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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41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밤중소리  01-22 | VIEW : 530

                              
                         (241)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성경 본문 /  마태복음 9 : 16 - 17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정치계나 경제계나 망국적인 부패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이런 난국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사방이 시끄러우며 여기 저기서 떠들썩합니다. 아직까지 역대의 대통령이나 정치가들이 제가끔 정치개혁을 주장해 오고 혁신을 내세웠지만 얼마 안가 유야 무야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드는 정치자금으로 정당이나 대통령과 경제계의 얽힌 비리의 끈을 끊는 대범한 수술을 단행치 못한다면 우리 나라의 장래에 아무런 소망도 바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회창 씨를 감옥에 보내고 자기자신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이번에 터져 나온 정치자금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을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이 성공하려면 오늘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거울 삼아 대통령을 비롯하여 모든 정치인들이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를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1. 새 부대와 새 술


  하루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말하기를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 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 것입니까’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헤어짐이 심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옛날 중동 지방에서는 여행 시 포도주를 가죽부대에 넣어 보관하거나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새 술은 계속 발효되어 술의 량이 늘기 때문에 묵은 가죽부대에 넣어 두면 그 부대가 찢어지거나 터져 버려 부대도 버리게 되고 포도주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1) 여기서 새 포도주란 복음을 비유한 말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킬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 것입니다. 포도란 말은 예수님과 관계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참 포도나무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참 포도주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진리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음행의 포도주도 있습니다. 이 포도주는 음녀가 먹이는 술인데 사람이 이 술에 취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진리에서 떠나 거짓 진리를 따르게 됩니다. 거짓 진리를 따른다는 말은 곧 마귀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한편 부대란 포도주를 담아 둘 그릇으로 인간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마음은 완악합니다. 그 안에 거짓과 부정과 더러움과 음란과 미움 등 모든 죄악으로 돌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돌 같이 단단한 밭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이런 밭에는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어도 결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낡은 가죽처럼 단단해 진 부대에는 묵은 포도주가 제격인 것처럼 죄로 변화 받지 못한 인간의 마음에는 더럽고 추한 죄악만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그릇에는 새 술인 포도주를 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아직도 옛날 생활과 죄악의 굴레에 속해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을 수 없으며 아무리 그 말씀을 그 마음에 담아 두려 해도 결실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새 술은 술의 성질상 부대에서 부풀어오릅니다. 그런데 반면에 그 술을 담아야 할 낡은 부대는 함께 부풀 수 없기 때문에 새 술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은 터지고 말게 됩니다. 말하자면 새 술이 그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없으며 그 사람이 이 새 술로 인하여 새로워지는 새로운 삶을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옛날 사람의 형태에서 전혀 새로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성장하지도 못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생활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며 우리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생애를 살아가게 할 수 있는 새 포도주입니다. 이 새 포도주를 마시는 자는 이 새 술에 취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이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으며 우리의 생애에 왜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새 술의 질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 술을 담아야 할 우리의 마음의 부대가 낡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들어온 새 술은 나를 취하게 하려고 발효 작용을 하지만 내 마음이 낡은 가죽처럼 단단하여 부풀지 못하고 터져 버려 받은 은혜를 쏟아버리게 되고 공중에 나는 새가 길가에 떨어진 씨앗을 쪼아먹듯이 진리의 말씀을 그의 마음에 간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술은 결국 쏟아 버리게 되고 그 사람의 인생은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 새 포도주인 복음은 그 자체에 발효의 능력이 있어 그 술을 마시는 사람으로 그 술에 취하게 합니다. 이 복음이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오면 점점 발효되어 우리의 마음의 부대를 부풀게 하여 그 술기운이 온몸에 공급되어 우리의 생애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부대는 그 새 술이 들어와 발효되어도 얼마든지 부풀기 때문에 터질 염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더욱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케 하는 것입니다.

