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설교 234 (떡으로냐, 말씀으로냐)
 밤중소리  01-22 | VIEW : 495

                              
                         (234)


             떡으로냐, 말씀으로냐  
                      



   성경 본문 /  마태복음 4 : 1 - 4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리시어 광야로 가서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신 일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줍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세 가지인데 그 중에서도 오늘 주신 본문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 말씀, ‘돌로 떡을 만들라’는 시험에서 보여 주시는 교훈은 우리가 반드시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생활에 적용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40일간이나 금식으로 주리신 예수님에게 마귀는 먼저 떡을 가지고 시험을 시도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사탄의 유혹에 예수님은 단호히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즉시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1. 무엇으로 사느냐?


  그리스도인이 무엇으로 사느냐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그가 떡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요 이름만 그리스도인일 뿐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이 말씀으로 살아간다면 영에 속한 사람으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사람이 떡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육신으로 살아가는 생활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떡을 먹기 위해 살아갑니다. 생존경쟁이란 말은 바로 누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떡을 많이 빼앗으며 자기 손에 든 떡을 빼앗기지 않느냐의 싸움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육신적인 삶에 자기 인생을 걸고 살아갑니다. 이 사람들은 영적 생활을 모르며 영적 생활에서 오는 인생의 유익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죄로 타락한 이후, 영적 생명이 끊어진 결과 이처럼 육신의 사람으로 전락된 것입니다.
  육신적인 생활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을 육신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와 자기 가족들을 기쁘게 하고 육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인생의 제일 가는 목표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거슬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그 인간으로부터 영광을 얻으시기 위함이신 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인생은 그 자체가 실패이며 끝내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영히 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육신에 속한 생활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감사가 없는 생활은 죄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1장에서 인간의 범죄성에 대하여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육신에 속한 사람은 썩어질 것을 심는 생활을 합니다. 성경에서는 육신으로 심는 자는 썩어질 것으로 거둔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썩어질 것이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소멸될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비록 많은 수고로 많은 것을 거뒀다고 해도 그 수확한 것이 영원한 생명에 무익한 것들이며 결과적으로 그는 그 수확한 열매로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생활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정죄 받을 수밖에 없는 생활이기 때문에 그 마지막이 사망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사람이 떡으로 산다는 말은 사람이 먹을 것을 위주로 살아가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입으로 먹을 것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직 세상에만 그들의 생의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내가 지금 소유할 수 있는 것, 내가 지금 세상에서 활용하고 유용하게 사용 할 수 있는 것 이외엔 별로 관심을 갖지 아니합니다. 이들은 천국에도 지옥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주의 재림도 하나님의 심판도 믿지 아니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으로 최대의 인생의 소망,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 사람들, 롯의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종말 시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이 세상 사람들의 생활이 마치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같을 것이라고 경계하시면서 경종 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노아가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경종을 전혀 무시하고 오직 자신들의 삶의 목적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인류의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러할 것이라고 경종 하신 것입니다.

  육신적인 생활은 이처럼 우리들로 하나님의 심판이나 주님의 재림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류의 종말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하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3) 사람이 떡으로 산다는 말은 재물을 제일로 여기며 오직 재물 얻기에 급급하게 살아가는 생활을 말합니다. 재물에는 우리에게 행복을 주고 삶의 보람을 주고 위신을 세워 주며 사람들 앞에서 존경을 받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돈을 싫다고 손을 내저을 사람이 있을 것입니까? 그러나 성경에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도 하지만 돈의 노예가 되거나 돈에 자기 인생이 끌려 다니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돈을 사랑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돈을 위해 살아가는 생애를 말합니다. 자기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높은 곳에 올려놓고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무엇이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사람이 떡으로만 살아간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아무 것도 취할 것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리스도인들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으로가 아니라 떡으로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요 주 재림의 날에 미련한 처녀로써 대환난 가운데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생활은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생활이요 마귀에게 끌려가는 생활이며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생활입니다.


