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설교 235 (산상보훈의 여덟가지 복)
 밤중소리  01-22 | VIEW : 848

                              
                         (235)


            산상보훈의 여덟가지 복
                      



   성경 본문 /  마태복음 5 : 1 - 12                                


  예수님이 들려주신 산상보훈의 말씀은 너무나도 진귀한 기독교의 보배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초기에 이 말씀을 들려주셨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우리는 팔복이라고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산상보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최대의 축복으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복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적인 축복을 표준으로 둘려 주신 복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는 그것이 결코 복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축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들에게는 크나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인생관이 달라지고 인생의 목적이 달라지기 때문에 복의 표준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가지고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생활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영이요 생명을 가장 중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축복도 영적이요 생명적인 뜻이 담겨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 원본에는 복이란 말이 두 가지 의미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이몬’이란 말로 이 단어는 축복으로 해석되지만 현세적인 축복으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보훈의 팔복은 이 ‘유다이몬’의 축복인 것이 아니라 ‘마카리오스’라고 하는 단어의 축복입니다. ‘마카리오스’란 말은 매우 부요하다는 뜻인데 이 부요는 세상적인 부요인 것이 아니라 영적 부요를 의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같은 축복이란 말이라도 ‘유다이몬’은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물질의 부요를 말하고 ‘마카리오스’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영적 부요를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은 산 위에 모인 많은 무리들을 향하여 여덟 가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축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심령이란 말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가난과 물질의 가난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질이 부요해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물질이 가난해도 마음이 부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난은 물질과는 상관이 없으며 그리스도인의 영적 마음의 가난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가난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첫째로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세상 것으로 소망을 삼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세상 것에 대해 가난한 것입니다. 다음에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회개한 심령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는 세상 정욕과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정욕을 비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마음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은 행길 가처럼 단단하고 돌작 밭처럼 쓸모 없으며 가시 넝쿨처럼 양분을 빼앗기기 때문에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마음에서 죄를 버려야 합니다. 죄가 자리잡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자리 잡을 곳이 없는 것입니다. 이 죄를 없애는 하나님의 방법이 회개인 것입니다. 회개하면 그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복이 무엇입니까?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할렐루야 ! 천국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천국의 축복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먼저 너희 마음속에 있느니라 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마음에 천국을 이룰 수 있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그 마음에 천국을 소유한 사람보다 더 부요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같은 축복을 받으신 줄로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애통하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하신 복은 애통하는 자들에 대한 축복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통이란 슬픔을 의미합니다. 아주 격렬한 슬픔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슬픔은 마음을 찢는 슬픔을 가리킵니다. 이 슬픔은 회개로 마음을 찢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패역하여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고 외쳤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찢는 일이 없이는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는 항상 기쁨이 있어야 하며 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 같은 생활에 실패할 때가 많은 것입니까? 참으로 죄를 아파하고 이 죄를 버리기를 정말로 원하며 마음으로 이 죄 때문에 애통함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죄에서 놓임 받게 되며 그 마음에는 죄로 말미암은 불안과 초조와 공포와 육신적인 쾌락 대신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함이 가득 차 자기 인생을 가치 있고 보람있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위로란 바로 성령이 임재 하심을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로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다음 세 번째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온유한 마음이란 겸손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겸손이란 말을 사용할 때 세상 사람들의 겸손과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겸손은 본성적인 성품이나 인격적인 수련에서 나온 겸손이지만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생활에서 열매로 맺어지는 겸손인 것입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겸손의 표본으로 삼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바로 이 같은 겸손에서 나타나는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처럼 겸손으로 온유한 마음을 가지면 자기 부족을 알게 되므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죄의 두려움을 알게 되므로 죄를 따르거나 죄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일에 오래 참고 견디므로 약속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시는 축복으로 주님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언약하신 땅은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런 썩을 땅의 유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땅의 기업에 대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다음 네 번째로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살려고 힘쓰는 사람의 갈급한 심령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의를 율법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에서 의로워지려고 애썼지만 그들의 노력은 언제나 외식으로 흘러 주님의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목마름을 해갈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율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은 이 의를 양심에서 찾으려고 힘쓰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양심으로는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양심적으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양심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를 율법이나 양심에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그리스도의 의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온전한 의라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이 의를 구원에 이르는 의로 확정지으셨습니다. 이 의야말로 천국 백성들이 소유해야 할 의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이 의를 사모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 의는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의를 사모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하는 생활을 기뻐하며 그 의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받는 복에 대하여 이들은 배부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배부르다는 말은 의에 배부르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믿음의 의는 그 사람의 의를 배부르게 할 것입니다. 이 의를 소유한 자만이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다음에 예수님은 다섯 번째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상대방을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 마음은 형제의 죄를 불쌍히 여겨 주므로 용서해 주는 마음입니다. 다른 형제들의 처한 처지를 이해해 주므로 불쌍히 여겨 주는 마음입니다. 가난한 사람, 어려움에 처한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그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우리가 우리들의 형제들에 대한 긍휼히 여겨 주는 것으로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란 말씀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는 축복도 우리가 형제들을 긍휼히 여기는데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야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야 우리들도 다른 이들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은 여섯 번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청결하다는 말은 깨끗하다, 더러움이 없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그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의 인간성을 대표하는 기관입니다. 마음은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어떤 육신의 기관이 아닙니다. 마음을 본 사람도 없거니와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마음을 수술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단순히 관념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마음은 분명히 육체의 어떤 부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고 성공의 길로 이끌어 갈 수도 있습니다.

