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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21 (네가 어디로 가느냐?)
 밤중소리  01-21 | VIEW : 584

                              
                         (221)


              네가 어디로 가느냐?


   성경 본문 /  창세기 16 : 1 - 14                      


  창세기에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에 대한 긴 이야기가 재미있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성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메시야의 첫 번째 조상으로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마1: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여기서 세계란 말은 한문으로 족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그로 메시야의 조상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믿음을 따른 의를 주심으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주시는 근거로 삼으셨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첩으로 살았던 하갈이란 여인이 그 집을 뛰쳐나와 길에서 헤 메일 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고 하는 물음이 나오는데 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아브라함의 가정


  아브라함의 가정은 오늘날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한 가지 한 가지 우리들에게 많은 영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여러 식구들이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살아갔습니다. 이 식구들은 곧 교회의 성도들을 상징해 주기도 합니다.

  하갈은 원래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의 몸종인 애굽 여자였습니다. 이 여자에게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아무런 기업도 없었고 언약도 없었습니다. 그저 주인을 섬기는 노예로서 그럭저럭 한 평생을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천한 여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어느 날 갑자기 아브라함의 아내가 된 것입니다. 하갈이 이처럼 아브라함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라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들이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맺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말합니다. 그리고 사라는 육적 유대인을 상징해 줍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그가 찾으시는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 이후 이 나무는 뿌리째 말라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라는 맺지 못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유대인을 상징하며 유대인들은 아직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갈은 이방인을 상징해 줍니다. 그에게는 약속도 없었고 기업도 없었지만 아브라함에 의해 그의 아내로 선택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 맺는 백성이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갈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것은 그가 아들을 잉태함으로 그 주인 앞에서 교만하여 주인인 사라를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사랑을 받고 아들을 잉태했습니다. 그는 이 잉태로 교만해졌습니다. 사라를 업신여기고 멸시한 것입니다. 사라는 아기를 밴 일로 주인의 보다 큰사랑을 받을 일에 자만했습니다. 아기가 없는 사라는 이제 주인집에서 쫓겨나고 자기가 안방 마님이 될 줄로 알았습니다.

  여러분, 이방인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며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유대인들은 그 아들을 죽임으로 구원에서 떨어진 일에 대하여 우리는 유대인들에게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롬11장에서 돌 감람나무였던 이방인들이 참 감람나무의 가지에 접붙임을 받은 것으로 참 감람나무 가지인 유대인들에게 높은 마음을 품거나 자만하지 말라고 경종 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교회에서 은혜를 받을 때에도 조심스럽게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만하거나 높은 마음을 품어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꺾으시는데 하갈 같은 처지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네가 어디서 왔느냐?


  아브라함의 첩 하갈은 본처 사라의 학대에 견딜 수 없어 그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갈곳이 없는 하갈은 자기 고향인 애굽으로 되돌아가려고 집을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그는 애굽은 고사하고 광야 샘결이라고 하는 샘물 곁에서 피곤함에 지쳐 쓸어져 버렸습니다. 이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란 하나님의 권위와 권능으로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권세 있는 천사의 경우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주시고 자신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셨기 때문에 여호와의 사자를 때로는 여호와 또는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1) 하나님은 하갈을 향하여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이 교만한 하갈에게 자신의 낮은 신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라고 부르신 것이 그런 뜻에서였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은혜를 받았거나 축복을 받았거나 높은 직분을 가지게 되었을 때, 먼저 낮은 자신의 신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23:12절에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이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크고자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높여 주실 때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충성스럽게 섬기는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하갈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어디서 왔느냐는 물으심은 하갈에게 지난날에 자신의 낮은 신분을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갈은 자기는 지난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이었던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비록 몸종에서 첩으로 그 이름이 바뀌기는 했지만 사라에게 교만하여 사라를 멸시한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는 은혜 받은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그 귀하신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말할 수 없는 그 은혜와 사랑을 받아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당당하고 교만할 것이 아니라 머리를 조아려 그 은혜에 보답하는 생애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받은 사랑과 은혜는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성도들 앞에 교만하고 교회를 소홀히 하고 오히려 업신여길 때가 얼마나 많은 것입니까?

  다음에 어디서 왔느냐는 물으신 것은 하갈에게 지난날 사라와 아브라함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생각해 보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소망이 없는 애굽의 노예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가정에 들어온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에다 아브라함의 아내가 되어 아브라함의 아기까지 잉태한 사실은 얼마나 큰 축복인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요일 4장에서 이르시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살아가기가 힘겹고 고달프다고 이런 하나님의 사랑은 까마득히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차갑고 냉랭하고 사랑의 감각을 잃은 사람들처럼 시들시들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하갈은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는 하나님의 물으심은 네가 지금 서 있는 그곳은 어느 곳이냐는 뜻입니다. 하갈은 이제 자신이 거처할 보금자리를 버리고 광야에서 헤매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하는 인생 최대의 보금자리입니다. 우리도 이 복된 자리를 떠나 버리면 하갈처럼 광야에서 헤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살아갈 영적 터전은 오직 아브라함의 집인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의 장소를 떠난 하갈은 광야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한 때 그 땅을 저버리고 애굽으로 피난 갔을 때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었습니  다.

  탕자는 아버지 집에서 자신의 몫을 챙겨 먼 나라로 도망쳐 거기서 허랑 방탕한 생활로 세월을 보냈지만 그에게 행복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 그 땅에 기근이 찾아와 먹을 양식마저 떨어져 돼지를 기르는 집 목동으로 들어가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고 살아갔지만 그것으로도 배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이 탕자는 비로소 모든 것이 넉넉한 아버지의 집에서 살아갔을 때의 행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나는 아들로서가 아니라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고 마음먹고 집으로 발길을 돌이킨 것입니다.


