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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24 (넉넉한 구원을 얻자)
 밤중소리  01-21 | VIEW : 957

                              
                         (224)


              넉넉한 구원을 얻자  




   성경 본문 /  베드로후서 1 : 1 - 11                  


  넉넉하다는 말은 언제나 듣기에도 좋고 받기에도 좋은 말입니다. 무엇이나 넉넉하면 걱정이 없게 되고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11절에서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간다는 말은 넉넉한 구원을 얻는다는 말로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큰 안위를 주며 넉넉한 구원 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에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한 제자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이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그 나라에 넉넉히 들어감을 약속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만은 자신만만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 앞에 가로막힌 장애물로 인하여 낙심하여 타락하지 않습니다. 불같은 시험이 와도 그 시험으로 인하여 넘어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여유 있는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약속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10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


  1. 그리스도를 아는 생활


  베드로 사도는 2절에서 이 편지를 받아 읽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생활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더욱 풍성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생애에 은혜를 받고 평강을 누리려면 그리스도를 아는 생활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일은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이십니다. 우리 인간들의 지혜와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일이야말로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 품속에 있는 영원하신 독생자를 육신으로 세상에 보내신 일은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 값을 넘겨주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으로 속죄 제물이 되신 일은 말할 수 없이 신기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 부활이야말로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모든 것들, 하나님의 이처럼 신기한 능력으로 말미암은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는 값없이 받은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이 신기한 능력을 힘
입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으니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를 아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서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실을 깨닫게 되며 이로 인하여 우리들은 넉넉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를 안다는 말은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이며 이 지식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그 믿어야 할 지식이 동반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란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지식에서 얻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허수아비에 불과한 믿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사이비 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쉽게 무너지게 되며 인류의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등장했을 때 무너져 버리며 이단의 침투에도 맥없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들이신 사실과 그가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터득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말기의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신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지식이 없는 믿음은 결국에는 망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기를 사모해야 하며 이 지식을 쌓는 생활 가운데서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적이나 기적은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평안도 기쁨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홍해가 갈라져서 그 가운데를 걸어갔지만 얼마 안가 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40년간이나 내려 배불렸지만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면서 울어댔습니다. 반석을 갈라 생수를 내서 먹였건만 얼마 안가 또 목이 마르다고 불평했습니다. 이적과 기적이 나타나는 생활은 감사가 아니라 불평과 불만을 초래하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 생활에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누구에게 이적이 필요한 것입니까? 40년간이나 중풍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던 병자에게 이적이 필요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이적이 나타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 가진 가나안 여인에게 이적이 필요했습니다. 빗을 산더미처럼 진 남편이 죽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빗값으로 빼앗겨야 할 불행한 선지자의 한 아내에게 이적이 필요했습니다. 손마른 자, 벙어리 된 자, 문둥병자 등 아무 곳을 보아도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 가정이 평안한 사람, 먹을 것이 풍족한 사람, 잘 살아 나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적이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적이 나타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적만 좋아하다간 평생 가야 병들고 가난하고 힘겨운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적을 나타내시어 건져 주시고 그나마 받은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적 나타내시기를 거절하시고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증거 하시는 예수님을 많은 무리들이 배반하고 그의 곁을 떠날 때 예수님은 가까이 둘려 쌓인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이토록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 가운데서 자라 가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2) 베드로 사도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하여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분의 그 믿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리 값싼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보배롭다고 하신 말씀은 그 믿음의 가치가 너무나도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믿음을 우리가 소홀히 여긴다면 이 믿음을 간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벧전1:1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로써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야말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며 보배로운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배 같은 믿음이란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주신 영생을 의미하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으로 받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같은 보배로운 믿음을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신 분입니다. 결코 이 세상에서 장사나 잘되고 병이나 고쳐 주고 사업하는 일을 도와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값싸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그 고귀하신 죽으심을 우리의 세속적인 생활에 만족이나 주시기 위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야말로 영생과 천국의 분명한 약속이 있고 그것을 보증해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확증이기 때문에 보배처럼 귀한 믿음인 것입니다.

