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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15 (우리의 복된 가정)
 밤중소리  01-21 | VIEW : 601
                        (215)


                우리의 복된 가정  


   성경 본문 /  시 편 128 : 1 - 6              


  오늘은 4월 마지막 주일이며 모래부터 5월에 들어서면 가정의 달을 맞이합니다. 가정은 한 사회의 구성 요소가 되기 때문에 가정이 없는 사회는 인간 사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한 가정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의 가정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우리 한 가정, 한 가정은 작은 교회요, 작은 천국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의 가정이 왜 그토록 중요하게 다루어지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5월은 가정의 달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달입니다. 복된 가정, 아름다운 가정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방관과 무관심은 언제나 무질서와 퇴보를 가져옵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힘쓰고 노력할 때 우리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는 우리는 이 한 달 동안 가정의 중요성을 되새기면서 우리의 가정을 아름다운 가정으로 이루어 나가는 일에 우리의 심혈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1. 가정의 위치


  성경에서 말씀해 주는 가정의 위치는 놀라울 정도로 중요하고 위대합니다. 우리가 이 같은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우리의 가정을 꾸려 나아간다면 우리가 한평생 몸담아 살아가는 우리의 가정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하며 보람 있는 인생의 낙원인가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인류를 창조하시고 그들로 이 땅위에 번성케 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많은 가정이 아닙니다. 오직 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하나 흩으신 상태로 살게 하신 것이 아니라 서로 짝지어 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 아담과 하와의 결합으로 인류의 최초의 가정을 이루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내 한 가정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 때, 내가 몸담아 살아가고 있는 내 가정의 존재 가치가 인류적으로 보거나 하나님의 창조 사역으로 보거나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로 볼 때, 내 한 가정이 행복하게 사느냐? 불행하게 사느냐? 하는 문제는 내 한 가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사회나 인류의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한 가정, 한 가정이 올바로 살아가며 행복스럽게 살아가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3장에서 한 가정의 타락 때문에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에게 미친 비참한 운명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사탄의 꾐에 빠진 아담의 한 가정으로 말미암은 영향이 그의 모든 후손들인 온 인류에게 사망이라는 무서운 죄 값을 유산으로 넘겨주게 되었다는 이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정이 이 사회에서 바로 서고 못서는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류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 가정의 축복은 어떻게 오는가?


  우리들의 가정을 복되게 만드는 일은 우리들 자신이 해야 할 의무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가정의 행복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없이는 누구도 그 가정에 행복을 만들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가정에 복을 주시는가에 대하여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 하나님이 복 주시는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본문 1절로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 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할렐루야 !

  우리들 가정의 축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이 진리를 깨닫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가정이 복되고 형통하는 지름길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이루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에게 주셨던 첫 계명이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로 나타났으며 그 말씀을 순종할 때, 무한한 축복을 주시고 불순종할 때 ‘정녕 죽으리라’고 하는 선언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 같은 순종의 원리는 에덴에서 있었던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때는 선악과로 기준을 삼으셨고 지금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기준을 삼으신 것뿐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이 기준이 어떠한 축복과 저주를 내리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요3:17절과 18절에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에덴에서도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을 약속하셨고 지금도 이 말씀을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 가정에 말씀을 주시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들 가정에 대한 축복을 세 가지로 구분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부부간의 사랑의 축복이요 다음은 그들을 낳은 그들의 소생들에 대한 축복이요 세 번째로는 그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축복입니다.


