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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19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밤중소리  01-21 | VIEW : 620
                              
                         (219)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성경 본문 /  시 편 42 : 1 - 5                  


  시편42편은 고라 자손의 마스겔로 나오는 노래입니다. 마스겔이란 교훈이란 뜻으로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노래로 쓴 글입니다. 고라란 사람은 레위의 아들 고핫의 손자로 그 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전 입구에 서 있는 문지기로 일해 왔습니다. 이들이 어쩌다가 나라의 비운을 만나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의 땅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이방인의 무리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에게 조롱을 당하며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하는 비웃음을 받아 가며 살아가면서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는 슬픈 생애를 살아 갔습니다. 그 가운데서 이들은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하는 생활을 하면서 부른 노래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미증유의 경제적 시련의 위기를 맞아 장차 우리의 생활이 암담하고 우리의 앞날이 어두운 가운데 있지만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을 받거나 우리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저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비웃음을 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하나님을 의뢰하는 생활을 해야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선하심을 증거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를 도우시냐는 비웃음도 살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저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나에게 이런 어려운 짐을 주셨는가? 이런 회의심을 가지고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애 중에 어려움을 당할 때일수록 더욱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하고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어려움에 방치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11:6절에서 이르시기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은 만물의 존재가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롬1:20절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깊은 밤중, 밖에 나가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그 넓은 하늘 어느 한 곳도 공백이 없이 그 수많은 별들로 수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알고 살아갈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저 하늘의 태양에 매달려 빙빙 돌아가고 있는 지극히 작은 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와 같은 별들이 은하계 한 개에 약 2천억 개로부터 6천억 개에 이르러 둥근 원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같은 엄청난 은하계가 인간들이 만든 천체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수효만도 무려 수억 만개에 이르며 그뿐 아니라 아직 우주 공간 안에 더 발견할 수 있는 은하계의 수효는 지금 우리가 발견한 수효의 몇백 만개가 더 있을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별들 중에 제멋대로 운행하는 별은 하나도 없고 모든 별들이 하나의 오차도 없이 신비한 조화를 이루면서 태초로부터 수 억만년간 운행되어 왔다는 사실은 우연이라거나 자연 현상이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절대권 자가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며 섭리하신다면 그 분이야말로 참으로 놀라운 분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 분이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유명한 산상보훈에서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하시면서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지만 그 입은 것이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우렁차게 외쳐 대는 만물의 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같은 만물의 증거를 부인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이미 화인을 맞았기 때문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핑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양심이 제각기 그 사람에게 증거해 줍니다. 인간의 양심은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우리들 양심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부인치 못합니다. 북한의 김일성이는 무신론자요 북한의 그 수많은 교회를 파괴하고 수 없이 많은 성도들을 죽인 장본인 이것만 그가 6.25 당시 유엔군에 의해 38선이 무너지는 위기 상황에서 평양을 탈출하게 되었을 때, 특별 방송을 통해서 ‘인민은 침략자들을 격퇴하라’고 호소하면서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는 내용의 방송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양심이 가리어져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 오는 양심의 소리를 물리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양심이나 만물의 증거는 일반 계시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게 할 뿐 그 이상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마귀도 알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생들로 하나님을 찾고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을 수 있는 특별한 계시를 인간들에게 주셨는데 이 같은 계시를 특별 계시라고 말하며 바로 성경이 이런 특별 계시인 것입니다.

