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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48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
 밤중소리  01-22 | VIEW : 527



                          ( 248 )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    


   성경 본문 /  요한복음 1 : 29 - 34                      


  우리의 생활 속에서 피부로 가장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입니다. 올해도 어느덧 12월에 접어든 듯 하더니 닷새 있으면 벌써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고 곧이어 이해 한해를 보내고 1999년의 또다른 새해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도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60을 넘기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세월을 붙잡고 싶은 인생의 안타까움은 아랑 것 없이 지내 온 세월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데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크나큰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늙어서 죽는다는 일이 인생의 종말인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의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란 점과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가까운 이 시기로 다가왔으며 우리의 생존시에 주님이 다시 오실 소망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성탄절의 의의


  성탄절이란 바로 예수님의 태어나심을 기념하는 날이자 그리스도의 오심을 환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성탄절로 지키는 12월 25일이 정말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년대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치 않으며 더욱이 그 오신 날짜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학자들에 의해 계산된 날을 그날로 여겨 기념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그 년대나 날짜에 의미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속죄 사업을 이루시어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새로운 소망을 주셨다는 데 깊은 뜻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날을 정하여 주의 태어나심을 기념하는 일은 참으로 은혜롭고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내 생일도 실인즉 12월 7일이지만 자녀들의 직장 문제가 있어서 모이기에 좋은 날인 5일에 지냈던 것처럼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굳이 12월 25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 날을 기념하여 성탄절로 기념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우리가 주의 태어나신 날로 기념하는 성탄절은 어떤 날이기에 우리가 이토록 기뻐하며 감격하며 감사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태어나심에 대하여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석가모니건 마호멧트건 또한 우리 중의 그 누구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은 다만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로 비로소 존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 이미 존재하셨던 분이십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선재라고 말하는데 이 일에 대하여 요1:14절에 있는 말씀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 이미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존재하셨던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독생하신 하나님이라 말씀해 줍니다.  요1:1절에서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해 주심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이전의 선재성에 대하여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선재성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증거해 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모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그 분은 참으로 놀라운 신비적인 비밀을 간직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가 아니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에 대하여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일은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탄절로 축하하는 날은 이처럼 위대하신 만물의 창조주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날로 이 날이야말로 온 세상 만물들이 경축하고 기뻐하며 감사해야 할 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우리가 누구를 환영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IMF라고 하는 예상치 않았던 비상 사태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모든 면에서 있어서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근래에는 세계의 많은 정상급 인사들이 방문도 하며 우리 나라 대통령도 다른 나라를 방문을 하며 서로간 경제 협력 문제를 협의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방문한다면 그에 합당한 예절로 그를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후진국 남아프리카 지역의 대통령이 온다면 그에 대한 환영 절차가 그리 정중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들 가정에도 누가 방문한다고 하면 그의 신분에 합당한 예절로 맞아 드릴 것입니다. 집안 어른이 오실 때와 손아래 조카가 올 때의 예절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맞이하고 환영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해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그를 맞이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환영한 무리 중에는 헤롯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헤롯의 환영은 거짓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을 속여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가 들어가 있는 환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한 무리들 중에는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의 태어나심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정중하게 맞이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동방에서 별을 보고 베들레헴까지 찾아간 동박박사들입니다. 그들은 그 먼 길의 위험한 여행 끝에 베들레헴에 당도했으며 이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보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들 주변에는 예수님을 환영하는 많은 무리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환영 태도는 모두 헤롯왕이 아니면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자세로 환영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오히려 욕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요1:29절의 말씀을 보면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며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을 때, 하루는 예수님이 이 요한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 때 자기 주변에 있었던 제자들을 둘러보면서 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증거 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오셨다는 그의 증거는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였습니다.

  (1)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표현한 요한의 말은 유월절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 애굽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흡까지 재앙이 끝나고 열 번째 재앙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재앙은 애굽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장자들을 죽이는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날 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로 자기 집 문지방과 문설주에 바르게 하고 그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주검의 재앙을 면하게 되었고 이 피가 발라 있지 아니한 모든 애굽 사람들의 집에는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내려 온 애굽 천지가 슬픔에 뒤덮였고 울음바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어린양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그의 살로 화목 제물로 삼으사 우리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고 우리에게 영생과 천국의 축복을 얻게 하신 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 당시 어린양의 피가 없었던 가정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누구든지 하나님의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죄를 깨끗케 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아무리 유명해도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할 수 없으며 석가모니의 불경이 8만 대장경으로 방대하고 그의 가르침이 위대해도 우리의 죄를 소멸해 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교훈이나 금언이나 도덕이나 수양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벗어나 용서받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영생을 주고 부활을 주며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벧전1:18절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 사실에 대하여 이처럼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이처럼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일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날을 가장 거룩하고 겸손하고 정중하고 가장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어린양의 사명을 가지시고 사람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말할 수 없는 영광이요 너무나도 황공스러운 사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예수를 영접한 사람으로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으로 증거되어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요1:12절 말씀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처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만약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아니하셨다면 인류의 역사는 죄악으로 덮였을 뿐 아무런 소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류는 영원히 구제 받을 길이 없는 죄인의 자리에서 절대로 벗어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2)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과연 어떤 일을 이루셨으며 앞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인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계5:9절에서는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일찍 죽임을 당하셔야 했으며 그의 피로 사람들을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백성들을 피로 사셨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그가 흘리신 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값 주고 사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은 그저 어쩌다가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그의 피로 값 주고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내가 하면서 마치 내 인생이 나의 것이요 내 생애가 내 것이요 내가 소유한 내 재산이 모두 내 것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인즉 우리는 주님이 그의 피로 값주고 사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내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이 나라고 하는 존재를 금이나 은으로가 아니라 당신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를 값으로 삼고 사셔서 그의 소유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과연 어떤 생애를 살아가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는 주의 소유가 되었으니 주를 위해 살아가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살아도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생애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의 몸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바울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고백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처럼 그의 피로 우리를 사셔서 그의 소유로 삼으셔서 우리를 어떤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까? 계5:10절에서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라’라는 말은 그의 백성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를 그의 피로 사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약하신 놀라운 축복의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롬8장에서 언약해 주신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그의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인데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지금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든 무릎이 주님께 굴복하며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영광을 누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같은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어떤 직분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어른을 의미합니다. 제사장만이 오직 하나님의 제단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라도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차레씩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셨을 때, 그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내렸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히브리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가는 새롭고 산길이 열렸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제사장들입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당당한 제사장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제사장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제단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직분은 왕같은 직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곧 다시 우리에게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를 섬겨온 그의 백성들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하게 되며 그와 함께 회복된 에덴동산에서 천년동안의 아름다운 생활이 새롭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이 같은 예수님이 오신 그날 성탄절을 어떤 자세로 맞이할 것입니까? 예수님의 오심은 그 자체가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가장 온유하고 겸손하게 그 분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영접하는 그 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의 마음을 본 받으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생활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과 성별된 성탄절을 맞이하는 경건한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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