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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42 (감사하는 자의 축복)
 밤중소리  01-22 | VIEW : 873

                              
                         (242)


               감사하는 자의 축복  
                      


   성경 본문 /  시 편 100 : 1 - 5
                                
  

  오늘은 우리가 해마다 뜻 깊게 지내는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감사하는 자의 축복”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에이프랑스란 유명한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는 마음의 기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죄가 가득 차 있고 돌덩이처럼 강퍅한 사람은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그의 마음속에 감사가 기억될 만한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백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사를 가장 기뻐하시며 그 무엇보다도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더욱 감사가 넘치도록 축복으로 그의 생애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어김없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진리입니다.


  1. 추수감사절의 역사적 유래


  추수감사절은 성경적인 유래와 역사적인 유래가 있습니다. 먼저 성경적인 유래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에는 중요한 민족적 절기로 세 가지 축제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의 문지방과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애굽사람들에게 내렸던 죽음의 재앙을 면케 해 주신 일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다음에 오순절이 있습니다. 이 절기는 유월절이 지나 50일째 되는 날에 거행하는 축제로 유월절에 농사를 지어 50일이 지나면 빠른 종자는 첫 열매를 내기 때문에 초실절이라고도 불러온 감사절입니다. 세 번째 절기로 장막절이 있습니다. 이 절기는 농사가 거이 다 끝나는 7월 중순경으로 마지막 곡식을 거두어 드리고 타작의 수고와 포도즙을 짜는 일을 모두 마친 후 거행되는 감사절로 이 절기를 초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바로 이 장막절이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감사절인데 유월절이나 오순절이나 장막절이나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같은 감사절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고 명하시고 “너희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처럼 해마다 드리는 감사절기에는 기쁜 마음으로 감사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사가 따랐습니다.

  (2)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지키는 추수감사절의 실질적인 유례는 그 역사가 그리 오랜 것은 아닙니다. 이 추수감사절은 지금부터 약 370여년 전인 1621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에 미국에 건너간 영국의 청교도들에 의해 지켜진 것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교회의 절기 행사입니다.

  청교도란 영국에서 신앙생활을 해 온 성도들로 그 당시 천주교를 국교로 삼고 개신교를 핍박해 온 영국정부의 간섭에서 신앙적인 자유를 얻으려는 일념으로 사랑하는 조국강산을 등지고 화란으로 이민을 떠난 100여명의 영국의 개신교 신도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모르고 또 피부로 느껴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은혜 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비록 조국은 등지고 살 수 있지만 예수를 믿는 신앙의 자유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공상주의를 그토록 싫어하고 공산주의로 다스리는 북한정권을 왜 그토록 기피하는 것입니까?  그들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 땅에는 기독교인이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처럼 찬송을 부르는 일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도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으로 알면 잡혀가고 심한 경우에는 강제수용소에 끌려가기도 하며 학살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북한 지역의 모든 교회의 문이 강제로 폐쇄됐으며 일제시대에 일본 경찰에 의해 당한 피해보다 몇 곱절 더한 피해를 우리 한국교회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받았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눈물과 탄식과 굶주림 속에서 살아갈지언정 예수를 저버리는 생활은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내 생애의 모든 것의 전부가 되시기 때문에 주님이 계시는 곳이면 어떤 곳이건 그 자리가 내 안식처요 내가 거처할 보금자리인 것입니다.

  영국에서 겨우 빠져 나온 이들 청교도들은 화란에 당도했지만 그곳의 환경이 자신들이 원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땅을 찾아 화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들 102명의 청교도들은 마침내 1620년 9월 16일 ‘메이푸라워’라고 하는 적은 배를 타고 63일간의 생명을 건 항해를 시도한 끝에 그해 12월 21일 미국 땅 ‘푸리스무스’에 상륙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그곳에 이른 시기는 고추처럼 매운 북쪽 바람이 살을 에 일듯 세차게 불어대는 겨울철이었습니다. 배에 실어 가지고 온 양식은 모두 거들 났고 여러가지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그들은 그 겨울을 나기까지 102명중 50명만 살아 남고 다 죽었습니다. 건장한 남편이 죽어 넘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흙에 묻었습니다. 귀여운 애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만 신앙의 자유를 찾은 그 기쁨에 모든 괴로움과 고통을 참고 감사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들의 이같은 처지와 형편은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 것입니까? 누가 예수를 믿는다고 여러분을 감옥에 잡아 가둡니까? 누가 예수를 믿지 말라고 공갈하고 협박하며 여러분에게 위협을 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 저기서 잘 믿으라, 잘 믿어야 복을 받는다고 고함 고함지릅니다. 그래도 그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갖지 못하고 감사할 줄도 모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입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이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입니까?

  그들은 새로운 용기를 냈습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찍어다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이제 겨울은 지나고 봄이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호박과 강냉이와 밀을 수확했습니다. 그들은 11월 마지막 목요일에 교회에 모여서 추수한 첫 열매를 가져다가 추수감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례입니다.

