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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36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
 밤중소리  01-22 | VIEW : 495

                              
                         (236)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


   성경 본문 /  마태복음 6 : 25 - 34

                    
  
  성경에서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진리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간단하고 단순하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따를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주님이 산상보훈에서 자기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에게 주신 여러 교훈의 말씀 중에 하나로 들려주신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알고 따라야 할 생활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며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문장 속에 감춰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만복의 근원이시고 모든 피조물에게 그들이 누려야 할 모든 복을 공급해 주시는 그 주님께서 우리가 매일매일 부닥치는 실질적인 생활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야 우리들이 평안한 중에 넉넉한 물질의 부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생애가 새롭게 변화되어 이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놀라운 인생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철학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재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으로 두 가지로 경계하셨습니다.

  그 하나가 19절과 20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재물을 이 땅위에 쌓아 두는 생활을 하지 말라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재물을 모으는 일에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까? 그처럼 힘쓰고 애써 모은 재물을 도적에게 도적질이나 당하고 좀이나 동록 때문에 해를 당한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힘써 모은 돈을 가장 귀하게 간수하는 방법으로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 두는 재물은 안전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보관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며 그에 대한 보상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다음에 다른 또 한 가지의 경계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24절 말씀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담겨진 교훈은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자기 인생의 중심으로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돈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부수적인 존재일 뿐 돈이 우리 생애의 근본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일입니다. 돈은 이 일에 필요한 부수적인 존재일 뿐 만약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섬긴다면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생애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들 마음속에는 한 가지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고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우리의 삶은 이 지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자녀들을 키우며 남달리 가르쳐야 하며 매끼마다 먹어야 하고 철을 따라 입어야 하며 마셔야 합니다. 이런 생활이 없으면 우리의 삶과 삶에서 누릴 우리의 행복이 계속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도 섬기는 생활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 때문에 매일매일 삶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악착같이 돈도 벌어야 하며 저축도 해야 하며 아등바등 살아가야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문제들은 우리의 생애에 돈에 대한 비중을 많이 둘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당장에 자기에게 문제되는 모든 것들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도 돈 때문에 많은 염려가 생기게 되고 식생활 때문에 태산 같은 걱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의 생활에서 여러분들은 많은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걱정한다고 그 걱정이 해결이 되었습니까? 염려한다고 그 염려가 풀릴 수 있습니까? 돈을 모은다고 그 돈이 생각대로 차곡차곡 모여 떼 부자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까? 그것이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자기 계획대로 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염려와 근심을 극복해야 하며 어떻게 돈을 벌고 그 돈을 간직하며 어떤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누리며 이 세상에서 보람있고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까? 이 문제에 대한 교훈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생활이 먼저 먹는 것과 입는 것과 마시는 일에 대한 염려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밝혀 주셨습니다. 25절에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이유 중에 큰 이유가 바로 이 문제에 있는 것입니다. 먹는 일, 마시는 일, 입는 일 때문에 주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11조 생활도 제대로 못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너무나도 간단하고 분명하게 해답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염려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27절에서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염려의 무익함을 밝히셨습니다. 여기서 키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신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숨으로 우리의 생명을 말합니다. 우리의 목숨이 우리의 염려로 연장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주 생활도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우리의 염려가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다음 두 번째의 해답은 자연의 법칙을 통해서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26절에서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드리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28, 29절에서도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공중의 새들의 경우를 드시면서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드시면서 입을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에게까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왜 너희의 의 · 식 · 주에 대해 무관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존재를 공중에 날아가는 새보다도 못하게 하찮게 여기신다고 알고 있습니까? 들의 백합화보다도 못하게 여기신다고 믿고 있습니까? 아니 나 같은 인간에게는 아예 아무런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보내시어 나의 죄를 위해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로 그 아들을 믿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들로 그 아들 안에서 하늘의 기업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롬8: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먹을 것이 없어 굶으신 일이 있습니까? 입을 것이 없어 벗으신 일이 있습니까? 우리의 존재는 분명히 공중의 새들보다 귀합니다. 우리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 넣는 들의 백합화보다 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같은 미물 같은 존재들도 사랑하시어 먹이시고 입이시거든 하물며 피로 값 주고 사신 당신의 자녀들에게 어찌 때를 따라 먹을 양식을 주지 아니하시며 입을 옷을 입히지 아니하시겠습니까?

  (2)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은 육신을 가지고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생활이 예수를 믿기 이전의 그 상태 그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난날의 우리들은 죄악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말하자면 죽은 행실의 생활을 부끄럼 없이 살아온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들이 지난날 도적질을 해 왔다거나 음란한 생활을 했다거나 속이는 생활만을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죄악 가운데서 살아 왔다는 말은 우리의 생활이 육신의 생활에 치우쳤을 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거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온 생애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더 분명히 말씀드리면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살아 왔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 그의 생활을 죄 가운데서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이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생활이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생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생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생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생활을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지난날 육신대로 살아 온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이 새로운 사람의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활은 하나님을 우리 생애에 중심에 모시며 우리의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야 할 생활입니다.

  이 생활은 새로운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지난날에는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소망을 삼고 살아 왔습니다. 돈이나 명예나 인생의 성공을 바라보며 그 보람과 기쁨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소망은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누릴 생애는 영원합니다. 그곳의 영광은 이 땅위에서 가히 누릴 수 없는 영광스러운 생활입니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 살 수 있는 확실한 보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소망을 바라보면서 이 땅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2.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


  우리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갈 동안에도 그의 백성들을 돌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풍성한 양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가난한 자가 아니라 부자가 되기를 원하시며 병든 자가 아니라 건강한 자가 되기를 원하시며 실패한 자가 아니라 성공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더하여 주신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더 풍성한 축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 예수님은 여기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위해 염려하는 그의 백성들을 향하여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30절에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막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 생활에 관하여 염려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원인이 믿음이 적은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 놓여 있어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고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적다는 말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나 약속을 믿는 일에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는 어린아이 상태의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의뢰하는 생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32절에서 이 같은 모든 생활 방식은 이방인들이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이방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2) 믿음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법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이라고 하셨습니다.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의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고 그의 의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 첫째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일이라고 하신 뜻입니다. 우리는 제각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마음속에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롬12:2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다음에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지체에게는 제각기 맡겨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맡은 교회의 직분에 충성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의 영원한 나라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생활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생활입니다. 상급도 그 나라에서 받을 것을 제일로 삼고 축복도 그 나라에 가서 받을 생명의 면류관을 첫째로 삼는 생활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생활입니다.

  다음에 먼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교훈이나 철학을 교훈으로 삼아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그의 말씀에 따르는 생활을 이루라는 뜻입니다. 순종하는 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생활입니다. 이 의는 율법이나 인간의 양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룰 수 있는 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얻은 그 의를 우리의 생활에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3)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생활을 자기 인생의 제일로 삼아 살아 나가면 이방인들이 구하는 의식주 위주의 육신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더하신다고 하신 약속은 분명히 이방인들이 세상에서 찾고 있는 건강이나 물질이나 육신적인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축복의 원리를 정하시고 그 원리대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이 원칙에 위배되는 생활을 하면 아무리 돈을 벌려고 발버둥쳐도 벌려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아야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도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합니다. 돈도 벌고 세상에서 부자라는 말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말씀이 성경에는 한 곳에도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잘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하십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일에 얽매어 세상일에 염려하는 방법으로는 그런 축복을 받을 수가 없고 그런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하는데 그 방법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에 나타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결론 : 우리는 먼저란 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의식주 생활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먼저’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을 하면 (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생활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은 오늘 주신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시고 축복 받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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