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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22 (시험을 이기는 생활)
 밤중소리  01-21 | VIEW : 710

                              
                         (222)


              시험을 이기는 생활  


   성경 본문 /  야고보서 1 : 12 - 15                    
  

  자신의 생애가 복잡하고 험난할 때, 사람들은 자기는 너무 힘들고 어려운 생애를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힘겹고 어려운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일생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으며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습니다. 질병도 있고 건강도 있으며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에 쭉 깔려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 길에 깔려진 장애물이 무엇인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우리의 생애를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답답할 때도 있고 불안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런 것들이 여지없이 우리 생애에 찾아와 나에게 기쁨도 주고 눈물도 주며 행복도 선사하고 불행도 선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시험이란 말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의 생애에는 이 시험이란 존재가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성경엔 시험에 대한 경종과 그 시험에 대처할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시험을 받는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하고, 만나고, 당하는 시험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걸어가는 우리의 생애 중에 우리가 만나는 좋지 않은 일들, 불행한 일, 슬픈 일, 실패, 질병 등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우리의 생활을 어렵게 할 때 우리는 그런 일을 시험을 만났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험이란 말을 생각한다면 요즘 우리 가운데 시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이처럼 우리에게 찾아온 시험을 이기는 생활을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 시험과 인생


  그리스도인들 중에 아마 시험 당하기를 좋아하고 그 시험을 환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 시험을 기쁘게 맞이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외우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 중에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란 구절이 있습니다. 시험에 들면 그 시간부터 우리는 우리의 생애에 괴로움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반면에 약1:2절 말씀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험이 좋으니 시험을 환영하라는 의미에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당하는 시험은 달갑지 않지만 기왕에 우리에게 찾아온 그 시험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교훈해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오는 시험을 잘 대처하기만 하면 그 시험이 우리의 믿음의 시련이 되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격려해 주신 말씀입니다.

  (1)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험은 그 시험 자체가 우리에게 우연히 찾아오거나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의 생애를 노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생애 중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스러운 섭리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을 아는 일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일에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오는 모든 대소사에 관한 것이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전도서 7장에서 이르시기를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2) 우리에게 오는 모든 시험이란 것도 하나님에 의해 우리의 생애에 찾아오기도 하고 물러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전3:14절에서 이 일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해 주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알았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작정하신 시험은 우리에게 반드시 찾아오는데 우리가 그 시험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그런 시험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당하고 있는 시험이 어떤 종류의 시험이건 간에 여러분의 생애에 찾아오지 않아도 좋을 시험이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라 반드시 찾아와야 할 시험이 찾아 온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모른다면 시험을 만났을 때 원망이 나오게 되고 그 시험을 요리 저리 인간적인 방법으로 피하려다가 결국은 더 무서운 함정에 빠져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게 되고 자기 인생의 좌절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시험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간섭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 시험 중에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그 시험을 성공적인 방향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그 시험을 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실 때는 결코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이 일에 대해서 고전10:13절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당하는 지금의 그 시험이 어렵고 힘들어도 좀더 참고 하나님을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여러분들이 이길 수 있는 시험이기 때문에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시험 중에 낙심치 말고 힘을 내셔야 합니다.

  두 번째는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시험 당할 즈음이란 시험의 어려운 고비를 말하는 것으로 그런 고비에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시험을 당하는 여러분에게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2. 시험의 세 가지 종류


  우리가 당하는 시험 중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시험이 있습니다.

  (1)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 14절에서 말씀해 주는 대로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시험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험과는 무관하다고 하셨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시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경종 하셨습니다.

  사람이 욕심을 마음에 품으면 그 즉시로 죄라고 하는 아이를 낳게 되고 이 아이가 자라면 사망을 출산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욕심은 결국 죄가 되어 우리의 생애를 더럽히고 그 죄를 그대로 놔두면 사망에 이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은 죄의 어머니요, 사망의 할머니 격입니다. 에덴에서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았을 때에 먹으면 죽는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선악과를 바라보았을 때에 하와의 마음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선악과를 바라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는데 이런 하와의 생각은 그 선악과로 이미 그 마음에 욕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의 잉태가 그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같은 죄가 사망을 가져온 것입니다.

  욕심이란 말은 다른 것은 생각지 않고 자기에게만 이로우면 된다는 마음을 가리키는데 그리스도인의 욕심이란 자기가 바라는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일을 말합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어떤 일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욕심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욕심이나 탐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생활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는 우리의 마음을 유혹하는 손길이 많이 있습니다. 잠시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 같은 욕심에 끌려가기 쉬운 것입니다.

