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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18 (구원의 증거)
 밤중소리  01-21 | VIEW : 547
                              
                         (218)


                   구원의 증거


   성경 본문 /  요한일서 5 : 9 - 13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 문제를 깨달음으로써 세상과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생활이 아니라 분명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구원과 영생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그 확실한 증거의 바탕 위에 굳게 서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구원의 증거’란 제목으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1.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들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해 새 사람, 새로운 피조물, 또는 하나님의 자녀란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우리가 이 같은 아름답고 생소한 말을 들을 때, 실감을 갖지 못하며 또 그런 낱말들이 자기와 실질적인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하여 아리송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기 이전이나 믿은 이후에나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에 영생이 있다,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졌다는 등등의 말이 실감이 나지 않고 그저 그런 정도로 알고 교회에 다니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후, 내 환경이 천국 같은 곳으로 변하던가 내 성품이 천사처럼 성스럽고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자신을 체험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런 대로 믿음을 가졌노라고 확신을 가지고 간증할 수도 있겠지만 어제의 생활이 오늘의 생활과 다름없고 지난날의 생활 태도가 오늘도 계속되기 때문에 마음에 큰 기쁨이나 감사가 솟구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이 결국 우리들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육신적인 세상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신앙적 장애 요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장애 요인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신생교회 성도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고 새롭게 변화 받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새로운 생명이란 말은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 영생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믿음이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영생은 영적 생명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우리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고 그 영생이 우리의 마음이나 육신을 다른 피조물로 변경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써서 보내면서 이 편지를 받아 읽을 대상자들이 자신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그 여부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나 영생은 보는 것으로, 느끼는 것으로, 만져지는 것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12절에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고 하신 것처럼 영생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존재하며 그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죄인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의 영적 생명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영원하십니다. 그러나 그의 육적 생명은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가 육신으로 오셔야 하신 일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그 죄 값을 치르셔야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인 사망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그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나 죄 값이 갚아졌다면 새로운 생명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새로운 생명이 공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그의 죽으심으로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이 일만으로는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죄 값을 갚는 것은 죽는 일 뿐입니다. 죽는 것이 구원은 아닌 것입니다. 죄 값을 갚았다면 죽음에서 살아나야 합니다. 죽음은 죄 값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죄 값을 갚았다면 죽음에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어야 구원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죽으셨지만 그 분에게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생명은 죽기 이전에 가지고 계셨던 지난날의 육신적인 생명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이 원래 가지고 계셨던 생명으로 죽음이 없는 영생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옛사람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새롭게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가 가지신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부어 주심으로 실질적으로 우리들도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생명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영원히 죽지 아니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 주님의 부활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죽었을 때에도 이 생명은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생명이 천국에 올라가며 우리가 장차 부활할 때에도 이 생명이 우리의 육체를 영원한 생명체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 같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말합니다. 롬6: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의 죽음이 어떻게 우리의 죽음이 되며 그의 부활이 어떻게 우리의 영생의 보증이 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머지 성경에 나오는 금싸라기 같은 진리의 말씀을 하나의 교훈 정도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증거를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증거를 무시한다면 이 세상은 온통 불신 사회가 될 것이며 우리의 정상적인 사회 생활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증거를 받는 일은 더욱 큰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증거를 무시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서 무슨 소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증거는 그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일이 증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아들을 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를 믿으면 어떻게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이나 영생은 말씀으로만 선포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영생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성령이 임재하시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롬8장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는데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성령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이 같은 일은 우리가 실제로 새롭게 태어나는 역사인 것입니다. 말의 선언만이 아닙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죽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을 주심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런 모든 일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 증거를 거슬리는 자가 받을 심판이 얼마나 큰지 그 사실을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높이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요3:18절에서 이르시기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하는 거듭남의 역사는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중생의 가치는 참으로 놀랍고도 엄숙합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죄 때문에 멸망 받을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5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 생명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다음에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나 양심은 우리에게 정죄만 더할 뿐 의를 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진노와 심판만을 줄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는 것입니다. 죄의 심판의 대상자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자가 된 것입니다.