  (3) 다음에 4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하여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욕 가운데서 살아가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정욕적인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은 육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생활을 하지 말고 신의 성품,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기 이전에는 육신의 뜻가운데서 살아 왔습니다. 썩어질 것을 위해 우리의 생애를 살아온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아무런 소망도 없었고 감사도 없었습니다. 이런 삶의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새로운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은 변해야 하며 우리의 생애는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들에게 이 같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없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에게 예수를 믿음으로 나에게 영생이 주어지고 천국이 약속되어 있다고 하는 이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면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 일이 무엇이 유익하며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무엇이 감사하며 보람이 있을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런 믿음을 보배처럼 여겨 영생을 가진 사람처럼, 천국에 들어갈 사람처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그러므로 더욱 힘쓰라


  베드로 사도는 이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그의 생애를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5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덕을 쌓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덕을 세우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덕이 덕이 되려면 지식이 따라야 합니다. 덕에 지식이 결핍되어 있다면 그 덕으로 오히려 믿음에 손상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명절날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덕을 세운답시고 제사상에 큰절을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지식이 없는 이 덕으로 인하여 믿음이 큰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지식에는 절제가 따라야 하고 절제에는 인내가 딸아야 하며 인내에는 경건이 따르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일에 사랑을 공급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을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8절에서 이런 것이 흡족한 사람들에게 있을 두 가지 결실에 대하여 말씀해 줍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른 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다음에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서 더욱 힘쓰는 믿음의 생활을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일에 힘쓰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생활이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요15: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생활에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보배처럼 생각하지도 아니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기를 싫어하며 열매를 맺는 생활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소경이라고 했습니다. 영적 소경이란 뜻입니다. 소경은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에 대한 축복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생도 보지 못하고 천국도 볼 수 없으며 볼 수 있는 것은 땅에서 필요로 하는 돈이요 물질적 축복이요 명예요 육체적 쾌락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이런 것도 제대로 누릴 수 없을 것은 하나님이 결코 허락하시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그 무서운 죄, 하나님의 심판으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옛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신 속죄의 은혜도 잃어버리고 자신의 생명을 구원해 주신 그 사랑도 잊어버린다면 이 사람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사람인 것입니다.


  3.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마지막으로 10절 말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가 택하심을 받았는가 반신반의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는가 믿어지기고 하고 믿어지지 않기고 합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할 만한 믿음의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고 그의 신앙 생활에 열매가 없는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자기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르심과 우리의 택하심을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이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에 대한 확신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의 생활에 나타나는 열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실인즉 자기가 구원을 받았지만 그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감사도 없고 찬양도 없고 기도도 없으며 교회에 나오는 것을 보면 믿음이 있고 구원이 있는 사람 같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 믿음도 없고 구원도 없는 것 같은 생애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험을 주시고 시련으로 연단 하시고 채찍으로 때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서 한평생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고역 가운데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잠간이라도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소홀히 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여러분의 신앙을 성장시키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행한즉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행하라는 말은 더욱 신앙적으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말합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는 생활에 더욱 힘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 중에 더욱 힘쓰는 일이 없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자기 육신이 원하는 대로 하루하루의 생활을 살아간다면 소경이 되어 자신이 정말로 가야 할 길을 잃고 흑암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도 게으른 사람들은 도태됩니다. 요즘 몇몇 은행이 문을 닫은 이후 퇴출이란 말이 자주 쓰이지만 게으른 사람은 일차적으로 직장에서 퇴출 당하고 사업에서도 퇴출 당하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을 보세요. 10년전 그 사람이나 10년 후 그 사람이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게으르고도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을 한사람도 본 일도 없고 들은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회에도 게으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게으른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능히 나올 수 있는 시간이 있고 환경도 되건만 게을러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잡담하는 시간은 많고 친척 집, 자식 집, 친구 집을 두루 찾아다니는 시간은 많아도 예배에 참석하는 기간, 기도하는 시간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에 게으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믿음에 게으른 사람 치고 복 받은 사람 보셨습니까? 그리스도 알기를 게을리 하고 열매를 맺지를 못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평안한 가정,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반대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온 사람이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을 보셨습니까? 보지 못했다면 게으르지 마셔야지요. 열심을 내셔야지요.

  결론 : 여러분, 어느 분야에서도 힘쓰고 애쓰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믿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의 경우에 결부시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은 두자지로 구분 됩니다. 하나의 경우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더욱 힘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의 경우는 그저 그런 대로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은 어느 경우에 해당되는 것입니까? 자기의 죄를 소멸해 주시고 자기를 사망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도 사랑도 잃어버리고 소경처럼 눈앞에 있는 육신적인 유익과 쾌락을 위해 게으른 생활로 살아갈 것입니까?

  교회 생활은 더욱 힘쓰는 사람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퇴출되는 것입니다. 11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결론적으로 말씀해 줍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할렐루야 ! 힘쓰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갑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는 넉넉히 들어가게 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게으른 성도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리 만치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순종과 게으른 생활 가운데서 한평생 허우적거리는 힘겨운 생활에서 벗어나 열심을 품고 부지런히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에 더욱 힘쓰는 생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실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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