  사람이 음란죄에 빠지는 이유는 음란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사람이 십일조를 바치지 못하는 이유는 돈을 바치기가 아까운 욕심 때문입니다. 명예심으로, 향락으로 세상을 따라가는 생활은 자기의 허영심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급기야 내 생각을 지배하는 날이면 나는 죄에 빠지게 되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같은 욕심 때문에 오는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까? 먼저 우리는 욕심을 따라가려는 육신의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롬6:11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지난날처럼 죄를 생각하고 그 죄를 따라가는 죄의 병기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해 살아가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의 생활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이 신앙적인 훈련이 되어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믿음이 아주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당장에 둔갑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난날 언제인가 오랜 기간 적금을 적립하는 예금을 하고 그것을 탈 때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액수가 작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자도 꾀나 많았습니다. 의당히 이익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십일조로 헌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마음속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한동안 갈등이 생긴 것을 믿음으로 억제하고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인간인지라 누구에게나 욕심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마음에 생깁니다. 그럴 때 내 몸을 죄의 병기로 사탄에게 줄 것인가?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것인가의 믿음의 결단을 내려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거듭하는 가운데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냥 “믿습니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결국 그 마음의 욕심 앞에 굴복 당하여 자신의 몸을 죄의 병기로 한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활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욕심과 탐심을 따라 살아 갈 때, 그 결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바로 시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에게 시험이 왔을 때, 이 시험이 내가 행한 죄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 내 생활에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욕심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닌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가 당하는 어려운 시험이 하나님의 채찍으로 온 것이라면 그 죄를 회개하고 올바른 믿음의 생활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사람은 언제까지나 그 시험 중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범한 죄를 회개하고 그 죄악의 길에서 돌이킨다 해도 우리가 행한 죄는 용서받고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지 않지만 자기가 지은 그 죄로 인한 보응은 어떤 형태로든 이 세상에서 자기가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살인죄를 범한 자가 하나님 앞에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며 죄가 없는 것처럼 정결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인죄의 죄명으로 재판을 받아 형무소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그 사람에게 재앙이 아니라 믿음의 연단이나 시련의 결실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런 우리의 욕심에서 오는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우리의 기도에 있습니다. 육신의 사람을 이기려면 영적 무장을 갖추어야 하는데 기도가 영적 무장을 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 없이는 세상에서 밀려오는 온갖 유혹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로 영적 무장을 갖추어 우리들 앞에 밀려오는 욕심에서 벗어나 시험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다음에 그리스도인 중에는 믿음의 연단을 위해 오는 시험이 있습니다. 야고보서에 나오는 시험이란 낱말이 다 똑같은 의미를 나타낸 말이 아닙니다. 약1:2절에 나오는 시험이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셨는데 여기 나오는 시험이나 또 12절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신 시험이란 말은 ‘도키메’란 헬라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시련으로 ‘페이라’라고 부르는 다른 시험의 낱말과는 그 뜻이 다릅니다. 이 시련이라고 하는 시험은 하나님께서 설정해 놓으신 어느 목표점에 이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시는 과정을 말합니다. 요셉이 당한 시험도 이런 시련이며 욥의 경우도 그러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아무리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그 마음속에는 죄악의 근성이 살아 남아 있습니다. 온전하여 부족함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이 같은 죄악의 근성은 우리의 육체가 죽을 때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에게 시험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의 근성을 뽑고 의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훈련으로 우리에게 시련의 잔을 마시게 하십니다. 이런 시험은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무겁고 괴롭게 여기는 어려운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같은 시험은 혹은 질병으로 올 수도 있고 사업의 실패로 올 수도 있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에게 찾아 온 시험은 이 모든 조건이 한꺼번에 모두 찾아온 무서운 시험이었습니다. 열 명의 자녀가 하루 밤에 죽었습니다. 동방 지역에서 최고의 부자였던 그의 재산이 한 순간에 모두 불에 타 버렸습니다. 그의 많은 재산은 도적 떼들에 의해 한순간에 약탈당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몸에는 악창이 돋아나 그 괴로움으로 밤낮 재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어 대야 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시험을 욥은 어떻게 이긴 것입니까? 욥은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그 이유도 알 수 없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당한 이 어려운 시험 중에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치 아니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깨달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시련의 결과 욥은 하나님을 만났으며 시험을 당하기 이전의 곱절의 축복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해 줍니다. 이에 대하여 야고보 사도는 약5:11절에서 말씀해 주기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 중에는 이처럼 여러분의 신앙적인 유익을 위한 연단의 방법으로 찾아오는 경우의 시험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런 시험을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12절에서 말씀해 주시는 최상의 방법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시험은 시험이 물러가기까지 참는 일이 이런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인 것입니다.

  이런 시험은 주실 때가 있고 거두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한 어려운 시험의 고비는 언제인가는 반드시 물러갑니다. 그 때까지 인내로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시66:12절에서도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했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 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이런 시험이 물러갈 때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당하신 그 시련의 충분한 보상을 준비하시고 그 복을 내려 주십니다. 할렐루야.

  12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습니까? 이런 시험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참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는 것 같은 시험을 받아도 벧전2:19절에서 말씀에서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그 시험을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날이 반드시 찾아오는데 그날에 넉넉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다음 우리가 만나는 시험 중에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시험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어떤 고난을 당해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능히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주님께 대한 사랑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깊은 은혜 생활에 들어가고 깊은 진리의 말씀에 굳건히 서고 그리고 고난에 대한 상급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해 이런 시험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하느냐? 아니면 내 가정과 자신의 안일을 위해 이 같은 고난을 피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우리들의 생활에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지혜로운 생각을 가지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 유명한 산상 보훈에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주님을 위해 어떤 시험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그 때 여러분은 과연 어떤 자세로 그 시험을 맞이했었습니까?

  결론 : 우리의 앞날은 우리에게 열어 갈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힘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험은 앞으로도 여러분의 생애에 혹은 이런 모습으로, 혹은 저런 모습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싫다고 시험이 여러분을 피하여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괴롭다고 그 시험을 여러분이 물리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시험이 한도 없이 끝도 없이 여러분의 안방 차지로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시험을 만났을 때, 우리는 먼저 육신의 욕심에서 온 시험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그런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시험이 왔을 때 그 시험을 이기면 그 시험이 어떤 것이든 상급과 축복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시험이든 그 시험에 넘어지는 사람은 그 시험으로 계속적인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대장부처럼 믿음에 굳건히 서서 시험의 거친 파도를 해치고 여러분의 생활에 승리와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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