  이들이 오늘날 미국국민들의 신앙적인 조상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이색 민족들이 모여 미국이란 커다란 연합국을 세워 한 나라를 이루고 있지만 오늘날 그들의 조상들이 뿌린 그 신앙의 고귀한 터전 위에 세워진 미국은 지금 세계의 일등국이 되어 전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클린턴 전대통령이 성 추문 사건으로 한창 망신을 당하고 있었을 때, 그가 고향에 있는 자기 교회에 하나님께 회개하는 편지를 보낸 사실을 보았을 때 미국이 왜 복을 받는 나라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미국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우리 국민이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안다면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세워 세계 제일의 국민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며 우리가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린다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하나님으로 이 나라를 모든 나라 위에 뛰어난 나라로 크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2. 성도가 감사하는 생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본문 시편 100편을 보시기바랍니다. 100이란 글자 밑에 괄호가 있는데 그 안에 무엇이라고 쓰여있는 것입니까? “감사의 시”라고 나와 있지요. 시편 기자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라고 했어요? (즐거이). 2절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라고 했어요? (기쁨으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가라고 했어요? (노래하면서). 할렐루야 !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교회에 나와야 하느냐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어떻게 그 문에 들어가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이 그 양을 모으는 양의 우리의 문입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최초의 문이기도 합니다. 들어가며 나아오며 생명의 꼴을 얻는 문입니다. 다 따라하십시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할렐루야!

  이 문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그의 양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라.” 그가 일국의 대통령이요 명문 대학의 총장이라 할지라도 양의 우리가 되는 하나님의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가난하고 고생하는 가운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이지만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예수의 이름으로 이 문으로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주님의 양들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이 참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 딱 한가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눅10:20). =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아멘).  우리는 늘 청와대 문을 들며 날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대통령의 집안 식구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요 온 만물을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들어오신 신생교회의 문은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문이요, 하나님의 보좌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닥다리가 되는 문입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은 이 문을 바르게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을 두 가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문은 오직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학문을 가졌다고 못 들어갑니다. 권세가 있다고 못 들어갑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음에 이 문으로 들어가려면 다른 또 한가지의 조건이 따릅니다. 계22:14절에서 이르시기를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두루마기를 빤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피로써 죄를 씻는 일입니다. 이 세상 누구든지 죄를 짊어진 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의 양심을 찌르며 우리로 영원한 불구덩이 속으로 이끄는 우리의 죄악은 법정에서 징역형을 받고 그 형을 살았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양심의 가책으로 자살해 죽는다고 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양 같은 피로서만이 정결하게 씻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보혈로 그 죄를 씻음 받은 사람들만이 이 문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신생교회 성도 여러분,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문에 들어가며 나오며 생명의 꼴을 얻으며 이 문을 출입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의 교회에 들어온 이 문은 이처럼 놀랍고 축복된 문입니다. 우리 신생교회 성도들은 오늘 이 시간부터 감사함으로 이 교회 문에 들어서며 찬송함으로 이 성전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까? 감사에는 정성이 깃들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성전에서 하나님께 헌금하는 유대인들의 행렬을 바라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노라고 뻐기면서 보란 듯이 많은 금화를 연보궤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렬 중에 어느 한 가난한 과부가 섞여 있었는데 주님은 그 과부가 연보궤에 넣는 헌금을 보신 것입니다. 그 과부는 그 손에 고작 동전 세 닢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부는 정성스럽게 그 동전을 연보궤에 넣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 과부를 향하여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감사를 했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과부는 비록 돈은 적었지만 자기 생활비 전부를 바쳤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런 감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다음에 감사에는 기쁨이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 얼마 전에  한 신문에서 한평생 벌어온 돈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쁨으로 모두 내 놓은 한 늙은 과부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토록 심하게 일하면서 평생 모은 돈을 고스란히 사회에 헌납한다는 사실은 보통 결심이나 결단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우리가 노력하고 애써 모은 재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 기쁜 마음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감사에 기쁨이 없는 것은 그 감사에 인색한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6장에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저축해 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은행에 돈을 예금하면서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조금할까 많이 할까 망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돈을 예금하게 되면 그만큼 자기재산이 불기 때문에 흐뭇해하는 것입니다. 예금 통장에 잔고가 없으면 아무리 급해도 돈을 마련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은행에 많은 돈을 쌓아 두셨다면 필요할 때 기도하시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는 말씀대로 구하는 대로 받을 수 있을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금통장엔 잔고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마이나스인데다 신용불량자로 낙인이 찍힌 처지에 기도한들 무엇이 있어야 받을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많이 심는 자에게 심을 것을 많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적은 것으로 드리지만 하나님의 이자는 적어도 우리가 드린 것의 30배로 60배로 100배로 계산되어 우리의 손에 쥐어 주십니다. 하늘에는 축복의 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문을 활짝 여사 우리 집 창고에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오실 때 감사함으로 문에 들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문 안에는 만왕의 왕되신 우리 주님이 계시며 이 분은 우리에게 위로와 축복을 한없이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에 들어 올 때 그 분을 찬송하며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이 놀라운 축복, 이 일에 우리는 늘 찬송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까이 부르셔서 그의 집 뜰에 거하게 하신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의 성전에서의 한 날이 악인의 장막에서 천 날보다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오시면서 여러분에게 구원을 주시고 여러분의 가정에 위로와 평강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 그 무엇으로 감사하십니까? 이번 감사절에는 감사할 수 있는 조건들을 여러분의 그 열 손가락으로 세여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조건이 열 손가락에도 못 미치는 사람은 감사에 인색한 사람들입니다. 세어도 세어도 끝없이 감사가 나오는 사람이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제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애 동안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감사를 마음으로 드리고 입술의 찬양으로 드리고 몸의 헌신으로 드리고 물질로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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