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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37 (좋은 나무와 아름다음 열매)
 밤중소리  01-22 | VIEW : 768

                              
                         (237)


          좋은 나무와 아름다운 열매
                      

   성경 본문 /  마태복음 7 : 17 - 20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계의 말씀에서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경종 하시면서 거짓 선지자의 분별에 대하여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아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좋은 나무에서만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이 같은 자연의 원리는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나타난 하나의 법칙입니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듯이 그 사람의 맺는 그의 인생의 열매로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자연법칙을 인용하신 예수님의 이 비유는 우리의 일상 생활과 천국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려는데 목적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21절에 나오는 결론에서 이런 주님의 뜻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다는 말은 그의 생활 중에서 말씀의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말씀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1.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


  좋은 나무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나무를 가리키는데 예수님은 좋은 나무에 대해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비유로 드셨습니다. 이 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으로 보여 주는 나무로 이 나무가 맺는 아름다운 열매란 성령의 열매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못된 나무란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의미하는데 이 나무의 열매는 가시와 엉겅퀴로서 사람들이 육신대로 살면서 맺는 육신의 열매를 가리킵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나쁜 나무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로 그의 생애 중에 육신을 심는 자를 말합니다. 육신을 심는 자는 그 육신에서 썩어질 것을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의 열매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일과 분쟁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 하는 일’들로 이런 열매를 맺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1) 원래 우리 인간들은 못된 나무들로 나쁜 열매를 맺어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 인간은 인간 스스로는 좋은 나무가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후, 못된 나무로 타락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다’고 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유 중에 나오는 못된 나무란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을 의미합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에게는 예외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말씀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다는 뜻입니다.

  (2) 못된 나무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죄인이란 말은 범법 행위를 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의인이요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갑니다. 인간들이 설정해 놓은 도덕적 기준으로는 훌륭할는지 모릅니다. 양심적으로는 흠이 없이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표준으로 보실 때, 하나님의 말씀이 도덕이요 양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인간사회의 도덕이나 윤리적 기준과는 상관없이 죄인으로 정죄 받게 되며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완전했으며 부족한 것도 없었습니다. 죄나 죽음이나 저주나 질병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한 죄로 아담은 죄인이 되었으며 나쁜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열매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의 인간들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져 버렸고 아담의 형상대로 태어나게 되었으며 아담 안에서 아담과 함께 죄인이 되었습니다.

  창6:5-6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용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고 했습니다. 죄를 사모하는 인간의 마음은 그 생각의 모든 계획까지 악할 뿐이라고 하나님께서 탄식하신 것입니다.

  롬1:28절 말씀에도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인간은 그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결과적으로 하는 일이란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일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들이 못된 나무가 되었다는 증거요, 이 나무로부터  맺는 열매란 나쁜 열매로 가시와 엉겅퀴라고 하신 것입니다.

  (3) 나쁜 나무란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자기의 육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육신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란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무익한 것이기 때문에 순종도 할 수 없고 귀히 여기지도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에 속한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고 순종할 수 있기 때문에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깨달아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못된 나무에서 맺는 열매를 나쁜 열매라고 하셨는데 이 나쁜 열매를 맺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롬8:5-6절 말씀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못된 나무의 열매는 그 결실이 사망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죽음이란 영원한 죽음으로 멸망을 의미하며 곧 지옥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2. 좋은 나무가 구원을 얻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면 소망이 없는 생애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좋은 나무가 맺는 아름다운 열매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좋은 나무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를 의미합니다. 이 나무들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나무들입니다. 예수님은 요15:1절에서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참 포도나무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로 오신 것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못된 나무가 되어 가시와 엉겅퀴를 냄으로 하나님께 버린바 된 우리 인생들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를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란 죄 대신에 의를 말하며 사망 대신에 생명을 말하며 지옥 대신에 천국을 말합니다.

  (2)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좋은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먼저 우리는 못된 나무로써 영원히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나무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롬11장에서 못된 나무를 돌 감람나무로 비유하고 예수님을 참 감람나무로 비유해서 못된 나무가 어떻게 좋은 나무를 이루게 되는가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롬11:17절을 보면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원래가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는 들 포도나무 가지들이었습니다. 들 포도나무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그 열매도 먹지도 못하고 포도원 주인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가 들 포도나무에서 꺾여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들 포도나무는 아담을 상징하고 참 포도나무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여러분, 들 포도나무에서 꺾인 가지가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이 되었다면 그 가지는 이제 들 포도나무 가지인 것이 아니라 참 포도나무 가지가 된 것입니다. 그 가지에서 맺는 열매는 들 포도 열매인 것이 아니라 참 포도 열매인 것입니다.