  새 부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화된 우리의 새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화된 새 마음속에 들어가야 30배로 60배로 100배로 결실 하여 그 사람으로 온전히 새로운 삶을 누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쯤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은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교회에 나온 지 오래된 사람입니다. 세례도 받았고 아름다운 직분도 받아 집사님, 권사님이라는 존칭을 들으며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왜 내 믿음은 자라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말씀을 들어도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지 못하여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까? 왜 세상적인 생활과 생각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세상과 더불어 짝하는 것입니까? 세상일에는 그토록 분주하고 열심이며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며 신임을 얻으면서 왜 하나님의 일에는 나태하며 열심이 없으며 주의 종과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런 문제를 우리는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새 술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새 술을 먹이는 주의 종에게 문제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이 술을 가죽 부대에 간직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의 부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아직 새로운 부대로 바뀌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 술을 마셔도 그 술에 취하지 못하고 그 술을 담아 두지도 못하며 마치 술 주정꾼이 소화시키지 못한 술을 입으로 토해 내듯 쏟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낡은 가죽 부대로 자리잡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을 새 부대로 변화시켜 새 술을 담아도 그 부대가 터져 포도주를 쏟아 버리는 일이 없이 그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생애를 온전히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먼저 새 부대로 바꿔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가 온전한 변화를 받으려면 먼저 마음의 부대를 낡은 것으로부터 새 것으로 바꿔야 합니다. 낡은 부대를 버리고 새 부대로 교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릇에 구멍이 났거나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면 아무리 좋은 새 술을 담아도 발효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새 부대는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애당초 변화 받지 못한 그릇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나오고 말씀은 들어도 아무런 영적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그릇으로 이 그릇은 포도주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그릇입니다. 옛사람 그대로의 그릇으로 영적으로 죽어 있는 마음입니다. 말하자면 중생하지 못한 심령, 거듭나지 못한 심령을 말합니다. 이 그릇은 애초부터 엎어져 있기 때문에 새 술을 먹여도 담아 둘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이 그릇은 분명히 중생한 사람이요 거듭난 심령으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는 대로 새 부대라 해도 새 술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에 취하는 생활로 이끌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1) 우리의 심령이 거듭나지 못했다면 신앙적인 노력을 아무리 기우려도 새 부대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그야말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예수 믿는 일이 헛된 일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일은 거듭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사람이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일은 인간적인 방법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두 번째 어머니 배에서 태어난다는 말입니까?’고 재차 물었을 때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듭나는 일은 육신으로 태어나는 일이 아니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로 이것을 영적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혹은 중생이라고도 하는데 다시 한번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사람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영적으로 다시 한번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영적 생명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은 천국을 소망으로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서만 가능합니다. 거듭나는 일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도덕적인 선행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학문이나 지식이나 명예나 돈이나 권세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 말에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거듭날 수 있게, 그렇습니다.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거듭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도 할머니들도 무식한 사람들도 못난 사람들도 누구나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는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면 예수를 영접할 수도 없고 믿음을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요1:12절 말씀에서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먼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이란 예수님에 관한 소식입니다. 예수에 관한 소식을 듣지 않고는 예수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떤 사람은 예수를 곧 영접하여 그 자리에서 거듭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의 경우는 오랜 기간 의심과 방황 가운데서 해 메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믿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영접한 사람이면 자기가 가진 믿음이 정말로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인가 여부를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13:5절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시험은 그 사람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은 지난날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열매를 맺게 되는데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이 예수를 믿은 후에 자기에게 일어나며 그런 일에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열매 맺는 생활은 자신에게 예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하며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이런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받아 드리고 그 말씀을 자기 생활에 적용시키려는 애씀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애씀이야말로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며 이런 과정으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2) 다음에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 중에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므로 새 부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 부대는 언제나 새 부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따라 때로는 낡은 부대처럼 딱딱해 지기도 하며 구멍이 뚫어져 하나님의 말씀을 간수할 수 없기도 하며 소화를 시키지 못하여 쏟아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새 부대가 다시 낡은 부대처럼 된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 첫째의 원인은 그의 생활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생활을 해 왔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났으면서도 세상에 이끌려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맺는 생활을 못하면 그의 새 부대는 점점 굳어지기 시작하여 어느덧 낡은 부대가 되어 버리게 됩니다.

  다른 또 하나의 원인은 예수를 믿는 생활을 하면서도 죄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에 새 부대가 점점 낡아져 딱딱한 부대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죄는 거듭난 우리의 심령에 크나큰 상처를 안겨 줍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 중에서 돌밭에 나와 있는 돌은 죄를 말해 줍니다. 단단한 길가의 단단한 길도 죄로 굳어진 마음을 말합니다. 죄는 버리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우리의 마음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행길가처럼 단단해 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거듭나지 못한 사람처럼 세상 풍조에 밀려 세상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으며 이런 사람들 때문에 많은 속을 썩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단단해 진 부대를 부드럽게 하여 새 부대로 만들려면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그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처리를 받아야 합니다. 그 죄를 깨끗이 처리하면 우리의 마음은 부드러워지며 새 부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방법에 대해 요일1:9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그 죄가 소멸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가 용서받는 일에는 성경적인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죄의 자백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마음을 찢는 심정으로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는 일입니다. 물론 이 자백에는 후회하는 마음이 따라야 하고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마음의 결단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회개하여 정결함을 받은 그 마음에 이제 새 술로 채워야 합니다.

  다음에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는 결정적인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열매 맺기를 거부하며 언제까지 가도 세상의 풍습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 위주로 살아가거나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아니하며 새로운 생활로 살아가기를 싫어하면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런 길을 열어 주는 하나님의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최종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손에 매를 들고 그 사람을 다스리시는 방법입니다. 이 때 드시는 하나님의 채찍은 맵고 아픕니다. 이 매는 그 사람을 변화시켜 그 사람의 심령으로 새 부대를 만들어 새롭게 살게 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히12:11절에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매를 맞고 정신을 차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리 빼고 저리 빼고 육신의 뜻대로 살려고 도망 다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의 인생이 찢겨지고 실패와 낭패를 당한 후, 주께로 돌아와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언제나 새 부대로 활동하여 우리의 생애가 소망 가운데 살아가며 축복으로 채워지려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공급하는 새 포도주가 우리의 온몸에 활발하게 공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은 성령의 충만함에서 옵니다. 성령은 기름으로 비유됩니다. 기계에 기름이 없다면 그 기계는 기계의 구실을 못하여 조만 간에 그 움직임을 정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너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성령의 충만함은 세 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의 새 부대 속에 채워집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입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기 때문에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자연히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 다른 하나는 순종의 생활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에는 성령의 능력이 따릅니다. 그 능력이 쌓이면 그것이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이루어 우리의 생활에 새로운 열매를 많이 맺게 합니다. 다음 다른 한 가지는 기도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왜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는 것입니까? 기도는 우리의 마음의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죄의 유혹을 받으며 세상 풍조에 미혹 받는 일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런 육신의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심령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을 보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새 부대로 만들어 그 속에 주님이 주시는 평강의 새 술을, 사랑의 새 술을, 은혜의 새 술을 담으시면 그것이 30배로 60배로 100배로 발효되어 우리의 생애에 소망으로 부풀게 하며 기쁨과 감사로 부풀게 하며 축복으로 부풀게 할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생애가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 생활을 통하여 축복의 생애가 새롭게 열려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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