  2.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그러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 사람이 떡을 먹고 살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떡이 사람의 육신의 건강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건강을 주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죄로 죽었던 영적 생명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영적 생명은 우리가 먹는 떡으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 생명을 자라게 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생명의 성장이 곧 우리의 믿음의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나 성장하지 못하면 퇴보하게 되고 그 퇴보가 계속되면 그 생명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적 생명이기 때문에 영적 생명의 양식이 필요한데 그 양식이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인 것입니다. 떡은 입으로 먹고 배로 들어가 소화되어 뒤로 나오는 것으로 육신의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영적 생명은 귀로 듣고 마음에 간직하므로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참된 영적 양식이 되려면 그 양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 것입니까? 마치 배고픈 사람이 떡을 먹기를 사모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먼저 그 말씀을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란 사실을 일깨어 주고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신을 위한 삶에서 장차 나타날 영광의 소망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이란 바로 천국에 대한 소망을 말합니다. 떡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의 인생의 소망으로 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고 이 나라를 그의 인생의 소망으로 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생활이란 그 말씀을 마음의 밭에 심는 생활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씨앗으로 비유하셔서 씨 뿌리는 비유의 교훈을 들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는 밭으로 말씀하시고 그 밭의 형태를 단단한 길가와 같은 밭, 돌이 많은 돌작 밭, 가시 넝쿨이 무성한 밭, 그리고 좋은 땅으로 된 밭 등으로 나누셨습니다. 그 중에 열매를 맺는 밭은 좋은 땅으로 비유된 마음인데 이 마음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귀로 듣고 마음의 밭에 떨어지지만 모든 씨앗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밭이란 단단하지 않고 돌이 없으며 가시 넝쿨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죄를 가리킵니다. 죄가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면 그 마음 밭은 이미 단단해진 길가와 같은 밭이요, 돌이 가득 쌓여진 돌밭이며 가시넝쿨이 무성한 가시밭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밭에는 말씀의 씨앗이 제대로 심겨지지 않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에 듣고 깨닫는다는 말씀은 들은 말씀을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그 말씀이 그 사람에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러나 깨달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말씀을 따르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만이 말씀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영생으로, 소망으로, 화평으로, 감사로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말씀의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자가 의인인 것이 아니라 듣고 행하는 자라야 의인이라고 하셨습니다.

  (4) 예수님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도 빠진 것이 없이, 하나도 모자람도 없이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모든 생활의 규범을 그 입의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바울은 딤후3:16절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생활에는 반드시 열매가 나타납니다. 이 열매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과 그곳에 가서 받는 놀라운 상급을 의미하지만 우리의 생활에도 끊임없이 그 결과가 나타난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씨앗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씨앗을 심으면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면 반드시 그 말씀의 열매를 맺게 되며 그 열매가 우리의 생애를 부요하게 하며 우리의 인생을 기름지게 하며 우리의 생활 가운데 우리가 누려야 할 풍성한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사실 때문입니다.

  떡으로 살아가는 생애는 그 결과가 썩어질 것을 수확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물질을 원하고 물질을 위해 노력한다고 우리들 생각대로 우리가 그 물질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이미 우리 하나님의 손에 의해 꽉 잡혀져 있기 때문에 그 손에서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승리적인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그 사람은 하나님이 피로 값주고 당신의 소유로 사셨기 때문에 그의 손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내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가 어찌 우리의 생각대로 빠져 나와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징계의 채찍을 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12:6절에서 이르시기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데 우리가 그 길에서 빠져 나와 사망의 길로 가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채찍으로 그 길을 막으시고 우리가 가려고 하는 그 사망의 길에서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순리대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순리대로 살아가는 길이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생활인 것입니다. 이 생활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과 그의 생애에 말할 수 없는 각가지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안이 가장 그 사람의 행복을 선사하는 조건이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마음의 평안이 깃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면 그의 인생에 진정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돈이나 명예로 오는 기쁨은 인생의 진정한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들 인생의 마음속에 심어 주시는 기쁨이야말로 가난 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환난을 만났을 때에도 그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열매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에서 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11조 생활에서 오는 말3:10절의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고 하신 축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심는 자에게 많이 거두게 하시는 체험적인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떡으로 살아가는 생활이어서는 안됩니다. 그 결과 얻을 것이라고는 썩어질 것이요, 영적인 수확은 아무 것도 없고 우리가 원하는 축복도 가질 수 없으며 어려움과 징계와 시련 가운데서 허우적거리는 생애를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손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 아직까지 여러분은 떡으로 살려고 무던히 애쓰고 노력한 결과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길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가난과 질병과 시련과 연약함밖에 더 무엇이 있었습니까? 하루빨리 여러분의 생활을 떡을 찾고 떡으로 살아 온 아직까지의 생활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그 말씀으로 여러분의 새로운 삶의 참 양식으로 삼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할 것이며 여러분의 생애에 말할 수 없는 축복이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이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REV :   설교 235 (산상보훈의 여덟가지 복) 밤중소리 
 NEXT :   설교 233 (우리가 시험을 만났을 때) 밤중소리 
 LIST  WRITE  REPLY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