  (3) 성경은 하나님의 실존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창1: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늘의 별들도 태양도 우주 안에 있는 삼라만상 모두를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과 식물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우리들 인간의 존재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할 때 이 세상에서 인간의 지혜나 지식으로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지식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창조와 타락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행복이 어떤 이유로 파괴되었으며 우리들이 겪고 있는 질병과 죽음의 원인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낱낱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이 타락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위대하고 놀라우신 섭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심판하시지만 그러나 인간을 무한히 사랑하심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이 같은 사랑은 성경 전체에 걸쳐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출렁거리며 그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아들을 보내시는 약속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때가 되시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의 중대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아들의 모습을 입으시고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요1: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빌2:6절에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하는 다른 또 하나의 뜻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어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데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요일4:10절 말씀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성경이라고 하는 특별 계시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나타내시고 인류 구원의 하나님의 뜻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 계시로 주신 성경 외에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거나 예수를 믿을 수 있게 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서 고전1:19절에서 ‘내가 지혜 있는 자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한 특별 계시는 이 세상에 성경밖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세상의 지혜나 총명으로 배우거나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지혜로서만 깨닫는데 이 지혜는 성령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지혜 있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깨닫고 알고 그 하나님을 믿고 그가 보내신 아들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지혜나 우리의 학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깨닫고 알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이 세상의 지식이나 학문이나 지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거나 영생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게 하신 사람들은 비록 이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받거나 존경받는 생애는 살지 못해도 우리 마음에 평안히 있고 우리의 생활에 기쁨이 있으며 영생이 있고 천국의 소망이 있으니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이 보화는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어떻게 찾는가?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았어도 그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을 알려고 힘쓰고 깨닫기를 원하며 그 하나님을 만나기를 힘쓰지 않으면 우리의 생활은 힘을 잃고 능력이 없는 생활이 되기 때문에 성장이 없는 생활, 축복이 없는 생활, 소망이 없는 생활로 고질화되어 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항상 하나님을 찾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방법은 반드시 영적인 방법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적인 방법으로가 아니라 육적 방법으로 찾으려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일에,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실패하므로 하나님이 없는 생애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1) 우리가 영적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아 그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려면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5:8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잘 하다가도 우리의 마음이 죄로 더러워지면 그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청결해야 한다는 말은 죄를 마음에 담아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더럽힙니다. 우리들이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 하려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를 씻어 내야 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요일1: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값진 좋은 그릇에 더러운 오물이 담겨졌다면 지혜로운 주부는 그 오물을 쏟아 버리고 그릇을 깨끗이 씻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이처럼 청결하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임재하심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은 그의 임재하심을 우리에게 친히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그릇을 깨끗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회개로 청졀하게 된 그 마음속에 이제 다시는 죄의 그릇으로 죄를 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그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일입니다.

  (2) 다음에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약4: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가까이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잠2장에서 말씀하시기를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생활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가까이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며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에 말씀을 가까이하기를 싫어하거나 그 말씀을 사모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주일이 오기를 기다려지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주의 종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때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궁무진한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그 보화를 캐고 그 안에서 풍성한 보화를 소유만 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얼머나 풍족함을 이룰 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놀랍고 엄청난 보화가 숨겨져 있는 광맥을 찾았으면서도 그것을 캐기를 게을리 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약속보다 얼마나 미미하며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하여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강력하고 가장 축복된 말씀은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말씀의 선포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듣고 마음에 새기신다면 여러분은 언제나 살아 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생활이 가능하며 여러분의 생활에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 날 것입니다.
  (3) 다음에 하나님을 만나는 생활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가장 비참한 생활은 기도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기도로서만이 가능합니다. 가정에서 부부간의 대화가 끊어지면 그 가정에는 위기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어지면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의 위기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 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시145:18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마음의 원하는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염치없는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구하지도 않고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를 제대로 하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받은 축복이라야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기도하지도 않고 신앙 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복이 굴러들어 왔다면 그 복은 조만 간에 화를 불러오고야 말 것입니다.

  정욕적인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기도는 영적인 면에 목표를 두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으면서도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스럽게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바로 기도하고 바로 생활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복을 받을 수 있으련만 그런 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생각에 얽매이며 정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그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의심치 마시고 그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애를 주장하시고 여러분들이 누려야 할 모든 축복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고 그 하나님을 찾는 생활, 그 하나님을 의뢰하는 생활,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는 생활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어려운 경제적인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시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너희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는 비웃음을 사는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 낼 수 있는 축복된 생애를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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