  (3) 그러면 들 포도나무에서 꺾인 가지를 참 포도나무에 접붙인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둘의 생명이 하나가 되는 생명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의 이 같은 생명 적인 연합을 이루지 못하면 그 사람은 못된 나무로써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며 영원히 버림받게 되며 지옥의 불로 불사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나와 그리스도를 이처럼 생명 적인 연합 관계를 이루게 한 것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지난날 맺었던 죄와 저주와 사망과 지옥의 나쁜 열매에서 벗어나 사죄와 생명과 천국의 아름다운 열매로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이 우리와 그리스도를 이 같은 생명 적인 연합을 이루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롬11: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고 했습니다. 저희란 대상자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가 참 감람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므로 그 나무에서 꺾이우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믿음으로 그 자리에 접붙임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이 같은 연합 관계를 이루게 하여 우리들로 못된 나무에서 좋은 나무가 되게 하며 나쁜 열매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일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아담 안에서 모두 못된 나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나무에서는 생명이나 천국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란 가시와 엉겅퀴와 돌 감람나무 열매와 들 포도 열매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이요 영원한 지옥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못된 나무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참 포도나무로 세상에 보내시고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그에게 접 붙임바 되어 좋은 나무를 이루어 그 나무로부터 생명의 열매, 영생의 열매, 천국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

  (4) 우리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 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제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들 포도나무에 붙어 있었던 가지가 그 나무에서 꺾이어 참 포도나무 가지에 접붙임이 되었다면 그 가지는 참 포도나무 가지로서 성장하게 되며 들 포도나무 열매가 아니라 참 포도나무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새로운 생명을 받아 새로운 생명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우리를 꺾어 참 포도나무에 접붙이신 것입니까? 그것은 들 포도 열매를 맺었던 우리들로 참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히게 하려고 그리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과연 지금 못된 나무가 아니라 좋은 나무가 되어 성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서 참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간단합니다. 내가 지금 세상을 살아가면서 맺는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임이 되어 좋은 참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 아닌지를 분별할 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각자 스스로 이 사실을 확증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고후 13:5절에서 이 말씀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는가 다시 말씀드리면 들 포도나무의 가지였던 내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접붙임이 되어 좋은 나무가 되었는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한 말입니다.

  (5) 그런데 우리는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요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일은 너무나도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못된 들 포도나무에서 꺾이어 이제 좋은 나무인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가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참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옛날의 못된 들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입니까?

  아름다운 열매는 생명의 열매인데 이 열매는 우리의 일상 생활 중에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열매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우리의 열매가 좋은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나쁜 나무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참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었지만 참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생명의 진액으로 살아가지 않고 이전에 살아가던 들 포도나무의 진액을 받아먹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요15: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은 접붙임을 받은 가지와 나무가 하나가 되어 온전히 그 나무의 생명력에 의하여 가지가 자라나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관계가 원만치 못하면 비록 접붙임을 받았다고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육신에 속한 사람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이 밭의 주인이 내리 삼 년을 찾아 와서 열매 맺기를 기대했지만 실과를 얻지 못하게 되자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는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종으로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면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면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어데 있는 것입니까?

  ① 먼저 그리스도와의 확실한 연합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접붙임이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생명 적 연합이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연합은 믿습니다 는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회개로서만이 가능합니다. 올바른 회개 없이는 연합이 안됩니다. 생명 적인 연합은 마음을 찢는 회개에서 맺어집니다. 죄를 버리고 새로운 열매를 맺는 일은 아직까지 지은 죄에 대한 진실한 회개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② 두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이제부터 육신의 생각을 죽이고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신 말씀은 너희 생각대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영의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먼저 분명히 우리들 자신을 좋은 나무로 만들어야 나가야 합니다. 회개가 없이는 참 포도나무와의 끈끈한 접붙임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혀질 수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면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므로 아름다운 열매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보다는 좋은 나무가 되십시오. 먼저 죄를 회개하고 육신대로 살아온 아직까지의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활하십시오. 그러면 좋은 나무가 되어 영생에 이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끝내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스스로 거부한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두려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할렐루야 ! 여러분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의 끈끈하고 확실한 접붙임을 통해서 좋은 나무를 이루어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생활을 통해서 더욱 축복 받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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