  3. 네가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은 하갈에게 두 번째로 ‘네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자기가 걷고 있는 그 길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걸어가는 그 길이 과연 어떤 길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갈은 애굽으로 가려고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아브라함 집에서 떠난 사람들이 갈 곳은 애굽입니다. 애굽은 교회와는 전혀 상반된 곳인 세상을 의미합니다. 애굽에는 하나님이 존재치 않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갈이 그곳에 가면 하갈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다시 옛날의 애굽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옛날로 돌아가 죄의 종이 될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일을 따라 살아 갈 것입니다.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는 생활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갈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요 사랑입니다. 만약 하갈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아니었다면 하갈은 애굽을 향하여 끝없이 걸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갈에게 나타나시어 그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하갈이 비록 한 때의 잘못으로 사라의 학대를 받아 견딜 수 없어 도망쳐 나오기는 했지만 하나님은 하갈을 잊지 못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잊지 못하실 일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갈은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하갈을 그냥 애굽으로 돌려보내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하갈에게 하나님이 손길이 나타나 세상으로 가는 그의 발걸음을 잡으셨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 손에서 빠져 나오려는 우리를 놓치지 아니하십니다.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내 아버지 손에서 빼앗아 갈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피로 값 주고 당신의 소유물로 사신 우리를 절대로 빼앗아 갈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 나와 좀 자유롭게 살아보려고 꾀를 부리는 사람들은 더 심한 하나님의 간섭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의 생애에 환난이 잘 날이 없으며 시련이 그칠 날이 없는 것입니다.

  가장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길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바 되어 그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리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말씀 외 지름길이 없습니다. 말씀을 따르고 말씀의 길을 달려가는 사람이 사업에 성공합니다. 자기 인생의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돈을 벌어 재벌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비끼고 다른 길을 찾는 사람은 그 시부터 험한 굴곡의 길을 가야 합니다. 실패를 거듭하는 슬픈 생애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갈에게 최종적으로 권면하신 말씀이 9절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중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하면 네 아들을 통해서 자손 만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저버리고 떠나 버릴 때, ‘너희도 가려느냐’는 주님의 걱정스러운 물으심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갈 곳도 없고 쉴 곳도 없고 안착할 곳도 없는 것입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나와서는 안될 사람인데 잘못 나왔습니다. 잘못 나왔다면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은 가면 갈수록 수렁으로 빠지게 되고 가도가도 더 험준한 길이 나오게 됩니다. 말씀에서 이탈한 길은 어떤 조건이나 핑계를 대도 잘못 들어선 길입니다. 빨리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하갈은 잘못된 길을 택하여 걸어갔기 때문에 돌아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갈은 자기 주인인 아브라함의 집에 돌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갈에게 집으로 돌아가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하셨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사랑을 받고 아들을 잉태하는 복을 받게 되자 교만해져서 자기 주인인 사라를 무시하고 멸시한 것입니다. 하갈에게 문제가 된 것이 이것입니다. 교만의 두드러진 현상은 불순종으로 나타납니다. 불순종은 자기 인생의 패망의 안내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내가 그 말씀을 따르겠나이다.’ 이런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으로 자기 인생과 자기 가정에 돌아오는 선물은 언제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 일로 인하여 자기 생애에 재앙을 만났다거나 행복이 깨어졌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불순종의 생활을 통해서 사업에 성공하고 가정에 복을 받았다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하갈에게 아브라함의 집으로 되돌아가 그 주인의 말에 복종하여 살아간다면 내게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케 하는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만 따르기만 하면 아름답고 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감찰하시는 하나님


  하갈은 하나님을 술 길 샘물 곁에서 만나 뵙고 그 말씀을 들은 후,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하갈은 자신이 애굽으로 향하여 잘못 가려든 자신의 발길을 다시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하갈은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13절에서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열려져 있어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그 사람의 영 외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으로 별의 별 생각을 다하지만 죄 의식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으로 여기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죄에 해당된다고 하셨습니다.

  하갈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하여 아무도 모른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갈은 자신이 사라에게 학대받아 도망쳐 나온 일에 대하여 자기 마음의 억울함과 자기가 당한 고통에 대해 아무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감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갈은 죽을 고비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나타나시어 살길을 열어 주시는 일에 너무 감격하면서 이제까지 자신의 이 모든 일을 감찰해 오신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생애 중에 우리가 잘 살고 높은 자리에 있으며 형통하고 복된 생활을 누리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축하도 해 주고 반갑게도 대해 주지만 일단 사업이 실패하거나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어 곤경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게 되며 그렇게 친한 사이가 그렇게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이 모든 일을 감찰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 위로자가 되시며 그 분만을 끝까지 의뢰하고 따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은 지금 하갈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몸이 어디서 살고 있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갈처럼 참 생명의 길에서 멀리 떠나 있다면 그 사람은 조만 간에 하갈 같은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갈을 감찰하신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감찰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하갈에게 들려주셨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잘못된 길은 빨리 바로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돌이켜 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길로 빨리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의 길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취어 보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약속의 길로 돌이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 네가 어디로 가느냐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하갈의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 축복과 약속이 있는 길로 향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애를 위해 마련해 주신 아브라함의 집, 여러분의 생애를 하나님 나라까지 인도해 주시는 아브라함의 집, 여러분의 가정에 복을 주시고 더욱 풍성한 생명의 결실을 주시는 아브라함의 집인 여러분의 신생교회에 깊은 뿌리를 내리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를 위해서 예비하시고 언약하신 그 모든 충만한 축복을 받아 누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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