  3. 사랑의 가정을 이루자


  뭐니 뭐니 해도 가정의 행복은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며 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반려자가 되시어 우리의 생애를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이 지극하시고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찬 가정에는 또한 가족들 간의 사랑이 가득한 것입니다. 물론 가정에 있어서의 사랑의 주체는 언제나 부부가 중심이 됩니다. 부부간의 사랑이 없이 자기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은 삭막한 광야를 외로이 걸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그 가정의 사랑의 기둥이 되고 뿌리가 됩니다. 이 사랑이 또한 한 사회의 사랑으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아름답고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두 몸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곧 부부간의 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부부는 언제나 두 몸 그대로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충돌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다툼으로 이어지고 용서해 주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간에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 생기고 인생의 틈이 벌어지며 부부간에 등을 돌리게 되며 인생에 실증이 나고 권태로운 생애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위기에 놓이게 되는 것은 물질 때문만이 아닙니다. 성격의 차이에서도 아닙니다. 가정에 난데없이 불어 닥친 폭풍 때문만도 아닙니다. 바로 부부간 서로의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능히 자기 인생에게 오는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 힘이 바로 부부간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먼저 내 가정에서의 부부간의 갈등과 사랑의 파경이 왜 오는가에 대한 해답을 올바로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받는 것으로만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원래가 주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그 아들을 주시기까지 이처럼 죄인을 사랑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정에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사랑을 주지는 않고 받으려고만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랑이야말로 위대합니다. 사랑은 주는데 기쁨이 있고 주는 사랑에 놀라운 힘이 나타납니다. 기적이 만들어집니다. 사랑은 베푸는데 즐거움과 행복이 따릅니다. 다른 이에게 사랑을 받는 일은 지속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남을 사랑하는 일은 내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평생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보다 내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결합한 부부는 실증이 없습니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협력해 주기 때문에 늘 그 마음이 확 트인 생애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으로부터 흠을 찾으려면 하루에도 수 백 가지는 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대편으로부터 아름다운 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입니다. 흠이 있을 만한 것은 덮어 주고 칭찬 받을 만한 일은 칭찬해 주는 일이 부부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고 다만 우리 인생들이 그 죄 값으로 지옥에 가는 일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독생자를 사랑의 선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잠5:18절 말씀에서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 사슴 같고 (?) 아름다운 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제 때에 물을 주고   키우는 화초는 싱싱하게 자라는 것처럼 남편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여인  은 외모로도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남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라고 다 칭찬을 받을 만한 아내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가정을 보면 여자가 너무 억세어 남편을 꼼짝달싹 못하게 기를 팍 죽이는 폭군 같은 아내가 있습니다. 만약 남편이 아내 앞에서 고양이 앞에 쥐처럼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남편의 입에서 어떻게 가정이 행복한 보금자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까? 아내는 언제나 가정에 따듯한 훈풍을 일게 하고 사랑의 감미로운 바람을 불어 내는 사랑의 향기를 뿜어 낼 수 있어야지, 여걸 같은 모습으로 온 집안을 휘어잡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잠 21장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까다로운 아내와 살아본 남자는 지옥이 무섭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런 남자는 가정을 통해서 이미 지옥의 괴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 역시 남편을 사랑함으로 가정에서 결실한 포도나무로서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자녀들의 교육


  오늘 본문 3절 하반 절의 말씀을 보면 자녀들에 대한 축복이 나옵니다.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감람나무는 그 열매에서 기름을 짜서 하나님의 성전의 등불에 불을 켜는 기름으로 쓰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감람나무 같다는 말씀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 성장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 주신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태어난 자녀들은 복된 가정에 태어난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녀로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비결은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말씀으로 키우는 일입니다. 신명기 6장에는 우리들의 자녀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라고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누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자녀답게 키우려면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 앞에서 진실한 신앙적인 생활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감시병은 이웃의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우리 가정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식들입니다. 그들의 눈에 여러분들의 신앙이 가짜로 비췰 때에 그들은 신앙에서 이탈하게 되며 죄악의 길로 탈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5. 물질의 축복을 받는 가정


  다음에 본문 2절 말씀을 보면 ‘네가 네 손이 수고 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는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이 없고 또 형통하는 축복을 받을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 중에는 대개의 경우,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물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때문에 교회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생활을 오래 했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부요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은 지, 10여 년이 넘었는데도 먹을 것조차 걱정스러운 가난한 생활을 계속한다면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덕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정 위에 복을 내려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가정이 복을 받지 못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한번 하나님의 말씀에 비취어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했다면 어찌 하나님의 축복이 그 가장에 찾아 올 수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받아 가라고 하시지만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신 축복을 우리 죄악이 그 길을 막았다고 했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란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그 손에 수고할 수 있는 일거리를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자기에게 무엇인가 일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십니까? 지금 일을 하려 해도 일거리가 없어서 수십만 명, 수백만이 넘는 실업자들이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언제 실업의 바람이 불어 닥칠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가정에는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이 우리들 가정에서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먼저 하나님을 그 가정의 기쁨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온 가정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생활을 기쁘게 여깁니다. 이런 기쁨과 즐거움은 그 가정의 영원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비록 가난해도 이 기쁨은 결코 가난해지지 아니합니다. 실패하고 낙심 될 때에도 이 기쁨은 낙심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습니다.
  다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눈에 보이는 세상 것으로 소망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늘의 소망을 즐거움으로 살아갑니다. 돈을 벌려는 욕심으로 정욕적인 생활에 빠져서 생존 경쟁에 지치고 피곤한 생애를 살아가지 않습니다. 다만 저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그곳을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결론 : 여러분,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손이 수고 한 대로 먹으며 복되고 형통하는 생애를 살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집 내실에 있는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에 둘려 있는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처럼 대견스럽게 자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만물이 싱그럽게 성장하는 5월 ! 가정의 달을 맞아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신생교회 성도들은 모두 이런 복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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