  (3) 다음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인생의 삶의 목적이 분명해졌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생의 목적을 알고 그 목적을 위해 살아간다는 일은 대단히 보람이 있고 값진 일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인생의 목적, 자기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는 인생을 그들의 최대의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는 구원받은 우리로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배운 것이 많고 인격이 훌륭하고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그들은 그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헛된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 사람이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바친다고 해도 그 일이 하나님과 상관이 있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세상에서 명예를 얻고 영광을 누리며 역사책에 위대한 인물로 기록 될 수는 있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자기 증거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대로 지나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일에 관심을 쏟지 아니하며 그런 생활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자기에게 영생이 있고 구원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감사와 우리 생활의 기쁨과 소망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믿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일은 구원을 받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바울은 고후13:5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입니까? 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구원의 증거를 잡는 일에 늘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구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잘 되어 가는 듯 여겨집니다. 그러나 곧 한계점이 찾아옵니다. 죄를 범하게 되고 의심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일이 생깁니다. 이런 일이 우리 앞에 가까이 찾아오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구원의 확신은 다시 희미해지고 구원을 받은 것인지 받은 구원을 놓친 것인지 분별을 못하는 영적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이 일년에도 몇 번씩 반복되기 때문에 예수를 믿은지 수 십년이 지나도 항상 그 상태에서 구원의 확신 하나 갖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영적 방황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구원에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비록 죄를 범했거나 어려운 시험이 왔어도 이 구원의 확신만큼은 요지부동,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히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1) 자기에게 구원이 있는가의 믿음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자기 속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기 때문에 그 생명은 자기가 먹고 자랄 수 있는 양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양식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 양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그 생명이 죽어 가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벧전2:2절에서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재미있는 책이 아니며 세상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육신의 양식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명을 성장시키는 신령한 젖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씀의 의미도 깨닫지 못하며 그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한 뜻도 모르기 때문에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의 영육간의 축복을 채워 주는 참된 양식인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으로 아무런 감동이 없으며 마음의 영적 갈증이 해갈되지 아니하고 그저 들은 둥 망동 무미 건조하다면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출석이 즐겁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기쁨이 있고 그 말씀으로 소망이 생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의욕을 가질 수 있다면 이런 일은 중생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의 구원을 믿으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란 확실한 증거를 가질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날 자기가 행한 죄악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을 가지고 이제는 그런 생활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날 많은 죄악된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 때 우리는 그 죄악을 즐겨 했으며 그 죄악의 길에서 떠나기를 싫어했습니다. 자신이 죄악 중에 살아갈 동안 하나님이란 존재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다음에는 그런 지난날의 죄악이 부끄러워지고 후회스러워 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실이 혹 지난날의 죄악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자기를 살펴봅니다. 혹 유혹이 있을 때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혹 육신이 약하여 어쩔 수 없이 죄에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도 마음으로는 탄식이 나오고 두려움이 생기고 속히 그 올무에서 벗어나려는 갈등이 생깁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느낄 정도로 일어나는 것입니까? 중생되지 못한 사람은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방법으로 여러분의 구원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여러분의 인생은 새로운 어떤 삶의 목적 같은 것에 대한 마음의 외침을 느낄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비록 지금 당장에 어떤 결정적인 열매가 없어도 그런 일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전엔 세상에 속한 자신의 생애에 얽매였던 내가 예수를 믿은 후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감동을 받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전에 세상일이 잘 안 되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근심하고 염려했던 것처럼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못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생활을 했을 때 마음에 근심이 생기며 염려가 생기는 것을 체험하느냐 것입니다. 이 같은 근심이나 염려를 느낄 수 있다면 이런 근심이나 염려야말로 구원받은 사람들만이 마음으로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구원의 확증인 것입니다.

  결 론 : 여러분, 여러분들은 아마 이전에는 전혀 느껴 보지 못한 이상한 힘이 내 속에 있다고 느껴질 때가 더러 있을 줄 압니다. 그 힘이 우리의 구원에서 오는 하나님의 새 힘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힘을 활용해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 힘이 이상스럽게도 나를 사로잡아 내가 그 힘에 이끌리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 질 때가 있습니다. 이 힘이 바로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도록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구원의 확실한 증거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여러분의 구원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고 그 증거의 토대 위에 여러분의 믿음을 세우시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이 때부터 무럭무럭 커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고 하나님을 향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때 여러분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충만 할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충만히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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