기다림 속에서 기다림의 소망을 이루는 생애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다림이 자포자기하거나 인간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를 내리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기다림이 겨자씨의 믿음인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위대하게 쓰임 받을 하나님의 종은 두 증인의 사명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사명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종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이 사명을 위해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자격을 보면 음녀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신앙의 정절이 있는 자들이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는 자들이요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순교의 사명자들이며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생활을 하는 종들이 이들 두 증인의 사명자에 속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종들은 평소에 보기에 능력이 없는 것 같고 그가 시무하는 교회가 별로 부흥되는 것 같지 않고 유명 목사로 이름이 알려진 종은 아닙니다. 이런 종은 겨자씨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종말에 하나님에 의해 순교자의 사명을 가지고 1260일간 예언의 사명자로 쓰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겨자씨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5) 보이지 않게 일하는 사람이 겨자씨의 생명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겨자씨는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씨앗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겨자나무가 없기 때문에 겨자씨 구경이 어렵습니다. 우리가 12년 전 성지 순례를 했을 때 요단강 근처 들녘에서 겨자 나무를 보고 그 씨앗을 구경했지만 눈에 가까이 대면 콧김에 날려 갈 정도로 가볍고 작은 씨앗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작은 자가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눅8장에 나와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촌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실 때에 이들을 정성껏 물질로 섬겼던 일꾼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유층에 속한 귀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 마리아라 하는 여자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다른 여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들은 겨자씨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에게 위대한 생명력을 넣어 주심으로 이 여인들은 이 같은 역사적인 사역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겨자씨는 심어야 생명력이 나타납니다. 겨자씨 그대로는 그저 한 알의 작은 겨자씨에 불과할 뿐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무엇이 넉넉해서 하나님을 섬겨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가 가지고 있었던 작은 것, 자기와 아들이 한끼만 먹고 굶어 죽기로 한 그 빵 한 조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대접했더니 그 겨자씨로부터 놀라운 생명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성전 연보궤에 지극히 작은 헌금, 엽전 두닢을 봉헌하므로 주님의 칭찬을 받은 것은 그가 많은 물질로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가난한 과부가 구차한 중에서도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바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는 그 씨를 심을 때 이처럼 위대한 생명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이 찾으시는 작은 겨자씨이십니까? 여러분은 겨자씨가 되시어 하나님께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겨자씨 같은 믿음 속에 위대한 생명력을 넣어 주실 것입니다. 그 생명력의 능력 가운데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자기의 무능함과 부족함과 죄악된 성품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 자신을 깨시면 여러분은 생명력 있는 겨자씨가 되실 수 있습니다. 이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생애를 새롭게 열어 나가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REV :   설교 227 (주님이 기억하시는 사람) 밤중소리 
 NEXT :   설교 225 (하나님이 나를 깨실 때!) 밤중소리 
 LIST  WRITE  REPLY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