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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17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밤중소리  01-21 | VIEW : 535
                              
                         (217)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성경 본문 /  창세기 3 : 1 - 10                  


  오늘 주신 본문 말씀 중에 9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고 아담을 찾으시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인간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얼마나 사랑하시며 그들을 찾으시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시는 음성입니다. 범죄한 인간들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시어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사랑과 은혜가 깃들이어 있는 말씀입니다. 이 부르심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온 우주를 메아리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그의 백성들을 부르시는 음성으로 번졌으며 오늘날 복음으로 이 메아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신 이 음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우리들 마음에 깊이 새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역사


  우리가 창세기 1, 2, 3장을 깊이 있게 살펴보면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 창조의 중심을 인간의 창조에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에 목적을 두시고 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니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인간을 창조하시기 위해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없는 이 세계의 모든 만물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최종적인 지상의 나라인 천년왕국이 끝나 인간이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하고 모두 천국에 올라갈 때면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는 모두 사라져 버린다고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같은 사실을 세 가지 분명한 증거로 확인하고는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감격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1) 첫째는 이 세상에는 수로 헤아릴 수 없는 피조물들이 존재하지만 유독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창1:27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거하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같은 축복의 존재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들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잊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 · · 오히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다음 두 번째로는 우리 인간만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그 차이가 너무나도 엄청나기 때문에 인격적인 교제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고 아담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으로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관리하는 권세까지 주셨습니다. 이 때 아담은 하나님과의 대화로 서로 의사를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다만 기도로 무엇을 아뢰지만 우리들이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올라가면 아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 우리는 그 분의 아들로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계21: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나 교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3) 다음 세 번째가 하나님께서 오직 우리 인간에게만 계명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계명의 내용이 명백하게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계명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고 하는 능력을 의미해 줍니다. 이 같은 계명은 오직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짐승이 이 같은 계명에 동의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까? 개나 원숭이를 아무리 훌륭한 조련사를 통해 훈련을 잘 시켜도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이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인간에게 주신 모든 특권을 상실해 버렸으며 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죄로 인한 최초의 인간의 타락이며 이 타락이 인간을 멸망시키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는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고 말합니다.


  2. 아담의 타락에서 온 일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자연계 전체가 저주를 받았으며 인간들에게도 예기치 않았던 고통이 찾아 왔습니다. 여자들은 잉태하는 고통을 받게 되었고 남자들에게는 그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는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닙니다.

  (1) 문제는 더 심각한 것인데 그것은 아담이 죄 값으로 죽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주신 계명에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그 말씀대로 죽게 되었다는데 있습니다. 아담이 받은 저주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언하신 죽음이 흙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만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죽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고 그 심판은 영원한 형벌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히9:27절 말씀에서 이르시기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심판의 장소가 지옥임을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5:29절에서 ‘만일 네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같은 선언이 아담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담의 모든 자손들에게도 아담과 똑같이 미친다고 하는 사실에 있습니다. 롬5:12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17절에서는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담이 죄인의 자리에 떨어진 후에 그 자손들을 생산하였기 때문에 아담으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아담의 후손은 한결같이 죄인으로 태어나며 아담과 동일한 죄인으로 아담이 받을 사망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원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류 중에는 의인에 들사람이 하나도 없으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는 이처럼 실로 말할 수 없는 무서운 결과를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에게 가져다 준 것입니다.

  (3) 다음에 아담이 그의 범죄로 그의 생애에 가장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 일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심으로 죄인들과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아담은 죄로 인하여 결국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이제 범죄한 아담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날이 서늘할 때에 아담 내외는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했습니다.


  3.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때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한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일에 대하여 창3:9절에서 애절하게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일이 왜 그토록 큰 죄가 된 것입니까? 어떤 분들은 선악과 먹은 일이 죄인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비유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단 중에 통일교가 그 원조가 됩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정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는 간음죄도 성립될 수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외 다른 존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은 부부이기 때문에 간음죄에 해당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소유도 분배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아담에게 맡겨졌기 때문에 도적질하는 죄도 성립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사탄이 없었기 때문에 그 어떤 죄도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순종 여부를 보시기 위해 그 대상을 선악과로 지정하시고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계명이며 죄가 없는 에덴 동안에 최초로 주신 율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계명을 어길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동산에는 죄의 유혹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와 기쁨과 감사만이 넘쳐흘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동산에 유혹자인 뱀이 등장했을 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는 아직 죄의 종이 아닌 생령의 몸으로 살아갔기 때문에 뱀의 유혹을 능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의 계명은 두려운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선악과에 대한 계명으로 그 순종 여부를 보셨지만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 순종 여부를 보시고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주시고 불순종으로 믿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어느 것이 크고 어느 것이 작다고 하는 차별이 없습니다. 도적질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이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도적질한 사람이나 살인한 사람이나 하나님의 법에 따라 심판을 받기는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담은 이처럼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 계명에서 천명하신 것처럼 그 죄 값을 받아야 했습니다.