  그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깨끗케 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서만이 깨끗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말의 반대말은 마음이 더럽다는 것이 됩니다. 이 마음의 더러움을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청결은 율법으로도 양심으로도 교육으로도 수양으로도 안 되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서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주시는 복이 있는데 그 복이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가 하나님을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해답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 마음에 아담으로부터 이어 받은 원죄건 자기가 지은 자범죄건 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의 피로 정결함을 받으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믿음으로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일곱 번째로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화평이란 말은 평화, 평안을 의미하는 말로 화평케 하는 자란 화평을 만드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화평케 한다는 말은 평화를 이룩하는 일로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원수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 같은 하나님과의 원수의 관계로 인하여 끝내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이란 이 같은 원수 관계를 소멸시키고 죄인들로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이런 화평은 복음을 전하므로 가능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일은 바로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이루는 일입니다. 이 전도를 많이 하여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한 사람은 많은 복을 받게 됩니다.

  두 번째의 화평은 형제들간에 화평을 이루는 일입니다. 형제와 화평하지 못하면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형제와의 화평은 서로 죄를 용서해 주는 마음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용서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의 축복에 대하여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화평케 하는 직분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마지막 여덟 번째 축복의 말씀으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직까지 말씀드린 일곱 가지 복된 생활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같은 생활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생활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핍박이 따릅니다. 한 가정 안에서도 핍박이 있습니다. 형제와 부모 자식 지간에도 간격이 벌어지고 핍박이 따릅니다. 얼마 있으면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인 추석이 옵니다. 말하자면 한 가정에서 제사를 드리자는 믿지 않는 부모님이나 남편이 있고 추도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아들이나 아내가 있을 때 갈등이 생기고 핍박이 따 르게 되는 것입니다.

  핍박에는 욕설을 퍼붓는 것도 있고 모든 악한 말로 모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성도들은 절대로 믿음에 동요되거나 마음에 갈등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이런 일로 오는 핍박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리고 오히려 그 같은 일로 핍박당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핍박을 당하는 자들에 대한 축복으로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의를 위한다는 말은 성도들이 그의 생활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 나갈 때, 당하는 어려움을 말합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주님을 위해 받는 핍박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신앙은 그의 신앙이 굉장히 성장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천국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에서의 상급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지난날 믿음의 선진들이 이 같은 일을 당했을 때 하늘에서 받을 상급을 생각하면서 기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보훈에서 들려주신 여덟 가지 축복에 대하여 이 시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축복을 바라보며 살아 나갈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축복을 바라보면서 이 같은 여덟 가지 축복을 창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이 같은 복된 생활을 이루어 나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REV :   설교 236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 밤중소리 
 NEXT :   설교 234 (떡으로냐, 말씀으로냐) 밤중소리 
 LIST  WRITE  REPLY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