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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25 (하나님이 나를 깨실 때!)
 밤중소리  01-21 | VIEW : 644

                              
                         (225)


            하나님이 나를 깨실 때 !


   성경 본문 /  시편 66 : 10 - 12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우리의 생애에는 그 시로부터 하나님의 손에 의해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지난날 우리의 몸을 죄악의 도구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이후로는 이 같은 생활이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롬6:12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우리를 깨시는 역사를 통해서 이 일을 강권적으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이유는 우리로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의의 종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죄를 따르고 죄악의 길을 걷는 일에는 익숙해 있지만 의를 행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에는 미숙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지난날의 행실을 깨시고 우리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이 변화의 역사가 깨시는 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오늘은 시편 66편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 말씀 위에 성령의 강한 역사가 나타나서 말씀을 듣는 우리의 심령을 쪼개어 하나님의 손에 의해 깨어지는 은혜가 일어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구원의 예정


  인간의 구원이 사람의 생각이나 판단이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뤄진다고 하는 사실이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같은 하나님의 예정을 전적으로 부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누구는 구원하시고 누구는 구원치 않기로 예정했겠는가, 구원을 얻고 얻지 못함이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잘못된 판단에 대하여 바울은 롬9장에서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고 힐문했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 시요 우리는 진흙이며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것 한 가지만큼은 정말로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 함께 따라 하십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할렐루야 ! 강도 같은 죄인들도 구원을 받습니다. 음란한 여인들도 구원을 받습니다. 천하의 사기꾼도 구원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을 받을 수 없을 만한 흉악한 죄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것은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인격이나 학식이나 행위에 따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라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처럼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같은 선물을 받게 되자 그 시부터 우리의 신분은 놀랍게 새로운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자 이전에 죄인의 상태에서 살아간 우리의 신분은 사라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새롭게 태어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를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태어났으며 그 새롭게 태어난 신분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권세를 가진 신분이라고 했습니다.


  2. 구원자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역사


  여기까지는 그런 대로 공감이 가고 좋은 기분으로 받아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하나님은 다만 우리를 구원하신 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일단 부르심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생애에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이 반드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과 구원받은 이후의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달라지십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에는 살인을 하고 강도 짓을 했어도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 무조건 용서를 받지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로는 결코 이전에 우리가 즐겨 살아간 죄악 된 생활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전에 살아갔던 죄악 된 길에서 벗어나 새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롬12장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은 구원받은 후에도 구원받기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그 시로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재물을 제일로 알고 살아온 우리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온 우리는, 유행을 따르고 정욕과 탐심을 좇아 살아온 우리는, 이 같은 지난날의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의 손에 의해 하나 하나 철저하게 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죄악의 길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깨시는 일로 이루십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렘18:4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깨뜨려지매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옛날 죄인으로 살아온 나를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서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듯 깨시고 자기의 선한 의견대로 여러분을 하나님의 교회의 그릇으로 사용하시기 위해 새로운 그릇으로 만드는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3. 하나님의 손에 깨어진 사람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깨신 후, 하나님께 합당한 그릇으로 사용하신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1) 그 중에 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형성하는 위대한 족장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손에서 한평생 깨어지는 일로 그의 생애를 살아 온 사람입니다. 형을 속여 장자의 명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소경인 아버지를 속여 형이 받아야 할 축복 기도를 도적질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집에서 내어쫓은 후부터 깨시는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짓말로 속임을 당하면서 20년간 머슴살이로 살아가게 하신 것은 야곱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깨시는 역사였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는 것입니까? 혹은 질병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으십니까? 사업의 실패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몹시 난감한 가운데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까? 예측할 수 없었던 어려운 일을 만나 많은 고민과 번뇌 중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이런 여러분의 생애는 여러분에게 어떤 결정적인 흠이 있거나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보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새롭게 변화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바라보시고 그 하나님의 손길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 받아야 그런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다음에 우리는 베드로란 예수님의 제자의 경우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언제나 자신의 연약한 것이나 부족한 것을 모르고 모든 일에 자기의 힘과 믿음을 내세웠습니다. 이런 그릇으로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베드로를 보다 큰그릇으로 만드셔서 복음의 위대한 일꾼이 되게 하시기 위해 그를 깨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앞에서 자신 있게 장담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주님을 배반할지라도 자기는 주님을 따르겠노라고 맹세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연약함을 보여 주셔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다음날 주님이 대제사장의 무리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는 가야바의 뜰에서 어린 계집종으로부터 너도 예수의 무리와 한패가 아니냐는 말을 듣고는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떼면서 나중에는 맹세하고 저주하며 세 번씩이나 주님의 이름을 부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닭 우는소리가 베드로의 귀에 들려 왔습니다. 베드로는 ‘네가 닭이 울 기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통곡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갈대란 뜻을 가진 시몬이란 이름이 여기서 깨어지고 반석이란 뜻이 담긴 베드로란 이름에 합당한 그릇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이 이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4. 하나님의 깨어지게 하시는 역사


  오늘 봉독한 시편 66편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의 그물에 끌어들여 우리를 시험하시고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신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은을 단련함 같이 시험의 그물에 끌어들이는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를 깨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십니다. 이처럼 우리를 깨시는 역사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깨시고자 하실 때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손으로 잡아 이끌어 하나님의 시험의 그물에 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길에 우리의 죄악 된 행실을 깨시는 그물을 쳐 놓으십니다. 우리의 완악한 고집과 못된 성품을 깨시는 연단의 그물을 쳐 놓으십니다. 우리의 불순종의 악한 행실을 깨시는 시험의 그물을 쳐 놓으십니다. 그리하여 적당한 시기에 우리들로 그 그물 안으로 이끌어 은같이 연단 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깨십니다.