  (2) 하나님이 에덴에서 아담을 향하여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시면서 아담을 찾으신 일은 아담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불순종한 아담은 그가 벗었음을 알게 되어 하나님 앞에 그 벗은 몸으로 나타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담이 죄로 자기 몸의 벗었음을 바라보고 부끄럽게 여긴 것은 죄로 더러워진 자기 몸을 바라 볼 수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책망하실 때 먼저 그들의 벗은 몸을 부끄럽게 여기라고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 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벌거벗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할 일은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부끄러움을 감출 수 있는 이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 주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 옷을 입혀 주시기 위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범죄한 후, 그 몸을 숨긴 아담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잡다한 종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종교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이 신을 찾아가는 종교들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종교에는 생명도 없고 구원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죄로 하나님과 단절되고 이미 사망의 선고를 받은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입니까? 죄로 하나님과 원
수된 인간들에게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이에는 두터운 성소 휘장이 무겁게 내려져 있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사망의 죄 값을 치르신 예수님만이 이 성소 휘장을 찢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친히 증거 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3) 아담을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은 길 잃은 양을 찾으시는 목자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서 당신이 잃은 양을 찾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담처럼 하나님이 두려워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길 잃은 아담을 찾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에덴에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아담을 향하여 아담아, 아담아, 아담을 찾으시던 그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아담의 후손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11: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음성은 분명 아직도 하나님이 두려워 그 얼굴을 숨기고 있는 아담의 후손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이 같은 목자로 오신 당신의 입장을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에덴 동산에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시기 위해 양으로 희생 제물이 되셨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일을 십자가에서 친히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이 참 목자의 음성을 듣고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이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한 아담의 후손들이 얼마나 많은 것입니까? 우리는 이 예수님의 목자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그의 제자들에게 이 같은 목자의 음성을 들려주라고 엄히 명하신 바 있습니다.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아담이 숨어 있는 곳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곳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자기가 왜 그곳에 숨어 있는가를 알려 주시려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신 것입니다. 아담이 서 있는 자리는 불순종으로 이미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리였습니다. 아담은 왜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어야 했는가에 대하여 알아야 했습니다. 아담이 숨어 있는 자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대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만 있으면 끝내는 흙으로 돌아가게 되고 심판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숨어 있는 곳으로부터 나와야 했습니다. 아담이 숨어 있었든 그 자리는 바로 사망의 자리입니다. 그것을 알고 아담은 빨리 그 자리에서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이 나타나 자기를 찾기 전까지는 그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을 만나면 죽을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들키지 않으려고 꼭꼭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아담처럼 나무 사이에 자신을 숨김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생명의 길에서 멀리 떠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찾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셔서 잃어버린 아담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4. 메시야의 언약


  왜 하나님은 아담을 찾아 나선 것입니까? 아담을 찾아 약속대로 죽이려고 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담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제 2단계로 들어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그 예정대로 그의 백성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죄로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게 된 그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역사를 이루시는 작업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1)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명한 그 나무실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물으심은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자신의 죄를 스스로 자백하게 하시려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분입니다. 요일1:19절 말씀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아담에게 메시야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인류 최초의 메시야 언약이 되었습니다.

  (3) 그러나 이 언약은 이루어질 때가 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 그 때에 이루실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아담이 행위 언약에 실패하자 오래 지체치 아니하시고 즉시 은혜 언약의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정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시는 새로운 언약입니다.

  (4) 예수님은 바로 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그 시간에 ‘다 이뤘다’고 선언하신 그 말씀이 그가 이루신 은혜 언약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창3:21절 말씀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담과 하와가 입고 있었던 옷은 무화과나무 잎이었습니다. 이 잎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죄로 더러워진 그의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에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나무 잎은 오늘날 인간의 도덕율을 말하며 선행을 말하며 인간다운 교육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이 옷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게 하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 옷을 입혀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할렐루야 !

  결론 : 여러분, 우리는 에덴에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던 아담을 찾으셨던 하나님의 음성,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자기가 왜 하나님을 만나기를 두려워하는가?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담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축복의 언약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언약을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길을 잃은 아담의 후손을 찾으시려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십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 이 음성을 분명 들으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축복을 약속하는 은혜 언약 안에 들어가 새로운 생명의 축복을 받으시는 회복된 아담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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