  이런 과정으로 하나님에 의해 깨어진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께 합당한 그릇으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목사면 뭣합니까? 장로면 뭣합니까? 권사면 뭣합니까? 집사면 뭣합니까? 깨어지지 않은 그릇은 언제까지 가도 아무 일에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서 깨어지는 역사가 없이는 우리는 언제까지나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릴 수 없으며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변화 받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각기 깨어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깨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 3장을 보면 천하의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넘어질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으면 싸 메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깨시는 기회로 삼으시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정의 파탄으로, 경제적인 시련으로, 육신의 질병으로, 사업의 실패로 이 같은 하나님의 깨시는 손길이 나에게 나타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저는 저의 신앙생활과 목회 생활 중에 이 같은 하나님의 깨시는 손길을 수 없이 많이 맛보았습니다. 한 가지 사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22년 전, 우리 신생교회를 처음 신양극장 건너편에 개척했을 당시 교인이라곤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새벽기도에는 6개월이 지날 때까지 한 사람도 나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자비량 목회를 할 때라, 작은 사업을 계속하면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추석이 다가오고 일이 바쁘게 되어 그만 새벽기도를 철수하고 교회를 비어둔 채로 새벽 문을 잠갔습니다.

  하나님은 이 때 이 같은 저의 목회 방법을 깨셔야 했습니다. 송월동에 있는 집에 돌아온 지 며칠인가 지났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갑자기 동네가 떠날 듯 왁자지껄하면서 어떤 동네 사람이 숨 넘어가는 소리로 달려 온 것입니다. 나는 너무나도 다급한지라 맨발로 밖으로 나가보니 우리 충기가 아직 헐리지 않은 담장 곁에서 놀고 있다가 그 담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몸이 담장에 깔렸는데 머리가 깨지고 입이 찢겨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충기를 등에 업고 근처의 고려병원으로 달려갔으나 담당 의사의 말이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애가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에, 너더댓 시간 동안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우리 내외는 얼마나 울면서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정말로 가슴이 찢어지는 회개요 마음을 도려내는 회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올바른 목회자로 만드시기 위해 이처럼 철저하게 깨시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다시 닫혀진 새벽의 교회 문을 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심에 있어서 각기 하나님의 정하신 결정적인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시기를 잘 모르지만 그 시기를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고의적으로 거역했을 때에, 우리에게 이 같은 시기가 매우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니느웨 성으로 가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마침 그곳으로 떠나려는 배가 요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날씨도 항해하기에 좋았습니다. 요나는 득의하여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연단의 그물 속으로 끌어넣으시려는 의도인줄도 모르고 자기가 가는 길을 형통케 해 주시는 줄로 여겼습니다. 배가 바다 한 가운데 이르렀을 때, 갑자기 큰 풍랑이 일었고 요나는 제비에 뽑혀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 고기 뱃속에 들어가 사흘 밤낮을 지내면서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는 다시 니느웨 성으로 달려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자 그는 즉각 하나님이 쓰실 새로운 그릇으로 변화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욥처럼 까닭 없이 고통과 시련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사업 문제로 혹은 가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닥쳐온 그 어려운 문제만 바라보는 가운데 낙심하시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그 어려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손길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손길이 왜 나에게 나타났는지? 나에게 일어난 이 일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해 주는지? 그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옛 사람을 깨시고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하나님께서 더욱 귀한 일꾼으로 쓰시려고 나타나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시고 그 하나님의 손에서 여러분이 깨어질 때, 여러분이 당하시는 지금의 고난과 시련과 어려운 생애가 참으로 보람있는 축복의 결실로 여러분의 생애에 찾아올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독특하신 방법으로 우리를 깨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시는 일에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을 사용치 아니하십니다. 토기장이의 손에 쥐어진 진흙은 다만 그 토기장이의 손에 의하여 깨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그릇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을 따라 우리를 깨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그 어떤 환경 속에서 곤경을 당하더라도 결코 낙심치 마시고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적인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당하시는 고난이 심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한 일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들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당할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시험받을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시고자 하실 때, 우리는 깨어지는 일에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빨리 깨어지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어지기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혹은 이렇게 혹은 저렇게 지속적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에 깨어지는 일이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어려움만 가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같이 예수를 믿어도 미련한 사람은 한평생 얻어맞는 중에 깨어지는 일만 계속되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빨리 깨어짐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 받아 축복 받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깨시는 일에만 국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시는 이유는 우리들로 복 받지 못할 육신의 일을 버리게 하고 하나님께 복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시려는데 있습니다. 본문 12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였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했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신 후, 반드시 그 자리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끄집어  내시는 그곳은 불과 물을 통행하는 시련의 자리가 아니라 풍부한 축복의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 욥기에는 이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나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내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 여러분에게는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가까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의 능력이 나타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깨시지 않으시면 이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우리의 고집이, 우리의 불순종이, 우리의 교만이 우리의 완악한 마음이 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같은 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날 때, 우리 스스로가 즉시 깨어지는 역사를 통해서 여러분의 생애가 여호와 이레로 준비하신 풍족한 축복의 그 자리로 옮겨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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